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76화 (376/425)

376화

철렁.

오종혁은 가슴이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빛이야.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해.’

그가 아직 묻지는 않았지만, 묻기 전에 얼른 대답해야 순간임을 직감했다.

“근데…… 제가 그것 중에서 서너 개를 몰래 빼놓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단지…… 궁금해서…….”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데 한두 개 없어진다고 해서 표시가 나겠습니까. 아, 혹시 복용은 했습니까?”

“그냥…… 빼놓기만 했을 뿐입니다.”

“다행이군요. 복용했다면 중독이 되었을 겁니다. 몸에 좋지 않은 물건이니 버리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형산파에서 맡긴 그 물건들을 표국에서는 어디까지 표행을 하려던 것이었나요?”

“곤륜산입니다…….”

“그렇군요.”

고진유는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했다.

곤륜산이라면…….

무혼신녀가 바로 물었다.

“국주, 곤륜파를 말하는 것이냐?”

“소인도 물건을 인도받는 곳이 곤륜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도착지는 곤륜산 아랫마을에 있는 곤륜상단입니다.”

“곤륜상단이라? 혹시 그동안 표국을 통해 표행을 나간 게 어느 정도이지?”

“지금까지 총 두 번의 표행을 마쳤습니다.”

“양은?”

“한 번씩 갈 때마다 불에 탄 양…… 만큼…… 갔습니다.”

“상당한 양이겠군.”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두 번의 표행으로 명부에 전해진 양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명족들이 나올 수 있을지 몰랐다.

그녀는 고진유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지?”

“곤륜에 있는 명부라면 팔천명부가 있는 곳입니다.”

“일월가를 뒤에서 조종했다는 명부이군.”

“그렇습니다. 신무신단을 맡은 곳이 팔천명부라고 하더군요.”

“음…….”

“두 번의 표행으로 얻은 양이라면 팔천명부의 명족들에게는 충분할 겁니다.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네요. 아니면 이번의 신무신단까지 확보한 뒤 나올 생각이었든지.”

“이제부터 정말 피곤하겠군.”

팔천명부의 명족들이 나온다면 시끄러울 게 확실했다.

“이젠 어쩔 수 없어요. 당장 그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들을 상대하려면 극일가가 나서야 하나?”

“그렇다고 봐야죠. 우리는 물론 명족과 싸울 수 있는 모든 전력이 나서야 합니다. 동시에 터져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고진유는 대답을 하면서도 고민에 잠겼다.

두근두근.

표국주 오종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점점 가슴이 떨려 죽을 것만 같았다.

형산표국에서 표행을 한 물건들이 세상의 종말을 위해 사용될 줄은 몰랐다.

“죄송합니다. 저희 표국 때문에 세상이 어렵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형산표국의 잘못은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또한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요. 어차피 형산 표국이 아니라도 어차피 누군가는 했을 것이지요. 좋은 정보를 주어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을 고금제일인께 알려 드릴 수 있었으니 큰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오종혁은 다행히 신무신단에 대해 더는 책임을 묻지 않는 그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그때, 문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주님, 차를 준비했습니다.”

“어…… 어서 오너라.”

그는 대답하면서 차를 받기 위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진유는 일행과 형산표국에서 하루를 보낸 뒤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미류정에 모인 그들은 심각하게 서로를 보았다.

명부에서 신무신단을 얻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고진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벌써 두 번이나 명부에 넘어갔다.

“그들이 신무신단을 얻었어요.”

“곤륜상단에 가야 하지 않을까?”

“멀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명부에 들어갔을 겁니다.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결국 중원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팔천명부가 세상에 나온다면 피할 수도 없는 전쟁이 시작될 것이었다.

“조만간 중원에 나올 것입니다.”

“어차피 싸우고자 한 게 아니었어? 어디서 싸우더라도 이기면 되는 게 아니냐?”

“누님, 물론 싸우는 건 맞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이기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되는 점은 그들이 우리만을 상대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차라리 무림인이라면 무림 상대로만 싸울 테지만, 그들은 앞에 보이는 것이라면 모두 죽이는 명귀들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다친다는 것이죠.”

“…….”

