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칠천명부의 첫 번째 관문이 나타났다.
처억.
일행은 관문 앞에 멈췄다.
“우리가 들어온 사실을 알고 있군.”
“기다려 볼까?”
오천명군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관문 앞으로 칠천명부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억.
명신오공 유우는 칠천명부에 들어선 다섯 명의 인물들 앞에 다가섰다.
‘역시…… 명부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군.’
다섯 명 중에서 특히 두 명의 인물에 대해 잘 알았다.
“소인은 명신오공 유우라 합니다. 삼천명부와 오천명부의 주인이신 두 분을 뵙습니다.”
“우릴 단번에 알아보다니 제법이군.”
“소인이 어찌 명부의 주인을 모르겠습니까.”
“우린 그대의 주인 칠천명군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네.”
“…….”
그는 소개하던 모습과 달리 대답 없이 두 사람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삼천명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한 번 말을 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에게 보고를 해야 하지 않나?”
“이미 명군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알고 있다라? 그는 우릴 만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송구하옵니다.”
삼천명군은 일행을 향해 돌아서면서 어이없다는 듯 양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진심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는 다시 명신오공을 보며 물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죄송합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삼천명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명백한 무시가 아닌가.
“휴우…….”
그는 길게 호흡을 했다.
만일 뒤에 고진유가 없었다면 당장 싸웠을 터.
스윽.
고진유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섰다.
“칠천명군께서 우리를 만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네놈이 누구이기에 후회란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하하.”
고진유는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명신오공이라 하셨소? 그대의 상태를 보아하니 명왕이 준 신무신단을 복용했군요.”
“넌…… 누구지?”
“본인이 은룡투인이라 하면 제대로 소개가 되는지 모르겠소이다.”
“…….”
명신오공은 몸이 경직됐다.
은룡투인에 대한 소문은 수없이 들었다. 명부에 있어 가장 두려운 적이 바로 은룡투인이었다.
그는 목소리가 떨리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 신이……?”
“맞소. 본인이외다.”
그는 함께 온 삼천명군과 오천명군을 번갈아 보면서 어떻게 상황을 파악해야 할지 몰랐다.
“그분께 가서 본인을 만나지 않으면 칠천명부는 조만간 큰일이 날 것이라 전해주시오.”
“우리와…… 싸우겠다는 것이오?”
“칠천명부와 싸우고자 왔다면 이분들과 함께 왔겠소이까?”
“……그럼 후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신무신단에 관한 것이오. 명왕이 준 신무신단을 복용했다면 큰일이라 전해주시오. 만일 한 번 더 보고를 한 뒤에도 명군께서 돌아가라면 우린 물러가겠소이다.”
“…….”
그때 삼천명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보고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칠천명부가 망한 건 네놈 때문일 테니까. 왜 그때 보고를 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명신오공은 그들에게 속을지언정 명군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형이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움직였다.
* * *
“문을 열어라!”
구우우웅-
명신오공은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다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그의 앞을 서너 명의 인물들이 막아섰다.
“여긴 무슨 일로 왔지?”
“이공, 명군님께 보고드릴 사항이오.”
“분명 그들에게 물러가라고 했을 텐데? 똑바로 하지 못해?”
명신이공도 그처럼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공,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대체 무슨 문제라는 것이냐?”
“신무신단에 관한 문제라고 했소. 두 분의 명군님과 함께 온 인물이 은룡투인이외다.”
“뭣이?”
명신이공은 화들짝 놀라며 한층 더 목소리가 커졌다.
“그자가…… 그분들과 왜?”
명신이공은 고민에 잠겼다.
그때였다.
안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드르륵.
문이 열리며 침상 끝에 앉은 인물이 나타났다.
그의 몸은 한눈에 봐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허리에 심한 부상을 당했는지 상체 전체가 붕대로 감겨 있었다.
“방금 은룡투인이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그가 온 이유가 신무신단이라 했다는 말이지?”
“맞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만나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와 싸우겠다는 뜻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보고한 뒤 만나기 싫다면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
칠천명군은 사천명부와 구천명부를 치는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당분간은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척.
명신이공이 앞으로 나섰다.
