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68화 (368/425)

368화

스윽.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많이 좋아졌습니다. 소신이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전도부는 일월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함정들을 피하며 일월신이 있는 전각으로 다가섰다.

피해 없이 함정들을 모두 지나자, 그들 앞에 세 개의 문이 나타났다.

마지막 관문에 다다른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중문을 가리켰다.

“여기로 들어가면 곧바로 일월신이 있는 전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군요. 전도부 님 덕분에 편하게 여기까지 왔군요.”

“안에 들어가면 그를 호위하는 일월살명들이 마지막으로 전각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일월살명이라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명부 출신의 일월살입니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앞장서며 중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 *

일월신은 전각 밖으로 나온 뒤 맨 위 계단에 걸터앉았다.

중문으로 들어서는 기척에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이가 없군. 일월가에 지금까지 그들의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수많은 세월 동안 간자들 찾아내고 찾아냈다.

더는 없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도 일월가에 숨어 있는 극일가의 인물이 나타났다.

“우린 안 되는데…… 저들은 된다는 것이 더 화가 나는군.”

중문으로 완전히 들어선 고진유를 보았다.

그에 대해 많은 보고를 들었다.

극일천주이자 극일가주의 자식.

그가 어떻게 무림에 나왔는지 모든 것을 알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군.’

신무신단의 제조법이 든 철갑을 그의 사부라는 화산파 도사에게 빼앗겼던 일이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이었다.

완벽한 신무신단의 제조법을 그때 얻었다면, 지금과 또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면 저놈은 완전 도둑놈이군. 명부의 것이 될 세상을 훔쳐간 놈.’

저벅. 저벅.

고진유는 홀로 앞으로 나섰다.

계단의 상단에 앉아 있는 인물.

그가 일월가의 가주인 일월신임을 느낌으로 알았다.

“당신이 일월신이오?”

“넌 화산의 대도(大盜)인가?”

씨익.

고진유는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대도라니?”

“중원에서 이제는 네놈을 무림은자라고 부른다지? 중원인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 나는 네놈의 행적을 처음부터 확인했다. 근데 극일가의 인물이 무림을 위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겠지요.”

“크크크크…… 내 말을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인정한다는 것이군.”

“방금 말하지 않았소이까. 당신이 알아서 생각하라고.”

“이봐, 화산대도. 일월가를 쉽게 생각하고 왔겠지만 만만하지 않을 거다.”

“…….”

일월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팟팟팟팟.

전각 앞으로 일월살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일월오진살에 비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비슷한 능력을 지녔지. 충분히 재미있을 거야.”

“당신은 싸우지 않소?”

“이곳은 내가 싸울 자리는 아니지. 굳이 나하고 싸우고 싶다면 이들을 모두 죽이고 난 뒤, 저기 뒤로 오면 길이 보일 것이네. 그곳으로 오면 된다.”

일월신은 전각의 뒤편을 가리켰다.

“나중에 보세나.”

그는 돌아서며 모습이 천천히 사라졌다.

휙휙휙휙!

일월살명들이 앞으로 겹겹이 나서며 시선을 가리고는, 고진유를 향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타아아악!

이번에는 고진유의 뒤에서 향천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일월살의 생김새에 처음에는 흠칫했지만, 전각까지 오는 동안 이제는 숙달된 듯 일월살명들의 괴기스러운 모습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타앗!

인양은 허공을 박차며 날아올라, 아래로 향해 내려다보면서 달려오는 일월살명들을 향해 권강우(拳罡雨)을 쏟아냈다.

콰콰콰콰콰콰-

일월살명들 사이에 떨어진 권강에 의해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허. 인양아, 살살해라.”

휘익!

아래로 내려선 인양의 뒤로 녹림야검이 달려왔다.

살성령인으로 변한 그의 녹수검에서 뻗어나간 살검기에 일월살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들의 목을 하나씩 벨 때마다 녹림야검은 즐거웠다.

‘이놈들은 세상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일월살명을 죽인다고 해서 전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었다.

이보다 더 기쁘게 상대의 목을 벨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동안 완전히 내보이지 못했던 살성을 마음껏 드러내며 일월살명을 베고 또 베었다.

‘제일 신이 났네.’

고진유는 그들을 보면서 문제없이 이들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묵경 형, 전 잠시 다녀오도록 하겠어요.”

“여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피우우우웅-

고진유의 신형은 앞을 막은 일월살명을 그대로 통과하며 사라졌다.

* * *

전각 뒤로 돌아서자 그가 말했던 길이 나타났다.

고진유는 신법을 멈추며 아래로 내려섰다.

‘이곳인가?’

짙은 어둠의 길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암흑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들어가야 뭐라도 찾을 수 있겠지.”

고진유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었다.

멈칫.

한 발을 앞으로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고진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안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고진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바람에 불더니 숲이 세게 흔들거렸다.

그러더니 숲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그리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남기며 입구가 사라졌다.

“크크크크…….”

전각 기둥 사이에서 괴소와 함께 일월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멍청한 놈. 길이 있다고 해서 정말로 그 안으로 들어갈 줄이야. 내가 안에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들어가다니…….”

고진유를 삼킨 길은 명부의 암흑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

한 번 들어가면 세상의 사람들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길이었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니…… 크하하! 일월가가 사라지지 않아도 신무신단이 있는 이상 명부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일월신은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여겼다.

