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69화 (369/425)

369화

매화 향기가 일월신의 몸을 스치며 흐드러졌다.

‘화산의 검으로 나를 이기겠다고?’

일월신은 화산파의 무공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만류귀종이라는 무공의 무리에 대해 그는 알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강자였고, 그가 익힌 무공 또한 강했다.

그러기에 그는 항상 중원인의 무공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겼다.

화산파의 무공도 그에게는 마찬가지였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군. 극일가의 무공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임을 모르는가.’

일월신의 양손에 검은 기류가 흐르면서 단단하고 둥근 반극이 만들어졌다.

“화산대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화산파 무공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왜 못한다는 거지?”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언약의 결계로 한바탕 내기는 어떠한가.”

“얼마든지.”

“호오, 그대의 죽음을 걸고 언약을 할 수 있단 말이지?”

“물론 가능하지만, 불공평하지 않소? 나 혼자 하는 건 일방적으로 내가 불리하지 않소이까?”

“……좋다. 만일 화산파 무공으로 나를 이긴다면 그대에게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겠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라. 마음에 드는군요.”

팟!

뚝뚝.

순간, 일월신의 손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지더니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원형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나타났다.

우우우웅-

그의 발아래로 붉은색의 문장이 나타났다.

고진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것이오?”

“여기 안으로.”

“…….”

그의 말처럼 결계의 문장 안으로 들어가 섰다.

“자, 그럼 시작…….”

“잠깐. 당신은 안 들어오는 것이오? 내가 어떻게 당신 말을 믿겠소? 당신도 함께 약속을 해야지.”

일월신도 그를 한 번 노려본 후 결계 안으로 함께 들어섰다.

우우우우웅-

일월신이 만든 결계에서 소리가 울렸다.

언약의 결계.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지켜야 할 약속에 대해 언약을 맺었다.

고진유는 화산파 무공으로 일월신과 싸워야 하며, 일월신은 싸움에서 지게 되면 고진유에게 무엇이든지 하나의 약속을 들어줘야만 한다는 의식을 펼친 것이다.

파아앗!

서로의 기가 부딪히면서 두 사람이 결계 밖으로 물러났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그건 지금 알면 재미없소. 나중에 내가 이기고 난 뒤 천천히 물어보도록 하지.”

“…….”

“시작해 볼까요?”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와의 약속대로 매화 꽃잎과 함께 매화 향기가 일월신의 주위를 감쌌다.

“크크크…… 이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지.”

화산의 매화는 중원에서서나 통하는 실망스러운 힘일 뿐.

일월신은 피하지도 않은 채 가볍게 막아내고자 했다.

양손에 든 명천반극으로 매화를 베어내기 위해 가볍게 휘둘렀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매화 꽃잎이 닿는 순간 폭음이 일어났다.

‘욱.’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일월신의 손이 떨렸다.

‘뭐지?’

그가 알고 있는 화산파 무공의 위력이 아니었다.

일월신은 순간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무공을 화산파의 무공으로 펼친다는 것이지, 화산파만의 내력이라는 것은 따로 없었다.

내력은 여전히 고진유가 가진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파아아앗-!

고진유는 그를 향해 매화검법을 펼쳤다.

사의검이 지나가는 뒤로 매화 꽃잎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대체 이건…….’

일정한 방향이 아닌 자유자재로 흩날리는 매화 잎에 오히려 더 정신이 없었다.

스걱.

목을 향해 하늘거리며 떨어지던 매화 꽃잎은 갑자기 날카로운 검기로 변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악.”

짧은 비명이 나왔다.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일 날 수 있었다.

우우우웅-

일월신은 양손에 내기를 모으며 강하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파아아아앙-!!

양손의 충격에 의해 거대한 기의 파장이 일어나 매화 꽃잎들을 흐트러뜨렸다.

두두두두두-

일월신이 만들어낸 파동에 부딪친 꽃잎들이 부서졌다.

‘어디에 있지?’

