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스으으으으-
석문에서 검은색 연기가 새어 나왔다.
고진유는 허공에서 연기가 모이더니 사람 모양의 형체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곳은 명부의 땅이다. 지상인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은 누구지요?”
-난 명부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문지기이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은 없소이까?”
-방법은 없다. 물러가지 않는다면 죽음을 내리겠다.
“물러날 수 없소. 우린 안으로 들어가야겠소이다.”
스윽.
그는 연기로 된 손을 뻗어 고진유와 고화유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네놈들은 지상인이거늘 어떻게 명부의 냄새가 나는 것이지?
‘어떻게 알았지?’
명부의 냄새가 난다는 건 자신들의 반이 명족이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의 정체를 밝혀라.
“굳이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소만.”
-그렇다면 더욱더 명부로 들어갈 수 없다.
“당신이 막는다면 힘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군.”
타앗!
고진유는 신법을 펼치며 그의 앞으로 나섰다.
-어리석은 놈. 지상인이 형체가 없는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스르르르-
그의 형체가 연기로 흩어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신기한 재주군. 하지만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번쩍!
고진유의 눈동자가 빛나며 투명한 공간에서 옆으로 움직이는 기를 느꼈다.
스으으으으-
연기로 변했던 그의 형체는 주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파아아앗-!
사의검이 검광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사의검에서 뻗어 나간 날카로운 검날에 빠르게 베어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크으으윽…… 네놈이…… 어떻게?
“뭘 대단하다고. 당신이 어디로 다니는지 보이는 것을. 그 정도는 어린애도 알겠소이다.”
-내가 보인다고?
“한 번에 당신을 죽일 수 있었소. 하지만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파아앗!
순간, 석문에서 빛이 나오면서 주위 일대가 밝아졌다.
고진유는 모습을 드러낸 인물을 보았다.
백발이 허리까지 내려온 중년 사내였다.
명족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오천명부의 명유팔공이었다.
“당신의 본모습이오?”
“…….”
“말을 하기 싫소?”
“넌…… 대체 정체가 뭐지?”
명유팔공은 고진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은형유체술을 정확히 파훼하는 청년이라니.
“밖에서 부르기를 고진유라고 하오.”
‘……고…… 진유?’
중원 무림에서 고진유라는 이름을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그대가…… 은룡투인이라고?”
“그렇소.”
“…….”
고진유의 대답에 날카롭던 명유팔공의 기운이 수그러들었다.
“혹시 몸에 오원의 문양이 있는가?”
명유팔공은 어깨를 드러낸 뒤 고진유에게 문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었다.
다섯 개의 작은 원이 모여 있는 듯한 문양이 나타나 보였다.
“그게 무엇이지요?”
“오천명부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진유는 피식 웃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네.’
고진유는 왼팔 소매를 올린 뒤 팔뚝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어릴 적부터 몸에 새겨져 있던 문양.
쌍둥이 누나인 고화유는 왼쪽 종아리에 오원의 문양이 있었다.
그녀도 살짝 종아리를 걷어 보여주었다.
이제는 증거까지 완벽했다.
쌍둥이라서 같은 모양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다.
명유팔공은 고진유의 팔뚝을 보았다.
“명군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었군.”
오천명군은 이미 은룡투인이 찾아오면 명부에 직접 안내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에 대한 이유를 묻자 설명하기를 외손이라 했다.
중원 무림에 나간 오천공녀가 중원에서 사내를 만나 자식이 출산하는 과정에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근데…….
오천공녀가 낳은 아이가 쌍둥이였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오천공녀의 자식이 은룡투인이라니 이거 참…… 애매한 일이군.”
“애매할 것 없소이다. 서로 현재 있는 자리에서 상대하면 될 뿐이오.”
“그대의 모친을 부정하는 것인가?”
“…….”
“왜 대답을 하지 못하지?”
“어머니께서 명부 출신이지만, 명부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소이다.”
“오천공녀는 명유십공으로 나의 동생이다.”
“…….”
모친을 동생이라 한다면 그는 고진유에게는 외숙이었다.
