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타앗.
좌극천은 허벅지로 탁자를 치면서 뒤로 도망치듯 물러났다.
“훗. 이것이 당신의 대답인가?”
고진유는 얼굴로 다가오는 탁자를 향해 손을 세웠다.
번쩍.
손날에서 쏟아진 빛과 함께 탁자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고진유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다다다-
동시에 장문전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
장문전의 호위대들이 부서지듯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저놈을 죽여라!”
좌극천의 목소리가 바로 울렸다.
호위대 무인들은 고진유를 향해 검을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파아아앗-!
순식간에 도망갈 수 없도록 사방으로 포위한 그들이 살기와 함께 검을 내리쳤다.
휙휙휙!
고진유는 사방에서 다가오는 수십 개의 검과 검기 사이에서 보법을 펼치며 가벼운 움직임으로 모조리 피했다.
소문대로 무공은 대단했다.
‘이자의 무공이 강한 것을 알지만 여긴 장소가 좁다. 밀어붙일 수 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좌극천은 고진유를 지켜보며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타앗!
그러고는 재빨리 검을 뽑은 뒤 달려들었다.
형산파 최강의 무공, 화무양강검(火武陽剛劍)이 그의 한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르르-
절대극양, 절대화염의 검공이 펼쳐지면서 고진유의 전신을 감쌌다.
‘잡았다.’
신무신단까지 복용한 내력에 그는 자신했다.
극양화염에 휩싸인 고진유는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한 번 빠져들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상대가 죽지 않는 이상 끝까지 화염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완벽한 승리라 생각할 즈음.
파아아앗-!
극양화염 안에서 강한 바람이 솟구치듯 일어났다.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오른 화염이 매화 잎으로 변하며 떨어지고 있었다.
‘……매화…… 가…….’
이미 불꽃은 사그라졌다.
절대로 꺼지지 않을 거라 여겼던 극양화염의 흔적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멋진 공격이었소이다. 형산파에도 좋은 검이 있군요.”
“크윽…… 본 문을 무시하지 마라!”
“무시가 아니라 칭찬한 것이오. 장문인 그대가 딴짓만 하지 말고 순수하게 정순한 내력으로 익혔다면 더 강한 무공을 펼칠 수 있었을 텐데.”
“…….”
형산파의 무공에 대해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좌극천은 인상을 쓰면서 호위대와 함께 상대와 간격을 유지했다.
그는 고금제일인이었다.
최고의 내력으로 기습했지만 그를 이기지 못했다.
‘남은 것은 마지막…….’
“저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라!”
“넵.”
수십 명의 호위대들이 동시에 고진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좁은 장소에서 수하들은 목숨까지도 내던지며, 고진유를 벽으로 몰아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고진유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무슨 계획인지 알았다.
“본인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오?”
번쩍!
섬광이 폭발했다.
고진유의 앞으로 달려오던 호위대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춰 섰다.
‘뭣들 하는 것이지?’
갑자기 달려가던 수하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털썩.
그들 모두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졌다.
“……!”
좌극천의 몸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단 일검에 수십 명의 호위대가 모두 죽었다.
더구나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보지도 못했다.
좌극천의 몸이 떨렸다.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호위대 전원을 한 수만에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더 부딪친다면 난 죽음이다.’
홀로 남은 그는 잔머리를 굴렸다.
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모든 희망이 사라진 이상 살아남아야만 했다.
하나 그가 앞에서 노려보는 시선에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무조건 불쌍하게 보여야 한다.’
야비하다고 해도 보는 주위에 보는 사람은 없었다.
털썩.
좌극천은 그 자리에서 빠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일월가에서 목숨으로 협박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실망했소이다. 차라리 모든 것을 똑바로 인정했다면 본인은 형산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운 고민에 빠졌을 것이외다.”
“한 번만 용서를 해주신다면…… 형산파는 중원 무림에서 무기한으로 봉문을 하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휘익!
인양이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인양. 어떻게 되었지?”
“조사동에 있는 재료와 제조하던 환약들을 전부 불에 태웠습니다.”
“잘 태웠다. 근데 무너지는 소리까지 들은 것 같은데?”
“조사동 전체에 불이 번진 탓에 이겨내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래? 여하튼 잘했어. 누님은?”
“묵경 형과 녹검 형을 도와주기 위해 경내에서 형산파의 무인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신무신단의 제조서는 그곳 책임자가 말하기를, 저자가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군. 수고했다.”
고진유와 인양의 대화를 듣던 도중 좌극천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조사동이 무너졌다고?’
게다가 안에 있는 것들이 모조리 불에 탄 뒤 사라졌다고 했다.
“당신이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게 어디에 있소이까?”
“…….”
신무신단의 제조서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에게 고진유가 살기를 섞어 다시 물었다.
“주기 싫소이까?”
“…….”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고진유는 그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이거 참. 본인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그것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일 텐데. 제조서가 여전히 필요하오?”
핏!
사의검의 끝이 좌극천의 목을 가늘게 스치며 지나갔다.
스친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바로 죽여야 하는데 본인이 거리를 잘못 계산한 모양이군요. 이번에는 똑바로 거리를 조절해서 목을 베어주겠소. 저승까지 신무신단 제조서를 잘 지니고 가면 되겠군.”
좌극천은 다급하게 손을 하나밖에 없는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그것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좋소. 당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그것을 가지고 오시오. 중간에 허튼짓을 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오.”
좌극천은 주춤주춤 집무실 한쪽 벽으로 다가섰다. 그곳에서 서책들을 들어내자 비밀 서랍이 나타났다.
드륵.
그는 손을 안으로 넣은 뒤 아주 잠시 멈칫거렸다.