그는 재빨리 고진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찌이이이잉-

검명의 날카로운 소리가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얼굴을 향해 붉은 점이 쇄도했다.

사의검의 검신 끝에 맺힌 홍매화의 검기.

‘막을 수……!!’

일월신은 피하기 위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지만, 사의검의 끝이 그보다 더 빨랐다.

푸욱.

일월신의 어깨를 사의검이 찌르며 관통했다.

“크윽!”

그는 짧은 비명과 함께 검에 찔린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파아아앗!

억지로 빼내기 위해 움직인 탓에 어깨가 반쯤 잘려 나갔다.

쉬리리리릭!

일월신은 정신이 없었다.

이번에는 눈앞에서 사의검이 회전하며 허리를 베기 위해 허공을 갈랐다.

파아아앗!

순식간에 사의검이 허리를 베고 지나가면서 일월신은 휘청거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몰리면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망할…….”

매화검법을 펼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일월신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멍청한 말에 속았군. 그대에게는 의미 없는 것을……!”

“글쎄, 차이가 있을 텐데. 잘 모르는군. 상승 무공을 펼치는 것과 일반 무공을 펼치는 것은 다르지.”

“…….”

“내가 극일가의 무공을 펼쳤다면 당신은 이미 목이 잘렸을지도 모르지.”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내가 이긴 것 같지 않소?”

“…….”

“아니면 더 해도 좋소이다.”

“한 번…… 더…… 싸우고자 한다.”

일월신은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최후의 일격을 날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고 싶었다.

“좋소이다. 대충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으니 알아서 맘대로 해보시오.”

“건방진 노옴!!”

덜덜덜덜덜-

일월신의 신형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신체가 터질 듯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쉬이이이이-

이번에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부풀어 올랐던 그의 신형에서 내기가 단숨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흐음…….’

이윽고 일월신이 모든 내기가 빠져나간 듯 야윈 모습으로 변했다.

뚜둑. 뚜둑.

그가 목을 돌리자 뼈가 움직이는 소리를 냈다.

얼굴은 변함없지만 몸 전체가 거의 뼈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여위었다.

“예상 밖이네요.”

“이 모습이…… 진정한 명족이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군요. 궁금하긴 합니다. 그렇게 변해서 얼마나 강해졌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파아앗-!!

일월신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더 빨라지는 것인가? 이것밖에 없다면 실망인데.”

고진유는 어느새 뒤로 돌아온 그의 기척을 느꼈다.

휘이익!

뼈밖에 보이지 않는 일월신의 손이 고진유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퍼석!

가느다란 일월신의 손이 고진유를 뚫고 허공을 지나갔다.

“……!”

분명 앞에 있었던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능이 너무 떨어지는 게 아니오? 내가 얼마나 빠른지 알고 있으면서.”

처억!

언제 옆으로 움직였는지 사의검이 목 바로 앞에 다가온 뒤 멈췄다.

“우리 내기가 아니었다면 바로 목을 베었을 텐데…….”

“…….”

“표정을 보니 아직도 인정을 못 하는 모양이군.”

고진유는 사의검을 그의 목에서 물렸다.

“다시 해보겠소?”

“방금 그건 화산파의 무공이 아니다.”

“신법을 말하는 것이오? 하지만 극일가의 무공도 아니외다. 이건 내가 괴도에서 익힌 것이오.”

“…….”

“좋소이다. 말이 나온 김에 신법도 화산파의 신법을 사용하지요.”

고진유는 뒤로 물러났다.

한데 화산파의 신법을 펼치고자 해도 막상 익힌 게 없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익힌 신법은 없었네. 보자, 사형들이 신법을 어떻게 펼쳤지?’

고진유는 가장 빠른 신법을 펼치는 당우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좋았어.’

그녀가 펼친 매화비행류.

매화비행류의 연비형(燕飛形)은 한 마리 제비처럼 바람을 가르며 사방을 날아다니는 신법이었다.

피우우웅-

그가 매화비행류를 시전하자 마치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월신의 눈동자가 떨렸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까아아앙!

