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03화 (403/425)

403화

하오신문의 문주와 명부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룡투인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본 가는 이번에 너무 큰 손실을 당했습니다. 우선은 돌아간 뒤 빠르게 재정비를 해야겠지요.”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하오신문에서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수하들이 은룡투인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다면 기뻐할 게 틀림없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고진유는 다시 포권을 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 곳은 하오신문이었다.

무림 전체를 살피는 그들이 있기에 극일가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구천명부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빠르게 연락을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이야기가 끝난 듯했다.

고진유는 손을 잡아주며 원정문을 일으켰다.

“조심해서 돌아가시지요. 여하튼 먼 길을 오게 해서 미안하외다.”

“허허. 아닙니다. 오랜만에 중원에 나와서 좋았습니다. 은룡투인께서도 몸 건강히 지내십시오.”

“본인이 바빠서 그만 먼저 가도록 하겠소이다.”

휘이익.

고진유는 그와 짧게 눈인사를 한 후 신법을 펼쳤다.

“엄청나게 빠르시군.”

원정문은 벌써 사라진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린 그의 무공을 옆에서 지켜본 수하에 의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수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법만 봐도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은룡투인이 계시는 이상 변한 건 없다.’

그는 고진유를 믿었다.

* * *

고묵은 온몸에 기운이 빠진 채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의 집무실에 혼자 남아 며칠 동안 말없이 지냈다.

극일가의 가주이자 아들의 죽음.

그는 처음 그 사실을 보고받았을 때 슬퍼할 수 없었다.

고도유의 죽음도 있지만 극일가의 수많은 형제와 가족들도 함께 죽임을 당했다.

극일가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침울하게 변했다.

이틀 전 거용관으로 함께 갔던 일행 중 일부가 돌아왔다.

그들 사이에 고진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홀로 육천명부가 매몰된 곳을 확인하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그가 그곳에 갔다면…….

혹시나 살아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극일가의 무인들을 한꺼번에 잃어서 슬펐지만, 현실을 똑바로 인지하여야 한다는 고진유의 말을 전해 받았다.

절반 이상의 전력이 사라져 버린 극일가의 상황.

중원에 소문이 난 이상 명부에서도 모를 리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쁜 방향으로 갈 게 분명했다.

고묵은 슬픔을 참아내며 눈앞에 다가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슬픔을 누르고 며칠 동안 오로지 감성적으로 대했던 사건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생각했다.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은 고도유의 행적이었다.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

거용관에서 육천명군까지 죽인 상황이었으니, 육천명부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육천명부를 정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고 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다만 고도유는 자기의 아들이기에 어떠한지 잘 안다.

그럴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유가 없이 움직일 녀석이 아니야. 설마…… 그 녀석에 대한 소문이 맞다는 것인가?’

고도유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리에 들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같다는 보고.

하지만 고도유의 뒤를 확인해 보아도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그 녀석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고묵은 가슴이 아팠다.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극일가에 큰 피해를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아……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군.’

똑똑.

그때, 집무실 밖에서 누군가 찾아온 소리가 들렸다.

“숙부님.”

고진유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들어오너라.”

그의 생각대로 문이 열리며 고진유의 모습이 보였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길이더냐?”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고묵은 당장 그들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자리에 앉도록 해라.”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의 앞에 앉았다. 잠시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저어…….”

먼저 고진유가 말문을 열었다.

“말해보아라. 난 괜찮다.”

“안타깝게도 도유 형님과 본 가의 식구들이 육천명부에 매몰되었습니다.”

“…….”

고진유와 고묵은 잠시 또 한 번의 침묵에 잠겼다.

“전…… 하오신문과 함께 아래를 조사해 보았지만 그들을 찾을 방법이 더는 없었습니다.”

“……수…… 고했다.”

고묵은 잠시 고개를 옆을 돌리며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아냈다.

“혹시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없더냐?”

“물러나기 전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

“그는 스스로 명왕이라 했습니다.”

“……사실인가?”

갑자기 명왕이라고 하는 말에 고묵의 눈이 커졌다.

“네. 그는 정말로 명왕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명왕이라니…… 정말로 그곳에서 명왕을 만났다는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분명 명왕이 맞지만 본체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제가 만난 명왕은 죽은 자의 시체였습니다. 그는 시체의 몸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었다고 했습니다.”

“분신혼령대법(分身魂靈大法)?”

“숙부님, 그가 펼친 술법을 아십니까?”

“명왕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펼친 대법이다. 오래전 전대 은룡투인과의 싸움에서도 분신혼령대법을 펼친 인물들과 수차례 싸웠다고 들었다.”

고진유는 그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와 싸워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잘했군.”

분신혼령대법을 펼쳤다고 해도 그의 목을 잘랐다고 하자 감탄이 나왔다.

“조카. 그런데…… 도유가 그곳에 왜 있었는가?”

“…….”

고진유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고묵과 시선이 마주쳤다.

‘도유 형님에 대해 무엇인가 알고 있는 듯하시다.’

모든 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지만 때로는 거짓도 나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번의 경우가 그러했다.

고진유는 모르는 척했다.

“그 또한 명부에 일이 생겼기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혹시 도유가 명부에 간 이유가 그와 관련이 된 것이 아니더냐?”

“그건 아닐 것입니다. 도유 형님은 숙부님께서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육천명부를 완전히 멸문시키기 위해 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왕은 우리가 명부로 갈 거라고 예상을 했던 모양입니다. 도유 형님은 운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고묵은 그의 말을 따랐다.

