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덜컹.
심옥으로 내려가는 만년한철의 문이 열렸다.
쏴아아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에서 한기가 밀려 올라왔다.
“…….”
죽음조차 두렵지 않은 일월가의 인물이지만 일월오진살은 이름만으로도 겁이 날 만큼 달랐다.
초향은 심옥일문의 간수를 보며 부탁을 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주게.”
“네. 알겠습니다.”
심옥의 문을 담당하는 간수에게 한 번 더 당부를 한 뒤, 계단 아래로 힘들게 한두 걸음 내려섰다.
쿵!
“헉…….”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서 심옥의 문이 닫혔다.
‘아이고, 심장이야.’
긴장한 탓인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간수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얼른 철문을 잠겼다.
초향은 닫힌 철문을 본 뒤 호흡을 길게 내쉬며 다시 아래로 내려섰다.
휘익.
손에 든 횃불이 아래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흩날렸다.
계단을 완전히 내려오자, 생각한 것보다 큰 통로가 나타났다.
그는 심옥에는 처음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통로 옆으로 횃불들이 걸려 있었다.
심옥이문이 보였다.
‘여기가 두 번째 문인가 보군.’
만일의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심옥은 세 개의 문으로 막아놓았다.
똑똑.
철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누구요?”
철문의 작은 구멍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일월살 갑인 초향이라 한다.”
“갑인? 갑인이 여기는 뭔 일로?”
“…….”
일월살의 갑인이라면 일월가에서도 제법 높은 위치.
설마 심옥의 간수에게 반말을 들을 줄 몰랐다.
“일월오진살을…… 만나러 왔다.”
“미친놈이구만. 오괴들을 왜 만나러 오는데?”
“…….”
누군지는 모르지만 간수가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을인의 신분을 넘지 못할 터.
다른 곳이었다면 당장 목을 베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끼이이이익-
두 번째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열리는 철문의 틈 사이, 어둠 속에서 사내는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거친 목소리와 달리 곱상하게 생긴 사내였다.
“방금 목소리가…… 당신이오?”
“그렇소. 목소리에 비해 생긴 게 이상한 모양이지?”
“……그건 아니오. 단지 목소리를 듣고 연상이 안 됐을 뿐.”
간수는 그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당신이 그놈들을 왜 찾는 거요?”
“그들을 함께 올라가고자 데리러 왔소이다.”
“크핫!”
심옥의 간수는 동굴이 떠나가도록 웃어젖혔다.
초향은 대소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혹시 잘못 말한 게 있는 지 한 번 더 되새겨 보았다.
그는 불쑥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초향의 표정과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
“이런…… 장난이 아니었군. 일월오진살을 데리고 나가는 사실을 가주께서 알고 계신가?”
“그분의 허락을 받았네.”
“가주께서도 잘 아시면서 그들을 지상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하시다니…….”
“…….”
“뭐…… 하긴 가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데리고 가든지, 업고 가든지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간수는 허리에 찼던 열쇠 꾸러미에서 붉은색으로 칠한 열쇠를 꺼냈다.
“받으시오. 심옥삼문의 열쇠요.”
휘익!
앞으로 던지자, 초향은 떨어지기 전에 붉은 열쇠를 잡았다.
“그건 그들이 갇혀 있는 옥문의 열쇠이기도 하지만, 묶여 있는 철 족쇄의 열쇠이기도 하오. 잘해보시오.”
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문 밖으로 움직였다.
“어디 가는 거요?”
“괜히 안에 있다가 저놈들에게 죽기는 싫소. 살아서 봅시다.”
“…….”
“나중에 나갈 때 부르시고. 그때 문을 열어주겠소.”
간수는 겁을 준 뒤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잠갔다.
초향은 간수가 보이는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얼마나 두려우면…… 모두 나간 뒤 문을 잠그다니…….’
두근두근.
그는 심장이 떨리는 가운데 심옥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까지지?’
저벅저벅.
심옥 안을 한참 걸은 듯했다.
동굴인지, 아니면 복도인지 모를 통로를 지나자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심옥의 끝이 나타나는가 하는 순간, 예상과는 달리 전방은 점점 환해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햇빛이 비치는 심옥의 끝에서 냉기가 싸늘하게 밀려왔다.
‘……이 기운들이?’
