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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95화 (395/425)

395화

극일가는 사천당문을 나선 후 고촌으로 출발했다.

향천 또한 극일가 무인들 후미에서 뒤를 이어 움직였다.

비록 향천이라고 했지만 인원은 적었다. 고진유를 포함해서 향천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고촌에서 나왔을 때와 달리 향천 소속의 대부분 무인들은 남궁무명과 우종성을 따라 무림맹으로 떠나갔다.

극일가와 함께 고촌으로 향하는 향천의 남은 일행들은 천무십이인과 천검궁의 초정, 천검봉 금하희, 그리고 천마 임조학뿐이었다.

묵경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큰일이 있었군.’

사천당문에서 고진유가 제갈양, 남궁무명과 따로 만났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천명부에 함께 갔던 인양과 녹림야검이 극일가에 갔다는 사실을 들었다.

세상 누구보다 고진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가 아는 고진유는 의심만으로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극일가에 두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어떠한 일에 확신이 있기 때문일 터.

궁금한 건 고진유가 확신한 것이 무엇인가였다.

평소라면 이미 그에게 들었을 것이었지만,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과 귀 때문에 자세히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쩝. 내가 그냥 따라갔어야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재 사정을 아는 인물은 두 사람, 무혼신녀와 고화유밖에 없었다.

그녀들에게 묻고 싶어도 주위의 분위기 때문인지 이 또한 쉽게 물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다행히 하루를 지낼 숙소는 극일가와 떨어져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일행은 각자 개인적 시간을 가졌다.

묵경을 주위를 살폈다.

“진유 아우는 아까부터 어디 있나?”

“묵경 형, 그게…… 극일가주가 찾아서 건너편 숙소에 갔습니다.”

장두총이 고진유의 행적에 대해 바로 알려주었다.

“그래?”

묵경은 주위를 살폈다.

‘흐음…….’

미세하지만 분명 주위에 기척이 느껴졌다.

묵경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숙소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

누구의 기인지 단번에 알았다.

숙소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은 한 곳밖에 없었다.

‘이것들 봐라.’

극일가가 명부와 함께 싸웠던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너무한데?”

“후후후. 굳이 신경 쓰지 말고 모르는 척하고 있거라.”

“누님, 우리를 감시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뭔가 이상합니다.”

“저놈들이 뭔가 찔리는 게 있겠지. 딴 게 있겠느냐?”

그녀의 말은 간단했지만 정확히 맥을 짚었다.

“아하…… 그렇네요.”

“우린 진유가 따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조용히 있으면 된다.”

“혹시 누님께서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무혼신녀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주위를 막아낸 뒤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무신단은 명부를 위한 게 아니라 극일가를 위한 것이었다.”

“……?”

묵경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도 신무신단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극일천에서 제일 나온 신무신단은 처음에는 내력을 증폭시키는 것으로만 알려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신무신단을 만드는 이유를 알아냈다.

‘근데…… 명부를 위한 게 아니라고? 극일가를 위한 것이었다는 건 또 뭐야?’

또 한 번의 반전을 느꼈다.

묵경은 신무신단에 대해 다시 묻고 싶었지만, 순간 무혼신녀가 눈짓했다.

“아이고……!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군.”

묵경은 곧바로 두 팔을 위로 뻗어 올렸다.

드륵.

방문이 열리며 밖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하하, 천무십이인 묵경 대협께서 많이 피곤한 모양이외다.”

고진유와 함께 고도유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이번에는 고진유가 물었다.

“누님, 식사는 했습니까?”

“방금 먹었다. 넌?”

“저도 도유 형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기 위해 왔습니다.”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차를 준비하던 중이었으니. 여기에 앉거라.”

고진유와 고도유는 그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음…… 근데 권협과 살협은 얼마 전부터 안 보이는군요.”

“제가 두 사람에게 잠시 급한 일을 시킨 게 있습니다.”

“명부의 일보다 급한 일인 모양이지?”

“명부의 일보다 급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없어도 본 가를 믿기에 두 사람을 보낸 것이지요.”

“급한 일이라는 게 뭔가?”

“신무신단 때문입니다.”

“……신무신단?”

“그것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도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천천히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오천명부에 내려가지 않았습니까?”

“음. 신무신단의 효능이 좋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명부에 내려가서 전혀 문제없이 내력을 펼칠 수 있더군요.”

“…….”

“근데 혹시나 해서 명부의 인물에게 신무신단을 복용시켜 보았습니다.”

“그것을 그들에게 일부러 먹였단 말이더냐?”

꿈틀.

고도유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겼지?”

“분명 제가 알기로 철갑에 들어 있던 신무신단의 제조법은 완벽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복용했을 때 문제가 없었고요. 근데 명부의 인물이 복용을 하자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본 가에 보냈다는 것인가?”

“네. 우리가 찾지 못한 무엇인가 있는 듯해서 일단 신무신단의 생산을 다급하게 멈추도록 했습니다. 혹시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본 가의 인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고도유는 말을 흐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

그는 고진유를 슬쩍 살폈다.

“명족들에게 이상이 있다고 하는데 아우는 지금 어떤가?”

“혹시나 해서 우리 몸에 흐르던 신무신단의 약효를 모두 지워 버렸습니다.”

“잘…… 했군.”

“본 가에 돌아가면 당장 신무신단에 대해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하지만 우리에게 별다른 위험이 없다면 그대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혹시나 문제가 된다면 명부를 처리하기 전에 본 가에 큰 희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확실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고진유의 강한 의지에 그는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때, 당우희가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서며 밝게 웃었다.

