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일월가의 마지막은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고진유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그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일월가와 극일가의 싸움.
두 가문에서 이어져 온 긴 세월의 전쟁은 끝내 종점을 맞이했다.
일월신의 죽음.
오래전 두 번의 경우와 달리, 일월가의 잔여 세력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진유는 이제 확실히 일월가는 끝이 났음을 알았다.
‘이젠 남은 건 명부 쪽인가?’
일월가를 정리했다고 해서 세상의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남아 있는 그들과 담판을 지어야만 했다.
웅성웅성.
전각으로 들어서는 기척이 들렸다.
‘일월명살 상대가 끝난 모양이군.’
고진유는 먼저 전각을 돌아서 앞으로 나왔다.
다급히 달려온 인양과 중간에 마주쳤다.
“형! 그자는 어떻게 되었어요?”
“끝났어.”
“우리도 끝이 났어요.”
“수고했다. 이젠 중원에서 일월가는 영원히 사라졌어.”
“우리가…… 이긴 건가요?”
“그래. 향천이 이겼어. 끝이 났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향천의 무인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
“향천 만세!!”
그들 사이에서 함성이 솟구쳤다.
고진유는 다가오는 인물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면서 손을 잡았다.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동료이며 가족이었다.
무혼신녀는 일월가가 무너진 것을 보며 남들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누님, 고생이 많았습니다.”
“동생도 일월신을 상대한다고 수고했다. 일월가가 무너졌지만 이젠 마지막으로 명부의 명족들이 남아 있겠군.”
“그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조용할 겁니다.”
“그런가? 이젠 어떻게 하면 되지?”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하죠.”
“알겠다. 근데 이곳은? 그냥 두고 가기에 애매한데?”
“글쎄요. 누님 말씀대로 이대로 두는 건 문제가 될 것 같네요.”
수백 년 동안 숨어 있던 일월가의 본진에는 그들의 유산이 남아 있을 테고, 만일 이것들이 중원에 하나라도 빠져나간다면 문제가 될 게 확실했다.
고진유가 고민을 하던 때였다.
미세하게 전해지는 땅의 울림이 느껴졌다.
‘……아래?’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모두 여기를 빨리 나가야겠어요! 따라 오세요!”
파파파파팟!
그와 동시에 향천의 무인들은 고진유를 뒤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사불란 움직이면서 전 내력을 일으켰다.
멀리 일월가를 나가는 일월신문이 나타났다.
드드드드-
‘이런! 문이 닫히고 있어.’
일월신문이 이미 반쯤 내려오기 시작했다.
향천의 무인들이 모두 빠져나가기에는 애매했다.
‘우선 시간을 늦추어야 해.’
휘이익!
고진유는 철문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관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우우욱……!”
내력을 끌어 올리며 잡아당겼지만 철문이 떨어지는 속도를 조금 늦출 뿐이었다.
끼이이익-
철문 안에서 저항을 받는 소리들이 심하게 울렸지만, 점점 닫히는 속도가 빨라져만 갔다.
“모두 빠져나가!!”
“빨리 움직여라!”
우종성과 남궁무명은 철문 앞에서 향천의 무인들을 향해 다급하게 재촉했다.
우우우우웅-
이번에는 후산의 주위 일대에서 땅이 울었다.
철문은 이제 사람의 무릎 높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콰아아아앙!!
순간, 일월가주의 전각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면서 땅이 아래로 꺼져 내려앉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철문을 향해 바닥이 무너져 내려갔다.
인양은 철문 앞에 선 채 문이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고진유를 다급히 불렀다.
“혀어엉!”
“다들 먼저 나가 있어. 빨리…….”
“사제……!”
“빨리 나가세요! 손잡이가 부러질 것 같아요!”
우르르르르-
어느덧 고진유가 있는 지척까지 땅이 갈라졌다.
우종성과 인양은 철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갔다.
쿠우웅!!
그리고 철문이 닫히는 동시에, 잡아당겼던 손잡이가 부러졌다.
‘쯧, 이왕 만들려면 좀 더 튼튼하게 만들던지!’
휘익!
고진유는 부러진 손잡이를 옆으로 던지며 고개를 들어 보았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저것밖에 없겠군.’
두두두두-
철문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향천의 무인들은 멍한 시선으로 후산의 일부가 사라진 현장을 보았다.