“명군님. 굳이 만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명군님께서 부상당한 모습을 보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이공의 말이 맞습니다!”
또 다른 사내가 나섰다.
명군은 방에 모여 있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을 보며 물었다.
“십공, 어떻게 생각하느냐?”
“은룡투인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상대와 싸울 때 거짓으로 협박할 인물은 아닙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신무신단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공께서 보고한 대로 본 명부와 싸우고자 했다면 굳이 두 분의 명군님과 함께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군. 십공의 말에 일리가 있다.”
칠천명군도 같은 생각이었다.
은룡투인이란 인물이 싸우고자 한다면 그대로 밀고 들어오면 될 일이었다.
“안으로 모셔라.”
그의 명은 곧 명부의 법이었다.
한번 결정을 내렸다면 반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명신이공이 불쑥 나섰다.
“명군님,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칠천명부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
명군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비록 부상을 입은 그였지만 기는 여전했다.
“지금 무슨 짓인지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여기에서 당장 물러나라.”
“…….”
명신이공은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나며 방을 나섰다.
명군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오공은 그들을 이곳으로 모셔라.”
“여기에 말입니까?”
“숨기고자 해도 그들은 속일 수는 없다.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물러나도록 해라.”
* * *
고진유는 대전으로 들어서면서 주위에 흐르는 진한 냄새를 맡았다.
‘다쳤군.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 한 거야.’
탕약의 냄새만으로 어떠한 상황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고진유는 대전이 아니라 개인 거처로 안내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명군께서 몸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고 싶지 않으셨군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명신오공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다행이네요.”
고진유는 더는 묻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며 그를 따라 들어섰다.
‘뭐지? 이 녀석…….’
드르륵.
명신오공이 당황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명군의 거처로 들어섰다.
그는 침상에 앉아 있었다.
“어서들 오시오.”
일행은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가 다친 것을 보았다.
‘부상을 당했다는 게 사실이었군.’
삼천명군은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상처를 살폈다.
“많이 다쳤는가?”
“보는 바와 같네.”
“죽을 정도는 아니구먼. 아쉽군.”
“후후…….”
칠천명군은 웃음이 나왔다. 아쉽다고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구천과 사천은 살아 있나?”
“그 두 놈은 목이 잘린 채 죽어 있겠지. 이왕 시작한 칼춤이라면 썩은 호박이라도 잘라야지 않겠나.”
“그 두 놈이 죽은 것에 비하면 자네 상처는 미미하군.”
“그렇다고 봐야겠지.”
칠천명군은 그와 인사를 나눈 뒤 함께 들어선 오천명군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지만 앉아서 맞이하는 것을 이해하게.”
“이해하네. 상처는 입어도 얼굴은 좋아 보이는군.”
“고맙네. 자네들이 함께 이곳까지 올 줄 몰랐네. 그것도 은룡투인과 함께.”
스윽.
삼천명군은 의자를 들고 그의 가까이 바짝 다가선 뒤 앉았다.
“우리가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해줄까?”
“좋지.”
“두 가지가 있는데 자네도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네.”
“뭔가?”
“은룡투인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당연히 잘 알고 있지.”
“그래도 이건 모르겠지. 여기 이 친구와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면 믿지 못할 것이네.”
“무슨 관계라도 되는 모양이지?”
“서로 외조손의 관계이더군. 놀랍지 않은가?”
“……허.”
삼천명군의 예상치 못한 말에 그는 놀라면서도 당황했다.
“그게 정말인가?”
“오천공녀가 결혼한 사내가 극일가의 가주였다더군.”
“놀랍군. 명부와 극일가의 결합이라니.”
“그러게 말일세.”
“두 번째 놀랄 일은 뭔가?”
“그건 여기 은룡투인이 알려줄 것이네.”
고진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칠천명군님을 뵙습니다.”
“반갑소. 은룡투인을 마주 보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편하게 말을 하셔도 됩니다. 몸은 어떠하십니까?”
“괜찮아지고 있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상처는 잘 완쾌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고진유가 마치 이유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상처가 깊다고 해도 충분히 완치되고도 남았다.
“명왕부에서 신무신단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
“칠천명부만이 아니고 구천의 모든 명부들이 받았을 것입니다.”
