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58화 (358/425)

358화

깊은 야밤.

홀로 전각 밖으로 나온 인영이 있었다.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에 수많은 별이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며칠 전부터 밤하늘을 보던 중 빛을 잃어가는 별을 알게 되었다.

별을 보며 미래를 추측하는 점성술을 따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관심이 갔다.

동북쪽 하늘에 있는 열네 개의 주성 중 천부성이라는 별.

며칠 저녁 하늘 위로 지나가는 천부성을 보면서, 빛이 약해지는 곳이 태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천부성이…… 빛을 잃어가고 있어.’

고진유는 당황했다.

물론 천부성이 무신성을 가리키는 별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일 맞다면, 그의 신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말로 무신님의 신상에 일이 생기는 것인가?’

천부성을 보면서 완전히 믿기에도 어려웠다.

고진유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천부성의 빛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듯 어두워졌다.

“분명 그분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확신할 수 없지만 필히 연락을 취해야 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고할 필요는 있었다.

‘그들이 정말 움직이려는 건가?’

그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극일천무신궁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일월가가 복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군. 극일천무신궁이 무너졌다고 신경 쓸 이들이 아닌데.’

고진유는 여전히 천부성에서 시선이 떼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일월가의 힘이 강한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분을 죽일 수는 없어.’

무신 초일군이 용천심검을 익힌 이상 일월가의 무인들과는 충분히 싸울 수 있을 터.

하지만 만일의 상황은 대비해야 했다.

정말로 그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수장을 잃은 천검궁의 힘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누구도 무신을 대신해 천검궁주의 자리에서 그와 같은 힘을 낼 수는 없었다.

‘역시…… 세상일은 뜻대로 잘 안 되는군.’

일월가에서 무림을 향해 움직이도록 두고 있을 수 없었다.

고진유는 고민이 되었지만 바로 결정을 내렸다.

‘일월가에서 향천이 아닌 중원을 건드리기 전에 먼저 칠 수밖에 없어. 어차피 싸움은 일월가가 끝나면 명족과 해야 하니까.’

그는 결심이 굳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중원에서 극일천무신궁의 일은 끝이 났다.

향천이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이 두 번 다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해.’

극일가 또한 영원히 존재한다는 법은 없었다.

고진유는 분명 느꼈다.

이번이 지나면 극일가 또한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극일가의 임무.

용맥의 계승자로서 은룡투인은 이제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필이면 내가 마지막이라니…… 귀찮아 죽겠군.’

고진유는 천부성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 * *

아침 해가 떠올랐다.

고진유는 일어난 뒤 침실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앞을 지나가던 인양이 밖으로 나온 그를 보며 달려왔다.

“진유 형, 일어났어요?”

“어딜 가는 길이냐?”

“그냥, 수련하러 갑니다.”

“그래? 평소에 열심히 하는군. 잘하고 있네.”

“네, 고맙습니다.”

인양은 인사를 한 후 지나가려고 했다.

“인양아, 잠깐만.”

“형, 무슨 일이 있으세요?”

“조식 회의를 해야겠다.”

“……?”

인양은 조식 회의라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저어…… 조식 회의라는 게 모르겠는데요?”

“아침 식사를 하면서 회의하는 거야. 묘시면 식사하기에 빠르지 않겠지?”

“그 정도 시간이면 모두 일어날 시간 같아요.”

“좋아. 묘시에 회의실에서 조식 회의를 하는 걸로 하지. 지금 바로 모두에게 연락해야겠다.”

“아, 알겠어요. 제가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해.”

휘이익!

인양은 재빨리 신법을 펼치며 향천을 샅샅이 다니면서 고진유의 뜻을 알리기 시작했다.

묘시가 되자 하나둘씩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묵경은 나란히 우종성과 함께 들어오면서 재미난 듯 말했다.

“조식 회의는 또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군. 화산파에서는 이런 것도 해?”

“아닐세. 본 문에서는 아침을 거의 잘 먹지 않아.”

“어디서 보고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딱딱한 회의실 분위기보다는 음식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다.

스르르.

이번에는 바닥을 스치듯 치맛자락이 끌리며 무혼신녀와 함께 고화유, 북소연이 들어섰다.

“먼저 와 있었군.”

“누님, 오셨습니까?”

묵경과 우종성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얼른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아침밥을 먹이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구먼.”

