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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65화 (365/425)

365화

회양의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무림은자 고진유가 나서면서 일월가의 괴물들을 물리쳤다는 소문은 또 한 번 사람들 사이에서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일월가는 하남성의 주구 녹읍에 숨어 있었다.

후산은 주구 녹읍에서 가장 골이 깊은 산 중 하나.

회양에서 녹읍까지는 빠르게 움직이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향천은 녹읍의 초입에 들어섰다.

고진유뿐만 아니라 화산파 제자들에게 녹읍은 특별한 장소였다.

녹읍은 성인 노자의 고향이며 노군대의 사당이 세워진 곳이었다.

“이거 참…….”

고진유는 황당한 목소리를 냈다.

노군대가 주는 의미는 도인에게 특별했다.

화산파가 무림문파라 하나 무공의 기본 무리는 도교의 음양 사상에 기초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도교의 시조라 불린 노자께서 태어난 마을에 일월가가 있다는 건 황당한 일이었다.

묵경은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는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형은 여기가 어딘지 아시죠?”

“일월가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죠.”

“표정을 보아하니 그것 때문에 물어본 것은 아니고. 녹읍이라면…… 아하, 여긴 노군대가 있지?”

”맞아요. 어떻게 보면 본 문과도 연관된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어요.”

“그렇겠군.”

고진유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화산파 제자들도 평소와 다르게 경건한 듯 보였다.

“하필이면 이런 장소에 그들이 있군. 설마 일부러 여기에 자리한 건 아니겠지?”

“설마요. 우연이겠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텐데…… 다녀올까?”

“그럴까요?”

아무리 바빠도 옆에 있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잠시 노군대로 갔다 오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노군대 사당은 얼마 높지 않은 계단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인양까지 포함한 일곱 명의 사형제들과 함께 천천히 계단에 올라섰다.

“이곳에 이런 식으로 오르게 될 줄은 몰랐다.”

대사형 우종성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도 한 번쯤은 노군대에 찾아온 뒤 제를 지내고자 했었다.

화산파 사형제들만 노군대에 올라선 뒤 사당으로 향했다.

고진유가 마지막으로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

사당 안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어.’

사당 한쪽으로 노도사의 모습이 보였다.

한데 사형제들은 그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노도사는 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도덕경의 구절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화산파에서 지낼 당시 도덕경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노도사가 중얼거린 구절도 배워 알고 있었다.

근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같은 구절이건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그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람은…… 땅을 본보고 땅은 하늘을 본보고 하늘은 도를 본보고 도는 무위자연을 따르니라.’

무위자연이라…….

무위자연이란 말에 세상이 멈춘 듯했다.

쉬이이이이-

고진유의 몸에 있던 세 개의 단전에서 바람처럼 무엇인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사제가…….’

그의 얼굴에서 황금빛이 은은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우종성은 손을 천천히 들어 사형제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진정시켰다.

그들 또한 고진유의 변화를 보았다.

고진유는 가만히 선 채 무위에 대해 몸으로 받아들이며 깨우쳐갔다.

‘자연은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사람은 만든다. 세상은 이들이 모여 있는 자연일 뿐. 무위를 어기지 못하니 무위를 넘지 못하고 무위는 알지 못하니 무위를 알려고 하지 마라. 무위는 정(精)도 아니며 신(神)도 아니며 기(氣)아니거늘 어찌 알고자 할까.’

고진유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몸에 있던 세 개의 단전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무인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고진유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씨익.

그냥 웃음이 나왔다.

우종성과 사형제들은 미소를 띤 고진유를 보았다.

그는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인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고진유의 신형에서 주는 느낌은 달라졌다.

“사제, 괜찮은가?”

“네. 대사형. 제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네요.”

“그렇군.”

“이제 내려가시죠.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사형제들은 우종성을 따라 사당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까지 사당 안에 있던 고진유는 노도사가 있던 방향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덕경을 외우던 노도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형제들은 그분을 보지 못했다.