고진유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명부 출신이라고 하기에 놀란 것도 맞았다.
하나 그렇다고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극일가의 인물이니 명부와 무조건 싸운 것도 아니었다.
고진유가 명부와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기 때문이니까.
명부가 지상에 올라와 세상을 멸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극일가 출신이라고 해서 명부와 싸울 필요는 없었다.
현재 자신은 중원에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명부를 상대할 뿐이었다.
“은룡투인, 명부는 사라져야 한다고 보는가?”
“그건…… 그분을 만나 뵙고 결정하겠소.”
“……좋다. 명군을 뵙도록 안내하지. 나를 따라오면 된다.”
“앞장서시지요. 부탁하겠습니다.”
명유팔공은 석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명부에 들어선 일행은 그를 따라 가장 중심부로 향해 내려갔다.
고진유는 나머지 네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무혼신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부에 들어선 뒤에도 내력을 완전히 끌어 올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그녀처럼 명부에서 움직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신무신단은 일단 성공이군.’
아직 확인하지 못한 건 약효의 지속 시간뿐.
뚝.
그때, 명유팔공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남매뿐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내력을 끌어 올린 채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돌아서면서 무혼신녀와 함께 인양과 녹림야검을 가리켰다.
“너희 둘은 명부의 피가 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 세 명은 분명히 지상인이다. 어떻게 명부에서 내력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지?”
“이들은 극일가의 심공을 익혔습니다.”
“극일가의 심공이 대단한 줄 안다. 하지만 명부에서까지 위력을 떨칠 수 는 없다.”
“이들은 천무십이인입니다.”
“…….”
그는 고진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능글맞은 건 네놈의 아버지와 닮았군.”
“아버지와 만났습니까?”
“당연히 그 망할 놈을 만났다. 그놈에게서 동생을 데려와야 했지.”
“졌군요.”
“…….”
명유팔공은 순간 어이없는 표정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맞다. 그놈에게 졌다. 하지만 명부에서 싸웠다면…….”
“그래도 졌을 텐데요.”
“쯧, 건방진 건 부친을 닮았군. 명군의 앞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충고라면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휘익.
그는 다시 돌아섰다.
이번에는 말도 없이 혼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진유 옆으로 무혼신녀가 다가왔다.
“그래도 외숙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괜찮아요. 설마 그걸로 삐지겠습니까? 여긴 명부인데.”
“삐졌을 것 같은데.”
“설마요.”
고진유는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뭐 하나? 빨리 안 따라오고.”
명유팔공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 미세하게 달라졌다.
“어…… 그러네요.”
“그래도 외숙인데 함부로 하지 마.”
고화유가 앞으로 나오면서 고진유의 배를 툭 쳤다.
* * *
명군동.
오천명부의 명군은 이곳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었다.
“여기다. 안에 들어가면 그분께서 계신다.”
“같이 들어가시지 않습니까?”
“내가 올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그렇군요. 외숙, 수고하셨습니다.”
“…….”
명유팔공은 그의 대답에 움찔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오천명부의 입구로 돌아갔다.
그는 일 장을 걸은 뒤 잠시 멈추었다.
“네가 그분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아니었다면 너희는 태어날 수 없었다.”
스으으으.
명유팔공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여기에도 많이 있었군.’
고진유는 그저 두 분이 사랑해서 자신들을 낳은 줄만 알았다.
‘하긴 극일가와 명부의 출신이 만나서 사는데 일이 없을 수는 없지.’
두우우우웅-
명군동의 문이 열리면서 앞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전신을 흑갑으로 무장한 명괴들이 명군동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진유는 바로 상황을 주시했다.
“다들 준비하세요.”
“이미 준비했다.”
무혼신녀도 앞의 상황을 보며 내력을 끌어 올린 뒤였다.
“잘됐네요. 효능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진유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싸우려고 모여들 있었던 겁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요?”
파아앗!
고진유가 내력을 끌어 올리자 은빛 광명이 솟구쳤다.
두두두두-
명괴들이 바로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휘이익!
