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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87화 (387/425)

387화

명부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저녁임을 알 수 있었던 건, 지상과 연결된 천장 끝에서 내려오는 빛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오천명부에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예상대로 명부에서 완벽하게 무공을 펼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신무신단에 대한 확인은 끝이 났다.

성공작이었다.

완벽하다고 할 만큼.

신무신단은 명족보다 오히려 지상인에게 적합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이건 누구를 위해 만든 신단인가.’

고진유는 계속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드르르릉.

크으으-

뒤에서는 코를 골며 인양과 녹림야검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 내던져도 편하게 잘 녀석들이야.’

두 사람은 늘 마음이 편했다.

명부에 있다고 해도 그들 옆에는 고진유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고진유 옆임을 잘 알았다.

무혼신녀와 고화유는 건너편 옆방에 있었다.

스윽.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조용히 나온 뒤 거실을 둘러보았다.

명부의 건물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곳이 명부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왜 극일가에선 명부는 오직 살육만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어.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아버지도 명부에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간혹 명부 또한 다르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이었군.’

고진유는 삼천명부에 갔을 때도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넘어갔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과 다를 게 없어.’

명부의 사람들.

명족이라 부르는 그들은 호전성이 심한 것은 맞지만 오로지 살육만으로 가득한 건 아니었다.

‘명부마다 조금씩 다른 건가?’

팔천명부를 생각하면 그랬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던가.

“어렵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어.”

드륵.

그때, 건너편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고화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도 잠이 오지 않았는지 뒤척거리는 중 밖으로 나오는 고진유의 기척을 들었다.

“무슨 고민이 있어?”

“고민은요. 없습니다.”

“너 얼굴 전체에 고민이 있다고 큼직하게 쓰여 있다.”

“…….”

고진유와 고화유는 자리에 앉았다.

“뭐야? 말해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변용을 했다고 하더군요.”

“맞아. 그랬다고 했어. 몰랐어? 아하…… 어떻게 두 분이 만났는지 넌 못 들었구나.”

고진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는데 고화유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말해줬으니깐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아…… 하, 그렇군요. 왜…… 변용을 하면서 어머니를 만나신 거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변용을 한 게 아니라, 변용을 한 뒤 중원에 나갔다가 어머니를 만난 거라고 하던데.”

“왜요?”

“사실 아버지 연세가 너무 많았잖아. 결혼할 나이도 훨씬 넘었고. 나이도 많은데 얼굴도 아저씨 얼굴이면 어떻겠어? 장가를 가야 하는데 꽃다운 여인이 관심을 가지겠냐?”

“……허. 그, 그럼 굳이 왜 결혼하려고 나간 거래요? 그 나이까지 결혼도 안 하시던 분이?”

“극일가에서 닦달을 했다고 하더군. 특히 고묵 사숙이 가주가 되면서 말이야. 후손을 만들 생각을 안 한다면서 계속 졸라댔나 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고 들었어.”

“그때 어머니를 만난 모양이네요.”

“그렇지.”

고진유는 막혔던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음…… 근데 왜 우리에게 어머니의 출신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나한테도 말을 안 하셨을 정도면 괜히 어머니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겠지. 명부는 쭉 우리가 없애야 할 상대였잖아.”

“그렇군요.”

“아버지에게 듣기론 세가에서는 두 분의 결혼을 엄청 반대했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왜 그랬는지 이해가 돼.”

“하긴. 누가 찬성하겠어요.”

“그때 고묵 숙부께서 지지를 해주셔서 결국 결혼했다고 했어.”

“숙부께서?”

“응. 그래서 아버지가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셨지.”

“언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가 무림에 떠돌아다닐 때 아버지께서 알려주셨어.”

“음…… 근데 고묵 숙부는 왜 찬성을 했을까요?”

“나도 그건 몰라. 어머니를 좋게 보셨겠지.”

“…….”

더는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을 고진유에게 말해주었다.

“아 참…… 그리고 우리를 임신한 상태에서 외조부와 외숙들이 나타나 아버지와 거의 목숨까지 걸고 싸웠다고 하셨어. 그때 들었을 때는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 입장에서 보니 당연한 것 같아.”

“하긴 그분들도 어이가 없었겠죠. 하필이면 귀여운 막냇동생이 사귀는 사내가 극일가의 인물이니…….”

“그때 끝까지 가지 않은 건 이미 임신한 상태이니 어쩔 수 없다고 외조부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래. 외조부께서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린 태어나지 못했거나 명부에서 태어났을지도 몰라.”

“아하…… 그래서 그분이…….”

오천명부로 들어오기 전 들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고화유의 말을 들은 후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일부러 접근한 것 같지는 않았다.

고진유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자신들의 존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태어난 게 맞았다.

“누나…….”

“뭐냐? 속 시원하게 말해봐.”

“신무신단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야? 몸에 이상이 있어? 난 괜찮은데?”

고화유는 얼른 자신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떠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완벽해서…… 이건 명족들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고진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녀는 이해했다.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래? 우연이 아닐까?”

“이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뭐지?”

“명부의 인물이 신무신단을 복용해보면 알 것 같습니다.”

고화유는 대답 없이 고진유를 똑바로 보았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지금 너무 머리가 복잡해요.”

드르륵.

그때, 문을 열고 무혼신녀가 밖으로 나왔다.

“진유 말이 맞아.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미리 앞서갈 것도 없고.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돼.”

“누님.”

고진유도 방 안에서 그녀가 깨어났음을 알고 있었다.

“너희 두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극일가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

무혼신녀는 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극일가처럼 엄청난 능력을 지닌 문파가 오랜 시간 동안 오직 정의만을 위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무구천도 변했으며 극일천도 변했다.

