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66화 (366/425)

366화

적발 괴수로 변한 모습을 본 다른 세 사람 또한 결심이 섰다.

“크으으으으…….”

괴음을 내면서 그들 모두 괴수로 변하기 시작했다.

고진유는 담담하게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들과 마주친 순간부터 이미 그들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명족의 피가 섞여 있는 모양이군.”

“크크크크, 똑똑하군.”

“킬킬…… 우리를 잘 알고 있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휙휙휙휙!

괴수로 변한 그들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빠르기로 친다면 고진유의 신법도 그들 못지않았다.

팟팟팟팟-!

고진유의 신형도 서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듯 빠르게 움직였다.

한 줄기 빛줄기처럼 움직이면서 괴수들이 움직이는 뒤를 쫓기라도 하듯 따라붙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인양은 웃음이 나왔다.

그들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이는 인양밖에 없었다.

“후후, 쟤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연구를 안 하는 모양인가 봐요.”

“그러게 말이다. 그동안 진유 아우가 어떤 무공을 펼치는지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세상에서 신법으로는 진유 형을 절대로 잡을 수 없죠.”

인양의 시선은 괴수를 따라 움직이면서 미소를 짓는 고진유의 모습을 좇았다.

“하하, 형이 웃고 있어요. 그건 더 볼 것도 없다는 말이네요. 차라리 저 괴물들이 그대로 싸운다면 모를까.”

번쩍!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에서 섬광이 퍼져 나왔다.

괴수로 변한 일월진살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된 놈이,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 순간,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빛을 느꼈다.

파아앗!

괴수들은 빛이 자신들의 몸을 통과하는 것을 알았다.

금강불괴보다 더 단단하다고 자신했던 그들의 신체가 말이다.

“커어어어억!!”

괴수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오히려 놀란 건 고진유의 목소리였다.

“대단하네요. 본인의 검을 맞고도 바로 죽지 않는군요.”

“크르르르르…….”

괴수들이 신음을 흘리면서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고진유는 노군대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천운이라 생각했다.

이들의 실력은 은룡투인으로 변해야 상대할 정도로 강한 것이 확실했다.

“당신들은 운이 없군요. 하필이면 이곳에 일월가가 있다니…… 어쩌면 이것 또한 하늘과 땅, 그리고 세상의 뜻이 이어져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고. 극일가 출신인 본인이 화산파의 제자가 되어 여기로 온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

괴수들은 고진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크, 크으아아……!! 이노옴, 함께 죽을 것이다!!”

적발 괴수가 살광을 터뜨리며 쓰러진 자리에서 고진유를 향해 튀어 올랐다.

“당신만 죽을 것이외다.”

고진유는 동귀어진을 하기 위해 달려든 적발 괴수를 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아앗!

고진유와 적발 괴수 사이에 기막이 생겼다.

“크으으아……!!”

적발 괴수는 괴성을 터뜨리며 앞으로 빠져나오고자 발버둥을 쳤다.

고진유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괴수는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요.”

스스스스-

사의검을 든 손이 천천히 움직이고, 적발 괴수의 목을 향해 사의검이 지나갔다.

파아앗!

목이 잘린 적발 괴수는 비틀거리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아!!”

이번에는 세 명의 괴수들이 괴소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들 또한 동귀어진을 택한 것이다.

“그대들도 돌아들 가시오.”

고진유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번쩍!

사의검에서 검광이 쏟아지면서 괴수들의 시야를 가렸다.

쉬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지나간 사의검은 괴수들의 단단한 목을 차례대로 베었다.

툭. 툭툭.

괴수들의 목은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쓰러졌다.

머리를 잃은 괴수들의 몸 또한 적발 괴수처럼 비틀거리다가 전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일월가 심옥에 갇혀 있던 일월오진살은 고진유에 의해 너무나 허무히 목이 잘리며 사라졌다.

‘넓은 장소에서 제대로 싸웠다면 좀 더 어려웠을지도.’

고진유는 그들이 사라진 길을 뒤로 두고 건너편으로 향해 다가섰다.

우선 향천의 무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외길의 전방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휘익!

