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다다다다-
구호군장 철준홍은 검을 치켜들며 달렸다.
휘이익!
“크아아아아-”
철준홍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일월살이 날아왔다.
‘헉……!’
철준홍은 달려드는 일월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까앙!
하지만 일월살의 몸에서 그의 검이 튕겨 나갔다.
“크하하핫! 겨우 그 정도로 내 몸에 상처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의 심장을 파내어주겠다!”
일월살의 손이 뻗어 나오며 철준홍을 심장을 파내기 위해 가슴으로 향했다.
“으윽!”
철준홍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다가 무엇인가 발에 걸려 넘어졌다.
“군장님을 구해라!!”
와락.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철준홍을 보호하기 위해 넘어진 그의 몸 위로 둘러쌌다.
“커억!”
일월살의 손이 병사의 등을 뚫기 시작했다.
푹, 푹. 푹.
크게 구멍이 뚫린 병사들을 한 명씩 잡아당기며 옆으로 내던졌다.
마지막 병사까지 치워진 후, 일월살은 바닥에 쓰러져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철준홍을 보며 살소를 피웠다.
“키킥, 이젠 네놈을 구해줄 수 있는 놈은 없는 것 같군.”
일월살이 괴소를 지으며 철준홍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심장을 먹어주마!!”
놈의 손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똑바로 보며 마지막이 왔음을 알았다.
그때였다.
스걱.
일월살의 뒤에서 빛이 일며, 무엇인가 가볍게 잘려 나갔다.
투욱.
그리고 절대로 잘리지 않을 것 같았던 괴물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
그의 앞으로 청년이 다가왔다.
손을 내밀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습니까?”
“누, 누구…… 신지…….”
“고진유라 합니다.”
‘아…… 하…… 이분께서……!’
청년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중원 최고의 청년이 아닌가.
황제는 그를 가리켜 짐의 사위라 부를 정도였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며 무림은자라 불리는 사내.
철준홍은 고진유의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마음이 안정되며 주위가 시선에 들어왔다.
은빛 무인들이 괴물들의 목을 너무나 쉽게 베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을 주던 일월살들이 불쌍하게 보일 정도였다.
철준홍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고 대인님을 뵙습니다. 소장은 구호군장 철준홍이라 합니다.”
“철 장군께서 백성들을 위해 출진하셨군요.”
“회양에서 일어난 변고를 들어 긴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출진하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위한 장군의 애민심이 너무나 훌륭하십니다.”
“아닙니다. 소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네에…….”
스르륵.
고진유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일월살들을 향해 다가갔다.
‘저놈들은…….’
백향의 눈에 수하들의 목을 베는 은빛 무인들이 보였다.
금강불괴의 육신을 지닌 일월살을 쉽게 상대하며 하나씩 목을 베어 밀어내고 있었다.
은빛 무의의 가슴에 향천이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향천이라면…… 은룡투인? 어디 있지?’
스윽.
백향이 고개를 돌리며 찾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청년이 다가서 있었다.
“당신이 이들의 수장인가 보군.”
“은…… 룡투인인가?”
“맞소. 본인이오.”
“…….”
말이 필요 없었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고 방심하고 있을 때 먼저 움직였다.
팟!
그의 손이 비수로 변하며 고진유의 가슴으로 한 줄기 빛처럼 다가갔다.
“당신들도 기습이라는 것을 하는군요!”
휙!
고진유는 옆으로 비켜서며 그의 손을 피했다.
팟팟팟!
이번에는 반대편 손이 세 배나 빠르게 고진유의 가슴으로 향했다.
처억.
고진유는 다시 옆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앞으로 뻗어 나온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
백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손에 잡힌 손을 빼내고자 힘을 주려고 했다.
우우우웅-
그리고 곧바로 아래에서 거대한 기의 파장이 느껴졌다.
퍼어어억-!!
백향의 복부를 강타한 고진유의 장법.
장력의 충격이 그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커어어억……!!”
순간 찌릿함이 지나가고, 등 뒤가 장력의 충격에 불쑥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숭패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백향은 복부가 파열된 채 숨이 끊어졌다.
그의 죽음 뒤로 살아 있던 일월살 또한 간단히 정리되었다.
‘엄, 엄청나다…… 왜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지 알겠어…….’
신의 경지라 하던 무공 실력.
철준홍은 그 소문을 들었지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본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
휘익.
고진유 곁으로 묵경이 다가섰다.
“모두 끝났어.”
“다친 곳은 없어요?”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수고했어요.”
고진유는 말을 하면서 멀리 한쪽을 주시했다.
“형, 여기 정리 좀 해주세요. 잠시 갔다 올게요.”
“오냐.”
* * *
토비천과 목비천은 말없이 전장을 주시했다.
“저들이 향천인가.”
“우리가…… 질 수밖에 없었겠군.”
향천이라 불린 그들.
일월살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그들의 무력은 강했다.
“우린 정말로 최선을 다한 게 맞았구려. 상대가 너무 강했어.”
“그러게 말이네.”
두 사람은 상대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으으으-
그들 앞에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녕들 하시오.”
“…….”
앞에 나타날 때까지 전혀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빛 무의의 청년.
“그대가 은룡투인인가 보군요.”
“그렇소이다. 어느 분께서 나에게 연락을 띄웠소이까?”
“본인이외다.”
고진유는 토비천을 유심히 보았다.
극일천의 간자인 그들은 어쩌면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을 마주하면서도 적의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우린…… 무림인이오.”
‘……무림인이라.’
다른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토비천의 대답에 이유가 들어 있었다.
“그렇군요. 우린 무림인이지요.”
“…….”
고진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대로 돌아갈 수 있겠소이까?”
