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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75화 (375/425)

375화

형산표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둠을 강제로 깨우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불이야!! 창고에 불이 났다!!”

“어서 뭣들 하느냐? 빨리 나와서 불을 끄지 않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고를 향해 몰려 나왔다.

저장 창고 중 가장 안쪽에 있는 붉은 창고가 불에 타고 있었다.

‘이런, 하필이면……!’

창고장인 황철은 당황한 표정으로 화염이 솟구친 창고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표국의 인물들이 불을 끄기 위해 대형 저수통을 끌고 창고로 향했다.

투우욱.

그때, 저수통의 바퀴가 갑자기 빠지면서 한쪽으로 무너졌다.

표국에는 열 대의 저수통이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창고로 오는 저수통 전부 도중에 넘어지면서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놈들아!! 똑바로 하지 못할까?!”

황철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저수통이 더는 없었다.

창고의 지붕을 넘고 솟아오른 화염의 불꽃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콰아앙!

중년 사내가 침실의 문을 강하게 젖히며 나왔다.

“뭣이! 형산파에서 보낸 물건을 보관 중인 창고가 불에 타고 있다고?”

“그, 그렇습니다!”

“허어……!”

표국주 오종혁은 어이가 없어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 개의 창고 중 가장 단단하게 지었으며 외부에서 일어난 화재에도 안전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을 게 확실했다.

옷을 똑바로 걸쳐 입을 시간도 없었다. 그는 무작정 창고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이럴 수가……!”

창고로 가는 길, 표국은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을 보면서 가슴은 점점 무너져 내렸다.

창고 앞에는 표국의 인물들이 모여 구경하는 듯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한 명이라도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오종혁은 그들은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더냐? 어서 저수통을 가지고 와서 불을 끄지 못할까!”

그는 노기가 솟아오르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모두 쳐다보기만 할 뿐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구, 국주님…….”

표국주 오종혁의 옆으로 허리를 숙인 채 사내가 다가왔다.

“불을 끄고 싶어도 저수통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뭣이?”

“심지어 개인적으로 물통에 물을 떠 오기만 해도 물통이 부서져서…….”

오종혁은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사내의 말처럼 주위로 부서진 물통과 저수통이 널려 있었다.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어떻게 된 것이냐?!”

“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휙휙!

오종혁은 주위를 빠르게 돌아보았다.

이건 일부러 한 짓이다.

불을 지른 자가 끄지 못하도록 수작질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

창고의 불은 반시진이 지나서야 겨우 약해지기 시작했다.

‘망했어. 형산파에서 맡긴 물건을 모조리 태워 버렸어.’

그는 앞날이 깜깜했다.

형산파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변명도 생각나지 않았다.

쿠우우웅.

불이 사그라질 때쯤 창고가 무너져 내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오종혁은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뒤로 돌아섰다.

국주실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정신이 없었다.

드륵.

문을 열고 힘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헉…….’

그는 순간 흠칫거리며 몸이 경직됐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방에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설마…….’

그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창고를 불태운 자들이다.’

표국주 오종혁도 무공을 익힌 표두로서 중원을 누빈 적이 있었다.

사내들의 신형에서 흐르는 무형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기운이라니…….’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들의 내기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누구…… 십니까?”

“내 이름은 인양이고 이분은 녹림야검 형님이오.”

“처, 천무십이인……!!”

중원 무림에 이들보다 유명한 무인들이 있을까.

두 사람을 보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허리가 숙여졌다.

“소인이 무림의 고인을 뵙습니다. 표국주 오종혁이라 합니다.”

“오 국주이시군요. 반갑소이다.”

인양도 포권을 받아 가볍게 인사했다.

“아 참, 창고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역시 이분들이…….’

“나중에 그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하겠소이다.”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요.”

“…….”

인양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강압적으로 바뀌었다.

“국주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이다. 거짓 없이 사실대로 말을 해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마, 말씀하십시오.”

“우선 국주께 물어보기 전에 먼저 해줄 말이 있소이다. 형산파는 조만간 봉문에 들어갈 것이외다.”

“예에? 그게 무슨……?”

“소문은 나중에 들으면 될 테니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되오.”

“아, 알겠습니다.”

오종혁은 긴장한 듯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불에 탄 물건이 형산파에서 내려온 물건이 맞소이까?”

“마, 맞습니다. 형산파에서 표행을 위해 맡긴 물건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다른 곳에도 몰래 두지는 않았소이까? 어차피 표국을 조사할 것이니 굳이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아닙니다. 형산파에서 맡긴 물건은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전부입니다.”

“그럼 국주의 말을 믿겠소이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일단 대답을 잘해줘서 마음에 드는군요. 다시 묻겠습니다. 그들이 맡긴 물건에 대해서 확인한 적이 있소?”

“…….”

오종혁은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인양은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렇군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열어보았다는 것이군요.”

스으윽.

녹림야검의 살기가 그의 전신을 압박했다.

털썩.

‘허억…….’

오종혁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그는 녹림야검의 살기에 온몸에 땀이 비가 오듯 흘렀다.

“내가 분명히 똑바로 이야기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소이다. 지금부터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지가 하나씩 잘려 나갈 것이니 우리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알겠…… 습니다.”

오종혁은 목소리가 떨리며 겨우 대답을 했다.

“다시 묻겠소이다. 안에 무엇이 있던가요?”