“은룡투인이 없는 극일가는 명왕께서 나서게 된다면 상대가 되지 않겠지.”

“내가 없어도 극일가는 그 정도로 약하지는 않을 텐데.”

“……!!”

일월신은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명부로 빠졌을 것이라 확신했던 그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휘익!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가 공격을 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일월신의 눈에 미소를 띠고 있는 그가 보였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 떻게…… 된 일이지?”

“후후후. 궁금하오?”

“…….”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뒤 밖으로 나온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지 않겠소?”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인가?”

“바로 알아맞히는군요. 맞소이다.”

“내가 직접 봤거늘? 분신술까지 펼칠 수 있다는 것인가?”

“분신술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지요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

‘뭐지? 지금 뭐 하자는 짓이지?’

일월신은 중간에 말을 끊은 고진유를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선 채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고진유를 만지고자 손을 뻗자,

스으으으-

몸을 그대로 통과하면서 고진유의 흔적이 사라졌다.

‘환영!’

일월신은 재빨리 뒤를 돌아섰다.

방금까지 앞에 있었던 고진유가 등 뒤에 서 있었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신법만으로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떻게 하던 이 자리에서 그를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상대의 신형조차 좇을 수 없었다.

“바로 당신을 죽일 수 있지만…… 물어볼 것이 있소이다.”

“큭…… 큭큭…… 그래, 내게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지 궁금하군.”

“신무신단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소. 당신이 방금 중얼거린 말이 맞소?”

“…….”

“바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봐서 맞는 모양이군. 신무신단을 원한 곳은 명부였어.”

극일천무신궁의 궁주가 만들었던 신무신단은 단지 무공을 높이기 위함이라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 이 상황에서 보니 전혀 그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월가나 극일천무신궁이나 같았다.

명부에서 필요한 신무신단을 만들기 위한 곳일 뿐이었다.

‘신무신단이 그런 용도로 사용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일월가가 중원에서 영원히 멸문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명부가 자유롭게 세상으로 올라올 수 있다면 일월가와 같은 세력을 굳이 중원에 만들 필요가 없었다.

“신무신단을 만들 수 있는 인물들을 빼돌렸겠군.”

“크하하핫! 이미 늦었다. 넌 절대로 그를 찾을 수 없어! 시간만 주어진다면 명부의 구천이 모두 열리며 중원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일월가는 그들에 비해 조족지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일월신은 대소를 터뜨렸다.

“신무신단은 완벽하게 제조할 수 없을 텐데?”

“그건 아쉬운 일이지. 하지만 그 정도의 신무신단이라면 충분히 감수할 정도는 된다. 계속해서 복용을 해야 하는 게 문제가 되겠지만.”

명족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중원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그럼 급한 건 신무신단을 막아내는 것이군.’

지금까지 들어간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앞으로는 제조할 수 없도록 막아야 했다.

“좋은 정보를 얻었소이다. 아, 그렇지. 조금 전 이곳을 빠져나간 인물의 흔적을 찾았다고 하더군.”

“…….”

일월신는 여전히 담담하게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쳤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이 흔들거렸다.

“그의 뒤를 쫓고 있으니 조만간 신무신단을 만드는 곳을 찾아내지 않겠소?”

“어떻게 알았지?”

“본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후후후. 세상에서 모르는 게 없는 완벽한 인물이 바로 본인이외다.”

“…….”

고진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는 그는 고진유였다.

“만들어놓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신무신단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요.”

“…….”

명부에서 신무신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세월을 보냈던가.

또다시 그런 세월을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흐음…… 근데 명족의 인물들이 신무신단을 복용하고 세상에 나올 수 있다면 반대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이냐?”

“신무신단의 완벽한 제조법은 내 머릿속에 있소. 우리가 완벽한 신무신단을 복용하면 명부에 들어가는 데 무리가 없을 수도 있겠군.”

일월신은 순간 당황했다.

“대체…….”

“가능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극일가의 심공으로 명족은 상대할 수 있지만 명부에 들어가는 건 힘들다고 봐야겠지. 근데 신무신단을 통해 명부에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진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저들과 달리 신무신단의 완벽한 제조법을 알고 있다.

“하아…… 사부님께서 중원이 아닌 세상을 구하셨구나.”

우연이라도 그때 사부가 철갑을 구하지 못했다면, 세상은 끝이 났을 것이었다.

“신무신단이 이렇게 중요한 물건인 줄은 몰랐소.”

“…….”

일월신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세상을 얻고자 한 일들이 오히려 명부의 멸망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일어났다.

“재미있지 않소? 그대들이 만든 욕심에 의해 스스로 멸망하고 있다니. 옛말이 틀린 게 없군요. 탐욕의 끝은 결국 멸망이라. 우리도 이제 끝을 내는 게 좋겠소이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아 들었다.

“이 검이 왜 사의검이라 불리는지 아시오?”

“…….”

“본인 사부님의 뜻을 이어가고자 붙인 이름이오. 본인은 사의검에 맹세를 했소. 사부님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놈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당신 덕분에 이제 알았소이다. 사부님을 죽인 건 명왕이었군.”

스으윽.

고진유는 사의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당신부터 차례대로 사부님의 원수를 갚을 것이오. 화산의 검으로.”

위이이잉-

사의검의 주위로 매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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