“그놈들은 상대가 무인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않습니다.”

“휴우…… 그래서 명부로 먼저 치고 들어가자는 것이었군.”

명부에 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에게도 신무신단이 필요했다.

“언종을 극일가에 보낸 이유가 신무신단을 만드는 것 때문인가?”

“네, 맞습니다. 물론 그가 없어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부족하니, 최대한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익숙한 인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나도 그럴 거라 생각은 했다. 뭐라도 한 번 해본 놈이 더 잘하겠지.”

이제 향천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한 곳 더 들를 곳이 있었다.

“형은 누님과 녹검 씨와 함께 먼저 향천에 돌아가 주세요.”

“우리 셋만?”

“네. 전 인양과 무림맹에 들렀다가 주 의원을 모시고 극일가로 바로 갈게요.”

“약의전주와 함께 극일가에?”

“네. 그분이라면 신무신단의 제조법에 대해 좋은 의견을 주실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갈 형님과도 앞으로 명부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우린 먼저 돌아가도록 하지.”

“향천에 돌아가거든 미유 누님에게 이야기해서 전원 모두 극일가로 가시면 됩니다.”

“극일가로 우리도?”

“명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힘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극일가가 중원으로 나올 때였다.

‘누가 죽든 이제는 끝을 낼 시간이지.’

명족과 극일가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나, 이제 시작이었다.

* * *

우우우우우-

어두운 천장 끝까지 올라선 기둥 위에서 공간이 진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휘리리리릭!

기둥 위에 놓인 흑좌에 앉아 있는 사내.

흑색의 전신 아래로 흑발이 휘날렸다.

팔천명부의 수장.

팔천명군은 앉은 자리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수만의 명귀들이 광장에 무릎을 꿇은 채 부복하고 있었다.

“재미있겠어. 정말 흥미로운 날이 기다려지는군.”

그의 목소리는 죽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인가?”

팔천명군의 손에는 신무신단이 놓여 있었다.

“완전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하군.”

신무신단을 복용하여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명부에서 낼 수 있던 힘을 완벽하게 사용할 순 없겠지만, 팔 할 정도라면 충분히 만족했다.

팔천명부의 수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신무신단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제 형산파는 무기한 봉문에 들어갔고, 신무신단을 더는 만들 수 없게 됐다.

‘차라리 잘됐다. 굳이 명부 전체가 나올 필요는 없지. 우리도 놀기에 바쁜데.’

팔천명군은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세상에서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극일가밖에 없었다.

팔천명군은 만일을 위해 우선 남은 신무신단을 오직 육천명부에게만 나눠주었다.

조만간 육천명군에서도 나온다면 두 명부를 맞이한 극일가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세상의 시간으로 한 달.

복용한 신무신단이 몸에 완전히 퍼져 나가는 기간이었다.

한 달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이었다.

‘은룡투인. 이제는 다를 것이다. 예전에 당한 것은 우리의 모든 힘을 완벽하게 펼치지 못한 것이었으니.’

팔천명군은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명화공.”

그는 여전히 흑좌에 앉은 채 가볍게 이름을 불렀다.

슈우우우욱-

부복한 명귀들 사이에서 솟구친 인영이 그의 흑좌 아래로 내려섰다.

“부르셨사옵니까?”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는가?”

“신무신단을 복용한 실험자들이 세상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사옵니다. 이번에 가져온 신무신단은 전혀 몸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신무신단을 복용한 아홉 명의 명귀들을 일단 외부로 올려 보냈다.

팔천명군 소속의 명귀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하고도 몸에 무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이상이 없다고 하니 올라가도 괜찮겠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명군님께서 분부만 내려주신다면 당장에라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크크크. 명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물어봤을 뿐이거늘 잘못 알고 있군. 다시 묻겠다. 자네 생각으로는 올라가도 되겠는가?”

“…….”

명화공은 부복한 채로 고개를 바닥에 숙였다.

“소신은 그저 명군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하는 수 없군. 내 명을 따르겠다고 하니, 곤륜파를 없애는 데 몇 명만 있으면 되겠는가?”

“명을 내리신다면 저 혼자서도 가능합니다.”

