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99화 (399/425)

399화

‘극일가에서 벌써 나타날 줄은……!’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결국 그들과 마주하게 된 것은 두 번이나 시간을 허비한 탓이었다.

극일가가 도착하기 전에 명괴를 이끌고 황성에 들어갈 수 있었건만.

육천명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팔천명부는 천지금쇄진법에 당했었다.

‘젠장…… 이건 진법이나 마찬가지다.’

사방이 옹벽으로 막힌 거용관 안에 갇혔다.

그때, 극일가의 선두에서 젊은 사내가 나왔다.

용린기를 내뿜으면서 한 걸음씩 내딛는 그의 걸음걸이에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본인은 은룡투인이라 하외다.”

“은룡투인…….”

육천명군은 손을 꽉 쥐며 고진유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고진유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들 사이에 다른 말은 필요 없겠지요.”

“당연하다.”

“바로 시작해 볼까요?”

고진유의 한마디에 뒤에 서 있던 극일가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명괴를 상대했다.

파아아앗!

그와 동시에 묵경을 포함한 향천의 인물들이 명괴들의 후방에 내려서 성문을 막아섰다.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뜻이군.’

타아앗!

극일가의 무인들이 명괴들을 둘러싸며 달려들었다.

“커어억!”

극일가의 무인들이 달려오는 기세에 명괴들은 주춤거렸다.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대의 기운에 당황했다.

콰아아앙-!!

파아아앙!

포위된 명괴들을 향해 앞과 뒤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강하다……!’

육천명군은 극일가의 무력이 강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명괴를 중원에서 밀어낼 수 있는 무인은 극일가 외에는 없었다.

‘팔천명부를 상대로 이긴 것이 운이 아니었어.’

팔천명부의 멸문은 그들이 약한 게 아니라 그들을 이긴 극일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하는 것이오?”

“……!”

육천명군은 흠칫 놀라며 일장 앞에까지 다가온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분명 그대는 팔천명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나왔소. 본인은 대체 당신들이 홀로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소이다.”

“…….”

“극일가를 이길 거라 생각했다는 말은 안 했으면 하외다.”

명군은 고진유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해도 고진유는 알 듯했다.

그들이 원해서 나온 것은 아니다.

명왕의 명이 없었다면 대답을 했을 게 확실했다.

‘명왕은 이들이 필요 없군.’

“그렇군요. 당신이 스스로 원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은룡투인, 말이 많군.”

“그저 궁금했을 뿐이오. 하지만 이제는 알았소이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이지?”

“내가 안 것을 당신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소? 당신도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은데.”

“…….”

육천명군은 미소를 띤 고진유의 얼굴을 보면서 아는 척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비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신의 존재는 목적을 위해 쓰다가 버리는 사석일 뿐이오.”

“그게 무슨 뜻이지?”

“명왕부가 당신들을 귀찮아한다는 말이외다. 아니지. 필요 없다는 것이 더 합당하겠군요.”

“…….”

육천명군은 믿기지 않았다.

‘그가…… 왜?’

그는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그의 명을 따라 명부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뒤 황성으로 향해 움직인 것이었다.

“구천명부의 수장들은 명왕의 명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지요?”

“…….”

“명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명왕부가 아닌 나머지 구천명부의 존재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군요.”

육천명군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토사구팽이었다.

명왕부의 힘은 충분히 강해졌다.

명왕의 명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구천명부까지 끌고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망할…… 놈…….’

그는 자신들을 버리는 게 확실했다.

“크크크크…… 명왕, 죽일 놈의 새끼가 감히 명부를 혼자서 차지하고자 하는군.”

육천명군은 괴소를 터뜨렸다.

명왕의 뜻을 알았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눈앞에 선 극일가와 싸우는 것.

슈우우욱-

그의 전신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가 퍼져 나오며 고진유를 감싸고자 했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의검의 검신에서 흐르는 내력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크아아!”

육천명군은 명부흑사기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타아앗!

그는 고진유의 머리를 잡기 위해 기습으로 양손을 펼쳤다.

육천명군의 양손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지만,

휙휙!

그의 양손은 고진유의 얼굴이 있던 허공 위를 지나쳤다.

스으윽.

발은 움직이지 않은 채 고개만을 슬쩍 피하며 정확하게 한 치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육천명군의 양손을 피했다.

“너무 느린 게 아니오?”

“이놈이……!”

“이번에는 본인의 검을 막아보시오.”

타앗!

고진유의 손에서 사의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주위로 매화가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팟팟팟-

매화 잎이 휘몰아치면서 육천명군의 전신을 휘감았다.

“커어어억!!”

막고자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건…… 매화……!’

번쩍!

매화 잎들이 터지면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육천명군의 백회혈 아래 신정혈에서 염천혈까지 섬광이 일자로 흘러 들어갔다.

‘그렇지. 그는 화산의 제자였어…….’

주르륵.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사의검의 검광이 그의 얼굴을 통과하며 비명 소리가 울렸다.

육천명군은 기운이 빠지면서 도저히 온몸에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털썩.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 렇게…… 끝이 나는…… 군.’

허무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자 감정을 속일 수는 없었다.

‘우리도 결국…… 한낱 미물과 다르지 않군.’

육천명군은 눈이 점점 감기기 시작했다.

* * *

거용관은 무너지지 않았다.

육천명부와 치열하게 싸우며 마무리를 지은 곳은 극일가의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일을 이루어낸 이들은 거용관에서 명괴들을 막아낸 대장군 송무가 이끈 군사들이었다.