그의 뒤로 묵경과 인양이 뒤를 붙어 섰다.

외길을 완전히 건너온 세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우선 여기를 확보하고 있죠.”

“알겠어.”

고진유는 홀로 마을을 향해 삼 장 정도 앞으로 걸었다.

여전히 마을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걸음을 멈춘 채 마을을 주시했다.

‘아무도 없군.’

완전히 텅 빈 마을이었다.

‘그냥 비워놓았을 리는 없을 텐데. 마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 * *

일월신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초향에 의해 일월오진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들이…….’

은룡투인과 싸워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를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초향도 보고하면서 믿기지 않았다.

심옥에서 그들을 직접 데리고 나왔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보여준 기는 일월가의 가주 일월신과 충분히 비교할 만하다 생각했었다.

그런 다섯 인물이 너무나 쉽게 목이 잘리며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점점 초향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월은 극일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머리 위로 일월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향,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

“우리가 질 것 같은가?”

“아닙니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월신의 앞에서 어떻게 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크크…….”

일월신은 그를 보면서 비웃듯 괴소를 지었다.

“사실대로 말을 해도 괜찮은데. 괜히 내 눈치를 보고 있군.”

“…….”

“은룡투인은 역시 대단하지 않은가? 일월가 정도는 그에게는 쉬운 상대이겠지. 다만 내가 예측한 것과 달리 두 가지가 놀라웠다.”

일월신이 예상하지 못한 첫 번째는 그들이 먼저 일월가에 쳐들어왔다는 것.

극일가뿐만 아니라 중원은 늘 방어적인 성향을 지녔었으니까.

한데 당금의 은룡투인은 달랐다.

그는 일월가에서 공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수하들을 이끌고 먼저 공격했다.

두 번째는 그와 함께 온 인물들이 극일가의 무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명부를 상대할 극일가의 전력은 일월가에 온 향천 무인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아쉽군. 이번 싸움으로 최소한의 극일가 전력 절반 정도는 데리고 올 것이라 예상했거늘……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다니.’

일월신은 고개를 숙인 채 부복한 그를 보며 명령을 내렸다.

“자네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된 것 같군.”

“일월신님…….”

“초향, 명부를 위해 신무신단을 제조하는 임무를 끝까지 완성해야지 않겠나. 일월가의 끝으로 명부가 시작되는 것이니 잘된 일이다.”

“알겠습니다.”

“우린 잠시 얼굴을 못 보는 것이다. 나중에 명부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 그때 보도록.”

일월신은 초향이 밖으로 나간 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이 올라올 것은 기정사실.

다만 그들에게 얼마 정도의 피해를 줄지가 관건이었다.

‘지켜보는 것도 과연 재미있겠군.’

과연 여기까지 어떻게 통과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스윽.

일월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일월가에 온 기념 선물을 주도록 할까.”

* * *

고진유는 마을 앞에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안에 무엇인가 있다는 말이지?”

“그런 것 같아요.”

“그게 뭔데?”

“벽력탄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서요.”

“벽력탄이라…….”

묵경은 마을을 보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향천의 무인들이 마을을 지나가는 순간 숨겨놓았던 벽력탄이 터진다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게 확실하였다.

“그렇다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데.”

“…….”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고진유는 시선을 돌려 당우희를 불렀다.

“호청 사저, 잠시만요.”

당우희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야?”

“혹시 벽력탄을 가지고 있나요?”

“…….”

그녀는 눈동자를 돌리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어떻게 알았어? 몰래 만들어놓았던 것을 가지고 나왔는데.”

“후후후, 잘됐네요. 그게 필요해서요.”

“아…… 그래? 혹시나 해서 갖고 오긴 했어. 근데 어디 필요해?”

“저기 마을을 전부 폭발시켜야 할 것 같아서요. 가능한가요?”

“저곳을? 음…… 한꺼번에 사용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사저께서 마을을 폭발시켜 주세요.”

“알았어. 한번 해보지.”

당우희는 얼른 화산파 제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가죽 가방을 받아왔다.

장두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헤헷, 미안해요. 그냥 습관적으로…….”