극일가라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의심이 된다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누님의 말씀대로 하겠어요.”

무혼신녀의 말처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답인 듯했다.

우선 신무신단이 과연 명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부터 하는 게 좋을 듯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알겠다. 조심하고.”

휘익.

고진유의 신형은 두 여인의 앞에서 사라졌다.

* * *

고진유는 오천명부의 입구 석문 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그를 찾았다.

“팔 외숙, 계십니까?”

스으으으-

고진유 앞으로 흑색 기가 흐르면서 천천히 백발의 모습을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외숙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에게?”

명유팔공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외숙이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갑자기 볼일이 있다면서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버지와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오천명부의 정예를 이끌고 끝장을 내고자 찾아갔었지. 하지만 그녀의 뜻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지.”

“…….”

“명군께서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두 사람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우리가 태어난 건 외조부의 뜻이 컸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근데 이것을 왜 묻는 것이지?”

“외숙께선 명족이시니 지상에 올라갈 때 몸에 무리가 생기는 게 맞습니까?”

“네 모친과는 달리 내력을 제대로 펼치면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만일 그 시간을 넘어서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이것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었던 것이지.”

“제가 알기에 그때도 신무신단을 만들었을 텐데, 복용하지 않으셨나요?”

“팔천명부의 명으로 일월가에서 신무신단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일월가에서 만든 신무신단은 전부 팔천명부에 들어가는 것인가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어차피 신무신단을 받았더라도 우린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군.”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상에 올라가서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성을 잃고 광폭성이 늘어난다고 들었다.”

“신무신단의 제조법이 불완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건 알 수 없지. 하지만 제대로 된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이상이 없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군요. 완벽하게 만들어진 신무신단을 보여 드릴까요?”

“…….”

명유팔공은 고진유를 유심히 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그가 바로 신무신단의 완전한 제조법을 가지고 있었다.

스윽.

고진유는 손에 신무신단을 내밀었다.

“이게 그것이냐?”

“우리가 복용한 신무신단입니다.”

“…….”

그는 신무신단과 고진유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것을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이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것을 지금 내가 먹으라는 것인가?”

“만일 몸에 이상이 있다면 곧바로 이 해독제를 드시면 됩니다.”

고진유는 왼손에는 금박지로 싼 해독제를 준비했다.

“내가 이것을 복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명부를 위해서입니다.”

“…….”

그는 고진유의 눈빛을 보면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명부를 위한다는 의미가 뭐지?”

“아시다시피 제 반쪽은 명부에 속해 있지 않습니까?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알고는 모른 척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는 진심이었다.

그가 은룡투인이라고 하나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이상이 없다면 제가 신무신단을 드리겠습니다.”

“……알겠다. 신무신단을 먹어보지.”

명유팔공은 신무신단을 받았다.

잠시 망설인 후 곧바로 입에 넣었다.

목을 타고 내려간 신무신단의 약효는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에 전해져 오는 강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음…… 나쁘지는 않군.’

그는 강한 힘에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까지 들었다.

이대로 지상에 나가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때였다.

“으윽……!”

머리를 때리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진유는 곧바로 손이 움직였다.

픽픽.

명유팔공의 몸이 굳어졌다.

곧바로 해독제를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스으으윽.

해독제의 기운을 유도하면서 신무신단의 약효를 하나씩 지워 나갔다.

전신의 혈맥을 따라 일주천하면서 완전히 지웠다.

“휴우…….”

명유팔공은 숨을 내쉬었다.

방금 느꼈던 충격은 완전히 사라진 채 더는 없었다.

“괜찮습니까?”

“아무…… 이상이 없네. 바로 처리를 해줘서 고맙군.”

“방금 어땠습니까?”

“신무신단을 복용하자 전신에 힘이 생기더군. 이 정도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근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더군. 이유는 모르겠다.”

“만일 참았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아마……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명유팔공이 참기 힘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신무신단은 극일가에서 만든 제조법이 아니라 일월가에 의해 만들어진 신무신단이었다.

고진유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완벽한 제조법이라 알려진 신무신단도 명부의 명족에게는 여전히 위험성을 주고 있었다.

명유팔공은 그를 유심히 살폈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군. 철갑에 들어 있던 신무신단의 제조법은 명족에게 완벽하다고 알려져 있을 텐데…….’

“방금 내가 복용한 것이 제대로 된 신무신단이 확실한가?”

“맞습니다.”

“신무신단의 목적이 지상에 나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제대로 성공한 것은 맞다. 그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더군. 하지만…… 갑자기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다면 완벽한 제조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군.”

그의 말이 맞았다.

명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신무신단은 실패작이다.

하지만 극일가나 중원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작이었다.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쉽게 명부에 내려올 수 있었으니까.

한 가지가 확실해졌다.

‘신무신단은 명부를 위한 게 아니었어. 오히려 우리들…… 중원인들을 위한 것이다.’

* * *

고진유는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 오천명군을 찾았다.

“여기에 계셨습니까?”

“그 아이가 계속 생각나서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그냥 올라가도 된다고 했을 텐데.”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그게 뭔가?”

“만일 극일가와 싸우라는 명왕의 명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명왕의 명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만일 제가 이곳에 가만히 계시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네 말을 따라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싸우고자 한다면 더는 극일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명족이 극일가에 진 것은 지상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명부에서도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슈우우우우-

오천명군의 전신에서 명부의 기가 퍼져 나왔다.

고진유는 전혀 피하지 않고 그의 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파앗.

용린수호기가 명부의 기를 너무나 편안하게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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