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402화 (402/425)

402화

‘명부에서 다시 나온다면…….’

팔천명부와 육천명부 외에 신무신단을 지닌 명부가 있을까?

시간이 걸릴 뿐, 신무신단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다른 명부가 지상에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야.’

고도유와 극일가 무인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지만 떠나야 했다.

‘돌아가서…… 다시 정리를 해야지.’

고진유는 그들이 묻혀 있는 아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휘이잉-

바람과 함께 미세한 기가 등 뒤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타앗!

고진유는 돌아서면서 다가온 상대의 손을 쳐냈다.

“오호……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

중년 사내는 손을 거두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

‘죽은 사람 같다.’

그의 신형에서는 이질적인 기가 느껴졌다.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오?”

“명왕이라네.”

“…….”

‘명왕이라…….’

그는 스스로 명왕부의 수장이란 신분을 밝혔다.

“그렇군요. 명왕이군요.”

고진유는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자세히 살폈다.

“엄청 놀랄 줄 알았는데 딱히 놀라는 기색이 없군.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맞는가?”

“표현이 서투른 것뿐이오.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날 줄은 예상 못 했소이다.”

“크큭, 난 표현을 과하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굳이 상대의 입맛대로 맞춰주지는 않소.”

“그렇다는 말이지. 맞춰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고진유는 호흡을 천천히 하며 무너진 곳을 가리켰다.

“당신이 한 짓이오?”

“그렇네. 내가 이곳을 무너뜨렸지.”

“이유는?”

“글쎄, 명왕인 내가 극일가를 죽이는 데 이유가 있을까?”

“도유 형님이 그대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었소?”

“맞네. 명부에서 만나자고 내가 연락을 했지.”

고도유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명왕을 만나고자 함이었다.

“예전에 왕래가 있던 사이였소?”

“후후후. 왕래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서너 번 서신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

고진유의 표정은 굳어졌다.

예상대로 그는 극일가를 배신한 게 틀림없었다.

다시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동료일 텐데. 그는 왜 죽였소? 아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 같은데.”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네. 믿었다면 서로 원하는 것을 가지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 하지만 사람이라면 욕심을 버릴 수 없는 모양이더군. 신무신단에 엉뚱한 짓을 해놓아서 말이야. 물론 그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던 모양이지.”

‘……독령초를 말하는 것인가? 이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군.’

“이제 알겠는가?”

“……엉뚱한 짓이라는 건?”

“그건 비밀이라네.”

“…….”

그가 말한 비밀은 고진유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일 터.

궁금증이 풀렸다.

고도유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리고 왜 죽어야 했는지도 함께 알았다.

“그렇군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은 허리로 움직였다.

스르르르.

검집에서 사의검이 반쯤 뽑혀 나왔다.

“어허. 벌써 싸우고자 하는가?”

“궁금한 것을 알았으니 우리 사이에 또 다른 대화가 필요하오?”

“싸울 땐 싸우더라도 내가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이유라도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설명도 잘 해주지 않았나?”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우리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할 운명이지 않소?”

“그건 맞지만…… 혹시 아는가? 우리 둘 다 좋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네. 듣고 난 뒤 마음에 안 들면 그때 싸워도 되지 않겠나?”

“…….”

스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대가 말한 좋은 방향이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지.”

“고맙네. 말이 잘 통하는군. 그러고 보니 극일가의 젊은 사람들은 상대와 소통을 잘하는 듯하던데.”

“…….”

“내가 그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명부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게. 물론 그 과정에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네.”

“훗.”

“왜 웃지? 그렇게 웃긴 말은 아닐 텐데.”

“명왕의 도움을 받아서 명부를 없앤다는 게 웃기지 않소?”

“크크크, 그렇긴 하군.”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음…… 대충 무슨 질문인지 알겠군. 못 해줄 대답도 아니니 물어보게.”

“명부를 없애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망할 녀석들이 내 자리를 노리니깐. 그놈들은 작당해서 항상 내 뒤를 치고자 하지.”

