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큭, 이거 참…… 어이가 없군.’
충격을 받은 팔천명군은 짧게 뒤로 밀려난 뒤 툭 떨어지듯 엉덩방아를 찍었다.
강했다.
극일가의 가주라고 하지만 은룡투인은 아니었다.
세상에 적수가 있다면 오직 그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하…….”
팔천명군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고도유는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
‘자신감이라.’
넘어진 그를 상대로 바로 공격하지 않은 건 언제든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팔천명군, 본인에게 항복하면 살려는 주겠다.”
“크흐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팔천명군은 방금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면 그저 가볍게 던진 농담이라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본인의 명을 따른다면 팔천명부는 살려주겠다.”
“…….”
고도유의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이었다.
“방금 극일가를 따르라고 한 뜻이 무엇이지?”
“극일가가 아닌 본인의 명이다.”
‘어라? 이것 봐라?’
팔천명군은 두 눈을 똑바로 뜨며 상대를 주시했다.
한 번 더 그를 보았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팔천명군, 내가 농담할 인물로 보이나?”
“크큭, 크하하하하하핫! 극일가의 가주가 미쳤도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팔천명군은 죽음이 두려워 극일가를 따를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건 오로지 세상의 전멸이었다.
팔천명부 전체가 죽는다고 해도, 저자의 뜻을 따르는 일은 없다.
“명군, 그럴 줄 알았소. 어차피 모두 죽일 계획이었으니 원래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어.”
고도유는 더는 그에게 묻지 않았다.
구우우우웅-
중원수호신무검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펼친 극일역천천지검공이 또 한 번 팔천명군을 향해 날아갔다.
‘부딪히면 안 된다.’
팔천명군은 빠르게 판단했다.
전력을 끌어 올려도 힘으로 밀어낼 것 같지 않았다.
검이 다가올 때까지 보면서 기다렸다.
‘지금이다.’
일전의 공격은 몸에 부딪히기 전에 폭발했다.
‘같은 수가 통할 것 같으냐!’
휘익!
팔천명군은 뒤로 물러나면서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쳇!”
중원수호신무검의 검강은 중간에 폭발하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공격.
단번에 상대의 검이 자신의 목을 베기 위해 들어왔다.
파앗!
허리를 뒤로 눕히다시피 젖히면서 검강을 피하는 듯했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검강이 폭발하며 아래에 있던 팔천명군을 그대로 덮쳤다.
고도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놈. 이번 한 수는 절대로 피할 수 없지.’
완벽하게 펼친 공격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바닥에 쓰러진 팔천명군의 모습이 보였다.
죽은 듯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끝났군.”
고도유는 그의 죽음을 확신할 때였다.
슈우우우우-
바닥에 누워 있던 팔천명군의 전신에서 바람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세게 들렸다.
고도유는 눈에 힘을 주며 노려보았다.
“크…… 크크…….”
몸뚱이가 괴기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질긴 놈.”
고도유는 두 팔이 처진 채 일어나는 팔천명군을 보며 웃었다.
“어차피 일어나 봤자 쓰러지는 건 매한가지일 뿐이거늘.”
타아앗!
고도유는 중원수호신검에 내력을 밀어 넣은 동시에 머리 위로 올렸다.
우우우우웅-
검이 가리키는 하늘 위에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번쩍!
소용돌이 속에서 섬광이 떨어지며 팔천명군의 향해 쏟아졌다.
샤아아아악-
거대한 한 줄기 빛이 팔천명군의 머리 위에서 사라졌다.
“…….”
고도유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번쩍번쩍.
연이어 섬광이 팔천명군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처음과 같았다.
섬광은 팔천명군을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 떻게……?”
“킥, 놀란 모양이지?”
팔천명군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냐?!”
고도유는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극일가는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군.”
“…….”
“지상에서의 모든 제한이 풀린 이상 명부의 무서움을 알게 될 것이다.”
“하, 하하하하!”
고도유는 대소를 터뜨렸다.
스윽.
그는 허리 안에서 신무신단을 하나 꺼내 들었다.
“겨우 이것을 믿고 있었나?”
“…….”
“내가 알기로 명부는 이제 신무신단을 계속 만들 수 없을 텐데. 안 그런가?”
고도유는 손에 든 신무신단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건 철갑에서 구한 완벽한 제조법으로 만든 신무신단이지. 이것을 복용한 뒤 명부에 내려가 보았더니 우리도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 아, 그렇지.”
고도유는 입가에 차가운 살기가 나타났다.
“신무신단의 효능 중 아주 비밀스러운 게 하나 숨어 있지.”
“그게…… 무엇이지?”
스으윽.
고도유는 허리에서 옥병을 꺼낸 뒤 그의 앞으로 던졌다.
퍼엉!
팔천명군의 앞으로 터진 옥병에서 백색 가루가 퍼져 나왔다.
“이게 무엇인지 궁금하겠지?”
“크윽…….”
팔천명군은 재빨리 호흡을 막았지만 이미 주위에 흐르는 백색 가루를 미세하게 맞은 뒤였다.
‘우욱. 머리가……?’
갑자기 뇌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대체…… 그건 무엇이냐?”
“신무신단에 숨어 있는 뇌령기를 깨우는 장치라고 할까?”
“……네, 네놈이 어떻게…….”
“후후, 차근히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고. 그냥 머릿속이 터져 죽으면 될 뿐이다.”
팔천명군은 호신기를 끌어내며 머릿속에 있는 뇌령기를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을 완전히 휘젓고 다니면서 고통을 주었다.
“아아악!!”
그는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굴렀다.
팔천명군이라 하더라도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후후후…… 네놈은 이제 머리가 터질 것이다.”
퍼어억!
