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화
세 사람은 잠시 조용했다.
잠시 시간을 가졌던 남궁무명은 마음을 결정을 내렸다.
“남궁호신가는 오직 창천황신공을 깨우친 남궁밀동의 전인을 따른다고 했다. 난 그들을 믿는다.”
그는 남궁호신가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다.
“무명 형이 그들을 믿는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우리를 믿어줘서 고맙다.”
“형을 믿는 거죠.”
고진유도 마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남궁호신가의 무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제갈양과 남궁무명은 긴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낼 테니까.
“지금 두 분께 하는 말은 확실하지 않은 부분들입니다.”
“확실하지 않다고 말은 해도, 속뜻은 거의 확실하다는 거지?”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갈 형님은 너무 똑똑하세요.”
“다른 건 몰라도 머리 하나로 중원에서 먹고사는 중이거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당분간 우리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확실하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당연하지.”
“그렇게 하지.”
고진유는 남궁무명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명 형을 맹주에 올리고자 하는 이유는 혹시나…… 극일가와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제갈양과 남궁무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극일가와 싸울 수 있다는 말을 한 인물.
그가 누구인가?
극일가 최고의 인물 은룡투인이라 불리는 고진유였다.
“무슨 뜻이지? 우리가 극일가와 싸울 수 있다는 게?”
“신무신단 때문입니다.”
“신무신단?”
신무신단의 비밀.
고진유는 두 사람에게 신무신단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두 사람은 세상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고진유가 말한 신무신단의 진실.
그에게 직접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 이군.”
남궁무명은 고진유가 그를 무림맹으로 보내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 알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극일가가 움직인다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대항마를 준비해야 했다.
“진유 아우, 신무신단이 이상한 것은 알겠지만 우연일 수도 있다. 너무 앞서가고 있는 건 아닌가?”
“무명, 미리 조심하는 건 나쁘지 않아. 그리고 상대가 극일가라고 한다면…… 우연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
제갈양은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우연이라는 건 필연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배웠으니까.
극일가의 위력이 어떠한지 팔천명부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천지금쇄진법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극일가의 무력에 팔천명부는 완전히 전멸당했다.
향천이 합류했다고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끝을 낼 수 있는 무력을 지닌 게 명백했다.
“물론 제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 가의 전체인지, 아니면 소수의 인원인지, 당장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행히 명부를 모두 정리하기 전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동안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할 일은?”
“무명 형님은 그사이에 중원 무림을 강하게 만드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그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진유 아유는 그들과 계속 함께 움직일 모양이지?”
“명왕을 치지 않고서 이번 싸움은 끝난 게 아닙니다. 본 가에서는 끝을 내고자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다시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극일가에서는 명부를 칠 자신이 있는 모양인가 보군.”
“아마 오늘 팔천명부를 상대하면서 알았을 것입니다. 극일가의 무력으로 명부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나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명부가 생각보다 약하긴 했어. 난 엄청나게 강할 줄 알았지.”
“제갈 형님, 팔천명부도 약하지 않습니다. 단지 본 가가 조금 더 강했을 뿐이지요.”
“후후. 그 말도 맞긴 해.”
“다른 구천명부의 무력들도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명부의 전력에서 보면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본 가가 상대할 진정한 명부의 힘은 명왕부입니다.”
“명왕부…… 라…… 구천명부가 전부 모여도 절반도 안 될 거란 말이지?”
“네. 맞습니다.”
“엄청나군.”
“그렇다고 봐야죠. 여하튼 극일가는 명왕부를 치기 전에 구천명부를 정리할 겁니다.”
“명부를 치는 동안 명왕부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텐데.”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아는 게 없었다.
“글쎄요. 워낙 특이한 곳이라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들이 당하면 명왕부도 좋지 않을 텐데.”
“나쁜 놈들은 혼자 먹고 싶어 하잖아요.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싶을 겁니다.”
“훗. 명부나 중원이나 똑같다는 말이군.”