고금제일인 고진유 또한 거용관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군사들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렸다.

거용관에서의 일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고도유는 극일가의 무인들과 함께 육천명부로 떠나기로 했다.

그는 고촌을 나서기 전, 주국에게서 새롭게 제조한 신무신단을 챙겼다.

복용한다고 해도 별문제 없을 거라 했지만 혹시나 모르기에 신무신단의 약효를 지울 수 있는 해독제를 함께 주었다.

고도유는 미리 챙겨놓았던 신무신단과 해독제를 모두 챙겼다.

“도유 형,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걱정하지 마라. 명군까지 나온 이상 그곳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없다.”

“그래도 명부입니다.”

“하하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부라고 해서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명부도 사는 곳만 다를 뿐 나머지는 다를 게 없더군.”

“근데 굳이 그곳에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수장을 잃었습니다.”

“당장은 의미가 없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명군이 나타날 게 분명하다. 사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지.”

“도유 형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겠습니다.”

툭툭.

고도유는 고진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황궁에 잠시 들렀다가 나오는 시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럼 우린 먼저 떠나도록 하마.”

“나중에 뵙도록 하겠어요.”

고진유는 문루에 서서 고도유와 극일가의 무인들이 육천명부를 향해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스윽.

고진유의 곁으로 향천의 인물들이 다가섰다.

고화유는 사라진 그들의 뒤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은 듯 말했다.

“굳이 끝난 명부에 갈 필요가 있을까?”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면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죠.”

화산파의 사형제들과 묵경은 극일가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고진유가 알려준 사실에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극일가의 일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두 사람만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고진유에게 할 수 있었다.

“진유야. 정확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다면 머뭇거리지 말아야 해.”

“화유 누님, 제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결정을 못 내리는 게 아니라 내릴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호오, 어떤 결정이지?”

“전 화산파 제자입니다.”

고진유의 대답에 우종성은 미소를 지었다.

“됐다. 그럼 문제없겠구나. 화산파 제자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거야.”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모두가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고진유는 자신을 보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했다.

후다다닥!

그때, 문루 아래에서 군사가 빠르게 달려왔다.

“대인님!”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요.”

“네. 그렇사옵니다.”

대장군 송무는 군사들을 이끌고 거용관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고진유는 그들과 함께 잠시 황궁으로 가서 황제를 배현하고자 했다.

송무는 문루에서 내려오는 고진유를 맞이했다.

“대인님, 황궁으로 떠날 준비가 끝났습니다.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두우우웅!

출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 * *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반각 전, 내관에 의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폐하, 고금제일인께서 입궁을 했사옵니다.”

“허허허, 그러한가.”

“곧 건청궁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알겠네.”

잠시 뒤.

건청궁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대인께서 드시옵니다.”

황제는 몸이 들썩거리며 열린 문으로 들어선 그를 보았다.

스윽.

고진유는 황제의 앞에 다가선 후 허리를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허허. 어서 오시게!”

“그동안 편히 만수무강하셨사옵니까?”

“짐은 늘 무탈 없이 지냈다네. 그대는 잘 지냈는가?”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황제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절대로 친한 인물이 아니면 황좌에서 일어나지 않은 인물이 황제였다.

“거용관에서 수고가 많았다고 들었네. 이번에도 큰 도움을 받았네.”

“이번 일은 저보다는 송무 대장군께서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분께 큰상을 내려주시는 게 합당한 듯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송무 대장군은 친히 부르기로 했다네.”

“잘하셨습니다. 그분을 옆에서 지켜보니 진정한 무장이었습니다. 항상 곁에 두어야 할 인물입니다.”

“사위가 그러하다고 하니 신경 쓰도록 하겠네.”

황제는 옆에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내관에게 의자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잠시 뒤, 황제와 고진유는 서로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영화는 잘 지내고 있는가?”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네. 그 아이를 받아주어서.”

“아닙니다. 모두가 영화 옹주를 좋아합니다.”

“허허, 다행일세.”

“앞으로 시간이 나면 영화 옹주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 왔으면 하네.”

“어쩌면 둘이 아니라 세 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

황제는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

앞에 앉은 인물, 즉 중원 최고의 인물이 자신의 외손주와 함께 오겠다는 말을 들었다.

“허허허!”

황제는 웃음이 입가에서 끊어지지 않았다.

영화 옹주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와는 확실한 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허허, 오늘 정말로 기쁜 날이구만.”

황제의 웃음은 점점 커졌다.

* * *

두두두두-

고도유는 앞장을 서며 육천명부를 향해 들어섰다.

그 뒤를 이어 거친 소리를 내며 극일가의 무인들이 뒤를 따랐다.

명부로 들어선 그들은 내력을 전력으로 다해 끌어 올려도 몸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명부에 남아 있던 명괴들이 밀려들어 오는 극일가의 무인들을 맞이하며 싸웠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단숨에 밀어붙이며 명부성으로 들어서라!”

“넵. 알겠습니다!”

고도유의 명에 극일가의 무인들은 명부성으로 달렸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명부성에 들어선 고도유는 주위를 살폈다.

이미 명괴들은 명부 안으로 들어오면서 모두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찾고자 하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어디에 있지?’

고도유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휘익!

그때, 그의 뒤로 빠르게 지나가는 인영의 기.

‘저곳인가?’

붉은색의 현판이 걸린 문으로 기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모두 여기에서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고도유는 기척이 사라진 붉은 문으로 향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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