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77화 (377/425)

377화

후다다닥!

도의가 휘날리며 달렸다.

중년 도사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장문인님!”

그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면서 곤륜파 장문인 선룡자를 불렀다.

“어허, 연명.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급하게 들어오는가?”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밖에 괴인들이……!”

연명 도사는 너무나 다급한 듯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똑바로 말을 해보게. 밖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는가?”

“괴인들이 몰려왔습니다!”

“괴인들? 그놈들이 누구란 말이더냐? 혹시 마교에서 쳐들어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괴인들입니다!”

선룡자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연명도사와 함께 장문전을 빠르게 나섰다.

파앗!

그는 운룡신법을 펼치며 제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아래로 내려선 그가 곤륜파의 제자들과 싸우는 괴인들을 노려보았다.

덜덜.

‘대체…… 저놈들은 누구지?’

그는 몸이 떨렸다.

괴인들을 곤륜파 도사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을 만들고 있었다.

피가 솟구치고 팔다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곤륜파 도사들의 비명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혹시 저놈들이……!’

선룡자는 괴인들을 보면서 퍼뜩 떠올렸다.

‘고금제일인이 말했던 명부에 사는 명족이란 말인가?’

명부와 명족.

극일천무신궁은 물론 일월가의 존재는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명부와 명족은 더욱더 믿기에 어려운 사실이었다.

명부라 하면 귀신들이나 사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런 곳에 괴인이 산다는 건 믿을 수 없거니와 믿지도 않았다.

곤륜파뿐만 아니라 중원인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게 사실이었다.

“아악!”

제자들의 비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명괴들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던 곤륜파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러나는 속도보다 명귀들의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노오오오옴!!”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선룡자는 내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명귀들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용형보법을 펼치는 선룡자는 구름 사이를 휘날리는 용의 모습처럼 보였다.

슈우우우욱-

그는 태청용형검을 뽑으며 명귀를 향해 다가섰다.

“괴물들아, 죽어라!”

곤륜의 정기를 담은 채 뻗은 선룡자의 일검이 명귀의 허리를 그대로 베고자 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젠…… 장…….”

명귀는 내력을 쏟아낸 검을 한 손으로 잡았다.

“크큭…… 장문인이라는 놈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실력을 가졌다면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겠군.”

“괴물 같은 놈이…….”

선룡자는 치를 떨었다.

뚜욱.

명귀의 손에 잡힌 검이 너무 쉽게 부러졌다.

“크크크.”

스팟!

명귀는 손에 쥔 부러진 검날을 빠르게 선룡자의 앞으로 그었다.

“헉!”

짧은 비명과 함께 선룡자의 눈앞을 지나갔다.

선룡자는 몸에 힘이 빠지며 휘청거렸다.

‘어, 어…… 여기는……?’

정신을 차리고자 했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쑥.

그의 눈앞에 명화공이 내려섰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그가 괴소를 지었다.

“키키키…… 오늘 곤륜파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

쑤우우욱.

명화공의 손끝이 심장을 향해 들어왔다.

“아아아아악!!”

선룡자는 비명을 지르며 입에 거품을 물면서 목숨이 끊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일방적인 학살로 돌아섰다.

곤륜파 장문인의 죽음과 함께, 생명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명화공과 함께 올라온 명귀들이 곤륜파에 올라온 지 반시진도 되지 않아 모든 게 끝이 났다.

“크크크크…… 곤륜파라고 해서 기대했건만.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너무 실망이군.”

곤륜파는 중원 정파의 구대문파였다.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은 채 끝이 났다.

푹. 푹. 푹.

명귀들도 같은 심정인지 시체를 향해 재차 손을 뻗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생명들을 더 죽이고 싶었다.

“음…… 이 길로 곤륜산 일대에 나가서 한 번 놀아볼까?”

명화공의 시선은 이미 곤륜산 아래 마을을 향해 있었다.

“시체에 그만들 하고, 산을 내려간다.”

“키키키키, 좋소이다. 얼마든지 놀 장소만 있다면 어딘들 상관없소이다.”

“좋아. 마을 서너 군데만 입가심으로 놀다가 와야겠군.”

곤륜파에서 할 일은 끝이 났다.

“큭큭, 여기는 어떻게 하오리까?”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누군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가자.”

휘이이익!

명화공은 앞으로 나서며 신법을 펼쳤다. 그 뒤를 이어 아홉 명의 명귀도 바로 따라 움직였다.

* * *

형산표국에서 헤어진 고진유와 인양은 하남성으로 곧장 올라갔다.

신법을 펼치며 빠르게 움직인 덕에 하남성에 들어오기까지 이틀밖에 걸리는 않았다.

남양에 들어선 고진유는 객잔에서 쉬고 가야 할지, 아니면 바로 정주로 향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휘익!

그때, 갑자기 고진유의 앞으로 인영이 내려섰다.

전비령은 고개를 숙였다.

“은룡투인님을 뵙습니다.”

“또 오셨군요. 이번에도 직접 찾아오신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팔천명부에서 명귀들이 세상에 올라왔습니다.”

“…….”

고진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 큰일이었다.

“팔천명부 전체가요?”

“아직은 열 명의 명괴입니다. 아마 신무신단의 효능에 대해 실험을 하는 듯합니다.”

“올라왔다면…… 무슨 사고를 쳤습니까?”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곤륜파가 그들에 의해 멸문을 당했습니다.”

“……열 명의 명귀들에게 모두 죽었단 말이군요. 곤륜파의 인물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까?”

“곤륜파에 있던 인물들은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히 외부에 나가 있던 도사들이 발견했습니다.”

“…….”

고진유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명귀의 존재에 대해 알았기에 열 명의 명귀를 상대로 곤륜파가 무너졌다는 게 거짓이 아님을 잘 알았다.