일월가는 절벽 아래로 무너져 내리면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앞을 보면서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철문을 막아섰던 고진유는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절벽 아래를 향했다.
“다시 내려가야겠어요.”
“나도 간다.”
인양의 말에, 묵경도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를 찾아서 올라와야 했다.
그때,
스윽.
“거긴 왜 가는데요? 보물이 있을까 싶어서요?”
“흐억!”
묵경과 인양은 고개를 돌렸다.
언제 다가섰는지 고진유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나왔네? 나왔구나!”
“당연하죠. 내가 못 나올 줄 아셨군요.”
“그게 아니라……!”
덥석!
“혀어어어엉! 진짜 죽은 줄 알았잖아!”
인양은 날아오르면서 고진유를 안았다.
“하하하! 내가 죽긴 왜 죽어. 앞으로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의 마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호정 사제, 어떻게 된 것이냐?”
“철문이 무너지면서 위를 보니 바깥으로 연결된 공간이 만들어지더군요. 그곳을 통해 나왔습니다.”
“다행이군. 정말로 걱정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신다면서요.”
“하하, 맞다. 내가 또 잊고 있었구나.”
고진유는 그와 잠시 포옹한 후 완전히 무너진 일월가를 내려다보았다.
“속 시원하게 사라졌네요.”
“그러게 말이다. 굳이 신경 쓸 일도 없어서 더 잘됐군.”
“우리 일은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도록 하죠.”
“알겠다.”
향천의 무인들은 후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월가의 무서움을 알기에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고진유를 믿었다. 그를 따르면 어떠한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결국 향천은 일월가를 세상에서 영원히 몰아냈다.
* * *
향천의 무인들은 강릉 관문을 빠져나온 후 첫 마을에서 휴식했다.
이후 그들이 형주로 향한 것과 달리, 그들이 떠난 자리 뒤로 다섯 명의 인물이 남았다.
고진유와 묵경,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과 무혼신녀였다.
“우리만 형산으로 간다고?”
묵경은 자신들만 남아 있는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네. 그곳에서 마저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무슨 일인데?”
“천천히 가면서 설명하죠.”
“중요한 일인가 보지?”
“세상을 구하는 일이에요.”
그들은 고진유를 따라 형산이 있는 형양으로 움직였다.
형양으로 가는 그들은 급한 것 없이 보통 속도를 유지했다.
그들의 정확한 목적지는 형산파였다.
“거긴 왜?”
“그곳에서 신무신단을 만들고 있어요.”
“뭐?”
뜬금없이 신무신단이 다시 나왔다.
게다가 신무신단을 만들고 있는 곳이 형산파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신무신단이 글쎄…… 엄청 중요하더라고요.”
그들은 이어서 신무신단의 진정한 효능에 대해 들었다.
이제는 더 놀랄 일도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고진유가 알려준 내용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족이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아무 제재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하네요.”
“그들이 알고 있는 제조법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
“그 정도면 약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피곤한 일이군. 정말로 명족이라는 종족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망하는 게 맞아?”
“일월신을 상대하면서 알았어요. 명부에 얼마나 많은 놈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세상에 올라온다면 대혼란이 일어날 건 확실합니다.”
“그 정도야?”
“원래 명족이나 우리나 서로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을 어기면서 나온다면 그들이 가진 힘의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극일심공을 익혔는데도?”
“그건 그들이나 우리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근데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완전한 힘을 펼칠 수 있는 모양이에요.”
“엄청난 물건이었군.”
“다행히 신무신단이 완벽하지 않은 탓에 그들로서는 어느 정도 무리한다고 봐야겠지요.”
“아하…….”
고진유의 설명에 네 사람은 이해했다.
“아우의 사부가 철갑을 얻을 수 있었던 게 그들에게는 천추의 한이 되었겠군.”
무혼신녀의 말이 맞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어.”
“맞습니다. 그들도 몰랐던 것이죠.”
“결국 일월가나 극일천무신궁이 원한 건 그들이 아니라 명족을 위한 신무신단이었단 말이군. 명족의 임무는 그것밖에 없었고.”
“그런데 말입니다. 웃긴 게 있더군요.”
“응?”
고진유는 말을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고진유와 가장 친한 인물들이었다.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엉뚱한 생각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았다.
고진유가 무슨 말을 할지 두근거렸다.
“빨리 말해봐. 내가 봐서는 절대로 웃긴 일이 아닐 테니까.”