‘그분은 살아 계신 분이 아니었어.’

고진유는 사당을 떠나기 전 노도사가 앉아 있던 자리를 향해 경건하게 허리를 숙였다.

* * *

후산의 산문을 오른 뒤 일월가를 향했다.

산속에 생각지도 않은 마을이 나타났다.

“저기에 마을이 있는데요?”

하지만 인양은 마을로 쉽게 들어서지 못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서너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을 지닌 외길.

그 옆으로는 아래의 끝이 보이지 않은 낭떠러지였다.

묵경이 그곳을 보며 혀를 찼다.

“저 마을부터 일월가겠군. 들어가는 것부터 평범하지는 않네.”

“마을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양도 한참을 살폈지만 움직이는 기척을 찾아내지 못했다.

“일월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저기 마을을 지나야 하는군.”

남궁무명도 마을을 지나지 않고서는 일월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유심히 살폈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쉽지는 않겠어.’

스윽.

마을을 살피기 위해 인양과 녹림야검이 앞으로 나서고자 했다.

“저희가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고진유는 앞으로 나가려던 두 사람을 말렸다.

“누군가 나온다.”

“…….”

건너편 마을에서 다섯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들이군.”

처음 보는 인물들이지만 느낌상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가 말했지. 일월가에는 다섯 명의 감당하지 못할 괴물들이 있다고.’

“두 사람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먼저 갔다 오겠어.”

“알겠어요.”

고진유는 혼자 나섰다.

그와 동시에 마을에 있던 다섯 명의 인물들도 앞으로 나왔다.

고진유는 낭떠러지의 외길에서 만난 그들을 보며 물었다.

“당신들이 일월오진살이오?”

“크크크. 우리를 아는 넌 누구지?”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인물.

후인구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고진유의 온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곧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기를 막아내거나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살기는 상대의 전신을 베고 지나갔지만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았다.

고진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일월가에서 본인을 은룡투인이라고 부르더군요.”

“역시…… 네놈일 줄 알았다.”

스윽.

후인구의 뒤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훗, 은룡투인이 너무 귀엽게 생겼잖아.”

“좋게 봐줘서 고맙네요.”

“어라? 넉살도 좋은데?”

그녀는 미소를 짓는 고진유를 뚫어지게 보았다.

“은룡투인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군. 그래서 우리와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몰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들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후인구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크크크크. 자신감이 너무 심한데? 감히 우리 앞에서 겁을 상실하다니 미친 게 아닌가?”

“한 번 확인해 보겠어요? 내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근거 있는 자신감인지.”

“큭, 역시 미친놈이군.”

“겨우 그것으로 우리가 흥분할 것 같으냐?”

그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고진유의 말을 받아넘겼다.

“말이 통하지 않은 인물들이군요. 그렇다면 몸으로 가르쳐 주는 수밖에.”

번쩍!

후인구의 눈앞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이런 망할 놈이……!”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흑발 노인이 고함 소리와 함께 앞으로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일장을 뻗어내며 달려 나왔지만 흑발 노인은 거대한 기에 막혀 오히려 반대로 밀려 나갔다.

‘어떻게 된 놈이지?’

자신들이 뿜어낸 살기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뒤로 물러났던 흑발 노인은 여전히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않는 후인구를 보았다.

“괜찮은가?”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으으으.

후인구의 목이 미끄러지며 땅에 떨어졌다.

“……!!”

흑발 노인뿐만 아니라 세 명의 일월진살들은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깔끔하게 갔군. 어떻게 죽인 걸까?”

상대의 검은 여전히 허리에 찬 검집에 그대로 있었다.

동료가 죽었는데도 흥분해 날뛰기는커녕 그들 네 명은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후인구를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할 뿐.

휘익!

맨 앞으로 나선 여인.

지화령의 상의 소매가 허리선을 넘어 무릎까지 풀려 닿았다.

