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천지금쇄진법(天地擒鎖陣法).
진짜였다.
직접 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고진유에게 묻는 목소리가 흥분했는지 떨렸다.
“이것을 어떻게 구했는가?”
“예전부터 본 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하…… 이 귀한 것을 보여줘서 고맙네. 개안을 했다네.”
“마음에 드시니 다행입니다.”
“허허. 이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네. 세상을 가둘 수 있는 진정한 기문진법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었어. 제갈세가의 사람으로 큰 영광이라네.”
제갈문은 진정으로 감동했다.
당장에라도 직접 천지금쇄진법을 펼쳐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할아버님, 이 진법이라면 현 전체에 펼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한가는 중요하지 않느니라. 고금제일인께서 이것을 준 이유는 그놈들을 무조건 가두어 달라는 것이니까.”
“네에…….”
“본 가는 천지금쇄진법으로 무조건 그들을 가두어야 하는 것이네. 여기에 적힌 대로라면 현 전체에 진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진법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최소한 일백 명이 필요한 것 같다.”
제갈문의 머릿속에는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현 전체를 진법으로 펼치기 위해 얼마의 인원이 필요한지, 보는 순간 계산이 끝났다.
“어르신께서는 벌써 답이 나오셨네요.”
“허허허. 이 정도는 기문진법을 공부했다면 쉽게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고금제일인께서 가지고 온 이것이라면 그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충분히 막을 수 있네.”
“송구한 말씀이지만 이번 일은 어르신께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조만간 그들이 움직일 듯합니다.”
“알겠네. 할 일 없이 여기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고맙습니다.”
“노부가 더 고마운 일이라네.”
제갈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세상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생기자 잊고 있었던 생기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군사는 본 가에 연락해서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똘똘한 녀석들로 백 명 정도를 불러들이게. 중원에 나가 있는 모든 세가인까지 포함해서.”
“알겠습니다. 바로 전서를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주도 무림맹에 들어오도록 해라. 만일 내 말을 안 듣는다면 호적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말하게나.”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양은 웃음이 나왔다.
세가에서 제일 움직이기 싫어하는 인물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가주였다.
‘크크, 아버지도 피곤하시겠어.’
제갈세가의 가주부터 중원의 타 문파에서 활동 중인 세가의 인물들까지 모두 불러들이라는 제갈문의 명을 거역할 수 있는 세가인은 없었다.
‘그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면 재미있겠는데.’
이각 뒤 고진유는 제갈양과 함께 태상전을 나왔다.
“앞으로 진법을 펼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음…… 우선은 본 가에서 그분들이 도착해야 하고, 진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짧게나마 공부를 해야겠지. 사실 함부로 펼치기에 간단한 진법이 아니잖아.”
“본 가의 인물도 보내 드리겠어요.”
“그래? 극일가에서 예전에 펼쳤다고 했으니 어떻게 진법이 움직이는지 방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군.”
“그리고 명부의 명괴들이 중원으로 들어온다면 최대한 백성들이 다치지 않도록 피신시키는 데 무림맹이 나서서 도와주었으면 해요.”
“그렇게 하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마.”
제갈양은 대답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넌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잖아.”
“…….”
“아니라고 늘 말을 하면서도 벌써 몸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거든. 아무리 봐도 넌 천상 무림맹의 맹주가 체질인데. 웬만하면 다시 시키고 싶다만 평소엔 너무 놀러 다닐 것 같아서 선뜻 시키지 못하겠어.”
“하하하, 맹주직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무명 형님이 맡으면 잘할 겁니다.”
“그 녀석이라면 당연히 괜찮지. 무공도 강하고 뒤에 든든한 남궁세가가 받치고 있으니. 다만 구대문파에서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구대문파 출신이 맹주가 되었는데 다시 세가 출신으로 바뀌었잖아.”
“괜찮아요. 이번 기회에 무림맹주는 십 년마다 새롭게 선출하는 것으로 하죠. 너무 한 사람이 오랫동안 하다 보면 결국 썩게 마련이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바뀌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고진유는 군사전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먼저 군사전에 들어가세요. 전 약의전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언제 떠날 거지?”
