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천마 임조학은 멱살이 잡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크크,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생각은 해보지.”
“…….”
천마는 축 처진 몸으로 명화공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지금 누구보고 말하는 거지? 본좌에게 애원이라 했나?”
“하!”
“본좌가 누군지 계속 잊고 있는 것 같군. 난…… 천마다.”
파아아앙-!!
그의 전신에서 천마기가 솟구쳤다.
“이 새끼가…….”
명화공은 눈을 똑바로 뜨며 천마를 노려보았다.
푸우욱!
천마는 명화공의 복부에 손을 밀어 넣었다.
“크윽!”
명화공은 멱살을 잡은 손을 놓으면서 천마를 밀어내가 위해 어깨를 내리쳤다.
파아아앙!
강한 타격음이 두 사람 사이에 들렸다.
천마좌의 앞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물러났다.
명화공은 복부에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천마 임조학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보니 사람에 가깝군.”
“크크크, 정말 대단해! 내 몸을 뚫고 들어오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자화자찬을 하는지 모르겠군. 본좌가 아니라 고금제일인에게 걸렸으면 넌 이미 죽었다.”
“…….”
명화공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복부에 상처를 입은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에 죽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천마, 네놈의 입을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내 말이 맞는 모양이군. 당장 화를 내는 것을 보니.”
“…….”
우우우웅-
천마기가 천마의 몸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천마의 힘을 무시하지 마라.”
천마는 양손에 전신의 내력을 끌어모았다.
‘이길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한 번의 출수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했다.
반면 명화공은 대수롭지 않게 천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번쩍!
두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빛이 폭발했다.
천마의 마지막 한 수.
천마재림(天魔再臨).
천마 임조학의 손에서 펼쳐진 천마신공 최후의 초식이 펼쳐졌다.
명화공이 생각지도 못했던 힘이 다가왔다.
“카아아악……!”
명화공은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그의 가슴에는 손바닥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 가…….”
믿기지 않은 시선으로 천마를 보았다.
천마 임조학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지어졌다.
“무시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을 했을 텐데.”
“겨우…… 네놈 따위에게…….”
“웃기는 놈이군. 명부 출신이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봤는가?”
끄으응.
‘팔이 하나 잘렸군.’
하지만 천마 임조학 또한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는 무엇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스윽.
천마는 땅에 떨어진 검을 잡은 뒤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명화공의 앞으로 다가섰다.
“네놈의 목숨값으로 한 팔 정도면 아깝지는 않지. 망할 놈…… 잘 가라.”
“잠깐……!”
천마는 남아 있는 내력을 최대한 끌어내며 명화공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툭.
명화공의 목이 잘렸다.
여전히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젠장…….”
마교로 쳐들어온 명부의 명괴들을 모두 정리했지만, 이십 명의 명괴들이 날뛴 마교의 피해는 멸문에 가까웠다.
“힘들군.”
천마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스윽.
대전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기척이 들렸다.
천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누구냐?”
“천…… 마님…… 이십니까?”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들어오던 그는 화들짝 놀랐다.
후다다닥!
천마의 곁으로 다급하게 사내가 다가왔다.
“뇌군인가? 아직 살아 있었군.”
“천마님…… 몸은 어떠하십니까?”
“보다시피. 별로 좋지는 않군.”
“다행이십니다. 대전으로 오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크크크. 내가 죽은 줄 알았나? 본좌가 누구지?”
“천마이십니다.”
“맞다. 잘 알고 있군.”
뇌군은 그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소신이 부축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한쪽 팔이 없으니 당장 적응하기가 불편하군.”
천마는 그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얼마나 살아남았지?”
“송구하옵니다. 이만 명도 되지 않은 듯합니다.”
“……이만 명 정도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군.”
“천마님…….”
뇌군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천마에게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말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안다. 그놈들이 다시 오기 전에 도망을 가자는 말인가?”
“송구하옵니다.”
“하, 마교를 살리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놈들을 상대하기에 무리가 있을 터. 자네는 그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라.”
“천마님께서는…… 함께 가시지 않습니까?”
“난 억울해서 이대로 갈 수 없다.”
“그러시다면……?”
“싸워야지.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혼자 싸울 수는 없습니다.”
“명부 놈들과 싸울 수 있는 그에게 찾아갈 것이다.”
“고금제일인을 말씀하십니까?”
“그렇다. 신교를 이렇게 만든 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시다면 소인도……!”
“수하들을 이끌 사람은 그대밖에 없지 않으냐? 그곳에 가서 본좌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알겠사옵니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뇌군, 자네는 자꾸 잊고 있군. 본좌가 죽을 것 같으냐? 천마는 불사의 존재다.”
“죄송합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천마 임조학은 수많은 시체를 보며 다짐했다.
‘명부 놈들…… 네놈들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 * *
고촌으로 한 대의 마차와 두 마리의 말이 들어섰다.
마부석에 앉은 인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천을 지나면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진법인가?’
주위에 특이한 기운들이 흐르고 있었다.
“인양아, 어때?”
“주위에 좋은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아요.”
“맞아. 진법이 펼쳐져 있지. 이제는 어딜 가도 되겠어.”
“전부 형님 덕분입니다.”
마차는 석교를 건너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어라…….”
인양은 또 한 번 놀랐다.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커다란 성이 나타났다.
마을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된 극일가의 성이었다.
“우와…….”
인양은 바로 감탄이 나왔다.