곧 다시 손이 움직이며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꺼냈다.
‘후후후.’
고진유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았다.
손을 비밀 서랍에 넣었을 때 왜 멈췄는지 알았다.
‘안 되는 사람은 끝까지 안 되는가. 한 문파의 수장이라서 다르기를 바랐는데…… 어쩔 수 없군.’
형산파 장문인 좌극천은 생각 자체가 썩었다.
그는 허리를 숙이면서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들고 고진유의 앞으로 걸었다.
“멈추시오.”
“…….”
앞으로 가던 그의 신형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진유는 내력으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막아섰다.
“훗, 당신 정말로 웃긴 사람이군.”
고진유는 그의 한쪽 손을 주시했다. 신무신단의 제조서가 들려 있었다.
“본인을 죽이려고 손에 이상한 물건까지 가지고 왔군요.”
“……!”
좌극천은 고진유가 뿜어낸 죽음의 기에 의해 온몸이 싸늘하게 변했다.
제조서를 쥐고 있는 손바닥 안에 그를 죽이기 위한 천비독침통이 숨겨져 있었다.
고진유에게 가까이 다가선 후 최대한 짧은 거리에서 그의 목숨을 끊고자 했다.
‘망할…….’
모든 것이 들킨 이상 살아남기 힘들 터.
하지만, 만약 그를 죽인다면 명부와 함께 영광을 누릴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여기…… 신무신단의 제조서입니다. 그리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좌극천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 순간,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주는 척하며 손바닥에 든 천비독침을 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좌극천의 입가에 미소가 보일 때였다.
파앗!
“웃음이 나올 만도 하지요. 뜻대로 된 듯해서 말이외다.”
고진유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손끝에서 생겨난 날카로운 예기가 좌극천의 팔을 스치며 지나갔다.
툭.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남아 있는 한쪽 팔마저 너무나 쉽게 잘렸다.
“아악!”
좌극천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진 한쪽 팔을 보았다.
데구루루-
잘려 나간 손바닥 안에서 천비독침통이 좌극천 앞으로 구르며 다가왔다.
‘어…… 어…….’
툭.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천비독침통이 좌극천의 발끝에 걸려 멈추고, 무언가를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푸쉬이이이-!!
천비독침이 순식간에 그의 얼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수백 개의 독침이 얼굴 전체에 쏟아지더니 몸이 시커멓게 변하며 숨이 끊어졌다.
그 장면을 본 인양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스스로 죽는 방법도 특이하네요.”
“자업자득이지.”
고진유는 바닥에 떨어진 제조서를 주웠다.
“이것이로군.”
제조서를 펼친 뒤 철갑에서 구한 제조법과 어디가 다른지 살펴보았다.
‘흐음…… 그렇군.’
제조법은 거의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가 달랐다.
모든 재료의 혼합 비율.
신무신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만 해도 백여 가지가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난다고 해도 완벽한 비율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철갑에 숨겨져 있던 신무신단의 완벽한 제조법은 어쩌면 우연히 찾아낸 비율일지도 몰랐다.
찌이이익-
고진유는 좌극천에게 빼앗은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찢은 뒤 내력으로 불에 태웠다.
“이제는 이것을 아는 인물은 책임자였던 그를 제외하고는 없겠군.”
“네. 그럴 겁니다.”
고진유와 인양은 형산파의 경내로 몸을 돌렸다.
“형, 이곳을 어떻게 할 거예요?”
“……형산파라…….”
고진유는 생각에 잠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지운 뒤 떠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일월가에 동조했다고 볼 수 없었다.
“형은 저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했는지 알 수 있지 않아요?”
“알 수 있지.”
“그럼…… 신무신단을 복용하지 않은 인물들은 살려주고, 나머지는 내력을 없앤 뒤 지옥혈림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후후후.”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그는 대견하게 인양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놓쳤던 부분을 인지시켜 주었다.
“인양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다.”
“아. 그리고 형양에 가면 형산표국이 있는데, 그곳에 여기에서 만든 신무신단이 있다고 했어요.”
“음…… 혹시 모르니 녹검 씨와 함께 먼저 내려가서 살펴보고 있어. 이곳이 정리되는 대로 내려갈게.”
“알겠어요. 녹검 형과 먼저 가 있을게요.”
고진유와 인양은 집무실을 나선 뒤 경내로 움직였다.
* * *
형산파의 경내는 이미 완벽하게 세 사람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천무십이인 중 삼인.
고진하와 묵경, 그리고 녹림야검의 강함에 형산파 전부가 덤벼들어도 이기지 못했다.
형산파 장로 반혁소는 이들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알았다.
그들에게 충분히 명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산파 제자들을 모두 죽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이 싸우지 않으면, 삼인도 형산파의 제자들을 억지로 죽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반혁소는 앞으로 나서며 형산파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형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멈춰라!”
“…….”
하나둘씩 멈추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물러난 제자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더 소리쳤다.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모두 버려라!”
쨍그랑!
반혁소가 먼저 검을 바닥에 던지자 그를 따라서 하나둘씩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대로 삼인도 검을 거두었다.
“본인은 형산파의 장로 반혁소라고 하외다. 천무십이인의 대인들께서 무슨 이유로 오셔서 형산파를 핍박하려는 것이오?”
“그대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무혼신녀의 냉랭한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반혁소는 말을 하고자 했지만 그녀의 시선에 주눅이 들어 더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기다려라.”
“…….”
잠시 뒤.
경내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 있었다.
‘고금…… 제일인…….’
청년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의 신형 주위로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인물 중 이보다 뛰어난 무인은 보지 못했다.
‘……과연 소문대로 그는 하늘이구나.’
반혁소는 처음으로 본 고진유의 강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