“전주님이 준비가 되는 대로 가야죠. 명부 전체가 나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려면 한시라도 빨리 신무신단을 제조해야 하잖아요. 저들이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기습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들이 여전히 많군. 다녀와.”
고진유는 그와 잠시 헤어진 후 발길을 약의전으로 향했다.
* * *
약의전주 주국은 안으로 들어서는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자신을 이곳에 던져놓고 사라진 인물, 고진유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찾아왔다.
“전주님, 안녕하셨습니까?”
“맹주께서 오셨소이까? 그렇지 않아도 맹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소이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본인이야 늘 한결같지요.”
주국은 앞으로 나온 뒤 자리를 권했다.
“몸에 좋은 차가 있는데 드시겠소이까?”
“전주님께서 몸에 좋다고 하시는 것이라면 얼마든지요.”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분이 너무 몸을 챙기시는 것 같구려.”
“누군가 그러더군요. 몸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고요.”
“허허허, 맞소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주국은 곧바로 차를 준비했다.
찻잔에 따르는 동안 후각을 자극하는 약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까? 약의전에서 사용하다가 남은 재료들을 따로 모아서 아홉 번을 말려 만든 차이지요.”
고진유는 차를 마시며 맛을 음미했다.
좋은 기운이 몸 안으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 좋았다.
“맛은 마실 만한지 모르겠소이다.”
“기운이 불끈 달아오릅니다. 자주 마시고 싶을 정도입니다.”
“허허허.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전주님께서 만드신 해독제가 괜찮다고 이미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를 무림맹에 추천한 이유는 신무신단의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가 만든 해독제가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한 듯했다.
“역시 전주님께서는 천하의 신의이십니다.”
“후후후.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건 맞는 말 같소이다.”
“전주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저번에 보여주었던 완전한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신무신단을 복용한다면 사람들 몸에 다른 문제가 없습니까?”
“음…… 그건 뭐라고 장담을 하지 못할 것 같소. 원래 약이라는 건 완벽한 것은 없는 편이니…….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전주님의 말씀은 완벽한 신무신단이라도 혹시나 모를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다만 이번에 만든 해독제라면 신무신단의 중독에 관한 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바이오.”
그의 대답이 고진유는 마음이 들었다.
비록 자신에게 완벽한 신무신단의 제조서가 있다고 하나 완전히 믿고 복용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해야 했다.
그러기에 더욱더 조심히 접근해야 할 일이었다.
근데 그가 신무신단의 중독성을 고칠 수 있는 해독제를 만들어냈다.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무신단을 복용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맹주께서 신무신단을 복용한다는 것이오?”
“그게 무엇이냐면…….”
고진유는 그들이 신무신단을 만들고자 했던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한참을 듣던 주국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음…… 명부의 명족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세상에 올라올 수 있었구려. 그리고 반대로 지상의 사람도 명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고? 신기한 일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놈들도 이런 사실을 똑바로 알지 못했던 모양이군요.”
“그런 것이지요. 이번 기회에 명부에 가서 확실하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맹주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보오. 근데 맹주는 명부에 가는 게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극일가의 무인들이 명부에 가려면 신무신단이 있어야지 않겠소이까?”
“그렇지 않아도 본 가에서 신무신단을 제조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주국은 뭔가 말을 하고 싶지만 잠시 멈췄다.
다른 건 몰라도 신무신단을 제조한다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게 제가 전주님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
“신무신단의 해독제를 만드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신무신단을 제조하는 데도 전주님께서 함께했으면 합니다. 큰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본인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고맙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하시죠. 전주님께서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날까 합니다.”
“지금 당장 가야 하오? 하긴…… 곤륜파에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하니 급하겠군. 당장에 떠날 준비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급하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군사전에 있을 테니 준비가 끝나시면 사람을 보내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소이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약의전을 나섰다.
* * *
고진유와 인양은 무림맹에서 하루를 보냈다.
무림맹을 떠나기 전 형주에 있던 향천은 극일가로 모두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향천의 무인들이 극일가에 가더라도 그곳은 충분히 넓은 곳이었다.