“맞네. 그들에게서 신무신단을 받았네. 명부 밖으로 나가는 데 더는 제약이 사라진다고 하더군.”
“명군께서는 그들을 치기 위해 신무신단을 복용하셨군요.”
“당연히. 복용을 했지만 여전히 몸에 전혀 이상이 없다네. 예전에 생산한 신무신단과 달리 중독성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지.”
“미리 알아보셨던 모양이시군요.”
“당연하지 않은가. 명왕이 주는 것을 무턱대고 복용할 수 있는 건 아니네.”
“맞습니다. 함부로 복용하면 큰일 나지요. 혹시 그들이 준 신무신단이 있으면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칠천명군은 침상 끝에서 옥병 하나를 꺼냈다.
투명한 옥병 안에 신무신단이 들어있었다.
“이것이네.”
“……이건 백향목의 열매 가루입니다.”
그는 옥병을 열어 가루를 안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을 유심히 보았다.
퍼어엉!
옥병 안에서 갑자기 터진 신무신단을 보며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왜 폭발을 하는 것이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신무신단의 성분 중에 독령초에서 뽑아낸 성분이 있습니다.”
“독령초는 나도 잘 아네. 하지만 이렇게 폭발한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한 일이야.”
“독령초에서 나온 진액과 백향목 열매 가루가 만나면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단에서 나온 기는 머릿속에 들어가면 더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되니까요.”
“……그 말은 즉…… 신무신단을 복용한 자가 열매 가루를 마시거나 접촉한다면 머릿속에서 터진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명왕, 이 죽일 놈의 새끼가…….”
칠천명군은 단번에 욕이 튀어나왔다.
삼천명군이 불쑥 나섰다.
“이보게, 명왕이 그런 놈이네. 절대로 우리를 위해 나서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지.”
“신무신단을 복용했네.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신무신단을 복용한 이상 무슨 방법이 있겠나. 어떻게 하긴 그냥 퍼어어엉! 하고 죽을 수밖에.”
“…….”
그의 말에 칠천명군은 말이 없어졌다.
짜악.
오천명군이 다가서면서 삼천명군의 등짝을 내리쳤다.
“아야…….”
“아픈 사람을 놀리고 있군.”
“쯧,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리겠는가? 나중에 낫게 되면 우리가 그의 상대가 되겠는가?”
칠천명군은 두 사람을 보았다.
“방금 보여준 게 거짓인가?”
“안타깝게도 그건 사실이네. 신무신단을 복용한 인물이 백향목 열매 가루를 조금이라도 맡게 된다면 머리가 터져. 믿을 수 없다면 한번 해봐도 되지.”
“…….”
오천명군 또한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신무신단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은룡투인이거든. 이미 명왕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삼천명부를 위해서 해독제를 만들어주더군.”
“하…….”
해독제의 존재에 그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삼천도 은룡투인에 받은 해독제로 치료했더니 전혀 문제가 없었어.”
“그런가? 정말로 아무 문제도 없던가?”
“깨끗하게 해결이 되었네.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명왕이 아닌 은룡투인이 만들어준 신무신단을 복용했기 때문일세. 밖으로 나가는 데 문제가 없더군.”
“그렇군.”
칠천명군은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마치 해독제를 달라는 듯한 간절한 시선.
고진유는 그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피하면서 오천명군을 보았다.
“외조부님.”
“왜 그런가?”
“저어, 그게 해독제는 삼천명군에 나누어주는 바람에…….”
“이런…… 지금 해독제가 없다니 큰일이군. 그것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사이에 누군가 칠천명부에 들어와서 백향목 열매 가루를 뿌린다면…….”
칠천명군은 당황한 표정으로 오천명군을 보았다.
정말로 그의 말처럼 된다면 신무신단을 복용한 모든 이들이 머리가 터져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소?”
“크크크크…….”
오천명군은 그의 당황한 표정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핫!”
그는 명왕과 맞붙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
고진유는 녹림야검의 짐에서 꺼낸 해독제를 그에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외조부께서…….”
“……됐네. 이 녀석들은 예전부터 나를 놀리는 걸 좋아했지.”
삼천명군과 오천명군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서로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