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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88화 (388/425)

388화

고금제일인이라 불린 고진유의 무공은 대단했다.

분명한 건, 자신보다 고강하다는 것.

오천명군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정도의 실력인가?’

은룡투인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지상도 아닌 명부에서 내력이 밀렸다.

“정말이군. 전혀 무공을 펼치는 데 문제가 없군.”

“저뿐만 아닙니다. 극일가 전체가 신무신단을 복용한다면 지상과 명부의 경계가 사라질 것입니다.”

“신무신단이 명족이 아닌 극일가에도 효력을 가질 줄은 몰랐다. 멍청한 놈들이 큰 사고를 쳤군.”

“약효가 좋은 모양이더군요.”

“…….”

오천명군은 심각했다.

팔천명부에서 만들었다는 신무신단 때문에 명부는 분명 큰 어려움에 당면했다.

“지금 극일가에서 신무신단을 제조하고 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극일가 전체에 모두 지급이 된다면 명부에 쳐들어올 생각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계획으로는 명부가 나와 세상을 멸하기 전에, 먼저 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 극일가의 뜻이 그러하군. ……치고자 하는 명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있나?”

“구천명부의 최고 인물이라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외에는 모릅니다.”

“그러면서 무작정 싸우고자 하는 모양이지?”

“그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명왕에 대해 모른다면서 어떻게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

오천명군의 말이 맞았다.

상대가 누군지만 알 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는 게 없었다.

무작정 명왕부에 쳐들어가서 그를 만나 싸우고자 했다.

‘……무모했군.’

신무신단이 완성되면 극일가와 함께 명부에 쳐들어와 그와 싸워 이기면 될 것이라 가볍게 생각했었다.

“은룡투인, 자네가 강한 것은 인정한다. 난 아직도 자네의 진정한 힘을 모르지. 어쩌면 명왕을 능가했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명왕도 강한 인물이야. 자네가 함부로 붙어서 이길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명왕을 이길 자신이 있다면, 먼저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많이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 명왕을 치고자 한다면 스스로 그에 대해서 알아낸 뒤 움직여라.”

고진유는 그의 단호한 얼굴을 보았다. 명왕에 대해서는 오천명군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없을 듯싶었다.

스윽.

그는 때가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잘 내려왔네. 언젠가 한 번 정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 그때 자네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어.”

“고맙습니다. 여기에 내려와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흔적을 많이 찾고 갑니다.”

고진유는 제자리에서 그를 향해 절을 했다.

“늘 편안하게 지내십시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난 언제라도 자네를 응원하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먼저 내려가도록 해라. 난 좀 더 여기에 있다가 가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뒤로 두고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도중 아래에 검은 인영이 서 있음을 느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매서운 눈초리로 올려다보는 사내의 눈빛은 적의가 가득했다.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네놈인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은룡투인.”

“네. 제가 맞습니다.”

“난 명유일공이다.”

“…….”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감히 극일가의 인물이 명부에 내려오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지?”

그는 여전히 적의를 보이며 고진유를 적대했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

명유일공은 순간 흠칫했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적의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싸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싸울 수도 있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원하는 대로. 시작할까요?”

“…….”

고진유의 신형에서 전혀 내력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깨를 누르는 압박을 느꼈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내려온 줄 아십니까? 충분히 자신이 있으니 내려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군요.”

“…….”

고진유는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옆을 지나쳤다.

‘저…… 새끼가…….’

명유일공은 손이 떨리면서 당장에라도 출수를 하고자 했지만 굳은 탓인지 움직이지 못했다.

뒤에서 고진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우리가 조용히 올라가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곧 고진유의 신형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아…….”

호흡이 막혔던 숨을 겨우 내쉬었다.

“크크크. 엄청난 녀석이군요.”

명유일공의 뒤에서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명유이공……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처음부터. 당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내가 나서고자 했는데 큰일 날 뻔했소이다. 망신당하지 않게 먼저 나서줘서 고맙소.”

“…….”

“우리 막내가 저런 아들을 낳다니 놀랍지 않소이까? 그때 우리가 데리고 왔다면 명부에도 멋진 놈이 태어났을 텐데 아깝소.”

명유이공의 눈빛에서 부러움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명부의 앞날이 깜깜하외다. 음. 그러고 보니 지금도 깜깜한 것 마찬가지입니다만.”

“무슨 뜻이지?”

