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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59화 (359/425)

359화

천검궁은 명실공히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극일천무신궁과의 결전에서 천검궁이 없었다면 무림맹과 정파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무신 초일군의 무공에 대해서도 하늘을 찌를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다.

심지어 무림은자인 고진유와 비교해도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중원 무림이 떠들썩한 것과 달리 천검궁은 오히려 조용했다.

초일군은 천검궁으로 돌아온 뒤 영산에서 싸웠던 나하중과의 대결에서 손상된 내력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휴우…….

초일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운기를 마친 그는 잠시 그대로 쉬었다.

며칠 전 그날이 떠올랐다.

신궁주 나하중의 무공은 뛰어났다.

왜 그가 파검신인지, 생사결을 통해 몸으로 느꼈다.

‘천만다행이었어. 용천심검이 아니었다면 그를 이기지 못했을지도.’

제대로 운기를 끝난 탓인지 초일군은 내력이 거의 돌아왔다.

“……!”

그가 운기를 한 수련장은 무신전에서도 지하에 위치했다.

수련장에 들어오려면 무신전 외부를 지키는 무신무영호위대를 뚫고, 건물 내부에서는 그림자 호위, 영위대를 지나야만 했다.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침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무신무영호위대와 영위대를 지나쳐 온 인영.

그가 천천히 수련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

처음 보는 청년의 얼굴이었다.

일월가의 부가주 나상녹은 환하게 미소를 띠며 다가섰다.

“반갑소이다.”

“네놈은 누구이지?”

“수련은 잘 끝났소? 밖에서 한참 동안 기다렸소이다. 생각보다 오래 하는 것을 보니 내상을 당한 것 같소이다.”

“…….”

상대는 운기를 하는 동안 이미 수련장 밖에 도착해서 기다렸다는 말이었다.

운기를 하는 도중 기습한다면 그로서는 자신을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을 터.

‘여기까지 들어온 것도 그렇고…… 무공이 상당하군.’

속마음과 달리 초일군의 표정은 담담했다.

“호위대 몰래 들어온 것이오?”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

“앞을 가로막는 놈들이 있기에 전부 목을 베고 들어왔지.”

초일군의 손이 순간 떨렸다. 수하들의 기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크크크. 믿기지 않는 모양이지?”

“전부 죽였단 말인가?”

“그건 모르겠소. 계속 앞을 막는 놈들만 죽였으니까. 한참 달려들더니 조용해지더군.”

‘모든 호위대들이…… 죽었다.’

그의 수하들은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후…….’

초일군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대의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죽을 사람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겠지. 본인은 일월가의 부가주 나상녹이오.”

“일월가에서 왔다는 것이오?”

예상은 되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왔다 생각했다.

극일천무신궁을 끝으로 일월가와 명족은 무림과는 상관없을 거라 그 또한 생각했었으니까.

“내가 찾아온 게 이상한 모양이군. 당신들 생각은 틀린 게 아니야. 일월가는 극일천무신궁이 무너졌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지.”

“…….”

“근데 말이야. 난 다르지. 그 이유가 뭘까?”

“무엇이오?”

“어차피 당신은 죽을 것이니 알려주겠소. 당신이 죽인 그분이 본인의 조부시거든.”

초일군은 청년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고 보니 신궁주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훗.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군. 그의 후손이 일월가의 부가주일 줄은. 그래서 복수를 하고자 온 것이오?”

“당연한 일이지. 일월가의 부가주가 아닌 그분의 후손으로 당신을 죽이고자 한다.”

슈우우우욱-

나상녹의 신형에서 살기가 퍼졌다.

단숨에 초일군을 덮친 살기가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했다.

‘흐음…… 지독하다.’

살기의 예기보다 살기의 피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일월가 부가주의 무공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용천심검밖에 없었다.

우우웅-

초일군은 용천심검을 일으키며 살인예기가 더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전방을 막았다.