“크하하하! 됐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송구하옵니다.”

“적당하게 올라간 명귀들을 데리고 가서 곤륜파에 던져놓고 지켜보도록 해. 중원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볼 수 있게 말이다.”

“넵. 명군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지금 바로 실시하게.”

쿵.

그는 다시 머리로 바닥을 내리치며 대답했다.

* * *

곤륜파.

중원 무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문의 문파이지만 당당히 구대문파에 속한 무림문파였다.

수백 년 동안 곤륜파의 역할은 마교이 침입을 가장 먼저 저지하는 것이었다.

마교의 입장에서 곤륜파는 늘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곤륜파를 치고 싶어도 함부로 곤륜산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중원무림 문파 중에서도 곤륜파의 본진 건물은 가장 험하며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으니까.

곤륜파로 가는 길은 좁고 깊은 천애 절벽을 지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번에 수많은 마교도들이 쳐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곤륜파였다.

마교의 힘이 강해도 곤륜파를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였다.

휘익!

곤륜산을 오르는 움직임.

그들의 생김새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달랐다.

붉은 눈동자에 짙은 피부색을 가진 열 명의 괴인들이 험한 절벽의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렸다.

선두에서 선 괴인, 명화공은 곤륜산을 오르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천혜의 요새인 것은 맞군.’

다수의 인원이 쳐들어오기에는 불가였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지.”

아홉 명의 명괴와 함께 곤륜파를 멸문시키기 위해 올라왔다.

적당하게 데리고 가라는 팔천명군의 말을 어길 수는 없었다.

명화공의 생각하기에 가장 많이 데리고 온 인원이었다.

“네놈들은 곤륜파에 들어가는 순간 마음대로 해라.”

“크크크, 알겠소이다.”

명귀들은 붉은 눈동자가 빛을 뿌렸다.

명부에서 올라온 아홉 명의 명귀들.

신무신단을 복용한 그들은 세상에 나와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명화공, 우린 너무 기분이 좋소이다. 항상 세상의 하늘은 어떤지 생각했었소.”

“어떤가?”

“크크크, 푸른색이라는 게 이런 것인지 몰랐소이다. 하지만 어차피 사는 건 똑같지 않겠소이까! 죽이고 죽이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맞다. 명부나 세상이나 똑같지.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신나게 가지고 놀 것이 많이 있지.”

“맞소이다. 우선 저놈들부터 가지고 놀면 되겠군요.”

“마음대로 해라.”

명귀들의 붉은 시선은 멀리 눈에 곤륜궁의 지붕에 고정되어 있었다.

타앗!

거대한 석기둥으로 된 곤륜대정문이 나타났다.

스으윽.

열 명의 명귀들 앞으로 곤륜파 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파앗!

명귀의 손이 움직였다.

“커억!”

도사는 배를 뚫은 명괴의 손을 보았다.

언제 다가와서 출수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명괴는 뜨거운 피를 느끼며 괴소를 터뜨렸다.

“크크크크…….”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그는 손에 묻은 붉은색 피를 입에 가져갔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서 느껴보는 뜨거운 피 맛이었다.

“크크크크…….”

명괴는 괴소를 흘리며 앞에 나타난 도사들의 무리를 보았다.

타아아앗!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그대로 날아오른 아홉 명의 명괴들이 곤륜파 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들이다!!”

곤륜파 도사들은 검을 꺼내기도 전에 앞에 나타난 명괴에게 잡혔다.

파아악!

명괴 중 한 명은 그대로 달려들어 곤륜파 도사의 목을 물었다.

“아아아악!”

“괴…… 물…….”

도사들의 비명이 곤륜대정문 앞에 처절하게 울렸다.

“죽어라……!!”

도사들은 달려드는 명괴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까아아앙!

검이 튕겨 나가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금…… 강불괴…….”

그들은 명괴들을 보면서 믿을 수 없었다.

푸우욱.

검을 내리친 도사의 복부에 명괴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크크크크. 너무 많이 데리고 왔군.”

굳이 아홉 명까지도 필요 없을 듯했다.

반각도 지나기 전에 삼십 명의 곤륜파 도사들이 잔인하게 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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