“화…… 환단이었습니다.”

“그것을 봤다면 서너 개 정도는 빼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아, 아닙니다!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환단인 것만 알고 닫아놓았습니다.”

인양은 그의 눈을 뚫어지도록 보았다.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

“좋소이다. 그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천만다행이군요. 아마 국주께서도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신무신단이라고 하는데, 내공을 올려주지만 강한 중독성에 의해 계속해서 복용하지 않으면 온몸의 모든 혈관이 터져 죽게 되지요.”

“…….”

오종혁의 이마에서는 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이것은 파멸의 물건이외다. 멸문을 당했던 극일천무신궁의 간자이며 형산파 장문인이 만들다가 고금제일인께 들켜 죽음을 당했소이다.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지요.”

“허억…… 소인은 그 물건이 신무신단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표행을 한다고 하기에 모아 놓았을 뿐입니다…….”

“알겠소이다. 조만간 진유 형님이 여기에 올 것이니 그때까지 귀찮더라도 지내도 되겠소이까?”

“고, 고금제일인께서…… 오신다는 것입니까?”

“그렇소.”

“아하…… 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분이 온 뒤 표국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릴 테니 그렇게 아시오.”

고진유가 온다는 말에 그는 더욱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 * *

고진유는 형산을 내려온 후 묵경과 무혼신녀와 함께 곧바로 형양으로 향했다.

마을 초입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나누는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형산표국에서 거대한 화재가 일어났다고 했다.

무혼신녀는 누가 한 일인지 단번에 알았다.

“인양이 제대로 일을 처리한 모양인데?”

“그런 모양입니다.”

묵경도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가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그 녀석도 누구를 닮았는지 일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지.”

“형이 말한 누군가는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가요?”

“아마 그럴걸?”

“제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일 겁니다.”

“하하하! 그래!”

묵경은 웃음을 터뜨렸다.

마을에 들어선 세 사람은 중앙을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일각 정도 지나자 형산표국의 깃발이 보였다.

형산표국의 정문은 닫혀 있었다.

평소라면 표국 앞으로 수많은 장사꾼들의 왕래가 많아야 했다.

하지만 화재 사건 때문인지 적막했다.

“화재 때문인가?”

“들어가 보죠.”

묵경은 앞장을 서며 형산표국의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위사는 앞으로 나선 묵경을 먼저 마주쳤다.

‘허…… 억.’

정문 위사는 순간 숨이 막혔다.

앞에 다가선 그가 올 때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바로 앞에 다가선 그를 보자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해일과 같은 무형기가 압박했다.

위사는 그도 모르게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 떻게…….”

위사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왔소.”

“……!”

위사는 어느덧 사내의 뒤로 다가온 두 명의 인물을 보았다.

젊은 사내와 여인.

“어,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사는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

표국주의 명에 의하면 며칠 내에 고금제일인이 도착할 것이라 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소이까?”

다가온 청년, 아니, 고금제일인이 물었다.

“네에…… 소인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위사는 재빨리 표국의 문을 열었다.

후다다닥!

표국주 오종혁은 밖으로 나왔다.

정문에서 달려온 위사의 보고를 받았다.

국주실로 다가오는 삼인.

그중 젊은 사내를 보았다.

‘저…… 분이시다.’

나이와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그는 중원 무림에서 나이를 초월했다.

“고금제일인님을 뵙습니다. 형산표국의 맡은 오종혁이라 합니다.”

“반갑소이다. 고진유라 하오. 그리고 뒤에 오신 분들은 묵경 형과 고진하 누님이시오.”

이들 또한 천무십이인이었다.

“무림의 영웅이신 천무십이인님을 뵙습니다.”

“반갑소이다.”

“반갑네.”

묵경과 무혼신녀는 간단히 인사를 받았다.

“형, 왔어요?”

국주실로 들어서는 인양과 녹림야검이었다.

“두 사람, 수고했어.”

“별로 한 것도 없어요.”

인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고진유는 시선을 다시 돌렸다.

“국주님,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네에……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오종혁은 얼른 고진유와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거실로 자리를 안내한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저어…… 차라도…….”

“주신다면 좋지요.”

“아.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수하의 곁으로 빠르게 간 후 목소리를 낮추며 차를 준비시켰다.

고진유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국주께서도 앉으시지요.”

“……아. 네에.”

오종혁은 자리에 앉으면서 마음이 진정되었다.

미소를 띤 얼굴에 그가 내뿜는 기운은 부드러웠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본인이 표국에 온 이유를 알고 계실 거라 봅니다.”

“…….”

그는 다시 몸이 긴장되는 듯했다.

“사실대로 말을 하시면 별일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불이 난 창고에 형산파에서 내려온 물건 외에 다른 것이 있었습니까?”

“없…… 습니다.”

“그렇군요. 창고에 대해서는 본인이 피해에 대해서 보상하도록 하겠소이다.”

“…….”

표국주 오종혁은 그냥 지나가는 말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장사꾼이 뛰어난 점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상대가 어떠한 성격인지 빠르게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묻고자 하는 건 간단합니다.”

“말씀하시지요.”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궁금해서 무엇이 들었는지 보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던가요?”

“중원에서 시끄러운 물건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연관되기 싫어 그대로 두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장사꾼이 장사만 하면 될 뿐입니다.”

고진유는 그를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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