“진유 형, 고촌에 성이 바로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후후후. 나도 처음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 마을을 지나자마자 성이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지.”
극일가의 성문은 열려 있었다.
고진유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미리 전해졌는지 십여 명의 인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묵경은 다가오는 일행을 유심히 보았다.
마차를 몰던 인양은 성문 앞을 보다가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돌려 마차 안에 있던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형수님, 묵경 형이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네요.”
“네, 고마워요.”
휘익.
성문에 도착한 고진유와 초정은 먼저 말 위에서 내려섰다.
묵경은 내려선 고진유와 대충 인사했다.
“어, 왔어?”
“너무 건성으로 인사하는 거 아닙니까?”
“아닌데? 그, 뭐냐. 무림맹에 갔던 일은 잘 처리했지?”
“그렇죠.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죠.”
“잠깐, 그녀는?”
“저기…….”
스으으윽.
묵경은 마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았다. 단번에 얼굴이 환해졌다.
“금 소저!”
그의 발걸음은 고진유를 지나 마차에서 내린 금하희의 앞에 다가서 있었다.
고진유는 극일가로 들어선 뒤 가주전으로 바로 움직였다.
가주전에서 숙부인 고묵과 얼마 전에 가주가 된 고도유를 만났다.
세 사람은 나란히 자리에 앉아 그동안 서로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주고받았다.
명부와 관련된 모든 세력들은 정리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명부와의 싸움뿐이었다.
“신무신단을 만들고자 했던 놈들은 결국 명부의 명을 받고 한 짓이었군.”
“숙부님, 그렇습니다.”
“혹시 형님께서 일월가에서 신무신단을 만들고자 한 이유를 사전에 알고 계셨던 게 아니었을까?”
“제 기억으로는 아버지께서는 신무신단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이 없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았기에 말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겠지. 내 생각으로는 분명 어렴풋이 알고 계셨던 것이라 보네. 미래를 내다보셨던 것 같아. 정말로 대단한 분이셨다.”
“…….”
고진유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함께했던 십오 년의 세월 동안 그분을 보면서 과연 사람이 맞는지 생각이 들 만큼 뛰어났다.
“아버지, 진유 아우의 말이 맞다면 명부에서도 신무신단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고도유도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황당하기까지 했다.
명족이 신무신단을 복용 후 세상에 올라올 수 있다면 반대로 자신들도 명부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신무신단의 효능이 사실이라면 이번에야말로 명부를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사실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 본다.”
고묵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신무신단의 중독성과 부작용.
철갑에서 찾은 제조법이 완벽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복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어떠한지 모르는 일이었다.
“신무신단이 가능하다고 해도 몸에 해가 있다면 복용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맞습니다. 확신이 없다면 복용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신무신단을 복용하고 명부에 갈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겠지.”
“철갑에서 완벽하게 제조할 수 있는 제조법을 찾았습니다.”
“완전하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한 말이지 않은가. 정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야.”
“저도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신무신단의 해독제를 만들어내신 신의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분이 계시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신무신단에서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신무신단의 부작용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신의자라고 한다면야…….”
고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도 신무신단의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를 만든 신의자의 소문을 들었다.
“그 문제는 그분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겠군. 그럼 남은 문제는 신무신단의 효능을 어떻게 확인하느냐이군.”
“그건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삼천명부에 가서 확인하면 됩니다.”
“삼천명부…… 그들이 받아줄까?”
“저번에 그곳의 명군이 놀러 오라고 했으니 가도 괜찮을 겁니다.”
“허허허…….”
고묵은 웃음이 나왔다.
삼천명부와 있었던 일을 알긴 하지만, 그렇다고 삼천명부에 놀러 간다고 하니 그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명부에 쳐들어가는 일은 그렇다 치고, 급한 일이 있지 않으냐? 팔천명부에서 상당한 양의 신무신단을 구했다면 조만간 중원으로 나올 텐데. 그들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더냐?”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림맹에 다녀왔던 것입니다.”
“신의자의 일 때문이 아니고?”
“물론 그 일도 중요하지만 중원에 나온 팔천명부를 막기 위해서 찾아간 것도 있습니다.”
“그렇군. 말해보게나.”
“네. 숙부님.”
고진유는 잠시 호흡을 다시 고른 뒤 천지금쇄진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었다.
“아…… 그렇군. 천지금쇄진법이 있었지.”
고묵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극일가에는 일백 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필요한 진법에 능통한 인물이 없었다.
그리고 현 전체에 진법을 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고도유도 놀란 듯 물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진법으로 현 전체를 가두는 것이?”
“제갈문 그분께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진법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현이 아닌 성도 가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른 인원이 필요하다는 조건에서요.”
“역시 진법만큼은 제갈세가를 따라갈 수 없겠어.”
고묵도 중원 무림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가문이 제갈세가였다.
“숙부님, 일단 진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본 가의 기문전에서도 제갈세가에 도움을 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기문전주라면 천지금쇄진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게야. 어떻게 하면 되지?”
“무림맹에 계시는 제갈문 어르신께 가면 됩니다.”
“알겠다. 그들에게 말해서 바로 출발하도록 해놓겠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들이 도와주지 않더냐. 우리도 도울 것은 도와야지 않겠나. 당연한 일이다. 여하튼 잘된 일이구나. 그놈들이 천지금쇄진법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바로 해결할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제갈 어르신께서 움직이면 우리도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세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거의 대화가 끝날 무렵이었다.
가주전으로 전언을 들고 비령 소속의 인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