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형산파 장문인 좌극천은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꿇었다.
그의 한쪽 팔이 잘려 나가 있었다.
초향의 표정은 화가 난 듯 붉게 변했다.
“지금 죽고 싶은 것이냐?”
“…….”
좌극천은 두려움에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초향은 그 모습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죽고 싶은 게 확실하군.”
“아닙…… 니다.”
좌극천은 화들짝 놀랐다.
‘망할…….’
그의 눈앞으로 떨어져 나간 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팔이 잘린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앞에서 아픔을 호소하지 못했다.
만일 그랬다가는 그에게 목이 잘려 나갈 수 있었다.
무림의 소문을 들었다.
무림은자 고진유에 의해 일월가가 멸망했다는 소문을 수하에게 들었다.
좌극천은 곰곰이 생각했다.
일월가를 버려야 하나?
중원 무림은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지났다. 무림맹에서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도.
그래서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관망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도 조용히 그대로 지내면 될 것이었다.
당분간 신무신단을 사용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원 무림에서 이 일에 대해 잊을 게 틀림없었다. 그때 신무신단을 이용해서 충분히 세를 넓힌다면?
호남성은 물론 중원 무림에서 중요한 위치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초향을 대하는 태도가 불순해졌다.
그런데…….
초향은 단번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고 있었다.
그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후원으로 찾아온 좌극천의 팔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그제야 좌극천은 앞에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일월가의 인물.
일월가가 망했다고 하나 그의 무공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원 무림에서 생각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무공을 지닌 인물이었다.
형산파의 고수들이 전부 달라붙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고수였다.
‘내가 무슨 생각에 빠졌던 거지?’
목이 잘려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일월가의 인물에겐 살인이란 것 자체가 의미 없었다.
“좌극천, 미쳤나?”
“죄송합니다. 잠시 소인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머리가 잘못됐다라. 그렇다면 머리를 잘라야지 않겠나?”
쿠웅!!
좌극천은 바닥에 머리를 닿으며 용서를 빌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절대로 딴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월가가 멸문했다고 해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명부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일월가 정도는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어.”
“…….”
“일월가를 그냥 두었던 이유는 신무신단 때문이다.”
초향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다…… 행이다.’
그의 생각대로 초향은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굳이 형산파의 장문인을 죽여서 괜히 무림의 시선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번 한 번만이다. 다음부터는 팔이 아니라 말없이 목이 잘려 나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절대로 딴마음을 지니지 않겠습니다!”
그는 가장 큰 소리로 대답했다.
좌극천은 살아났다는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초향은 마음이 풀렸는지 묻는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신무신단의 제조는 어떻게 되었지?”
“아, 아직 필요한 반 정도의 양밖에 제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오는 재료의 양이 많아서, 보름이 지나면 원하시는 양의 절반을 넘을 것입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반 정도가 된다고 하니 다행이군.”
“신무신단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재료가 철갑이 열린 이후부터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양을 확보하는 데도 힘들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지?”
“암흑금상이라고…… 중원 음지에서 모든 지하상권을 주무르고 있는 곳입니다.”
“…….”
초향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암흑금상은 극일가의 가주의 또 다른 신분이었다.
‘놈들이 그것을 왜 구입하는 거지? 그 물건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거늘.’
초향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 가지 경우의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그들도 신무신단을 제조하기 위해서 모으는 것은 아니겠지?”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겠습니까?”
“철갑을 얻은 인물이 바로 그다.”
“그……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불태웠다고 들었습니다만…….”
“멍청하군! 자네는 그걸 믿는가?”
“군사가 무림맹의 인물들에게 보고하던 도중 나온 말이라 했습니다.”
“제조서를 불태우는 것을 누가 본 인물이 있는가?”
“제갈…… 군사가…….”
“같은 패거리들이다! 그 외에는 본 인물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맞습니다.”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직접 본 것도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세상이다.”
좌극천의 인상이 굳어졌다.
“어쨌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최소한 절반의 양을 만들어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봐. 자네 팔은 보기 싫으니 가지고 가고.”
“소인,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좌극천은 떨어진 팔을 주운 뒤 밖으로 사라졌다.
방 안에 혼자 남은 그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명부에서 나오기만 한다면…… 가주님의 복수는 그때 갚아주도록 하겠다.”
명부에서 명족이 나오면 세상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었다.
초향은 그때 가주 일월신의 원수를 갚을 것이라 다짐했다.
스윽.
초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답답한지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다.
후원에 나오며 숨을 일부러 크게 내쉬면서 걸었다.
뚝.
순간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으로 뒤로 돌아선 채 서 있는 인물이 있었다.
‘누구지?’
후원에는 자신이 들어온 이후 장문인 좌극천 외에 아무도 들어서지 않았다.
좋은 뜻으로 들어선 게 아님을 알았다.
초향은 긴장한 목소리로 상대가 누구인지 물었다.
“정체를 밝혀라.”
등을 보였던 인물이 돌아섰다.
‘청…… 년?’
젊은 사내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앞으로 다가왔다.
“……넌…….”
“당신들이 말하는 은룡투인이외다.”
타앗!
초향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포위됐어.’
그의 뒤로 묵경과 녹림야검이 나타났다.
“본인이 왜 왔는지 알고 있겠지요?”
“……여기는 어떻게 알았지?”
절대로 비밀에 숨겨놓았던 그들이었다.
일월신과 극일천무신궁이 있는 당시에도 이곳을 아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본인이 신도 아닌 이상 어떻게 알겠소. 일월신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더이다.”