“그런 거죠. 어디에 사는지 다를 뿐 생각하는 건 같았습니다.”
“나도 이번 일을 보면서 깨달았다. 욕심은 세상을 구별하지 않아.”
모든 일은 탐욕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향천도 극일가와 함께 움직일 생각인가?”
“적당한 때를 봐서 나오도록 해야죠. 하지만 당분간 극일가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왜?”
“신무신단이 없으면 명부에 들어갈 수 없잖아요.”
“만들고 있지 않아?”
“신무신단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을 하면 됩니다. 우린 괜찮았지만 명족에게 여전히 불완전한 건 맞거든요.”
“그렇군. 시간을 끌 수 있겠어.”
고진유의 생각에 제갈양도 만족했다.
고진유가 신무신단을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극일가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두 분 형님은 그동안 무림맹에서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끄덕. 끄덕.
남궁무영과 제갈양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 *
“어르신들, 감사드립니다.”
고진유는 사천당문을 먼저 나서는 제갈문과 제갈기, 제갈노, 그리고 가주인 제갈휴를 배웅하기 위해 정문까지 나왔다.
“제갈세가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허허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
제갈문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고진유의 손을 잡았다.
“조심해서 돌아가시지요.”
“조심은 자네가 해야지 않겠나. 혹시나 다음에도 우리 손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말을 하게.”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떠나는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남궁무명은 마지막으로 고진유와 눈인사를 한 후 제갈세가의 인물들과 함께 떠났다.
고진유는 배웅을 한 뒤 돌아섰다.
“남궁무명, 그 친구가 무림맹주가 된다는 것이냐?”
고도유가 물었다.
그가 차기 무림맹주가 될 것이란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서 무림맹주에 오른다는 게 의아했다.
극일가의 가신가라고 알려진 하오신문과 남궁호신가는 정확하게는 극일가의 가주가 아닌, 은룡투인의 전인에게 종속된 관계였다.
그렇기에 고도유가 가주여도 남궁무명이 무림맹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막지 못했던 것이었다.
“무명 형이라면 맹주의 역할을 잘 할 겁니다.”
“그건 맞지만. 지금은 무림맹보다는 본 가의 일이 더 급할 텐데.”
“그것도 맞긴 하죠. 하지만 무림의 일도 중요한 건 맞습니다. 맹주가 비어 있으니 중원 무림에 시끄러운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제갈 군사께서 어렵다고 해서요.”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고도유는 여전히 남궁호신가가 빠져나간 것에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혹시 남궁호신가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건 아니고…….”
고도유는 대답을 우물거리며 똑바로 하지 못했다.
“본 가의 힘이라면 충분히 명부를 상대할 수 있지 않습니까? 향천이 늦게 도착했지만 굳이 없었다고 해도 본 가는 이겼을 것입니다.”
“그렇…… 긴 하지.”
고도유는 가슴이 뜨끔했다.
고촌에서 출발할 때 다른 방향으로 향천을 일부러 보낸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었다.
“도유 형, 내가 이번에 명부를 보니 향천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지?”
“내가 향천을 생각한 이유는 일월가와의 싸움 때문이었어요. 이번에 보니 역시 명부와의 싸움은 무리인 것 같더군요.”
뒤에서 화산파의 사형제들 또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팔천명부의 명괴들과 싸우면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대로 싸우지 못한 건 고진유가 내력의 절반으로 싸우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고진유의 말을 따랐을 뿐이었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고도유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두총이 나서려고 할 때였다.
귓가에 무혼신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기다려라.]
장두총은 그녀의 전음에 흠칫거리다가 가만히 섰다.
고도유는 고개를 돌려 향천의 무인들을 보았다.
천지금쇄진법에서 싸우는 모습들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버거워하긴 했었다.
“음…… 그래도 충분히 잘 싸웠던 것 같은데.”