고도유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팔천명군의 뇌가 터졌다.
팔천명부의 수장인 명군의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
고도유는 만족했다.
무공이 강한 명군조차 쉽게 죽였다.
신무신단을 복용했다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었다.
팔천명군의 죽음은 단번에 진법 전체에 알려졌다.
“끝이 보이는군.”
고도유는 승리를 자축하는 듯 신무검을 휘두르며 명족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 * *
샤르르르르-
보흥의 주위를 가두었던 진법의 한쪽 부분이 열렸다.
극일가의 무인들을 피해 도망치려던 명괴들은 진법의 변화를 읽은 뒤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 앞으로 고진유와 향천의 무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화삼공은 상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은룡투인…….”
“본인을 잘 아는군요.”
명화삼공은 전력을 다해 고진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이익!
명화삼공을 향해 고진유의 뒤에서 쏟아져 나온 인물.
한 팔이 잘린 채 마기를 내뿜는 천마였다.
“크하하핫! 망할 새끼들! 드디어 만나는구나!!”
천마 임조학은 명부에 복수를 하기 위해 고진유에게 잠시 동안 의탁했다.
“이…… 자는……!”
천마기를 내뿜는 인물은 중원에 한 명밖에 없었다.
천마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우면 되었다.
나머지는 잠시 몸담은 향천에서 해결해 줄 것이었다.
“크윽!”
명화삼공은 한 손밖에 없는 천마를 상대로 고전했다.
“이게 바로 마교를 무시한 벌이다!”
그는 이미 기세가 꺾인 탓에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피하기 시작했다
푸우욱!
천마의 손이 명화삼공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아아아악……!”
명화삼공의 죽음을 시작으로 팔천명부의 명괴들은 앞과 뒤에서 밀어붙이는 극일가와 향천의 무인들에게 목이 잘리며 쓰러져 갔다.
* * *
휘익!
고도유가 먼저 다가오면서 인사했다.
“진유 아유, 왔는가?”
“후후, 이미 끝을 냈군요.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었네. 자네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저놈들이 진법을 뚫고 나올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먼저 안으로 들어왔어. 함께 못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잘했습니다. 이들 정도는 본 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물리치지 않습니까.”
“맞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별말씀을.”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누군가를 찾은 듯했다.
“누굴 찾는 거지?”
“팔천명군의 시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에.”
고진유는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물.
팔천명군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고도유는 걸어가는 고진유의 등을 보았다.
“팔천명군.”
죽은 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흐음…….’
스윽.
고진유의 뒤로 고도유가 바로 다가섰다.
“뭘 보는가?”
“이자가 팔천명군인가요?”
“맞네.”
스걱.
고진유의 사의검이 팔천명군의 목을 잘랐다.
죽은 시체의 목을 자를 줄은 몰랐다.
“진유 아우, 이자의 목을 왜 잘랐는가?”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들의 능력에 대해서 우린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요.”
“아…… 그렇군.”
“목을 자른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다른 명족들도 목을 잘라야 할까?”
“음, 그들은 굳이 살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군 정도는 되어야 저들도 살리고자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앞으로 참고하지. 여기 일도 마무리가 된 듯하니 우선 정리를 하는 게 좋겠어. 나중에 보자고.”
“알겠어요.”
고도유는 극일가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방향으로 갔다.
‘음…….’
고진유는 바닥에서 목이 잘린 채 죽어 있는 팔천명군의 시체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이건…… 대체 뭐지?’
* * *
사천성을 공포에 몰았던 팔천명부의 명괴들이 모두 죽었다.
그들을 죽인 가장 큰 공신은 극일가와 천지금쇄진법을 펼친 제갈세가였다.
중원인들은 역시 진법의 가문 제갈세가라며 칭송했다.
그리고 새로운 무림의 구원자로 극일가의 가주 고도유의 이름이 중원에 퍼져 나갔다.
사천당문은 외당까지 많은 인물들로 시끌벅적했다.
“여기가 조용하군.”
사천당문에서 가장 조용한 후원으로 들어선 세 사람이었다.
고진유의 뜻을 따라 제갈양과 남궁무명이 함께 자리했다.
“모두 자리에 앉지요.”
“알겠네.”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남궁무명과 제갈양은 할 말이 많았지만 고진유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제갈 형님, 이번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수고라고 할 게 있나? 있는 그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겸손은.”
남궁무명이 한마디 했다.
“이봐, 원래 높은 자리에 오르면 겸손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너도 지금부터서는 겸손을 배우도록 해.”
“내가 왜?”
“어? 진짜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
남궁무명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갈양은 미소를 지었다.
“진유 아우가 말을 안 했어? 무림맹주에 대해?”
“아. 난 또.”
남궁무명은 돌아간 후에야 천천히 무림맹주에 관한 일이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무명 형은 바로 무림맹으로 가시면 됩니다.”
“지금 바로? 남궁호신가는?”
“무명 형, 그렇지 않아도 물어볼 게 있었어요.”
“말해라.”
“형은 남궁호신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들었다.
하지만 고진유에 대해 남궁무명은 잘 알았다.
‘이 녀석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분명 남궁호신가에 대해 묻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이끌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에 대해 잘 모르겠더군.”
“……음, 아마 그럴 겁니다. 그들과 함께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죠.”
“그렇긴 하지.”
“남궁호신가는 극일가의 무력 호신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일가의 본진과는 다른 개념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남궁무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했다.
“내가 그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건가.”
“무명 형의 말이 맞아요.”
“훗…… 극일가의 호신가는 남궁세가이지 남궁호신가는 아니지 않냐는 뜻이군.”
남궁무명은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가졌다.
‘음…… 과연 남궁호신가의 인물들이 극일가보다 내 명을 따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