그들에 대해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일월가의 괴물들. 천살성조차 뛰어넘는 살괴지성체.’
십 년마다 한 명씩, 오십 년 동안 다섯 명이나 태어나면서 명족의 피를 수혈한 인물들이라 했다.
전대 가주셨던 일월신께서 만일을 위해 죽이지 않고 심옥을 만들어 가두어 놓은 것.
초향은 햇빛이 비치는 쇠창살 앞에 섰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멈칫거리며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초향은 붉은 열쇠를 든 손을 보았다.
‘휴우…… 어차피 이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쇠창살의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철컥.
잠겨 있던 쇠창살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문을 당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쿵쿵.
심장이 점점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뚫려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일월가 본 건물 뒤편에 있는 후산의 지하 분지가 확실했다.
‘심옥이 이런 곳일 줄은…….’
초향은 천천히 안으로 걸었다.
작은 연못을 둔 마당 앞에 세 채의 삼간초옥들이 지어져 있었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는 말인가?’
심옥 안은 더는 다른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는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초향은 마당에 선 채 큰 소리로 안을 향해 소리쳤다.
“후배 일월살 갑인 초향이라 합니다.”
초옥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누군가 했더니 일월살의 갑인이군. 상당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잖아.”
이번에는 옆의 초옥에서 걸쭉한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후배는 여기에 무슨 일로 왔는가?”
“다섯 분께 부탁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우리에게 부탁한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부탁이라고 한다면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게 맞겠지?”
“…….”
끼이익.
초옥의 문이 열리면서 그들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살성의 기가 가득한 그들의 신형.
강렬한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단번에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크큭…… 일월가의 인물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
“아…… 닙니다.”
“오랜만에 간수 놈 얼굴 말고 새로운 인물을 보는군.”
나머지 방문까지 열리며 다섯 명의 인물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
그들 다섯 명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살괴지성체이기에 괴물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너무나 평범한 모습 그대로였다.
한 명의 여인과 두 명의 노인, 그리고 두 명의 중년 사내가 심옥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다섯 명 중 적발 노인만이 사지에 철 족쇄가 묶여 있었다.
스윽.
그들 중 야윈 사내가 앞으로 다가서며 초향을 맞이했다.
걸쭉한 목소리의 사내였다.
“후배님, 심옥에 잘 왔네. 자네를 초향이라 부르면 되겠는가?”
“네. 아무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그들 다섯 명은 마당에 놓인 바위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초향은 여기 우리 앞에 앉도록 하지?”
“……죄송하지만 선배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우리 이름? 그런 거 없다. 그냥 나를 부를 때는 명양이라 불러라.”
친근하게 부르는 목소리이지만 살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초향은 긴장한 채 그들 앞에 앉았다.
스윽.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더니 초향의 어깨를 살짝 주물렀다.
“후후훗, 귀여운 후배이구만. 너무 긴장 안 해도 되네. 우리가 설마 같은 동족을 잡아먹을까 걱정이 되는가?”
“…….”
“우린 저기 아래에 있는 식인 놈들과는 다르다니까?”
그녀가 말한 식인 놈들은 명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 네에…….”
“우리에게 부탁이 있다고 하던데. 무엇일까?”
“그게…… 본 가로 쳐들어오는 놈들이 있습니다.”
“오호? 그게 정말인가? 이거 놀라운 일이구만.”
그녀는 놀란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두 명의 노인 중 흑발 노인의 눈에서 살광이 번쩍거렸다.
“여기로 온다는 그놈들은 극일가의 인물들인가?”
그의 목소리는 마치 원수를 대하는 태도였다.
“정확하게는 극일가가 아닙니다. 향천이라고…… 극일가의 은룡투인이 무림인을 모아서 만든 세력입니다.”
“은룡투인? 용맥의 계승자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 습니다.”
“극일가는 오지 않고?”
“향천만을 끌고 오는 중입니다.”
“하! 무림의 무인을 데리고 오는 것이라면 분명 일월가를 무시하는 모양이군.”
“……오백의 일월살들이 그들에게 단번에 당했습니다.”
“…….”
초향의 말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심옥에서 지내는 자신들을 찾으러 내려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크크크크, 극일가도 아니고 중원의 잔챙이들을 이끌고 오는 놈들에게 질 것 같아서 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군. 이거 어이가 없어서. 언제부터 일월가가 중원 무림에 겁을 먹었지?”