“멍청한 팔천 때문에 명부의 명줄이 간당간당하게 될 것 같지 않소이까? 괜히 신무신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오히려 극일가에 좋은 일을 만들어주지 않았소?”

“망할 새끼들…….”

명유일공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방금 고진유가 보여준 무공이라면 극일가의 힘이 어떠한지 알 듯했다.

신무신단의 효력에 극일가의 무력이 명부에서 그대로 펼쳐진다면, 명부가 위험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사천성으로 신나게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이다.”

“무림에서는 가만히 있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

“저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요. 우린 구경이나 합시다. 그래도 우린 족보로 따지면 외숙이 아니오. 설마 가만히 있는데 치기야 하겠소?”

명유이공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 * *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무림맹의 태상전에 들어섰다.

제갈양은 태상전으로 들어서는 입구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휴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이제는 제법 군사답군.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맞는 모양이야.”

“그건 맞는 말씀 같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혹시 오기 싫지는 않으셨습니까?”

“숙부님께서 부르시는데 당연히 와야지. 근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니겠지?”

“푸흡. 그건 들어가서 보시면 압니다.”

“아, 아닌가 보군. 난 또 내가 야단맞을 짓을 했나 신경이 쓰였거든. 들어가 보마.”

가주 제갈휴는 먼저 태상전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 신안 제갈기와 유안 제갈노가 함께 다가왔다.

“두 분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군사가 되니 훤칠하구만. 네가 무림맹에서 잘하고 있다는 소식은 늘 듣고 있다.”

제갈기는 대견한 눈빛으로 제갈양을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고맙습니다. 소손이 잘한 게 아니라 맹주였던 고금제일인이 그동안 잘해줬던 것입니다.”

“후후후. 겸손까지 하구나. 물론 그도 잘했지만, 옆에서 도움을 주는 군사의 역할도 중요한 법이지.”

“신안 형님의 말씀이 맞네. 사실 고금제일인은 무림맹에 붙어 있는 날이 얼마 안 된다고 들었어. 모든 일을 우리 군사가 다 하고 있지 않은가.”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두 분은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하겠네.”

제갈기와 제갈노가 들어가자 차례대로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다가왔다.

제갈양은 그들을 한 명씩 맞이하면서 태상전 안으로 안내했다.

정확히 태상전에 모인 제갈세가의 인원은 총 일백 명에서 다섯 명이 모자랐다.

태상전에는 탁자와 함께 백 개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순서대로 모두 자리에 앉았다.

제갈문은 맞은편 자리에 앉은 채 모두 앉은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부 앉았나?”

“네. 숙부님.”

가주 제갈휴가 대표로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모두 앞에 놓인 것을 보도록 해라.”

탁자 위에는 하나의 축장이 놓여 있었다.

제갈휴는 앞에 말려 있는 축장(軸裝)을 펼쳐보았다.

챠르르르-

축장이 펼쳐지는 소리가 태상전을 울렸다.

제갈기가 가장 먼저 축장에 적힌 진법을 알아보았다.

“혀, 형님…… 이건…… 천지……?!”

“맞다. 바로 알아보는군. 천지금쇄진법이다.”

원시무림 시절의 진법으로 후세에는 실전이 된 진법.

너무나 귀한 진법서이기에 제갈휴는 물론 모두가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숙부님, 이것을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극일가에 있었다고 하더군.”

“고금제일인이…… 준 것이로군요.”

“맞다. 그가 이것을 주면서 우리에게 큰일을 맡겨놓았다.”

제갈세가의 인물이라면 천지금쇄진법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천지금쇄진법은 위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오직 진법에 갇힌 상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낼 뿐.

하지만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시전자의 수에 따라 진법이 서로 연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천지금쇄진법을 보는 순간 자신들을 모두 부른 이유를 알았다.

“우리 본 가도 무림을 위해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지 않으냐?”

“숙부님, 무슨 뜻이옵니까?”

“팔천명부에 나온 놈들을 천지금쇄진법에 모두 가두고자 하느니라.”

“파, 팔천명부라 하시면…… 곤륜파와 마교를 멸문시켰다는 명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우린 그놈들 전체를 유인한 뒤 천지금쇄진법을 펼칠 것이다.”

“숙부님, 물론 천지금쇄진법은 뛰어나지만,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진법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우린…….”