“호오…… 방금 보여준 게 그분을 죽인 용천심검이란 것이군. 역시 무신이란 명호를 가진 인물인가?”

나상녹과 초일군은 팽팽한 기 싸움을 하면서 서로를 밀어내고자 했다.

두두두두-

수련장의 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계속 내력 대결을 했다가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파아아앙-!!

순간, 초일군과 나상녹은 서로 동시에 내력을 밀어냈다.

주르륵.

두 사람 중 서너 발걸음을 밀린 쪽은 초일군이었다.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초일군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무인들 중 세 번째로 놀라운 인물이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극일천주. 충격은 아마 이때가 가장 컸을 것이었다.

무신이라 추앙을 받을 때 찾아온 분이었다. 도저히 그분의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큰지 그분께 들었다.

두 번째 놀란 인물은 화산도협 고진유.

젊은 청년의 무공은 볼 때마다 강해졌다. 그에게선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이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이 바로 눈앞에 살기를 띤 나상녹이었다.

“이제 느낌이 오겠지?”

“일월가는 정말 강하군. 또 다른 세상에는 괴물들밖에 없다는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

“크크크…… 조만간 세상은 일월가에 의해 피바다가 될 테지.”

“그대가…… 아니, 일월가가 강한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그가 있기 때문이지. 당신들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어.”

“아, 극일가를 말하는 모양이군. 예전에는 분명 그들에게 졌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명왕께서는 두 번의 실패에 더욱더 강해지셨으니.”

“그대들만 강해졌다고 보는가? 내가 강해지면 상대도 강해지는 걸 여전히 모르는군.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네.”

초일군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두렵지 않았다.

일월가가 두렵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무림은 그들보다 강한 사람이 지키고 있다.

초일군은 용천심기를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시작해 볼까?”

“공격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와도 좋다.”

나상녹은 하수를 대하는 듯 말했다.

상대가 무신이라 해도 중원의 무림인.

용천심검을 펼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극일가의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파아앗-!!

초일군의 용천심검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

순간 나상녹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손바닥을 펼치며 용천심검을 막아냈다.

파아아앙-!!

용천심검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초일군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두 번째 공격을 펼쳤다.

쿠아아아앙---!!!

용천심검은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어지럽게 나상녹의 전신을 베기 위해 달려들었다.

‘훌륭하군. 이런 무공이라면 할아버지께서 이길 수 없었던 게 맞았어.’

나상녹은 그의 무공을 인정했다.

다만 무공은 상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법.

‘강해. 정말로. 그렇지만 이 정도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나상녹은 허리에서 일월초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검신의 양쪽 면에는 해와 달이 각각 새겨져 있었다.

“진정한 파검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휘이이이이익.

일월초검에서 검풍이 솟구쳤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풍은 세상조차 벨 수 있는 금강기를 담고 있었다.

투둑둑둑둑…….

나상녹의 전신 앞에서 용천심검의 잔해들이 수없이 떨어졌다.

초일군은 그의 검을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멋진…… 파검신이었…… 소.”

“잘 가시오.”

초일군의 신형이 아래로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중원 최고의 인물.

무신의 죽음이었다.

“이젠…… 남은 건 화산도협이군.”

나상녹은 시신을 내려 본 뒤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휘이익.

무신전의 수련장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중원 무림이 출렁거렸다.

태원에서 퍼져 나간 충격적인 소식은 단번에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무신님께서 살수에 의해 돌아가셨대!”

“그, 그게 정말인가? 어디서……?”

“그분의 개인 수련장에서 기습을 당했다고 하더구만.”

“어허……! 그분을 지키는 호위들이 많을 게 아닌가?”

“그들도 전부 죽었다고 하네. 근데 그들이 모두 죽는 동안에도 나머지 천검궁의 인물들은 한 명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더군.”

“하아아아, 세상에, 누군지 모르지만 엄청난 놈들이 아닌가. 그분을 죽인 놈들이 대체 누구라고 하던가?”

