소설리스트

화산대도-409화 (409/425)

409화

샤아아아-

바람 소리가 세 사람 주변을 미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주위에 누군가 있군.”

“앗.”

인양과 녹림야검은 바로 내력을 끌어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위에서 아무런 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의 인물.

‘고수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굳은 표정으로 바짝 긴장하면서 계속해서 상대의 기를 찾았다.

하나 여전히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핏핏!

순간, 허공에서 불쑥 죽음의 살기가 튀어나오며 날아왔다.

‘당했……!’

인양과 녹림야검은 눈앞에 나타난 살기를 보며 피할 수 없음을 단번에 알았다.

휘익!

그때였다.

그들 앞으로 예상이라도 한 듯 고진유가 막아섰다.

“장난이 심하군.”

두 사람을 노리는 살기에 고진유의 목소리는 화가 나 있었다.

번쩍!

고진유의 호신강막이 살기를 막아냈다.

터어어엉!

살기는 거친 소리를 내며 호신강막을 뚫지 못한 채 사라졌다.

고진유는 한쪽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만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니. 역시 은룡투인은 다르군.”

스으으으-

안개 안에서 인영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은룡투인, 처음 보는군. ……아, 그건 아닌가.”

“당신은 누구요?”

“사신이라 한다. 은룡투인이라는 젊은 인물을 죽일 분이시지.”

“그렇군요. 그대를 명왕이 보냈소?”

“오호……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꼬?”

그는 히죽 이빨을 드러냈다.

“당신 같은 인물을 보낼 정도라면 명부의 명왕밖에 더 있겠소이까?”

“크크크. 똑똑하군. 역시 유전자를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야.”

“…….”

고진유는 유전자를 들먹거리는 그를 자세히 보았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군요?”

“당연히 알고 있지. 세상에 극일가의 가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크큭, 그랬던가? 근데 내가 알려줄 필요는 없지. 혹시나 나를 이긴다면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렇소? 그렇다면 무조건 당신을 잡아야겠군요.”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당연.”

우우우웅-

고진유는 처음부터 용린기를 끌어 올렸다.

상대의 무력이 어떠한지 파악했으니, 한 번의 움직임에 내력을 쏟아냈다.

파아아앗!

은광의 강렬한 빛이 고진유의 신형에서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앙!!

기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힘이 그의 앞을 때렸다.

“크으……!”

사신은 뒤로 물러나면서 뿜어져 나오는 은광을 힘들게 막아냈다.

“대단하군요.”

사신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은룡투인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충분히 상대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첫 번째 부딪힘에 그는 당황했다.

일천명부로 향하는 고진유를 만나기 위해 오면서 예상했던 실력이 아니었다.

‘뭐지? 이놈은?’

무시할 수 없는 강한 힘.

사신은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상대의 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앞이 탄 듯 보였다.

‘강하다. 은룡투인으로 변하지도 않았는데…….’

예상과 다른 상대에 대해 그는 긴장했다.

“표정을 보니 당황한 것 같소이다.”

“…….”

“대꾸도 안 하는 것을 보니 당황한 게 맞군요.”

타앗!

고진유는 연이어 움직이며 단숨에 거리를 좁혀 사신의 앞에 다가섰다.

샤아앗!

그와 동시에 사신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딜……!’

스걱.

고진유는 사의검을 잡은 뒤 옆으로 뻗어냈다.

허공에서 날카롭게 잘려 나간 소리가 들렸다.

‘크윽!’

사신은 모습을 감추며 뒤로 돌아선 채로 고진유를 기습하고자 했지만 팔을 뻗어내기도 전에 가슴 앞을 지나가는 검기를 느꼈다.

만일 무시하고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왔다면 가슴을 가르며 지나갔을 터.

다행히 가벼운 상처만이 났다.

“모습을 감추고자 해도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소이다. 그런 방법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소.”

“…….”

사신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과 달리 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고?’

고진유를 보는 그의 눈빛.

당황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눈앞에 선 은룡투인까지 세 번이나 다른 은룡투인을 만났다.

그가 아는 은룡투인의 위력은 이보다 높지 않았다.

“한 손에 들어오던 조그마한 놈이 정말 이렇게까지 자랄 줄이야…….”

“……!”

고진유는 그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한 말이 무엇이오?”

사신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머뭇거렸다.

오래전 그는 명왕에게 거짓을 고했다.

명왕의 명을 받아 오천공녀를 죽이러 나온 날.

아들을 낳으면 어미와 동시에 죽이라는 명이었다.

처음 여아가 태어나자 다행히 아기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녀는 사내아이를 다시 낳았다.

쌍둥이였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극일천주가 사내아이를 숨겼다.

그는 분명 명왕의 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서 사내아이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자신과 극일천주밖에 없다.

‘그가 아이를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있나?’

극일천주에게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내 아기는 극일천주가 데리고 간 이상 중원에 함부로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명왕에게 모른 척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오천공녀가 잠이 든 후 죽음의 기를 불어 넣었다.

고진유의 눈빛은 강렬했다.

“글쎄. 그냥 해본 말이다. 다른 뜻은 없다.”

“당신 같은 사람이 헛소리라…….”

“…….”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하지만 약속을 했으니 당신을 이기면 말하지 않겠소이까.”

찌이이이잉-

은룡투기가 강하게 퍼졌다.

고진유는 은발을 휘날리며 전신이 은빛 용린으로 변했다.

‘은룡투인…….’

이미 은룡투인으로 변한 인물들을 두 번 본 적이 있었다.

‘……다르다.’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눈앞에 선 은룡투인 고진유는 예전에 보았던 그들과 달랐다.