“됐어. 어차피 가지고 올 줄 알았어.”

장두총은 그녀와 함께 마을 앞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하면 돼?”

“이 정도면 충분히 마을을 불태울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마을 중앙으로 던지세요.”

“알았다.”

타악!

그녀는 벽력탄 하나에 불을 붙인 뒤 장두총이 든 가죽 가방 안에 넣었다.

“됐어요. 지금 던지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벽력탄이 든 가죽 가방이 마을을 향해 던져졌다.

휘이익!

긴 포물선을 그리며 마을에 떨어진 순간, 장두총과 당우희는 빠르게 물러났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그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마을 안에서 벽력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면서 화염이 퍼져 나갔다.

벽력탄이 떨어진 장소에서 시작된 불은 점점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때였다.

바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폭발음이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솟구쳤다.

쿠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앞전의 폭음보다 더 강렬한 굉음과 함께 마을 전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앗,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당우희는 갑자기 터진 폭음 소리에 놀라 움찔거렸다.

“뭐? 당신 또 임신을……!”

퍽!

그녀는 장두총의 옆구리를 쳤다.

“아니거든요. 그냥 놀랐다는 말이잖아요.”

“크윽…… 난…… 또오…….”

화염의 열기가 떨어져 있는 향천의 무인들에게 전해졌다.

인양은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말을 이었다.

“저기 안에 그냥 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한 번 본 것만으로 마을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았다는 게 신기했다.

“우린 완전히 탈 때까지 기다려야겠어.”

“급할 게 없잖아요. 조급할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입니다. 잠시 쉬도록 하죠.”

“알겠다.”

멀리서 화염에 잠긴 마을을 지켜보는 시선.

“허참…… 애써 공들인 것들을 허무하게 만드는군.”

일월신은 마을에 숨겨 놓은 벽력탄으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 것이라 확신했다.

“흐음. 너무 티가 났나? 하긴 마을에 아무도 없으니 어느 정도 의심이 났을 수도 있겠지.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군.”

휙.

일월신은 돌아섰다.

“은룡투인, 이번은 몸 풀기였다. 앞으로 기대할 만할 것이다. 우리가 순순히 당할 것으로 생각은 안 하겠지?”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움직였다.

* * *

불에 탄 마을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거의 한 시진이 지났다.

마을 전체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깊은 구덩이들이 파였다.

일월가에서 심어놓은 벽력탄의 흔적들이었다.

향천의 무인들은 마을을 지난 뒤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지나가는 좌우는 깊은 나무들이 하늘을 막을 정도로 높았다.

“여기는 매복하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 같은데…….”

녹림야검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기습을 하기에도 너무 티가 난다는 점이었다.

‘설마 이것을 이용해서…….’

오히려 그것이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천주님, 이 장소는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이곳은 기습이 아니라 다른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습이 맞을 겁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일월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순진해서 잔머리를 굴리지 못하는 거야.”

“아하…… 단순한 애들이군요.”

고진유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 듯했다.

녹림야검은 향천의 무인들에게 조만간 기습이 있을 것이라 알리고는 안으로 움직이면서 주위를 살폈다.

고개를 들자 머리 위 나뭇가지에 수많은 검은 물체들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음…… 저건 뭐지?’

처음에는 나무에 붙어 있는 나뭇잎이나 열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뭇잎과 열매라고 하기에 너무 컸다.

‘사람? 설마 했는데…….’

녹림야검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적의 기습입니다!”

녹림야검의 목소리가 향천의 무인들에게 퍼져 나갔다.

두두두두-

그의 목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나무 위에서 수많은 검은 물체들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월살이군.”

고진유는 떨어지는 그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파아아앗!

이번에는 숲속에서 비수들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향천의 무인들을 향해 일월살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기습은 상대가 몰랐을 땐 완벽한 작전이지만 미리 알고 준비하면 아무리 대단해도 실패한 것이지.’

향천의 무인들은 기습이 있을 것을 알고 기다린 상태였다.

그들은 중원 최고의 무인들.

기습을 예상하지 못하더라도 날아오는 비수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실력이었다.

채애애앵!

비수들이 낙엽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