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콰아아앙!
보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설치된 폭탄들이 끝없이 터지면서 명괴들의 길을 막아섰다.
“크크…… 이제는 서서히 끝이 보이는군.”
하지만 보흥으로 가까워지자 준비 시간이 부족했는지, 사천당문의 인물들이 직접 공중으로 벽력탄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피우우웅-
슈우우웅-
수백 개의 벽력탄이 떨어지면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명괴들 앞에서 터졌다.
명화일공은 눈앞에 터져 나가는 명괴들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천당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겠군.”
사천당문의 벽력탄으로 인해 잠시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피해는 크지 않았다.
아쉬운 건 보흥까지 오는 길에 여러 마을을 거치면서 사람 구경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명괴들은 살인을 하지 못한 탓인지 더욱더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흥분했다.
하지만 잠시 뒤면 보흥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곳을 지나면 성도는 바로 눈앞이었다.
“겨우 벽력탄에 주눅이 들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진정한 살육이 무엇인지 똑바로 가르쳐 주겠다.”
그는 앞으로 달리면서 명괴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 저기 저놈들부터 죽이자!!”
명화일공은 멀리 달아나는 사천당문의 인물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 * *
끼이익.
사당의 문이 열렸다.
인양과 녹검이 먼저 밖으로 나오고, 그 뒤로 무혼신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진유와 고화유는 잠시 걸음을 멈춘 뒤 돌아섰다.
“여기까지 함께해 줘서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가웠다.”
어둠 속에 명유팔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오겠어요.”
고화유는 그를 보며 밝게 인사를 했다.
“……알겠다.”
고진유와 고화유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당 밖으로 나온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나왔다…….’
그리고 멀리서 한 사내가 사당에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다섯 명을 지켜보았다.
꿀꺽.
‘대체 어떻게 멀쩡하게 나온 거지?’
마을 주민들은 몸을 숨긴 채 지켜볼 뿐이었다.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시오.”
‘드, 들켰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청년이 자신이 숨어 있는 곳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사내는 숨어 있던 장소에서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고진유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객잔의 주방장이군요. 여기에서 우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소?”
“그…….”
그는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명부의 안위만 걱정될 뿐이었다.
“저어…… 명부는 어떻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군요. 정말로 명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다른 곳에서 욕을 들을지언정 마을에는 은인들과 같은 곳이었다.
“잠시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이니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걱정 안 해도 되오.”
“가, 감사…… 합니다.”
그는 허리를 바짝 숙였다.
“우린 그만 갈 테니 마음 편하게 지내시오.”
“……아…… 네에.”
사내는 그들이 마을에서 빨리 사라지는 게 좋았다.
그는 얼른 마을 밖까지 다섯 명을 직접 배웅하기 위해 안내를 했다.
“그대의 표정을 보니 우릴 최대한 빨리 밖으로 보낼 생각이군.”
“아, 아닙니다.”
“후후후. 걱정하지 마시오. 조용히 갈 테니. 하지만 혹시 다음에도 찾아올 수 있으니 그때는 반갑게 맞이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마치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나는 것처럼 손을 흔든 뒤 마을을 나섰다.
휘익!
마을을 벗어나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들 앞에 전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룡투인님께서 나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본인을 기다린 것을 보니 팔천명부에서 드디어 움직인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천성의 성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림맹 군사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도 이미 제갈세가의 인물들과 함께 사천당문으로 움직였습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것입니다.”
“본 가도 당연히 출발을 했겠군요.”
“당문을 향해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향천도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네. 다른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계속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 수고 좀 해주세요.”
“네,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스르르.
전비령의 신형이 사라졌다.
“우리도 사천성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알았다. 바로 출발하자.”
휘익!
고진유는 신법을 펼치며 움직였다.
그 뒤로 네 명이 동시에 신법을 펼치며 뒤를 따랐다.
그때, 후미에서 따라오고 있던 인양과 녹림야검에게 갑자기 고진유의 전음이 들려왔다.
[두 사람에게 부탁이 있어.]
[네. 무엇입니까?]
[지금 바로 아무도 모르게 극일가로 돌아가서 그곳에 남아 있는 그녀들을 비밀리에 호위해 줘.]
[알겠습니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극일가로 가는 이유에 대해서 굳이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를 믿고 따랐다.
[그리고 인양은 신의자를 조용히 만나 신무신단을 만드는 데 시간을 끌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줘.]
[알겠습니다. 그대로 전할게요.]
다섯 명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휘익.
인양과 녹림야검은 달리는 도중 갑자기 방향을 돌리며 옆으로 사라졌다.
무혼신녀와 고화유는 한동안 두 사람이 사라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것은 반시진을 달린 후 잠시 휴식을 위해 신법을 멈췄을 때였다.
“어…… 두 녀석은 어디 갔지?”
“제가 오는 도중에 극일가로 보냈습니다.”
“정말로 극일가를 의심하고 있나?”
무혼신녀는 설마 바로 행동에 나설 줄은 몰랐다.
분명 의심스러운 건 맞다.
철갑에서 얻은 제조서로 만들어진 신무신단이라면 명족이 복용했을 때 문제가 없어야 했다.
“철갑에서 얻은 제조서가 완벽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완벽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우린 이상이 없지 않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우리도 몸에 이상해야 했습니다.”
“그…… 렇군. 내가 또 그것을 잊었어.”
무혼신녀와 달리 고화유는 정확한 증거도 없이 극일가를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여겼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 무턱대고 의심하면 편견이 생길 수 있어.”
“화유 누나. 그건 아니야. 대비를 하는 것뿐이야.”
“그건 진유의 말이 맞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어.”
무혼신녀도 고진유의 생각에 동의했다.