고진유가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바로 뒤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두 명.
인양과 녹림야검은 싸움이 시작되는 즉시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쿠우웅.
인양이 양손으로 펼친 화산복호권은 더는 가르칠 정도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풍강벽(風剛劈)의 구결에 쾌(快)와 환(幻)의 구결까지.
그의 모습은 백색의 설원 위를 포효하며 달리는 백호의 움직임 같았다.
우두두두두-
수십 명의 흑갑 명괴들이 설월호보의 초식에 사방으로 쓰러졌다.
옆에서는 녹수검에서 흐르는 살성의 검기에 갇힌 명괴들의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었다.
뒤이어 무혼신녀와 고화유가 명괴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수미화심공을 단전에서 끌어 올린 뒤 펼치는 천화은검의 위력은 명부의 명괴라 하더라도 제대로 받아낼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고진유와 막상막하의 실력을 지닌 고화유의 검에서 펼쳐진 위력은 명군동을 들썩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고진유를 제외한 네 명은 명괴들을 상대로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열 명으로 곤륜파를 멸문시킬 정도의 명괴들을 상대로 압도했다.
흑갑 명괴의 수장인 명유오공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상인들이 이렇게 강하다고?’
그동안 가졌던 생각들이 틀렸음을 알았다.
이들과 싸워 이긴다는 보장만 있으면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웠을 것이었다.
하지만 더는 의미가 없었다.
명군의 명도 적당한 선에서 멈추도록 했다.
“물러나라.”
후두두둑.
명유오공의 명에 명괴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보였다.
명괴들이 모두 뒤로 물러난 사이로 명유오공이 앞으로 나왔다.
“은룡투인, 소문대로 대단하다.”
“당신은 누구시오?”
“난 명군님을 모시는 명유오공이라 한다.”
“명부에 들어오는 길에 그분은 명유팔공이라 하더군요.”
“그렇다.”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것인가요?”
“그건 아니다. 은룡투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이다.”
“굳이 맛을 봐야 맛을 아는 것은 아니지.”
“여기에도 똑똑한 사람은 있네요.”
“……명부를 무시하는군. 지하에 있다고 바보로 보는가?”
“방금 한 말에 대해서 사과하겠습니다.”
“…….”
명유오공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이 오천공녀의 자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혹시 그분과 어떻게 되는 사이입니까?”
“팔공에게 듣지 못했나?”
“…….”
“그놈도 제 말만 했다는 것이군. 명공의 열 명은 모두 형제 남매 사이다. 오천공녀가 명유십공으로 제일 마지막이지.”
“아, 그럼 저에게는…….”
“됐다. 우린 지상과 달리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부모 사이라도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게 명부이니.”
“알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 굳이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훗.”
명유오공은 명군동으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따라오너라.”
그를 따라서 다섯 명은 명군동으로 도착했다.
쿠우웅!
뒤로 문이 닫히면서 적막감이 주위에 흘렸다.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가면서 들리는 소리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뿐.
앞을 막은 문이 하나씩 열리면서 오천명군이 있는 장소로 들어섰다.
다섯 번째 마지막 문이 열리고, 고진유는 그 안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를 보았다.
그의 두 눈은 번쩍거리면서 안광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오천명군이 저분이군.’
명유오공은 앞서 명군의 앞에 다가섰다.
“명군님, 은룡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옆으로 물러나라.”
스으윽.
명유오공은 고개를 숙인 뒤 옆으로 섰다.
명군은 가만히 선 채 자신을 보는 고진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상에서는 외조부를 보면 멀뚱히 쳐다만 보는 모양이지?”
“명부에서 지상인의 예를 바라는 것입니까? 누군가 말하더군요. 명부에서는 굳이 그런 것 따지지 않는다고.”
“크하하하하!”
명군의 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았다.
“맞는 말이군. 하지만 그 아이만큼은 명부보다 더 아꼈다.”
“…….”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고진유는 뒤에 선 고화유를 불렀다.
“저희가 외조부께 인사드리겠습니다.”
두 남매는 그를 향해 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