‘이젠 극일가의 세력들을 하나로 뭉쳐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극일가가 아닌 중원무림신가의 이름으로 나설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극일가의 가주는 얼마 전에 결정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고진유의 뜻에 의해 극일가의 가주직은 고도유가 맡기로 했다.
“본인이 조금 늦은 것 같구려.”
정문으로 주국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두 사람과 달리 무림인이 아니기에 고촌까지 걸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고진유는 그를 위해 마차를 준비했다.
“올라타시지요. 튼튼한 놈으로 골랐습니다.”
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은 보기에도 단단하게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중원으로 나간다고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지는구려.”
“고촌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소. 고금제일인과 함께하는 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주국은 고진유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휘익!
인양은 문을 닫은 후 마부 옆으로 올라섰다.
“출발하죠.”
“네, 알겠습니다.”
* * *
고촌은 호북의 청강에 위치했다.
정주에서도 가까운 곳.
인양은 극일가에 가는 게 기대가 되었다.
마차가 하남을 지나 호북으로 들어설 때였다.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기척이 들렸다.
‘누구지?’
인양은 잠시 마차를 멈추게 했다.
“형, 우리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인가 봐.”
“알았다.”
두두두두-
마차를 향해 달려오는 두 마리의 기마.
인양은 곧 말 위에 타고 있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형…… 천검봉 형수님이신데요? 그리고 초정 형님입니다.”
끼익-
고진유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히이이잉!
마차 앞에 도착한 초정과 금하희가 말 아래로 내려섰다.
고진유가 그들을 먼저 반겼다.
“두 분이 무슨 일이십니까?”
“진유 아우를 만나고자 왔네.”
“저를요? 혹시 천검궁에 다급한 일이 생겼습니까?”
고진유는 하오신문에 의해 무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천검궁에 관한 일은 보고를 받은 게 없었다.
“그게 아니라…… 향천으로 가던 도중 아우가 무림맹을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그래서 만나기 위해 다급히 온 것이지.”
“아, 그렇군요. 향천에는 무슨 일 때문에 찾아가려던 중이었습니까?”
“나도 그놈들과 싸우도록 해주게. 아버지의 원수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고진유는 그와 금하희를 보았다.
무신은 일월가의 나상녹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의 입장에서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당연히 무신님의 원수를 갚아야지 않겠습니까.”
“이해를 해줘서 고맙다.”
“천검봉 형수께서도 함께 오셨네요.”
“저도 미천한 힘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같이 싸우도록 하겠어요.”
“후후후, 형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대환영이죠. 묵경 형이 기운이 펄펄 나시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계속 보고 싶다고 중얼거렸는데.”
“…….”
고진유의 말에 인양도 덩달아 말을 이었다.
“형수님, 맞습니다. 묵경 형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형수님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정말인가요?”
“나중에 화산파의 사형들에게 물어보시면 압니다.”
“…….”
그녀는 얼굴을 돌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초정은 마차를 보았다.
고진유가 마차를 타고 무림맹을 나섰다는 말만 듣고 뒤를 쫓았을 뿐이었다.
이제야 두 사람이 마차를 탄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 왜 마차를 타고 있었지?”
“안에 주국 전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신의자께서?”
“그렇습니다. 본 가에 그분도 같이 가는 중입니다.”
“본 가라면…… 극일가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고촌으로 가는 길입니다. 향천도 형주를 떠나 본 가로 떠났을 것입니다.”
“아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네. 향천은 형주에 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거든.”
스윽.
그때, 주국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두 분은 천검궁의 초정 형님과 금하희 누님입니다.”
“반갑네. 주국이라 하네.”
“신의자님을 뵙습니다. 훌륭하신 분이시라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허. 소문일 뿐이라네. 은하신무와 천검봉에 비하면 노부는 아무것도 아닐세.”
“아닙니다. 신의자님의 명성에 비하면 저희가 아무것도 아니지요.”
초정의 말처럼 주국의 명성은 중원에서 신의자라고 할 만큼 뛰어났다.
“전주님, 두 분도 본 가에 함께 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요. 원래 여행은 동행자가 많으면 재미있는 법이지.”
초정과 금하희가 합류한 그들 일행은 다시 극일가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