“극일가는 분명 우리 가족이 맞아. 근데 이제는 명부도 가족이 맞잖아.”
“…….”
“그리고 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밝혀낼 거야. 어머니가 명부 출신이라 우리를 낳다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 분명 어머니의 죽음에 무엇인가 있어.”
그녀 또한 고진유의 말을 듣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들었다.
상황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실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당사자들이 없었다.
“알겠어. 난 네가 하는 대로 할게.”
“누나는 모르는 척해주세요. 만일 그분의 죽음에 누군가 연관이 있다면 필히 찾아낼 테니까요.”
고진유에게 중요한 것은 오천명부에서 나오는 순간 바뀌었다.
무혼신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천천히 하자. 그것을 알아보는 데는 얼마든지 시간이 많아.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누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팔천명부부터 정리하도록 하죠.”
“이런 일은 절대로 조급하면 안 돼. 알겠지?”
“걱정하지 마세요. 충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 네가 바로 알아줘서 내가 더 고맙다.”
고진유의 그녀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방금도 흥분했을 때 그녀가 다른 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옆에서 잡아주었다.
고진유는 그녀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가볼까요?”
휘이이익.
세 사람의 신형은 빠르게 사라졌다.
* * *
당천독은 사천당문에 남아 있던 당문인들과 함께 보흥의 입구인 사남관에 도착했다.
사남관은 사천성의 성도를 지키는 최후의 관문이라 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
사남관이 흔들릴 정도로 많은 수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관문 위 성곽의 누각에서 당천독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문주님. 저기 당경 당주님이 오고 있습니다.”
“빨리 문을 열어라.”
“알겠습니다.”
부용당주 당민은 사남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문을 열어라!”
구우우웅.
굳게 닫혀 있던 사남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잠시 뒤, 당경과 함께 당문인들이 사남관 안으로 모두 들어섰다.
“헉, 헉.”
당경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명괴들의 유인하면서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쿠웅.
사남관의 정문이 닫혔다.
누각 위로 신형을 날린 그의 얼굴에서 여전히 다급함이 전해졌다.
“문주님,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팔천명부의 명괴들을 사남관에서 막아낼 수 없었다.
당경은 사천당문의 무인들로 어떻게 싸울 것인지 몰랐다.
무조건 그들을 보흥까지 끌고 오라는 당천독의 명을 받았다.
“우린 이놈들을 보흥에 가둘 것이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당황해 목소리가 떨렸다.
“기다려 보게. 저놈들이 여기를 넘어서면 조만간 알게 될 것이네.”
“알겠습니다.”
당경은 침착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더는 묻지 않았다.
그들은 누각에 서서 전방을 주시했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먼지가 솟구쳤다.
“형님. 저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됐다. 우린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자.”
“…….”
당천독은 당황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 뒤를 당경이 의아한 시선으로 따랐다.
* * *
사남관이 보였다.
“크크크. 결국 멍청한 놈들. 우리를 상대로 수성전을 하겠다고?”
계속해서 도망가는 사천당문을 보면서 꿍꿍이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천당문이 어떠한 짓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사천당문은 처음부터 팔천명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곳만 넘으면 성도가 눈앞이다.”
아무리 높은 성벽으로 막혀 있다고 해도 명괴들을 막을 수 없었다.
“단숨에 저곳을 넘어간다!”
“크아아아아-!!”
명괴들은 괴성을 지르며 사남관을 향해 달렸다.
팔천명부의 후미에서 움직이던 명군 또한 사남관을 보면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생각한 것이 수성전은 아니겠지? 물론 좋은 방법이긴 하지.”
사천당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수성전으로 다가오는 적을 향해 벽력탄을 사용하면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천당문이 상대할 적은 일반적인 상대가 아니라는 것.
명괴들은 벽력탄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크크…… 벽력탄으로 막을 생각이라면 잘못됐다는 것을 곧바로 알겠지.”
명군은 사남관을 향해 달려가는 명괴들을 보면서 가볍게 통과할 것이라 여겼다.
두두두두-
명괴들이 움직이면서 땅에 진동이 전해졌다.
앞서 달리던 명괴들이 굳게 닫힌 사남관의 문을 향해 부딪쳤다.
콰아아앙!!
수십 수백 명의 명괴들이 부딪히자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명괴들은 사남관을 통과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왜 반격이 없지?’
명화일공은 문을 너무 쉽게 부수고 들어가는 명괴들을 보면서 의아했다.
문을 부수기 전에 사남관에서 반격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통과한 뒤 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한 명도 없었다.
“저기를 보십시오!”
“……!”
명화일공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사천당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놈들이…… 왜?’
그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보흥을 지나면 지척이 성도다.
그런데도 싸우지 않고 계속해서 도망을 가고 있었다.
“명화일공, 저놈들을 쫓지 않고 뭘 하고 있지?”
사남관을 통과한 명군이 다가왔다.
“싸우지 않고 계속해서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를 유인한다는 말인가?”
“그렇…… 습니다.”
“그래서?”
명군은 되물었다.
흠칫.
명군의 눈빛을 보며 몸에 전율이 퍼져 나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쿵.
명화일공은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명화일공.”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온몸에 찢기어 나가는 듯했다.
“저놈들이 유인을 하든 안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지?”
“죄송합니다. 곧바로 저들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사천당문이 명부의 상대가 된다고 여기는가?”
“아닙니다. 제가 망언을 했습니다.”
“저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대로 죽이면 될 뿐이다.”
“알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를 해주겠다.”
“명군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벌떡.
명화일공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앞으로 달렸다.
“저놈들을 죽여라.”
우두두두두-
그를 따라 명괴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