고진유가 이와 같이 설명한다면 장로회에서도 인정한 후 넘어갈 것이었다.

고도유와 극일가 무인들의 죽음은 본 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었다.

“조카,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아니라네. 이번 일은…….”

“숙부님,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우린 앞으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알겠네.”

“본 가의 인원들에게 비상 상황임을 알리고 명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조카가 다시 가주직을 맡아줘야겠네. 이 시국에 가주의 자리를 비워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맡도록 하겠습니다.”

“난 바로 장로회에 가서 이 사실을 그대로 알리겠네.”

고묵과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악.

그는 고진유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조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숙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슬픈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이 아이의 손에 달렸다.’

* * *

드륵.

문이 열리며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인양이 빠르게 일어나 고진유를 반겼다.

“형……!”

“다들 얼굴이 똥 씹은 표정들이네요.”

스윽.

고진유는 다가온 인양의 목을 한 손으로 장난을 치면서 껴안았다.

무혼신녀가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오는 길이더냐?”

“숙부님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잘했다. 그분이 가장 힘들어하실 게야.”

“모두 저녁 식사는 했어요?”

“……아직…….”

“이런, 밥시간이 지났는데 뭐 하고 있습니까. 우선 밥이나 먹죠. 빨리 온다고 점심을 건너 띄었더니 배가 고파요.”

“훗. 그러자. 안 그래도 나도 배가 고픈 참이었다.”

방 안에 있는 일행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한쪽 끝에 앉아 있던 천마는 고진유가 들어온 뒤 일어난 변화를 보았다.

‘단번에 분위기가 밝아졌군. 방금까지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분위기이었거늘.’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 씨는 배 안 고프오?”

“…….”

순간 주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그들이 천마 임조학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의 존재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한데…….

천하의 천마를 너무 편안하게 불렀다.

녹림야검은 히죽거리며 천마의 표정을 보았다.

‘공자님도…… 역시 대단해.’

자신도 고진유에게 녹검 씨라 불리었다. 물론 녹림의 살수였던 신분과 천마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었지만.

스윽.

“배가 고프군.”

천마가 일어났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갑시다. 천마 씨는 본 가의 음식이 입맛에 맞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조금 싱겁기는 하지만. 고기도 조금 부족한 것 같고. 해산물 요리도 있으면 좋겠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하면 되는데. 말하지 않았소?”

“얻어먹는 처지에 염치가 없지 않겠나?”

“얼마든지 요구해도 괜찮소이다. 나중에 따로 청구할 거니까.”

“공짜가 아니었나?”

“마교의 수장이신 천마께서 너무 귀하게 자랐군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모양이라니.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소이까?”

스윽.

천마는 주위를 가리켰다.

“이들도 나중에 청구하는 것인가?”

“가족들에게 돈을 받는 사람이 어디 있소? 천마 씨는 남이지 않소이까?”

“다른 사람은 알겠네. 저기 녹림야검은?”

“녹검 씨는 이미 몸값에 죽을 때까지 밥값이 포함되어 있소이다. 천마, 그대로 밥값 내기 싫으면 내 밑에서 일하면 됩니다.”

“크하하하!”

천마를 종 부리듯 하겠다는 말에 대소를 터져 나왔다.

“고금제일인다운 포부다. 나중에 돌아가거든 밥값을 보내도록 하지.”

“꼭 내시오. 안 그러면 찾아가겠소이다.”

“…….”

천마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진유는 일행을 보며 다시 말을 했다.

“식사하면서 오랜만에 술이라도 한잔들 마시지요.”

“앗. 좋습니다.”

인양과 녹림야검이 바로 대답했다.

* * *

식사하는 동안 분위기는 밝았다.

술도 한 잔씩 마시면서 무거웠던 마음들을 모두 버렸다.

일행의 분위기를 띄우는 인물은 묵경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술을 나눠 마셨다.

“진유 아우, 내 잔을 받아라!”

“넵. 형님.”

묵경은 술을 가득 부었다.

“다시 가주를 뽑아야 하지 않냐?”

“제가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맡기로 했습니다.”

“……하긴. 지금 극일가의 입장에서 보면 네가 하는 게 맞겠지.”

묵경은 바로 이해했다.

이번에는 무혼신녀가 술잔을 비운 뒤 물었다.

“무림맹에 가 있는 향천과 다시 합쳐야 하지 않겠느냐?”

“무명 형과 사형들은 무림맹에서 당분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인물들로 명부를 상대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

“믿기지 않는 모양이군요.”

“매몰된 그들은 극일가 전력의 절반이 넘었다. 우리가 함께하겠지만 극일가의 남은 인물들만으로 명부를 상대할 수 있을까?”

“당연합니다. 하나의 힘으로 모은 뒤 상대를 맞선다면 충분히 꺾을 수 있습니다.”

고진유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에 식사하던 인물들 모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있다고 하니 알겠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세워야 하겠군.”

“최고의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지 않습니까?”

“……농담이겠지?”

“후후, 바로 아시네요. 계획은 항상 제 머릿속에 들어 있습니다. 싸울 때가 되면 그들과 싸울 것이니 언제라도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합니다.”

“난 지금이라도 있는 그대로 나가서 싸울 수 있다.”

녹림야검도 손을 들었다.

“저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녹검 씨는 늘 준비된 자세가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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