“맞아요. 힘들었지만 팔천명부와 잘 싸우긴 했죠. 하지만 그들은 완벽한 신무신단이 아닌 불완전한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나온 명괴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명부에 가서 진정한 명괴들과 싸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사실대로 말하면 명부에서 싸우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몇 명은?”
“천무십이인인 사형들은 제외하고, 나머지 화산파 제자들은 돌아가는 게 좋을 듯해요.”
고도유의 표정이 미세하게 풀린 듯했다.
“네가 그렇게 보았다면 어쩔 수 없지. 하긴 화산파의 제자들이 명부까지 가서 싸우기에는 버거울 수 있지.”
고진유가 향천을 따로 돌려보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던 의심이 사라졌다.
“호진 사형.”
우종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사형이 귀찮더라도 무명 형과 함께 무림맹에 다녀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 하마.”
“호민 사형도 함께 다녀오세요.”
“그래. 내가 호진 사형과 다녀올게.”
“지금 바로 떠나시면 무명 형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알겠다. 나중에 보자.”
우종성과 곽우는 화산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먼저 떠난 무림맹을 따라 길을 나섰다.
고진유는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스윽.
이윽고 고진유는 일행 사이에서 이질감을 지닌 인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마 임조학.
“팔천명부의 일이 끝났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계속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뜻입니까?”
“힘든가?”
“그대의 뜻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난 명왕이라는 놈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죽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그렇다면 함께하죠. 그 대신 그대도 향천의 일원으로서 본인의 명을 따라야 합니다.”
“좋다.”
중원 무림에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
마교의 교주 천마가 향천주 고진유의 명을 따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천마 임조학은 그만큼 명부에 대한 원한이 강했다.
“도유 형, 출발하도록 하죠.”
고도유는 곧장 극일가의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극일가로 복귀한다!”
* * *
구우우우웅.
붉은 성으로 흑의인이 들어섰다.
그의 걸음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럽게 지나쳐 가는 듯했다.
창백한 얼굴에 허리까지 내려온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괴기한 모습이었다.
스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붉은 계단에 도착한 그는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섰다.
암흑의 공간 속에 오직 계단만이 보일 뿐이었다.
처억.
마지막 계단에 오른 그는 무릎을 꿇었다.
“명부의 지존이신 명왕님을 뵙사옵니다.”
찌이이잉-
어둠의 공간에 붉은 점이 나타나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어느덧 붉은 점이 커지며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희미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부소군, 무슨 일인가?”
“팔천명군의 목이 잘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더군.”
“극일가에서 나섰습니다.”
“지상에서 날뛰고 있거늘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그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
명부소군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극일가에서 신무신단을 제조한 모양입니다. 오천명부에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신무신단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지?”
“그렇사옵니다. 팔천명부에서도 신무신단으로 인해 지상에서 거의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게 극일가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인가?”
“송구하옵니다. 팔천명부에서 미쳐 그 부분에 대해서 몰랐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극일가의 인물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명부에 내려오면 문제가 되지 않겠나?”
“…….”
“왜 말이 없지?”
“그들은 명부에 내려오는 즉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명왕님께서는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십니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예전 그들에게 당했을 때는 우리의 모든 힘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그때에도 아쉽게 물러났을 뿐이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맞습니다. 극일가에서 명부를 내려오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한동안 심심했지. 그들이 기다려지는군.”
명부소군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엇이냐?”
“구천명부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사옵니까?”
“극일가에서 알아서 하도록 두면 된다. 어차피 내 말을 들을 놈들도 아니지. 이번 기회에 명부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알겠사옵니다. 명왕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사옵니다.”
“아…… 은룡투인이라는 인물이 반은 우리 명부라고 했나?”
“그렇사옵니다. 그의 모친이 오천명부 출신이었습니다.”
극일가와 명부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라…….
명왕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고대 명왕의 혼이 잠들어 있는 명왕록에 적혀 있는 글귀.
-반과 반의 인물. 모든 경계를 허물고 영원히 사라지게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