“한잔들 하세요.”

* * *

주국과 언종은 심각한 표정으로 신무신단의 제조법을 검토했다.

며칠 전 인양과 녹림야검이 찾아왔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봐도 제조법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제조법에 의해 완벽하게 만들어진 신무신단입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본다네.”

제조법으로 만든 완벽한 신무신단.

근데…… 문제는 극일가의 인물들은 괜찮지만 명족에게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제조법상으로는 명족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 없습니다.”

“자네가 명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대충은…….”

“혹시 명족과 중원인의 차이점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물건으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설명이 되지 않네.”

“체질의 차이란 말입니까?”

“그것 말고는 이해가 되겠는가?”

언종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명족과의 차이라…….’

예전에 신무신단을 복용한 명괴들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변화 과정을 상세하게 알아본 적이 있었다.

“주국 어르신. 혹시나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명괴에 대해 기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가지고 와보게.”

“그게…… 모든 것이 불에 타서 사라졌습니다.”

“이런…….”

“하지만 제가 대충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호. 정말인가?”

“우선 그것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언종은 잠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

북소연과 설미, 그리고 악소소와 영화 옹주는 한 방에 모여 앉았다.

북소연은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인양과 녹림야검을 만났다.

고진유와 함께 오천명부에 갔던 두 사람이었다.

한데 고진유가 자신들을 호위하기 위해 일부러 보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닌 극일가에 있는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고진유가 허튼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극일가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호위를 위해 두 사람이 올 리가 없어.’

고진유가 가장 믿는 세 사람 중 두 명이었다.

북소연만이 그들 두 사람이 자신들 주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그녀 외에 다른 세 명의 여인 앞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진유가 굳이 그녀들에게 알려 괜한 걱정을 시킬 이유가 없다며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북소연은 부러 밝은 표정으로 다른 여인들을 대했다.

“오늘 소식을 들었는데 상공께서 돌아오신다고 해.”

“앗, 정말요? 언제 오시는데요?”

“아마 내일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그녀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여전히 그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저어, 그분께선 괜찮으시죠?”

“설미 동생도 잘 알잖아. 세상에서 상공을 다치게 할 인물은 없어.”

“네. 그래도 혹시나 해서요. 명부는 보통 인물들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아무리 명부라고 해도 그분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하더군.”

“근데 큰 형님은 그걸 어떻게 잘 아세요?”

영화 옹주는 항상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신기했다.

어디서 그런 내용을 듣고 아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막내야. 왕 형님이 지옥혈림의 모든 정보를 담당했던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네, 잘 알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야. 우리 왕 형님은 대단한 분이시지.”

“아하…… 그렇군요!”

영화 옹주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북소연은 그녀들을 보며 부탁을 했다.

“이곳이 그분의 본 가이긴 하지만 우린 그들의 손님이니 늘 행동에 조심하면서 조용히 지내면 해. 알겠지?”

“네. 알겠어요.”

북소연은 밝게 대답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녀는 따뜻한 찻잔을 들어 가볍게 입을 대었다.

‘주위에 흐르는 느낌이 이상하긴 했어.’

북소연 그녀는 주위의 기운에 대해 상당히 예민했다.

그동안 고진유와 함께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혼자 유별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

고촌에 흐르는 전체적인 기운은 오래전 극일천의 인물과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분이 돌아오시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겠지.’

고진유에 대해 생각하자 당장에라도 그가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휘이이잉.

그때, 그녀들 앞으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문이 완전히 닫혀 있기에 바람이 들어올 수 없었다.

“앗!”

가장 먼저 놀란 이는 악소소였다.

닫혀 있는 있던 문 앞에 환한 표정으로 선 사내를 보았다.

세 명의 여인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진유를 보며 달려들듯 다가섰다.

“언제 오셨어요?”

“공자님……!”

“지금 오셨군요!”

그녀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바짝 다가섰다.

“모두 잘 지냈소이까?”

고진유는 그녀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일쯤 오신다고 들었어요.”

“그대들이 보고 싶어서 먼저 왔소이다.”

“아…… 네에. 잘 오셨어요.”

그녀들은 내일 올 것이라 했던 그가 갑자기 나타난 모습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소연은 그가 먼저 온 사실만으로도 정말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극일가와 함께 복귀하던 그가 혼자서 먼저 왔다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극일가를 제대로 믿지 못하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는 은룡투인의 전인이자 극일가 전대 가주의 아들이었다. 그런 인물이 극일가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진유는 생각에 잠긴 북소연을 보았다.

‘역시…….’

북소연은 어렴풋이 자신이 빨리 온 이유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몸은 어떠하오?”

“아직은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은?”

“혼자 먼저 왔소이다. 내가 그대를 보고 싶어서 먼저 달려 왔지요.”

“저희도 보고 싶었지만, 향천주의 신분이지 않습니까?”

“후후, 그들은 모두 무림맹에 갔소이다. 누님과 사형들, 그리고 몇 분들만 함께 오는 중이지요.”

“…….”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움직이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스윽.

고진유는 가까이 다가서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당신은 아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하세요. 세상의 모든 걱정은 내가 할 테니까.”

“…….”

“알겠지요?”

“……네. 저도 당신을 믿습니다.”

북소연은 고진유의 품 안에서 세상 어떠한 곳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며 고진유의 품 안에서 벗어났다.

“저만 특별하게 대우받는 것은 싫습니다.”

“아…… 하하.”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옆에 선 그녀들을 한 명씩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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