“계속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봐 주세요. 그들이 나온 이상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휘이익!

전비령의 신형은 두 사람 앞에서 사라졌다.

곤륜파가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었다는 말에 인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형…… 명괴란 괴물들이 무림으로 퍼져 나간다면 정말로 생각만 해도 끔찍해질 거예요.”

“곤륜파가 너무 쉽게 무너졌어. 예상은 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그들이 강한 것 같군. 명부의 명족들을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는데. 어려워지고 있어.”

“아…….”

“저들이 나돌아 다닌다면 당분간 세상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

“어떻게 해요?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얼른 팔천명부에 가서 그들을 막아야 하잖아요.”

“늦었어. 우리가 그곳에 가는 사이에 팔천명부가 중원에 나왔을 게 확실해.”

“그럼……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 근처의 사람들은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없나요?”

“그들로서는…… 일단 명괴들이 세상에 나타났다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도망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결국 우리가 명부를 치기 위해서는 그곳에 쳐들어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말이네요.”

“맞아.”

“…….”

인양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팔천명부에서 이미 밖으로 나왔다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막아야만 했다.

다만 그들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형, 팔천명부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들이 중원에 들어오기 전에 막아야 하는데…… 곤륜파가 무너졌다면 그다음은 사천으로 넘어오지 않을까요?”

“지금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이들이 우리의 뜻대로 사천성으로 움직여 준다면 좋겠지만 다르게 방향을 돌릴 수도 있어.”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들 외에 중원에서 또 다른 명부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되겠어?”

“사천으로…… 무작정 가면 안 되겠군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

“명부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가 움직인다면 오히려 이용만 당하는 거야. 나도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고 있는 게 힘들어. 하지만 오래전에도 본 가의 선조들께서는 때를 기다렸어.”

원시무림 시절 두 번의 결전.

극일가는 세상에 올라온 명부를 상대하기 위해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두 번의 기다림 끝에 명부와의 싸움에서 모두 이겼다.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다려야 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지금처럼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렇네요.”

인양은 풀이 죽었다.

강한 힘을 가져도 모든 사람들을 구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스윽.

고진유는 인양의 어깨를 감쌌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올라온 이상 희생은 나올 수밖에 없어. 나중에 네가 어떤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 된다면 한 가지만 보고 움직일 수 없다는 알게 될 거야.”

“네. 알겠어요.”

“어쩔 수 없군. 쉬고 갈 수는 없겠어. 힘들더라도 빨리 무림맹에 가야겠군. 빨리 가볼까?”

휘이이익!

고진유와 함께 인양은 신법을 펼치며 사라졌다.

* * *

중원의 소문은 빨랐다.

곤륜파 멸문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번지는 중이었다.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이미 사천성을 넘어 중원으로 흘러 들어갔다.

잠시 떠나 있었던 곤륜파 도사들이 복귀를 했다.

그들은 악몽이라고 할 만큼 처참한 광경을 보았다.

사방에 쓰러진 수많은 동문들의 시체에서 흐르는 혈향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경내에는 한 명도 살아남은 동문 형제들이 없었다.

장문인 선룡자까지 차가운 시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에는 사람의 짓이라고 할 수 없는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곤륜산 인근의 마을 또한 그와 같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섯 곳의 마을에서도 똑같은 혈사가 일어난 뒤 동귀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행히 다섯 곳의 마을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검은색 피부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괴인이라 했다.

이내 중원인들은 괴인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알아냈다.

-괴인의 정체는 고금제일인께서 말씀하신 명부의 명족들이다.

-정말로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는 거야?

곤륜파조차 멸문시킨 괴인의 존재에 대해 중원인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고진유와 인양은 쉬지 않고 신법을 펼쳤다.

정주에 도착한 건 하남성에 들어선 뒤 하루가 지난 뒤였다.

곧장 무림맹으로 향했다.

정문위사 상강묵은 요즘 들어 심심했다.

무림맹주였던 고금제일인 고진유가 떠난 이상 삶에 무엇인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하아아앙…… 어…… 어…….”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두 명의 청년.

상강묵은 흐트러졌던 몸을 바로 하며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것들이 똑바로 정신 차리지 못해! 고금제일인께서 무림맹으로 오신다!”

후다다다닥!

십여 명의 정문 위사들이 언제 흐리머덩했냐는 듯 정문 앞으로 달려 나왔다.

상강묵은 앞에 다가선 고진유를 향해 큰 소리로 인사했다.

“고금제일인을 뵙습니다.”

“상 위사,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소이까?”

“넵.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허리를 다시 숙이며 인양을 향해서도 인사를 했다.

“천무인 인양 님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진유는 그를 보며 물었다.

“무림맹은 어떠한가요?”

“요즘…… 조용한 편입니다.”

“그렇군요. 군사께서는 안에 계시지요?”

“군사전에 계실 것입니다.”

“우린 들어가 보겠어요. 수고하세요.”

고진유와 인양은 한 번 더 그와 시선을 마주친 뒤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경내를 걸으면서 군사전으로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곧장 무림맹 전체에 소문이 퍼졌다.

-고금제일인과 천무인 인양께서 오셨다.

고진유와 인양은 군사전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군사전의 호위군장으로 보직을 바꾼 독전호가 다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도착하기 전에 무림맹 정문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았다.

“맹주님!”

“독 군장께서는 아직도 본도를 맹주라고 부르는군요.”

“소신에게는 영원한 맹주님이십니다.”

“고맙군요.”

“맹주님을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본도도 오랜만에 여러분들을 보니 좋네요.”

독전호는 그와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온 인양과도 눈인사를 인사했다.

“맹주님. 소신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부탁하겠어요.”

그는 앞장을 서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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