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96화 (396/425)

396화

고진유는 거처에서 빠져나와 곧장 고묵을 만나기 위해 상후각으로 들어섰다.

“숙부님. 진유입니다.”

“…….”

방 안에서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리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려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드륵.

방문이 열리며 대충 상의를 걸쳐 입은 채로 고묵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다른 사람들은?”

“다급한 일이 있어 제가 먼저 일행보다 앞서 왔습니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우선 안으로 들어오너라.”

고묵은 거실에 놓인 자리에 안내를 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무슨 일인지.’

고묵은 늦은 시간, 그것도 혼자 일찍 찾아온 이유에 대해 궁금했다.

“조카가 혼자서 먼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미리 인양을 보내긴 했지만 걱정이 되어서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그를 먼저 보냈다고?”

“죄송합니다. 중요한 일이라서 제가 없는 동안 비밀로 했습니다.”

“알겠네. 무슨 일이 있기에 그를 먼저 보내고 이번에는 조카가 혼자서 왔는가?”

“다름이 아니라, 신무신단이 이상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나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었습니다.”

“신무신단이 이상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고묵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상하다고 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신무신단이었다.

신무신단은 극일가에 밀접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고진유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숙부께서는…… 전혀 모르는 듯하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시는 것인가? 하지만 정말 모른다면?’

극일가로 오면서 가정했던 생각이 또 한 번 변했다.

고진유는 천천히 오천명부에 찾아간 이야기부터 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중간중간 고묵은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그게 정말이더냐? 우리에게는 이상이 없던 신무신단이 명족에게 이상하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현상이 늦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급하게 인양을 보내 생산을 멈추도록 한 것입니다.”

“휴우…… 미리 사람을 보내서 중단한 것은 잘한 일이다. 확실하지 않은 신무신단을 복용해서 잘못된다면 큰일이지 않겠느냐?”

“네, 숙부님. 한 번 더 제조법을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건 중요한 일이니 신중하게 처리해야지.”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한 뒤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꼭 원인을 찾아내도록 하게.”

고진유는 인사를 한 후 상후각을 빠져나왔다.

스윽.

상후각을 한 번 더 보았다.

‘휴우…… 만일 거짓말을 하신 것이라면 속을 수밖에 없겠군.’

고진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선 그를 믿기로 했다.

“그럼…… 신의자께 가볼까?”

* * *

주국은 언종과 함께 신무신단을 제조하는 약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꺼내 놓은 뒤 처음부터 살폈다.

언종이 알려준 명괴의 특이한 점을 보면서 중원인과 다르게 반응하는 약재의 성분이 무엇인지 살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

눈앞에 선 사내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뜻밖의 청년이 들어섰다.

자신들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니지,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전에 왔습니다. 어떻게 잘 되고 있습니까?”

“아…… 네에…….”

고진유는 그들이 보고 있던 문서들을 보았다.

“지금 보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제가 형산파에 있을 당시 신무신단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명괴들의 신체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그들에 대해 적어놓은 것들이군요.”

“네. 맞습니다. 분명 같은 신무신단인데 서로 달랐다고 하셨기에 명족과 일반인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중입니다.”

“어떻게 찾았습니까?”

“그건 아직……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할 건 없습니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모습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언종은 자신에 대해 존중해 주는 그를 보면서 감사했다.

만일 다른 인물이었다면 형산파에 있던 자신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게 틀림없었다.

주국은 가까이 다가온 고진유의 곁에 다가섰다.

“한번 손을 줘보시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몸 안에서 신무신단의 기를 모두 지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국은 고진유의 손을 잡은 뒤 조심스럽게 몸속 내부를 살폈다.

‘음…… 깨끗하군.’

그는 손을 놓은 뒤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신무신단에 대해서 전해줄 말이 있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팔천명군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

“근데 분명 그가 죽었지만 시신에는 전혀 외상이 없었습니다.”

“음, 외상이 없다고 하지만 내상을 입히는 무공이 있지 않습니까?”

“신의자께서 하신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몸 안에도 전혀 내상을 입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국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허…… 이상하군.’

내상과 외상이 없이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의 죽음이 궁금했지만 그 자리에서 부검을 할 수 없기에 궁여지책으로 목을 잘라보았습니다.”

“…….”

“잘린 목에서 검은색의 진한 액이 흐르는 것을 봤습니다.”

“진한 액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목이 잘린 혈향 속에서 미세하게 냄새가 났습니다. 그건 지금 여기 주위에 흐르는 냄새와 같았습니다.”

주국과 언종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진유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혹시 신무신단에서 만들어낸 기 중 무언가에 의해 순간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생각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저희에게 말한 게 맞다면 신무신단을 더욱더 복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국과 언종은 생각 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진유가 말한 대로 신무신단을 복용한 상태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움직인다면 큰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앞으로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신무신단에 대해서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본 가의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됩니다. 오직 본인에게만 보고하면 됩니다.”

“알겠소이다. 신무신단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면 알리겠소이다.”

고진유는 두 사람과 함께 반시진 정도 신무신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밖으로 나왔다.

스윽.

밤하늘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휴우…… 그들을 믿어야 하거늘.”

밤길을 걷는 고진유의 마음과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 * *

팔천명군을 물리친 극일가의 무인들이 고촌에 돌아온 지 칠주야가 지났다.

그동안 혼란스러운 중원과 달리 고촌은 늘 한결같이 조용했다.

고촌에 돌아온 뒤 고진유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하루 대부분을 그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신경은 주국과 언종이 연구하는 신무신단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전. 무림맹으로 갔던 우종성과 곽우까지 고촌에 돌아왔다.