“훗, 누가 가주에게 들어가 싸우라고 하더냐? 우리는 그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만 만들면 된다. 마무리는 고금제일인이 나설 테니.”

“아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모두 알겠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 그놈들은 곤륜파를 멸문시킨 후 백성들을 살육하면서 사천성으로 내려올 것이다. 지금부터 한 번의 천지금쇄진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 모두 머릿속에 완전히 외우도록 해라. 이번 기회에 중원 무림에 본 가의 힘이 어떠한지 보여줘야지 않겠느냐. 성공만 한다면 본 가는 어느 문파보다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허허, 그렇지. 우리 제갈세가가 나서면 어떠한 일이라도 못하는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지.”

“이번 기회에 본 가의 능력을 충분히 알릴 수 있겠군.”

다른 제갈세가의 인물들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넵.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주 제갈휴는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났다.

제갈문이 말한 것처럼 팔천명부를 물리친다면 중원 무림을 구한 문파라는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지금쇄진법을 외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제갈세가였다.

태상전에 모인 그들의 수는 거의 일백 명.

제갈세가에서도 특별히 고른 인물들로, 당연히 모두가 진법에 밝아 천지금쇄진법을 외우는 데 반 시진이면 충분했다.

하나둘씩 축장을 내려놓았다.

“전부 외웠는가?”

“네. 숙부님. 이 정도라면 완벽하게 외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대로 진법을 이해하면서 펼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가주의 말이 맞다. 외우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느니라. 모두 외웠다면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태워라.”

“알겠습니다.”

제갈양은 화롯대에 불을 지폈다.

한 명씩 일어난 뒤 축장을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툭.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축장을 던졌다.

천지금쇄진법이 적힌 축장을 모두 태운 뒤 다시 제자리에 앉은 그들이었다.

제갈문은 그들을 보며 단호하게 명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천지금쇄진법을 펼칠 수 있도록 익혀야 한다. 기한은 삼 일. 그 안에 모든 것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숙부님, 삼 일이면 충분히 펼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제갈세가의 인물이라면 당연하다. 그리고 여기 이분은 극일가에서 나온 분이시다. 천지금쇄진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기본적인 설명을 해줄 것이다.”

제갈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사내.

극일가에서 나온 기문전주 석인이었다.

척.

그는 앞으로 나온 뒤 포권을 했다.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소이다. 기문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갈세가의 여러분과 함께한다는 게 무한의 영광이외다. 천지금쇄진법에 대해서 이미 파악하셨을 것이라 봅니다만, 본인이 어떠한 진법인지 한 번 설명을 하겠소이다.”

기문전주 석인은 천지금쇄진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완벽하게 외웠지만 정확히 지형에 따라 어떻게 변화를 하며 움직이는지 알려주었다.

“아하…….”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앉은 자리에서 그의 설명을 이해했다는 듯 중간중간 감탄을 뱉었다.

석인의 설명은 꽤 길게 이어졌다.

천지금쇄진법은 간단하게 보이면서도 수많은 지형을 감싸기 위해 연계로 필히 이어지는 진법이었다.

중간중간 달라지는 지형의 변화를 완전히 이해하여야 제대로 펼칠 수 있었다.

반 시진이 지나서야 석인의 설명이 끝났다.

“처음 봤을 때는 간단하게 봤거늘…….”

제갈기는 천지금쇄진법을 완벽하게 펼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신안 형님, 저도 별게 아니라고 봤소이다. 역시 천지금쇄진법입니다.”

“삼 일이라…… 난 형님이 우릴 너무 얕보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구먼.”

제갈기는 과연 삼 일 안에 천지금쇄진법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딱딱.

제갈문은 웅성거리는 그들을 보며 바닥을 두드렸다.

“떠들 시간이 있는 것을 보니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제갈문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제갈양에게 물었다.

“지금 진문각주가 누구지?”

“제갈도문 숙부님이십니다.

“도문은 앞으로 나오게.”

벌떡!

제갈도문은 갑자기 호명당하자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났다.

“진문각을 맡고 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장소를 천지금쇄진법으로 펼쳐보게.”

“…….”

“어렵겠는가?”

“아, 아닙니다.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도문은 빠르게 주위를 살핀 뒤 가장 기준점이 되는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의 축은 진오 방향.’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갈문은 바삐 움직이는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역시 사람은 일이 있어야 생기가 도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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