“그건…… 아무도 확신하지 않지만 무림은자님께서 말씀하신 일월가에서 움직인 게 아니냐고 다들 수군거리더군.”

“이, 일월가에서? 무림은자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정말로 그런 놈들이 있다는 것인가? 사실 그분께서 말씀을 하셨지만 난 안 믿었다네.”

“그건 나도…… 근데 정말로 일월가가 있다면 큰일이지 않은가? 무신님마저…….”

“이 사람아, 우리에게는 무림은자님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을 하는가?”

“아암. 그렇구만. 그분이 계신다면 일월가라고 해도 상대가 안 되겠지.”

그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크큭, 웃긴 놈들이군. 무림은자가 네놈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지?”

사내들은 뒤에서 한 청년이 괴이한 웃음을 지었다.

“어린놈이…… 어디서 함부로 말을 해? 그분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목숨을 살려줄 게 확실하지!”

“방금까지 믿지 않았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그럴 수도 있지? 어? 무림은자님께 적의를 보이는 것을 보니 극일천무신궁의 잔재구만? 뭣들 하시오! 이놈을 잡아서 족쳐봅시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이 새끼가 뭐라고…….”

휘익!

청년의 신형에서 뻗어 나온 살기가 사내의 목을 베었다.

사내의 옆에 있는 그의 동료가 소리쳤다.

“으아악!! 이놈이, 이놈이 사람을 죽였다!!”

“뭣이……!”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청년을 에워쌌다.

“네놈은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살인하느냐?”

“내가 누구인지는 방금 열심히 떠들고 있지 않았더냐?”

“그, 그게 무슨…….”

“크큭, 내가 바로 무신을 죽인 일월가의 인물이다. 네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화가 나서 못 참겠어. 그냥 모두 죽어줘야겠다. 어차피 우린 네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이는 게 목적이니 미리 죽인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고.”

나상녹의 신형에서 살기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팟팟팟팟-!!

순식간에 그의 주위에 모여든 사내들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죽음의 기운이 단숨에 객잔을 장악했다. 그의 눈빛에 의해 단번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오직 무형의 살기만으로 수십 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크크크…….”

나상녹은 괴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이 좋게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내들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들은 자리에 앉은 채 몸이 벌벌 떨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벌레만도 못한 놈들까지 죽이자니 귀찮군. 나중에 본 가에서 다른 녀석들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살아 있는 특권을 주도록 하지. 그때까지 잘살고 있어라.”

나상녹은 천천히 밖을 나섰다.

그가 나간 객잔은 오직 혈향만이 가득했다.

“…….”

그가 사라진 후에도 모두가 숨을 죽이며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나 갑자기 그가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몸이 굳은 탓이었다.

스으윽.

반각이 지난 후에야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들 중 한 명이 겨우 기운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하…… 아…… 갔다. 이제는 안 오겠어.”

사라진 그는 지옥의 사신을 보는 듯했다.

세상 어딘가에 일월가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겨우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나온 사람들은 객잔에서 최대한 멀리 흩어지면서 다시 새로운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일월가는 거짓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객잔에서 일어난 사건은 중원 전체로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천부성이 떨어졌다.

고진유는 소문을 듣기 하루 전날 저녁,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알았다.

향천으로 도착한 전언의 내용에 모두가 할 말이 없었다.

무신 초일군의 죽음.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무신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천검궁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를 죽인 살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충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일월가에서 움직인 게 틀림없어.’

고진유가 생각하기에 일월가 전체에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극일천무신궁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했다면 천검궁을 쳤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왜 무신만을 죽였는지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를? 어쩌면 무신을 친 것은 개인적인 일인가?’

고진유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무신께서 무림에 나오신 것은 최근의 일이야.’

그는 그 전에는 봉문을 하며 천검궁에서 나오지 않으신 분이었다.

마조동과 극일천무신궁.

두 곳 중 극일천무신궁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어.’

일월가에서 무신을 죽일 정도의 실력이라면 상당한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휘이익!

그때, 집무실로 찾아온 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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