“용맥을 계승했다는 말이 사실이네. 생긴 모습은 귀여운데 너무 겁나는걸. 한 명 죽였다고 우리를 너무 쉽게 보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말은 하기 싫지만 죽은 그가 있으나 없으나 본인에게는 의미가 없소이다.”

“크하하하하!”

그녀의 뒤에 있던 명양은 대소를 터뜨렸다.

“역시 광오하다. 은룡투인 정도라면, 아암……! 이 정도 배짱은 가지고 있어야지. 마음에 드는군.”

“당신들은 직접 보니 들은 말과는 조금 다르군요.”

“크크크. 누군가 우릴 괴물이라고 했는가? 근데 그 말은 맞아. 한때 우린 눈에 보이는 게 없었지.”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오?”

“심옥에 있으면서 많이 순해졌다고 할 수 있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이유라도 있소?”

“크크크크. 은룡투인이 이렇게 웃긴 놈이 줄은 몰랐다. 이유라 물었나? 네놈의 사지를 찢어서 가루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거든. 이해가 되었나?”

“흠.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근데 당신이 내 몸에 손이라도 만질 수 있을지 모르겠군.”

파아앗!

명양의 신형이 순식간에 고진유를 향해 다가섰다.

폭이 좁은 외길에서 다가온 살기들.

“네놈은 여기에서 물러날 곳이 없을 것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으며 앞으로 그었다.

슈우우우웅.

사의검에서 바람과 함께 검강이 쏟아졌다.

콰아아앙!!

“우욱.”

폭음과 함께 고진유의 검강과 부딪힌 명양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반격에 충격을 받았다. 상대는 생각한 것보다 더 강했다.

그는 완전히 풀린 다리를 억지로 버티며 서 있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다른 분이 나와도 좋습니다.”

타아앗.

탓!

이번에는 명양의 어깨 너머로 두 명의 노인이 몸을 날리며 고진유의 앞에 내려섰다.

“은룡투인, 그대가 얼마나 강한지 싸우고 싶군.”

“얼마든지…… 당신들이 먼저 공격했으니 일단 본인의 검을 한 번 막아보는 게 좋을 것이오.”

“…….”

사의검을 든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동시에 눈앞에서 세워졌다.

파라라라락!

두 명의 노인.

흑발 노인과 적발 노인은 마치 한 몸처럼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인다고 해서 피할 수 있을 것 같소?”

우르르르-

천둥소리가 그들 머리 위에서 울렸다.

적발 노인은 이마에 보이지 않았던 주름이 깊이 생겼다.

‘절대로 가볍게 볼 위력이 아니다.’

막장이 아니라 끝장을 보겠다는 의미처럼, 고진유가 보여주는 위력은 거대했다.

우우우우웅-

대기의 하늘이 진동하며 두 노인을 향해 사의검이 만들어낸 검기가 먼저 떨어졌다.

쉬이이이익!

뒤를 이어 사의검이 그들 앞으로 떨어졌다.

적발 노인과 흑발 노인은 동시에 손을 뻗어 강막을 만들어내며 검기를 막아냈다.

콰아아앙-!!

적발 노인과 흑발 노인은 그 뒤의 공격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강막을 뚫고 들어오는 사의검을 보면서 경악했다.

‘이런 미친……!’

파아악.

사의검이 동시에 두 명의 가슴을 지나갔다.

“커억…….”

“우우욱.”

짧은 신음을 내며 뒤로 밀려 나갔다.

전신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놀란 건 당사자인 그들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명양과 지화령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단번에 깨달았다.

‘이…… 자는 우리가 상대할 실력이 아니다.’

오래전 명왕과 싸워 이긴 극일가의 은룡투인.

그 사실을 또 한 번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월가주…… 이놈이……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구나.’

사의검을 아래로 내린 채 서 있는 고진유의 모습은 자연 그대로였다.

‘이길 수 없어…….’

그들이 일월오진살이라 해도 그는 은룡투인이었다.

“젠장…… 이길 수 없다면 함께 죽는 수밖에……!”

적발 노인의 몸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그의 전신에서 붉은 털이 솟구치며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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