‘그렇군.’

사신은 곧바로 그 이유를 알았다.

고진유의 눈빛은 맑았다.

은룡투인으로 변하면 강한 힘에 의해 살성 또한 강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피곤한 싸움이 되겠군.’

번쩍!

은광의 빛이 눈앞에서 폭발했다.

‘시작이라고 말도 안 하는군.’

사신의 창백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쉬이이이이-

사신의 신형은 원래보다 두 배 정도의 몸짓으로 부풀어 올랐다.

파아아앗!

부풀어 올랐던 몸에서 내기가 단번에 빠져나갔다.

은광과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두 기운의 충격 여파에 거대한 기의 폭풍이 퍼져 나갔다.

사신은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에 반해 고진유는 그대로 서 있었다.

‘이 녀석…… 전력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힘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처럼 암울한 상황을 맞이해 본 적이 없었다.

‘특이해…….’

사신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 아니면 물러나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일 여기에서 계속 싸운다면 죽을 수 있었다.

“설마 도망가려는 것이오?”

“감히 사신이 나를 어떻게 보고……!”

“당신은 도망갈 수 없소.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외다.”

“…….”

사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괜한 말을 해서 곤란해졌다.

그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되지만, 한번 말을 뱉은 이상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팟.

고진유는 몸을 띄워 공중으로 떠올랐다.

허점을 많이 노출하는 동작이지만 고진유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노오오옴! 감히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더냐?”

사신은 허공에 멈춘 고진유를 보더니 살기를 내뿜으며 사신기를 쏟아냈다.

핏핏핏핏!

사신의 전신에서 뻗어 나간 사신기가 고진유를 향해 치솟았다.

쿠아아아아앙-!!

고진유의 신형을 감싼 은빛의 투룡이 크게 원을 그리며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장 은광투룡이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사신기를 향해 떨어졌다.

강 대 강.

내력의 싸움이었다.

두두두두-

끝없이 치솟아 오를 듯한 사신기가 은광투룡의 기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사신을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며 떨어졌다.

콰아아앙!!

사신은 전력을 다해 몸을 피하며 벗어났다.

‘커어억……!’

거친 숨을 내쉬며 공중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은룡투인을 보았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들과 다르다.’

명왕도 이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 여길 정도였다.

“괴물이군. 그 녀석이 세상을 떠난 이유가 저놈 때문이었어. 이 녀석이 있기에 모든 것을 맡겨두고 떠난 것이었군.”

극일천주가 목숨을 다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명왕과 싸워 절대로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사신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재미있겠는데?’

명왕의 죽음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사신은 손을 들어 고진유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대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들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왜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오?”

“그거야…… 그대의 실력을 보니 명왕과 싸워도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당신과 명왕의 사이가 어떠한지 궁금하군.”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그의 명을 받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오?”

“우린 동등한 사이다. 그러기에 그의 명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지.”

“신의가 없는 사람이군.”

“크하하하!”

사신은 대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신의가 목숨을 살려주지는 못하지. 그저 때에 맞게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하긴. 당신 인생을 굳이 본인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겠지요.”

고진유는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사신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제일 궁금한 게 무엇인지 물어라. 딱 하나만 공짜로 알려주겠다.”

“본인의 신상에 대해서 당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사실대로 말해주시오.”

“음…… 머리가 좋은데? 약속대로 그대의 신상에 대해서 말해주지. 극일천주와 오천명부 출신인 오천공녀의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중 사내 자식이다.”

“그게 전부요?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소이까.”

“은룡투인, 많이 안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일부러 머뭇거리는 것을 알고 있소. 내가 더 궁금해지도록 원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소.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소이다.”

“크크크. 과연 그럴까?”

“당신이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것이오.”

“…….”

사신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고진유는 똑바로 보았다.

“당신이 원하는 건 명왕과 본인이 싸우는 것이 아니오?”

“맞다.”

“당신이 사실을 알려주든, 아니든 둘 중 한 명은 죽을 것이오.”

“극일가주와 명왕이라는 운명만으로 싸우는 것인가?”

“그런 것은 의미 없소이다. 그는 본인의 사부를 죽였소.”

“누구? 그대의 사부가 누구인데?”

“…….”

고진유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서 사부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어디 문파 출신인지 알고 있소?”

“극일가의 가주라면서?”

“그동안 어디 먼 곳에 갔다 왔소?”

“얼마 전에 깨어났다. 한 이십 년 정도 잠을 잤지.”

“기본이 안 되어 있군요. 나를 죽이기 위해 나왔다면 최소한 내가 누구인지 알아봐야 할 게 아니오?”

“………”

은룡투인은 극일가의 가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건 알아보지 않았다.

“본인은 화산파의 제자요. 본인의 사부님을 죽게 만든 건 신무신단이었소이다.”

“화산파의 제자였다고? 왜?”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소. 굳이 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할 필요는 없겠지요.”

“흠, 그렇지. 신무신단에 의해 사부가 죽었다면 명왕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군. 명왕은 그대의 어머니를 죽였다.”

“그럴 것이라 여겼소.”

고진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흥분할 거라는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군.”

“숙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어머니의 죽음에 살기를 느꼈다고.”

“…….”

“오직 한 곳에서만 존재한 살기. 예전에는 어떤 기인지 몰랐는데 오늘 문득 어머니를 죽게 만든 살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소이다.”

그를 보면서 고진유의 차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명왕이 왜…… 어머니를 죽이고자 했는지 그것을 알고 싶을 뿐이오.”

“명왕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은룡투인밖에 없으니깐.”

사신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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