“가주님께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분이?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 것이었다.
“일월가에 언약의 결계라고 있더군요. 굳이 알려주겠다고 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자, 우리 사이가 굳이 대화를 나눌 만큼 편한 사이도 아니고. 그만 끝을 내도록 하죠.”
“…….”
초향은 자신이 없었다.
일월신조차 이기지 못했던 그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끝이군. 모든 것이…….’
하지만 가만히 선 채 당할 수는 없었다.
우우우웅-
초향은 모든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때였다.
번쩍!
그의 눈앞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이보다 더 빠른 움직임을 본 적이 없었다.
빛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을 지나가는 차가운 검기를 느꼈다.
‘아…… 아…….’
투욱.
초향의 목이 떨어졌다.
제대로 된 공격다운 움직임도 보여지 못하고 허무하게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묵경과 녹림야검이 다가왔다.
두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묵경 형과 녹검 씨는 형산파 정문을 맡아주세요. 이곳에서 한 명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알겠다. 근데 나가고자 하는 놈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지?”
“못 나가게만 만들면 됩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형과 녹검 씨가 알아서 하세요. 그들은 중원인이 아닌 일월가의 하수인들입니다.”
고진유의 말뜻은 그들을 죽여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묵경과 녹림야검은 곧장 후원을 나선 뒤 형산파의 정문으로 바로 움직였다.
후원에 홀로 남은 고진유도 바로 움직였다.
“장문인을 만나러 가볼까?”
* * *
무혼신녀와 인양은 형산파의 경내 밖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형산파의 무인들은 없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형산파의 뒤편에 있는 동굴.
형산파의 금역으로 조사동이었다.
형산파 장문인조차 함부로 들어서지 못한다는 장소.
무혼신녀와 인양은 조사동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휘이익!
그때, 두 사람 앞으로 조사동을 지키던 형산파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막아섰다.
“멈춰라.”
“…….”
“네놈들은 누구이기에 함부로 형산파의 조사동으로 들어서느냐?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여기가 조사동이었나?”
무혼신녀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채애애앵!
형산파 무인들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정체를 밝히지 못할까?”
“굳이 우리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고. 네놈들은 검을 버리지 않는다면 목이 잘릴 수 있다.”
“이, 이런 미친년이 있나?!”
“어허, 방금 미친년이라 했나?”
무혼신녀의 눈살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스걱.
은빛의 검기가 그의 눈앞을 지나갔다.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될 텐데……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형산파의 무인들은 그의 동료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도 어떻게 죽었는지 보지 못했다.
‘고…… 수다.’
한 번의 움직임에 상대의 무공 수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조용히 검을 버리면 바로 죽이지는 않겠다.”
“…….”
형산파의 무인들은 어떻게 할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우걱.
호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꺼내 입에 넣었다.
“누님, 신무신단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겠지.”
“네. 맞아요.”
신무신단을 복용한 형산파 무인들은 온몸에 치솟아 오르는 힘을 느꼈다.
무혼신녀와 인양을 보는 그들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네놈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잘못 찾아왔음을 곧바로 알려주겠다.”
타아앗!
십여 명이 각자의 무기를 꺼낸 뒤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신무신단의 힘으로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그들만의 망상일 뿐이었다.
퍽퍽퍽!
그들은 두 사람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난 권강을 보았다.
“으아아아악!”
“커억…….”
검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인양이 내지른 권강에 즉사했다.
숨 막히는 적막감이 형산파 무인들 사이로 지나갔다.
방금 인양이 보여준 무공을 보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안 것이다.
“권협…… 인양.”
천무십이인.
중원 최고의 열두 명의 인물.
중원인들은 그들을 천무십이인이라 불렀다.
눈앞에 선 인양을 알아본 그들은 싸울 의지를 잃었다.
“어떻게, 계속하겠소?”
툭. 툭, 툭.
그들은 죽음보다 살아남기를 원했다. 손에 든 검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생각을 잘했소이다. 당신들의 목숨을 살려주겠소. 그 대신 앞으로는 무공을 펼칠 수 없도록 해주겠소이다.”
핏핏핏핏핏!
인양은 그들의 단전을 파괴했다.
“욱.”
단전이 불타오르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누님, 가시죠.”
“수고했다.”
두 사람은 고통에 잠긴 그들을 지나 조사동의 입구에 다가섰다.
“조사동에 이런 것을 만들어놓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무혼신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노기가 가득했다.
“다른 곳도 아닌 조사동이라면 스스로 형산파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 말이 맞구나. 이놈들은 일월가의 잔당일 뿐이지.”
“알겠습니다. 그놈들을 상대할 때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들어가 볼까?”
인양과 무혼신녀는 안으로 들어섰다.
조사동으로 들어서는 길은 좁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뭣들 하느냐?”
“빨리 재료를 넣지 않고!”
부글부글.
커다란 솥 속에 환약 재료들이 끓고 있었다.
신무신단의 제조 책임자인 언종은 수하들을 다그치며 빠르게 그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아아악!”
그때, 갑자기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밖이 시끄러워졌다.
“대체 어떤 놈들이 여기에서 소란스럽게 만드는 게지? 당장 나가서 목을 잘라 버리겠다!”
그가 화를 내며 돌아선 순간,
콰아아앙!!
귀를 먹게 만드는 소리가 들리면서 안으로 한 쌍의 남녀가 들어섰다.
퍼더덕!
그들의 앞을 막아섰던 인물들이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젊은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여기 책임자는 누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