“혹시나 맛있는 음식을 사 온 게 아닐까요? 우린 예전부터 좋은 음식은 나눠 먹었거든요.”

“그렇다면 혹시나 기대할 만할까?”

회의실에 들어온 그들은 아침 식사가 무엇인지 기대가 되었다.

그들 모두가 회의실에 도착하자 인양이 밖에서 음식들을 들고 들어섰다.

그들 모두의 관심은 인양의 손에 든 음식에 집중되었다.

“인양아, 그게 뭐냐?”

“왕누님, 진유 형이 만든 아침 식사입니다.”

“진유 아우가?”

인양은 음식들을 각자 앉은 자리에 한 쟁반씩 내려놓았다.

“음…… 일단 보기는 좋구나.”

밀가루로 길쭉하게 만들어서 기름에 튀긴 유조와 콩으로 갈아서 따뜻하게 만든 두장이었다.

유조와 두장은 일반 사람들이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 맛이 있어 맛있게 만들 수 없는 아침 식사이기도 했다.

인양은 계속해서 음식들을 날랐다.

마지막으로 고진유가 들어왔다.

“어서들 오세요.”

자리에 앉은 뒤 회의장에 모인 그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 음식을 아우가 만들었다고?”

“네. 맛있게 보이지 않습니까? 유조는 제가 정성으로 일만 번 반죽해서 만들었습니다.”

“…….”

일만 번이란 말에 무혼신녀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유조를 빚는 데 일만 번까지 필요하더냐?”

“한번 드셔보세요. 일반적으로 먹는 유조와는 결 자체가 다를 겁니다.”

“그래? 네가 만들었다면 일단 맛은 인정하지.”

무혼신녀는 고진유의 요리 솜씨는 인정했다.

그녀는 먼저 유조를 한입 베었다.

와싸아아악.

유조의 겉에서 들려오는 바삭한 소리와 함께, 속은 말한 대로 결이 살아 있으면서 찰지고 부드러웠다.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무혼신녀의 눈이 커지면서 손에 든 유조를 계속 먹기 시작했다.

무혼신녀의 입맛이 상당히 까다로운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도 없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곧바로 유조를 들어 베어 먹었다.

이내 감탄 소리가 나오면서 나머지 음식인 두장에 손이 갔다.

“그건 콩을 진기로 영양가 파괴 없이 갈아서 만들었습니다. 맛이 고소할 겁니다.”

“호정 사제. 우리 나중에 할 일 없으면 음식 장사나 해볼까?”

장두총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음식들은 맛이 뛰어났다.

“입맛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우선 식사부터 하세요.”

“맛있게 차려주어서 고맙다.”

회의실에 모인 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고진유는 그들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괜찮았나요?”

“다음에도 부탁하고 싶군.”

“후후후. 누님께서 원하신다면요. 그럼 모두 식사를 마쳤으니 제가 여러분을 아침에 모이게 한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회의실에 모인 그들은 수저를 내려놓은 뒤 고진유를 똑바로 보았다.

“제가 어제저녁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일월가를 칠 것입니다.”

“……!”

고진유의 말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먼저 남궁무명이 기습 공격에 대해 물었다.

“일월가가 움직이기 전에 치겠다는 뜻이겠지? 저들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주시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어요. 일월가에서 무림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 여겼으니까요. 근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는 우종성이 물었다.

“일월가에서 무림을 건드린다는 뜻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어차피 일월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들의 행보가 어떤지는 사실 상관없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게 유리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건 맞지만…….”

고진유의 말에 거의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고화유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일월가를 먼저 치는 것은 좋아. 하지만 우리가 저들을 먼저 치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명왕의 족쇄를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가 중원인에 의한 일월가의 멸문이잖아. 일월가를 우리가 공격한다는 의미는 명족을 공격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자연스럽게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는 거야.”

고화유의 말이 맞았다.

구천명부의 수장 명왕을 가두어놓았던 족쇄를 풀 수 있는 건 일월가의 존재 여부였다.

“화유 누님, 어차피 끝까지 가야 하는 싸움입니다. 일월가를 먼저 치지 않는다고 해도 싸우게 된다면 결국 마지막은 명족을 상대로 싸워야 할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에게 진다면 차라리 일월가만 중원에 날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 거야.”

“…….”

“그러니 일월가를 공격하는 건은 신중히 결정해야 해.”