“당연한 게 아니오? 명부는 강자존. 싸워서 이기면 되는 문제요.”

“큭, 정당하게 도전하면 받아들일 수 있지. 근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 귀찮기도 해서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군요. 아예 도전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아버리겠다…….”

“다른 질문은?”

“당신과 손을 잡으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주겠네. 사실 난 지상은 필요 없어.”

“지상이 필요 없다는 사람이 세상을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었소이까? 조용히 명부를 정리할 수 없었소?”

“이것저것 정리할 게 있어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

“정리할 그것들이 무엇이오?”

“그대가 생각하는 그것들.”

“…….”

고진유는 극일천무신궁 이전의 극일천과 일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뭐지?’

순간 그의 미소 띤 얼굴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마주친 후부터 계속 느껴진 이질적인 기운.

‘입술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달라. 미세하지만 차이가 나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당신…… 명왕이 정말 맞소?”

“…….”

고진유의 물음에 명왕은 멈칫거렸다.

“크하하하하!!”

그러고는 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이번에는 손뼉까지 치며 고진유의 물음에 인정했다.

“대단하군. 이상하게 보이던 모양이지?”

“…….”

“그대에겐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난 명왕이 맞다. 다만 몸은 아닐 뿐.”

“당신은 어디에 있소?”

“내가 있다면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히 명왕부에 있겠지. 아, 이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네. 어떻게 알아봤는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처음에는 명부의 인물이기에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거라 생각했지만, 입 모양과 목소리가 미세하게 어긋나더군.”

“젊은 사람이라 눈이 좋은 모양이야.”

‘하긴. 명왕이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지.’

고진유는 이어 말했다.

“만일 당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흐음…… 거절이라…… 그렇게 하겠다면 우린 피가 터지게 싸워야겠지. 물론 결과는 내가 이길 것이고.”

“당신이 이긴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오?”

“당연히 내가 이긴다. 그대는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본인을 이길 수 없어.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명부에 들어온다고 해도 극일가의 남은 인원들로는 명부를 이기지 못해.”

“그건 싸워봐야 하지 않겠소?”

“과연 싸워야 알 수 있을까? 난 그냥 봐도 아는데?”

“…….”

고진유는 사의검을 잡았다.

비록 그가 진정한 명왕이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알고 싶었다.

“내 수준이 궁금한 모양이지?”

“…….”

“원한다면 서너 수를 양보해 줄 수 있다. 한 번 겨루어 볼 텐가?”

파아앗!

명왕은 손을 앞으로 펼쳤다.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공기가 압축되며 고진유의 가슴을 향해 밀려 나갔다.

고진유는 사의검을 세우며 다가오는 그의 일장을 막고자 했다.

퍼어어어억!!!

거대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후후후후, 재주가 좋아.”

고진유의 무공이 마음이 들었는지 명왕이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함께할 생각이 없는가? 모든 세상을 주겠네.”

“지금도 가지고자 한다면 가질 수 있소. 굳이 당신이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말이오.”

“크크크. 하긴…… 고금제일인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겠지. 쯧, 이런 제안은 덜떨어진 녀석에게만 통하는군.”

“도유 형님에게도 이런 식으로 접근했소?”

“극일가의 가주가 되고 싶었던 녀석이었지. 하지만 네가 나타나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했더니 바로 제안을 받아들이더군.”

“…….”

고진유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명왕인 그는 극일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극일가에 명부의 인물이 숨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설마…….’

번쩍.

사의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막아내지 못했던 고진유의 검이었다.

‘극일가와 연관이 있는 인물인 것인가?’

탓!

하지만 명왕의 앞에서 사의검이 막혔다.

파아앗!

고진유는 다시 날아오르며 그의 머리 위에서 사의검을 내리쳤다.

슈우우우우욱-

사의검의 검신에서 뻗어 나온 은광이 명왕의 머리 위로 쏟아졌지만, 그는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주시했다.

