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60화 (360/425)

360화

고진유 앞으로 극일가의 전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요?”

“하남 신양의 객잔에서 일월가의 인물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그가 스스로 말하기를 무신을 죽인 인물이 자신이라고 밝힌 뒤 그곳에서 시비가 붙은 인물들을 죽이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일월가의 인물이 객잔에서 살인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객잔에 있던 손님들이 무신님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살수가 듣다가 괜히 거슬린다고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거 참…… 일월가답게 살인을 쉽게 생각하는 인물이군요.”

“살려둔 사람들은 조만간 일월가에서 나온다면 모두 죽일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이 됩니까?”

“소문을 들은 뒤 사방으로 살폈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태원에서 신양으로 움직이는 것을 봐서, 도착지는 여기 형주로 향해 움직이는 게 확실합니다.”

“형주라면……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겠군요.”

“…….”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가 온다고 해서 겁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전비령께서는 소식을 가지고 온다고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소신이 해야 할 일이니 괜찮습니다. 그의 행방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시기를 빕니다.”

“후후, 고맙소이다.”

전비령은 인사를 한 후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일월가라…….’

기습을 하겠다면 향천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행적을 보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인물들을 죽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게 확실했다.

‘나에게 경고를 하는 거군. 조만간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인가?’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알 듯했다.

분명 개인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뭐 만나보면 알겠군. 우선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어.”

고진유는 밖으로 나온 뒤 향천의 호위를 맡은 진남궁인의 수장을 불렀다.

“형운 님, 잠시만 뵙도록 하죠.”

휘익.

고진유의 앞으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향천주님, 소신을 부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지금부터 당분간 향천에 대한 모든 호위를 거두어주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진남궁인 수장에게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조만간에 향천으로 본인을 찾아올 인물이 있소이다.”

“…….”

그는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진유를 만나러 올 인물과 향천 전체의 호위를 거두는 일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나를 찾아올 인물이 바로 무신을 죽인 사내입니다.”

“……!”

형운의 눈이 커졌다.

무신을 죽인 살수가 찾아오는 게 확실하다면 호위를 거둔다는 건 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향천주님, 그렇다면 호위를 더 많이 세워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무신님을 죽이기 전에 무신전을 지키던 호위들을 모두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성격으로 봐서는 앞을 막아서는 것만으로도 살인하는 인물입니다.”

“…….”

“형운 님께서는 그가 나타난다면 분명 그의 앞을 막을 테지요. 그래서 호위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무신전의 호위와 다릅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형운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막을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명부와 싸워야 할 무인들. 일월가의 인물을 두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진남궁인의 실력들이 어떠한지 본인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난 명족과 싸우기 전에 한 명이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그는 고진유의 말뜻을 이해했다.

일월가의 인물을 피해 없이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고진유는 그런 피해조차 보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곧바로 호위를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형운은 허리를 숙인 뒤 물러갔다.

‘후우. 이제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지?’

잠시 뒤.

무혼신녀가 고진유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무슨 일이 있어?”

“아직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녀는 고진유의 말을 유심히 생각했다.

“음…… 조만간 있을 것이란 말이구나.”

“하하하, 역시 누님은 눈치가 백단이세요.”

“네가 말을 이상하게 한다는 걸 아는 것이지. 갑자기 주위 호위들의 기가 사라지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잖느냐.”

“별일은 아니고, 무신을 죽인 인물이 저를 만나기 위해 온다고 합니다.”

“어디서 그 말을 들었지?”

“방금 본 가에서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고진유는 그녀에게 전해 들은 대로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그자의 목표가 네가 맞겠군. 근데 일월가에서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맞는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홀로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그에게 사연이 있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하, 얼마나 대단한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원 최고의 인물들을 죽이겠다고 직접 오는 이유가 궁금하군.”

“나중에 그가 오면 물어보지요.”

“알았다. 그럼 갈 테니 잘 처리하거라.”

“엇, 도와줄 생각으로 오신 게 아닙니까?”

“바빠. 일월가에 가는데 챙길 게 생각보다 많다.”

“아…… 그렇죠. 알겠습니다.”

무혼신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떠났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동시에 이번에는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이 함께 들어섰다.

“진유 아우. 호위들이 일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묵경은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물었다.

“그게요.”

고진유는 대답 후 세 사람에게 짧게 설명을 했다.

그러자 세 사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흔들며 나갔다.

“우린 가마. 난 또 무슨 큰일 난 줄 알았네.”

“……그러세요.”

그리고 세 사람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휘익.

고진유 앞으로 다시 여섯 명의 인영이 찾아왔다.

“호정 사제에에에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장두총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요…….”

* * *

휘이이익!

나상녹은 건물 아래로 내려섰다.

향천으로 들어오자 호위대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훗. 이것 봐라.’

호위대뿐만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선 자신의 기를 느끼자 주위에 흐르던 기들조차 순간적으로 모두 사라졌다.

오직 한 명만의 기가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멈칫거렸다.

“…….”

멈춘 상태에서 한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왜…… 이러지?’

온몸이 굳어졌다.

스윽.

전방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는 젊은 사내였다.

“당신이…… 화산도협인가?”

“그렇소이다. 본도이외다. 그러는 당신은 일월가에서 오신 분이오?”

“맞다. 일월가의 부가주 나상녹이라 한다.”

“부가주라. 일월가의 높으신 분이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그대를 만나 죽이고자 왔다.”

“서로 싸워야 할 적이긴 해도 우린 처음 본 사이이지 않소? 혹시 본도가 그대에게 잘못을 했소이까?”