일월신의 허리에 사의검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대로 멈췄다.

‘어라? 단단한데?’

파앗!

일월신은 한 손으로 사의검의 검신을 잡으며 반대편 손으로 고진유의 가슴을 향해 뻗어냈다.

“잡았…… 다!”

‘이 거리에서는 명왕수를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차아악!

가슴으로 뻗었던 일월신의 손이 고진유의 손에 잡혔다.

“이런 방법으로 사의검을 막아낼 줄은……!”

일월신의 육신은 명부의 권능으로 금강으로 변해 있었다.

타아앗.

고진유와 일월신은 상대를 밀어내며 떨어졌다.

“크크크…… 내가 명족으로 변한 이상 다를 것이다.”

“당신은 확실히 강하긴 하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외다. 어쩔 수 없이 죽지 않을 정도로 사지를 잘라주겠소이다.”

“…….”

일월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말은 내기 때문에 계속해서 봐주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바로 확인을 해보도록 할까요?”

스으으으-

고진유는 사의검을 천천히 앞으로 겨누었다.

우우우웅-

사의검에서 내기의 진동이 울렸다.

‘뭐지?’

전과 다른 느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주위로 다가오는 기를 느낄 수 있었다.

파아앗!

왼쪽 어깨에 날카로운 예기가 지나갔다.

금강으로 변한 일월신의 몸이 단번에 잘려 나갔다.

‘욱.’

뼈를 자르는 듯한 날카로움이 스치며 욱신거렸다.

파아앗!

이번에는 양쪽 허벅지를 베고 사의검이 지나갔다.

일월신을 순간 휘청거리면서 쓰러질 뻔했다.

“이…… 건…….”

반짝.

그는 머리 위를 가득 메운 투명한 매화 꽃잎을 보았다.

“매화영음이라는 초식이오. 좋은 무공이지 않소이까?”

“…….”

“그리고 이번에는 매화산우와 매화뇌강의 초식이 곧바로 이어질 것이외다. 조심하시구려.”

찌지지지직-

두두두두-

투명한 매화 잎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뇌전을 일으키면서 일월신을 향해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콰-

매화 잎이 검강으로 변하면서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오직 그가 선 자리만이 그대로 있을 뿐, 주위로 거대한 웅덩이가 파이기 시작했다.

“크으으……!!”

일월신은 주저앉고 싶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싸울 의지를 잃었다.

고진유는 그의 눈을 보며 사의검을 거두었다.

“당신이 원한 화산파의 무공이외다. 아닌 것 같소?”

“……맞다.”

일월신은 결과를 인정했다. 명왕과 대등하게 싸웠던 은룡투인을 상대로 승리를 생각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그가 은룡투인임을 알면서도 중원인이라는 생각에 잊고 있었다.

“졌다면 약속은 지켜야지 않겠소?”

“……내게 궁금한 게 뭐지?”

“신무신단을 어디서 제조하는 것이오?”

“…….”

싸우기 전 분명 초향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아니란 말인가?’

그는 미소를 짓는 고진유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거짓말이었군.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지?”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소? 속은 당신이 잘못이지.”

“…….”

“내가 속였다고 해서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린…… 언약의 결계에 대해서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다행이군요. 그 결계의 뜻으로 묻겠소. 신무신단은 어디서 만드오?”

웅웅웅-

일월신의 발아래로 붉은색 결계의 문장이 나타났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부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일월신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형산에…… 있다.”

“형산이라면 형산파를 말하는 것이오?”

형산파는 이미 오래전에 극일천의 세력이라고 밝혀졌었다.

아직까지 그들을 가만히 둔 이유는 극일천무신궁에 합류를 하지 않았기에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군…… 신무신단을 몰래 제조하기 위해 조용하게 지냈던 거였어.’

고진유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고맙소. 그대가 세상을 살렸소이다.”

“…….”

털썩.

일월신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고진유를 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끝을 내시오.”

“그렇게 하리다.”

스걱.

사의검이 일월신의 목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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