차아악.

명왕은 떨어지는 사의검을 손바닥으로 붙잡았다.

“고금제일인의 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휘이익!

고진유는 검을 놓은 뒤 명왕을 복부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검을 버려?’

쿠우우웅!

전력을 다한 일권은 명왕의 내부를 완전히 뒤엉키게 할 만큼 충격을 주었다.

털썩.

명왕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에게 고통의 아픔은 없었지만 충격의 여파는 강렬했다.

고진유는 바닥에 떨어진 사의검을 다시 주워 들었다.

“명왕,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외다. 다음에는 가짜가 아닌 진짜의 모습으로 만나고 싶소.”

“크크크…… 얼마든지.”

명왕이 일어나고자 할 때였다.

스걱.

사의검이 명왕의 목을 지나갔다.

고진유는 바닥에 떨어진 그의 목을 보았다.

쉬이이익.

목이 잘린 시체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리면서 내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졌군.”

명왕의 혼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는 그에게 도구일 뿐이었다.

“휴우…… 우선 본 가로 돌아가야겠군.”

고진유는 무너진 자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본 뒤 사라졌다.

* * *

중원의 소문은 빨랐다.

내부의 인물이 소문을 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 하루가 지나가기도 전에 퍼져 나갔다.

거용관에서 육천명부를 물리친 극일가의 무인들이 그곳에 갔다가 몰살당했다는 소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이 일을 아는 곳은 하오신문밖에 없었다.’

결국 소문의 출처는 하오신문일 터.

‘극일가의 가신이라면 소문이 퍼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우선이야. 한데 오히려 퍼뜨린다는 것은…… 그곳에도 극일가에 반하는 세력이 있다는 뜻이겠군.’

고진유는 하오신문을 그대로 둬야 할지 망설였다.

당장 그곳을 손볼 수도 있겠지만, 광범위한 하오신문을 조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심할 필요가 있겠지만 일단은 그부터 만나는 게 좋겠군.’

하남성을 넘어 호북성으로 들어설 때였다.

느거적.

고진유의 앞으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걸어오는 게 힘들어 보일 정도로 육중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이거…… 참. 미안해지는데.’

처음 보는 인물이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오신문의 문주 원정문이었다.

스윽.

그는 접히지 않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허억, 헉, 은룡투인님을 뵙습니다…….”

“문주께서 힘들게 여기까지 나오실 줄은 몰랐소이다.”

“허허, 아이고…… 그렇지 않아도, 허억, 나오지 말까 고민을, 많이 했소이다.”

“진작 알았다면 본인이 찾아갔을 겁니다.”

“하, 한시라도 바쁘신 분을 어떻게 오도록 하겠습니까? 당연히 소신이 찾아뵙는 게 순리지요……  하아…….”

문주 원정문은 말을 하면서도 숨이 찬 듯했다.

“우리 서 있지 말고 앉도록 합시다. 이러다 사람 잡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위해 길가에 앉을 자리를 찾았다.

털썩.

원정문은 힘들게 자리에 앉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 이제 살 것 같군요.”

“……본인이 본 인물 중에서 가장…….”

“뚱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

“허허, 괜찮습니다.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지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신보다 육중한 신체를 가진 인물을 본 적도 없었다.

“자…… 은룡투인께서 소신을 보고자 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이까?”

“이번 소문이 난 이유. 하오신문을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진유는 그를 보면서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께서 바로 말씀을 하시니 본인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말하겠소이다. 의심을 하는 건 맞지만, 어디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군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육천명부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곳은 하오신문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도 되지 않아 소문이 나돌았다면 당연히 의심할 만도 하지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대체 어디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지 비밀리에 찾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괜한 오해를 한 모양이외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를 찾던 중이었습니다. 이번에 확실하게 자르고 가야 할 건 가야겠지요. 그들이 누구인지 잡히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진유는 짧게 포권을 했다. 그의 푸짐한 인상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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