“저도 묵경 형의 말에 동감합니다.”
“저도요…….”
녹림야검도 슬쩍 손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반대로 생각해 봤어요.”
“뭘?”
“만일 우리가 신무신단을 복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혹시 명부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
명부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은 들어가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묵경은 바로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안 될 거야.”
“저도 안 될 것이라 봤는데…… 일월신에게 은근슬쩍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더군요. 그건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정말이냐?”
“가능할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명부에 가자는 말 말이다.”
“신무신단을 복용한 뒤 명부에 들어가도 이상이 없는 것만 확인된다면 못 갈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명부에 내려가서 완전히 박살을 낼 좋은 기회이잖아요.”
“좋은 기회라…….”
고진유가 한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중원에서의 무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무혼신녀는 고진유의 의견에 찬성했다.
“좋다. 나도 아우의 생각이 맞다고 봐. 그놈들이 세상에 올라와서 난리 치는 것보다 우리가 내려가는 게 가능하다면 명부로 가는 것이 좋겠지.”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명부를 박살 내도록 하죠. 세상에 전혀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우리가 지금 아니면 언제 명부에 가서 난리를 치겠습니까? 하하하!”
무혼신녀는 신나게 웃는 그를 보며 물었다.
명부에는 가고 싶다고 가는 게 아니라 한 가지가 꼭 필요했다.
“재미있기도 하겠다. 근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지 않느냐?”
“신무신단을 말하는 것입니까?”
“맞아. 그것을 어떻게 구한다는 말이지? 그놈들도 완벽한 제조법이 없다고 했지 않으냐? 우린 그것을 태워 버렸…….”
무혼신녀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분명 고진유는 자신의 앞에서 신무신단의 제조서를 불태웠다.
‘설마 그 짧은 순간에?’
무림이 혼란에 빠질 거라 생각해 태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혼자만 그걸 알고자 했던 게 확실했다.
‘하! 하긴…… 순순히 그것을 태우고자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때는 고진유에 대해 아직 정확히 잘 모를 때였다.
만일 지금이 그때였다면 믿지 않았을 테다.
“네놈…… 그것을 외웠지?”
씨익.
고진유는 대답 대신에 미소를 띠며 웃었다.
그녀를 제외한 세 명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세 사람도 알고 있었단 말이냐?”
“누님, 그건 아닙니다.”
“그럼 그 표정들은 뭐지?”
“철갑에 든 물건은 파숙의 죽음으로 얻은 물건이었습니다.”
그녀는 파숙에 대해 어떠한 인물인지 예전에 들어 알았다.
“네. 맞아요. 파숙 형님이 구해준 물건입니다.”
“그런 물건을 무림의 혼란 때문에 태웠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진유 아우는 무림의 혼란에는 신경을 쓰지 않거든요.”
“……하! 네 말이 맞군.”
무혼신녀는 바로 인정했다.
“네. 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진유 아우는 이유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태웠다고 했을 때 이미 외웠을 거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긴…… 넌 세상에서 진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지.”
두 사람은 여전히 미소를 짓는 고진유를 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웃지 마, 인마!”
* * *
유유독여비(唯有獨如飛).
형산지수(南岳衡山之秀).
호남성의 남악 형산을 두고 중원인들이 부르는 말이다.
형산은 오악 중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했다.
형양을 들어선 일행은 곧장 형산으로 기척을 감추며 움직였다.
“형산파를 치지 않은 게 잘된 일이었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무혼신녀의 말처럼 형산파를 쳤다면 신무신단을 만들기 위해 더 깊은 곳에 숨었을 수도 있었다.
“형, 그냥 한꺼번에 밀고 가면 안 돼요?”
“우리가 떠들썩하게 올라가면 다시 숨게 되겠지. 그럼 진짜 잡기 힘들어질 수 있어. 형산파에 몰래 잠입한 뒤 신무신단의 제조하는 현장부터 찾아내는 게 순서야.”
묵경도 같은 생각이었다.
“진유 아우의 말이 맞아. 형산파를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신무신단을 만드는 현장을 찾는 게 우선이지.”
“그건 저에게 맡겨주시면 확실하게 찾아보겠습니다.”
녹림야검은 손을 번쩍 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후후후. 기대합니다. 그럼, 형산파로 조용히 올라가 볼까요?”
스르르륵.
다섯 명의 기는 형산의 산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