칠 일이 지나는 동안 고진유는 임신 중인 북소연을 곁에서 보살핀다는 핑계를 삼아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으아아…….”

묵경은 따분한지 기지개를 켜며 팔을 위로 뻗었다.

“묵 형, 많이 심심한 모양이구려.”

“며칠 동안 앉아 있다 보니 몸이 뻐근해서 말이외다. 우 형은 어떻소?”

“우리들이야 가끔씩 정신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조용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네.”

“그래서 괜찮다는 것인가?”

“자네처럼 많이 따분하지는 않다는 말이지.”

“으, 알았네. 여기에서 따분한 사람은 나밖에 없군.”

“심심하면 바둑이나 한판 두겠나?”

“됐네. 어차피 상대도 안 되는 걸, 둔다고 해서 재미도 없네.”

“네 점을 깔아주겠네.”

묵경은 입술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네 점?”

“그렇네. 어떤가?”

“뭐어…… 네 점이라면…… 이번에도 내기는 같은 것이겠지?”

“그러지. 내기 없는 바둑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묵경은 얼른 자리에 일어난 뒤 옆에 놓인 바둑판을 가지고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우 형, 이번 판은 두 배로 올리면 괜찮겠는가?”

“두 배?”

“자신이 없는 모양인가?”

묵경은 은근슬쩍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했다.

우종성은 못 이기는 척 그의 내기를 받아주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나.”

“후후후! 그럼 네 점을 놓도록 하겠네.”

묵경은 흑돌을 내려놓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드륵.

고진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왜 저래?’

한 구석에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보는 묵경이 있었다.

“사제 왔어?”

고진유는 묵경을 가리켰다.

“또 진 모양이네요.”

“호진 사형이 네 점을 깔아줬거든. 그랬더니 얼른 물더군.”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는데…….”

고진유는 묵경의 곁으로 다가섰다.

“묵경 형, 내가 최소한 여섯 점 이상은 깔아야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뭐…… 여섯 점은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잖아.”

“호진 사형은 본 문에서도 거의 최상위에 있는 실력이라니까요. 군사인 제갈 형님도 호진 사형에게는 못 이겨요.”

“그래? 그 말은 처음 듣는데?”

묵경은 시선을 돌려 우종성을 향해 소리쳤다.

“이보게, 우 형, 진유 아우가 말한 게 맞는가? 제갈양에게 바둑을 이겼다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오우…… 대단한걸.”

묵경의 얼굴이 금방 펴졌다.

제갈양에게도 이길 정도의 실력자인 그에게 졌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다음에는 여섯 점을 깔아주게.”

“여섯 점? 알겠네.”

스윽.

묵경은 그의 대답이 끝나자 고진유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물었다.

“내가 여섯 점이면 이길 수 있다고 했지?”

“사귀필승.”

‘음…… 사귀필승.’

묵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네 글자를 외웠다.

“앗, 근데 여기에는 왜 왔어?”

“그냥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어떻게 지내긴. 심심해 죽겠다.”

“그러게요. 여러분, 모두 그대로 있으면서 제 말에 잠시만 주목해 주세요.”

방에 모여 있던 그들은 고진유의 말처럼 제자리에 앉아서 집중했다.

“대충 누님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신무신단에 문제가 있는 건 맞아요.”

“원인을 찾았어?”

“두 분이 열심히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못 찾은 모양이군.”

“조금씩 원인을 좁혀 들어가고 있으니 조만간 찾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아낸 게 있습니다.”

고진유는 방금 전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언종을 만났었다.

반시진 전.

고진유는 찾아온 인양과 함께 언종과 주국을 만나러 갔다.

“어서 오시지요.”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온 고진유를 반겼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언종은 주위를 살피는 듯 눈치를 보았다.

“그냥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목소리는 밖에서 들리지 않을 겁니다.”

“아…… 네에.”

스윽.

언종은 여러 가지 약재들 사이에서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독령초라는 악풀입니다.”

“……악풀이라면?”

“말 그대로 사람 몸에 좋지 않은 풀이라는 것입니다.”

“독령초가 신무신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고진유는 의술에 대해 많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독초 또한 상황에 따라 약초가 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몸에 좋지 않지만 신무신단에 도움이 되기에 사용한 것이 아닙니까?”

“독령초가 신무신단의 중요한 약재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신의자 어르신과 약재를 살피면서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근데…… 그자의 머리 안에서 신무신단의 냄새가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혹시나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신무신단의 특유의 냄새는 독령초를 끓였을 때와 같았습니다.”

“냄새가 나는 것과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진유는 여전히 그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주국이 나섰다.

“독령초의 냄새가 난다는 건 독령초의 성분이 녹지 않고 신무신단에 남아 있다는 것이네.”

“…….”

“독령초를 일반 사람이 잘못 복용을 하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괜찮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머릿속에 깃든 독령초의 기운. 누군가 그것을 뇌령기라고 부르더군.”

“뇌령기라고 부르는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스윽.

주국의 곁에 있던 언종은 가슴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극일가의 의서입니다.”

“…….”

“얼마 전 신무신단을 조사하기 위해 의서를 찾아보던 중 독령초에 대해 적혀 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글을 읽어보시지요.”

고진유는 의서를 펼쳐 보았다.

독초로 분류된 독령초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독령초에 중독되면 머릿속에 악성종양이 생기며 그것을 뇌령기라 일컫는다.’

주국은 독령초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독령초만을 복용한다면 문제는 없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독령초에 기운에 백향목의 열매 분말이 섞이는 게 최악이라네.”

“최악이라면…….”

“뇌령기는 백향목의 열매 분말과 섞이면 뭉쳐 있던 기가 터진다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고진유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하는 않는 일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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