고화유가 말한 의미를 모두 이해했다.

그녀는 고진유의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그들에게 이번 결정이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알려준 것이었다.

스윽.

인양이 손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화유 누님. 제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봐.”

“전 진유 형이 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진유 형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

고화유는 인양의 눈빛을 보았다. 인양에게 고진유는 믿음, 그 자체였다.

어떠한 말을 해도 인양의 생각은 고진유밖에 없었다.

“어휴…… 넌 진유밖에 모르잖아. 다른 사람은요?”

“저도…… 향천주님을 믿습니다.”

녹림야검도 인양을 따라 손을 들었다. 그리고 묵경도 곧바로 두 사람의 뒤를 이었다.

“나도 진유 아우가 진다고 생각하지 않소이다. 지금도 눈앞에 똑똑히 떠오릅니다. 삼천명부에서 명군을 때려잡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물론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그때는 너무 놀라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군요.”

“묵경 오라버니와 녹검 씨도 진유밖에 없잖아요.”

스윽.

그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이번에는 우종성을 포함한 화산파의 여섯 사형제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호정 사제가 진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소이다.”

“당연하잖아. 세상에서 사제에게 없는 건 딱 하나밖에 없어. 그건 바로 세상에 적수가 없다는 것이지. 하하하.”

장두총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 모인 전원 모두 손을 들었다.

“모두 진유를 믿고 계시는군요.”

“화유야. 그건 당연한 일이다. 우린 진유를 믿기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 명왕이 족쇄를 풀든 끊어서 나오든 상관없어. 그놈은 진유가 해결할 수 있다.”

스윽.

고화유는 싱긋 미소를 짓는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좋겠다. 전부 같은 생각이네. 나도 마찬가지이고. 우린 네 결정을 따르도록 할게.”

“모두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근데 왜 갑자기 일월가를 친다는 결정을 했지?”

무혼신녀가 생각하기에 고진유는 무작정 생각을 바꾸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기에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며칠 전부터 하늘을 보니 천부성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점성술도 익힌 모양이지?”

“그냥 심심해서 하늘을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군요.”

질문했던 무혼신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나왔다.

“뭐냐? 그냥 자연스럽게 알았다는 말을 믿으라고?”

번쩍.

인양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전 믿습니다.”

“저도…….”

녹림야검도 슬그머니 손을 올렸다.

“너희 둘은 진유가 낮에 떠 있는 해를 달이라고 해도 믿을 놈들이잖아.”

“누님, 저도 달이라고 믿습니다.”

묵경도 슬쩍 대답했다.

“됐다. 여하튼 천부성이 빛을 잃은 건 무슨 뜻이지?”

“어제저녁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천부성이 빛을 잃은 지역이 태원을 지날 때였습니다.”

“태…… 원이라면 천검궁을 말하는 것이냐?”

“아마도…….”

고진유의 말에 묵경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방금 말한 천부성이 그분이시라면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분의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럼 빨리 연락은 해야지 않을까?”

“어제 곧바로 연락을 보냈습니다.”

“그랬군. 한데 누군가 그분을 노린다는 소린가?”

“그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젠 그곳밖에 없습니다.”

무혼신녀는 설명을 들으면서 일월가를 치고자 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일월가에서 중원 무림을 건드리기 전에 치겠다는 뜻이었다.

“일월가를 언제 칠 테지?”

“오늘부터 준비해서 끝나는 대로 갈 것입니다.”

“그렇군. 이번에는 향천 모두 가는 것이겠지?”

“네에. 일월가를 단번에 밀어낼 것입니다.”

“알았다. 준비하도록 하지.”

스윽.

회의실에 모인 그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경 형도 벌써 갑니까?”

“빨리 준비를 해야지. 앉아서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형은 준비할 게 없이 그냥 옷이나 몇 벌 챙기면 되잖아요.”

스윽.

묵경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남들이 바쁘게 챙기는데 놀고 있을 수 없잖아. 그냥 바쁜 척하는 거야.”

“후후. 알겠어요. 수고하세요.”

“오늘 아침은 맛있게 먹고 간다. 우리 다음에 야숙을 한번 하자. 예전에 네가 해줬던 고기구이와 인양의 볶음밥이 예술이었지.”

“그러게요. 빨리 마무리 짓고 한번 나가보죠.”

고진유는 함께 야숙을 했을 때가 생각났는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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