초향은 고개를 돌렸다. 흑발 노인의 살광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뒤이어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봐요. 초향 씨.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
“그들을…… 막아주시면…… 됩니다.”
“응. 그놈들을 막아주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보상이 쓰잘데기 없는 거라면 지금 죽을 수 있어.”
“…….”
“설마 후배를 보낸 가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낸 것은 아니지 않아?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난 안 했다고 보는데, 안 그래?”
“네. 맞습니다. 가주님…… 께서…… 그들은 막아낸 뒤는 알아서 하셔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마음대로 하라? 우리 입장에서는 좋긴 하지. 근데 많이 피곤할 텐데. 참으로 이상하군. 가주가 그걸 모르지 않을 테고…… 무슨 더러운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초향은 가슴 품 안에서 천에 싼 물건을 꺼내었다.
“여기…… 있습니다. 가주님께서 드리라고 한 물건입니다.”
“이게 뭔가?”
“신무신단입니다. 가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구 할에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
여인은 천을 빠르게 푼 뒤 옥병에 든 신무신단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이것 보세요. 약효가 구 할이라면 거의 완치나 마찬가지인가 봐요. 아쉽게 완성된 건 아니지만, 신무신단이라면 명족의 피에 의해 갇혀 있던 제재를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허, 이놈들이 결국 신무신단을 만들어낼 줄이야! 만일 이게 성공하면 명부와 세상의 기준이 사라지는 것인가?”
“맞아요.”
“클클…… 세상은 모르겠지? 명부에서 일월가를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무슨 말이지? 경계가 사라진다고?’
초향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의 모습을 본 여인이 물었다.
“명부에서 일월가를 세운 목적이 뭘까?”
“그건…… 일월가가 멸문하면 명부의 언약이 깨지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후훗, 그 말도 맞긴 해. 하나 일월가가 중원인들에 의해 멸망하더라도 명부에서 올라올 수 있는 기한은 일 년뿐이지. 만일 이 언약을 어길 시 온몸이 사라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 외에 다른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신무신단이다. 그걸 만들기 위해서 일월가를 세웠다고 할 수 있지. 세상에 존재하는 재료로 만들어진 신무신단을 복용한다면, 어떠한 제약이나 언약을 지키지 않아도 몸에는 상관없게 되거든.”
초향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무신단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저 무공의 내력을 높여주는 신단이라고 알았는데…… 정말로 이들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명부와 세상의 경계는 사라질 게 확실했다.
일월오진살. 그들 또한 명족의 피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상에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신무신단이라면 몸속에 퍼져 있는 언약의 덩어리를 녹일 수 있었다.
“좋았어. 이것을 얻는 기념으로 가주의 뜻을 따라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난다면 우리에게서 신경을 끊어야 할 것이다.”
“알…… 겠습니다.”
철컹!
적발 노인이 일어나자 철 족쇄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여기를 나가는 게 좋겠군.”
파앗!
적발 노인이 손발에 내력을 끌어 올리자 철 족쇄가 모래가 부서지듯 떨어져 나갔다.
초향은 족쇄를 풀어내는 그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순간 깨달았다.
‘심옥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게 아니라 안 나간 것이야. 언약에 걸려 이들도 세상에 나가지 못한 것이었어.’
그의 생각이 맞았다.
일월오진살은 전대 가주에 의해 잡힌 뒤 심옥에 차례대로 가두어졌다.
그들을 죄인으로 가두고자 했다면 내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했을 터.
하지만 어떠한 제재로 하지 않은 채 심옥에 보냈다.
그들 다섯 명 또한 가주의 뜻을 알았다.
“그래도 정이 들었는데 떠나자니 아쉽군.”
“후훗, 그럼 좀 더 있던지요?”
“후 형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설마 심심한 이곳에 더 있고 싶을까?”
후인구은 그녀와 명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이 죽자고 달려드는구만. 어디 농담도 못 하겠군.”
“어머나, 당연히 농담인 줄 알죠.”
그녀는 웃으면서 가만히 서 있는 초향을 보았다.
“초향 씨, 뭐 하고 있나요? 앞장을 서세요.”
“넵. 알겠습니다.”
초향은 얼른 앞으로 나서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