“바로 아는군. 그대에게 볼일이 아주 많지.”

“아, 그렇담 본도에게 볼일을 보기 전에 묻겠소이다. 부가주, 당신이 그분을 죽인 게 맞소?”

“내가 그를 죽였지. 무신이라고 해서 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하더군.”

“아하…… 그렇군요.”

스윽.

나상녹은 서너 걸음 앞으로 나오는 그를 자세히 보았다.

무신을 죽였다고 해도 그의 얼굴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무신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군?”

“무인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지요. 상대가 강하다면 죽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소이까.”

“그를 죽였다고 흥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군. 재미없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되겠소이까? 귀찮으면 굳이 대답을 안 해도 좋소.”

“뭔가?”

“그분과 본도를 죽이고자 하는 이유. 알려줄 수 있겠소?”

“어려울 것도 없지. 극일천무신궁의 궁주인 금비천이 본인의 조부이다.”

나상녹의 대답을 들었다.

‘정말로 개인적인 일이었네.’

조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천검궁에 가서 무신 초일군을 죽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것 또한 마찬가지.

“당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겠소. 근데 개인적인 일이라지만 일월가의 부가주라는 인물이 맘대로 중원에 다닐 수 있는 모양이구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네놈의 목이 잘 붙어 있나 걱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본도의 목은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잘 붙어 있소이다. 본도가 걱정하는 건 일월가요. 부가주나 되는 인물이 죽겠다고 돌아다니는데 말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

나상녹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그에게 죽을 것이라 단정하며 말하고 있었다.

“혹시 그대가 죽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니오? 당신이 죽는다면 일월가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나 그런 거 말이오. 본도가 알기로 명족이 나오기 위해서는 중원에 의해 일월가가 사라져야만 하는데. 혹시 이 내용을 당신은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소.”

“…….”

나상녹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가주에게 보고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뿐이었다.

“잘해봐라.”

가주는 그 말 외에는 어떠한 말도 없었다.

“멍청한 사람이군요.”

“……내가 왜 멍청하다는 거지?”

“당신이 무신님은 이길지는 몰라도 본도를 죽이는 게 쉬울 것이라 생각했소?”

“…….”

“이곳에 들어왔을 때 이미 끝난 것이었소.”

고진유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난…… 네놈을 죽이고 가면 된다.”

“후후. 본도를 죽일 수도 없거니와 향천에 들어온 이상 나갈 수도 없소.”

“…….”

스르르릉-

나상녹은 허리에서 일월초검을 빼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겨루어 보면…… 되겠지.”

파아아앗-!!

나상녹은 일월초검을 들어 그대로 내리쳤다.

카아아앙!

위에서 떨어지는 일월초검을 막아선 사의검이었다.

두 개의 검기가 부딪히면서 서로 강하게 밀어냈다.

피이잇!

고진유의 검기에 밀린 나상녹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큿……!”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한 번의 부딪침에 상대의 강함이 느껴졌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화산도협, 죽어…… 라!!”

전력을 다해 쏟아낸 일월초검이 움직였다.

위이이이잉-!!

일월초검이 만들어낸 검풍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고진유를 향해 나아갔다.

검풍에 몸이 닿는다면 날카로운 금강기에 갈라질 터.

휙휙!

하지만 고진유의 신형은 검풍을 너무 쉽게 피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십여 개의 검풍이 만들어지면서 고진유를 계속 한 곳으로 몰아넣었다.

턱.

움직이던 고진유의 뒤가 막혔다.

‘일부러 여기로 유인했군.’

“은룡투인이라고 해서 대단할 줄 알았는데 별 볼 일 없군!”

우우우우웅-

나상녹은 본기까지 끌어내며 일월초검에서 내력을 불어 넣었다.

와아아아아앙-!!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거대한 검풍이 움직임이 막힌 고진유를 향해 날아갔다.

“크하하핫!! 죽어라, 이노오오오옴!!”

콰아아아앙!!!

천멸대검풍이 고진유를 삼키며 끊임없이 회전했다.

그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다.

‘이겼다.’

그때였다.

팍팍팍팍팍-!!

천멸대검풍 밖으로 수많은 구멍이 뚫리며 그 사이에서 은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콰아아아앙!!

안에서 은빛 섬광이 터지면서 천멸대검풍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크읏?!”

나상녹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폭발한 섬광이 점점 옅어지면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은…… 룡…… 투인.’

은발을 휘날리며 은빛의 용린으로 전신이 덮인 사내가 나타났다.

“방금 그건 조금 싸워볼 만했어. 근데 이게 전부라면 실망인데.”

“…….”

나상녹은 이를 악물었다.

타앗!

그가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신법으로 앞으로 달렸다.

고진유의 앞에 다가선 그의 신형이 좌우로 펴지면서 환영을 만들어냈다.

“일월가의 부가주라는 인물이 이런 잔재주를 부리는 것인가?”

파아아앗!!

환영들을 향해 은빛 신형에서 은룡투기가 쏟아졌다.

펑펑펑펑.

앞으로 다가오던 수십 개의 환영은 고진유가 뻗어낸 은룡투기에 의해 사라졌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환영이 사라지면서 그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쉬이이익!!

고진유의 뒤에 나타난 나상녹이 일월초검을 내리쳤다.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목을 지나갔다.

‘……뭐지?’

검 끝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샤르르르-

나상녹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환영을 보았다.

‘이…… 놈도……!!’

쉬이이이익.

은빛의 검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리를 지나갔다.

“커어어억……!”

나상녹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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