“오래 살았소이다. 더구나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소. 생의 즐거움은 이미 많이 느꼈으니.”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면 무서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대를 보니 일월가는 문제없이 정리되겠소이다. 다만…….”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더는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마시고 편하게 지내시지요.”
“……그렇게 하리다. 그대의 무운을 빌도록 하겠소.”
“살펴 가시지요.”
스륵.
목비천과 토비천은 짧게 고개를 숙인 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고진유는 사라진 방향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대들은 진정한 무림인이외다.’
* * *
토비천과 목비천은 일월가에 들어섰다.
‘으음…….’
토비천은 정문에 기다리고 있는 인영을 보았다.
“어허. 우리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 또한 싫어하는구려.”
“상당히 열받은 것 같네.”
“후후후. 당연하지 않겠나.”
“드디어 세 녀석을 만나러 가는 것인가?”
목비천은 오히려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가보세나.”
“그러지, 뭐…….”
일월살 흑향은 정문으로 다가온 두 사람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당신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다가오지? 물러가라!”
“흑향, 일월가의 사람이 일월가에 오는 것이거늘 왜 물러가라고 하는 것인가?”
“퉷, 배신자가…… 뻔뻔하군.”
“가주께서 우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는가?”
“일월가는 절대로 배신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놈들은 여기에서 죽을 것이다.”
“클클클…….”
목비천이 괴소를 지으며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죽을 자리를 찾아왔건만 고맙네. 어서 죽여주게나.”
“…….”
“이보게, 내가 먼저 가지.”
“그리하게나. 나도 바로 가겠네.”
토비천은 바로 그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스윽.
목비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 새끼가…….”
흑향의 눈동자에 살기가 나오며 목비천을 노려보았다.
휘익.
길게 뻗은 날카로운 손톱이 목비천의 목을 지나갔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동작이지만 그는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았다.
스으으윽.
목비천의 목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떨어졌다.
“…….”
흑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목이 잘린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죽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라고?’
“잘 가게나.”
의아한 시선으로 토비천을 보자, 그는 이승을 떠난 목비천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흑향은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배신자 놈들이…… 죽고 싶어서 지랄하는군.”
“한 번 더 말하지만 우린 배신자는 아닐세.”
“네놈이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배신자일 뿐이다. 저놈처럼 네놈도 죽어야겠다.”
“후후…… 나도 굳이 살 마음은 없네. 하지만 네놈은 내가 떠날 때 함께 데리고 가는 게 좋겠군. 목비천을 죽인 놈이니깐. 원수는 갚아야지 않겠나.”
“…….”
토비천은 눈동자가 백색으로 변하면서 흑향을 주시했다.
‘어어…… 이…… 이놈이…….’
몸속 심장으로 가해지는 압박.
흑향은 얼른 내력을 올려 그의 압박을 밀어내고자 했다.
스윽.
그 순간, 토비천이 다가오면서 한 손으로 흑향의 어깨를 잡았다.
“자네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게.”
“어어억……!”
토비천의 백안이 번쩍거리자 두 사람은 섬광의 공간에 갇혀 폭발했다.
파아아아앙-!!
일월가의 정문이 흔들거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발했던 섬광이 옅어져 가고,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햇빛에 녹은 눈처럼 사라졌다.
* * *
“흑향이 그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멍청한 놈. 내가 미리 그놈에 대해 주의를 줬건만.”
가주 일월신은 보고를 받기 전, 이미 흑향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일월신은 담담했다.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흑향의 죽음은 기억 속에서 지우면 될 뿐이었다.
“죽을 놈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지. 그게 그놈의 운명이라면 잘 죽은 것이거늘. 신경 쓸 필요 없다.”
“알겠사옵니다.”
“백향을 죽인 놈들은 어디에 갔지?”
“그렇지 않아도 사방을 뒤져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찾도록 하겠습니다.”
“…….”
일월신의 표정에는 여전히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스윽.
그는 손을 들었다.
“아니…… 됐다. 그들을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들의 목적지는 이곳, 본 가로 향해 오고 있다.”
일월신은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에 대해 확신했다.
향천이 직접 회양에 나섰다는 건 일월가를 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큭…… 이곳으로 오겠단 말이지?”
그는 오히려 즐거운 듯 괴소가 흘렀다.
잘된 일이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형주로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가주님, 그놈들이 본 가에 온다면 모든 전력을 다해야지 않겠습니까?”
“무슨 의미인가?”
“본 가에는 강한 자들이 있지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일월신의 표정이 처음으로 싫은 내색이 나왔다.
“지금 일월오진살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초향, 자네는 일월오진살을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지?”
“……그건…….”
그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일월가의 심옥에 갇혀 있는 다섯 괴물들.
명족조차 상대하기 힘들다는 일월오진살에게 그들이 명을 내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들 개개인이 본인과 비슷한 힘을 내는 줄은 알고 있겠지? 더구나 세 놈만 붙어도 난 그들을 못 이겨.”
“…….”
“다행히 전대 가주께서 심향초를 먹여 겨우 한 놈씩 잡아놓지 않았다면 절대로 심옥에 가두지 못했을 거다.”
가주의 말처럼 상당히 위험한 존재들이 분명했다.
일월가에서도 부담스러운 그들을 심옥에서 함부로 풀어놓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없던…….”
“흐음, 하지만 좋은 계획이야. 그놈들을 데리고 가서 은룡투인이란 놈에게 던져주고 와.”
“…….”
“말을 꺼낸 놈이 시작해야지. 내가 할까?”
“아닙니다. 소신이 그들에게 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큭, 조심해서 다녀오게. 괜히 잡혀서 심장이나 뺏기지 말고.”
“알……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