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57화 (357/425)

357화

후비적.

푹신한 긴 의자에 누워서 코를 만지고 있는 사내.

그를 유심히 보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사내는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콧노래를 부르며 발가락을 까닥거렸다.

한숨 소리와 함께 어이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원인들이 저 모습을 봐야 하는데.”

“무림 최고로 칭송받는 무림은자(武林恩者)가 경망스럽게 누워서 코를 후비고 있군요.”

장두총은 생중계를 하듯 옆으로 말했다.

그 옆에서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완전히 무림맹을 똥으로 만들어놓고 내게 은근슬쩍 다가와서 하는 말이 무림맹주를 맡아달라니. 어이가 없군.”

남궁무명은 얼마 전에 맹주에 올라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에게 남궁세가의 가주 자리는 부담스러웠다.

하나 무림맹주라면 무인으로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최근 무림맹과 정파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을 만든 인물이 고진유였다.

장두총이 고개를 돌려 남궁무명을 보았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제가 그러던가요? 남궁 형에게 무림맹주가 되어달라고 했습니까?”

“지금 할 만한 인물은 나밖에 없다고 하더군.”

“…….”

장두총은 함께 있던 우종성을 보았다.

남궁세가도 극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지만, 동문인 자신들과 상의라도 했으면 했다.

“그래서 화산파에도 맹주직에 오를 만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했지.”

“사제가 뭐라고 말하던가요?”

“당분간 욕은 남궁세가에서 먹고 나중에 분위기 좋아지면 그때 화산파에서 하면 된다고. 얼굴 표정도 변하지 않더군.”

장두총의 표정에 미소가 나타났다.

“크큭, 사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아무리 솔직하다고 해도 그건 좀. 사제답긴 하지만.”

“그랬지. 내가 그녀만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할 텐데…….”

“엥?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혹시…….”

“……아니다.”

남궁무명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뒤를 돌아섰다.

“두총, 난 잊고 있던 볼일이 생각났어. 나중에 보지.”

“이봐요. 어딜 갑니까?”

장두총은 빨리 사라지는 그의 뒤를 보며 소리쳤지만 대답 없이 사라졌다.

“뭐야? 여기 누구와 사귄다는 거야?”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장두총의 머리에 호정과 연관이 있는 여인 중 한 명이 떠올랐다.

“설마 고…… 후훙, 그렇군.”

장두총의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나온 게 확실했다.

옆에 있던 우종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호경, 그냥 모르는 척해라.”

“이거 뭡니까? 사형은 알고 있었습니까?”

“…….”

“음. 그렇군요. 나중에 서로 동서 사이가 될 거라고 벌써 편을 드시는 겁니까?”

“편은 무슨…… 남녀가 마음이 맞으면 당연한 일이 아니더냐. 그리고 우리가 말을 안 했지만 넌 호정 사제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맞아 죽었다.”

“…….”

“호청 사매와 네가 사귄다고 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느냐? 호정 사제가 세상은 음양이 맞아야 돌아간다고 하기에 봐준 게다.”

“에이…… 알겠습니다.”

장두총은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 없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사고를 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앗, 내가 이럴 시간이 아니지. 사형, 잠시 밖에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이냐?”

“우리 예쁜 소하를 돌볼 유모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좀 더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호청이 자신도 싸울 수 있다고 고집이라서요.”

“후후, 사매 성격에 그동안 많이 참았지. 좋은 사람으로 구해 오너라.”

그사이, 설미는 쟁반을 들고 고진유의 곁으로 다가섰다.

“공자님, 이거 드셔보세요.”

“그게 무엇인가요?”

고진유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녀가 내민 쟁반 위를 보았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백년설화과입니다. 이번에 운이 좋게 빙궁에 열매가 열렸다고 했어요.”

“오. 이 귀한 것을 보내주셨네요. 장인어른께서 복용하셔도 되는데…….”

“큰일을 하시는 분이시라면서 내력에 도움이 될까 보내주셨어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근데 이건 제가 먹어도 별 효능은 없을 겁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설미의 손을 잡으며 말을 했다.

“대신 이건 우리 조카인 소하에게 먹여볼까요?”

“아, 알겠어요. 소하에게는 도움이 되겠네요.”

“후후후. 고맙습니다. 같이 소하에게 가보죠.”

“네에.”

고진유와 설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함께 밖으로 나섰다.

* * *

토비천과 목비천은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일월가의 본진.

그들은 극일천무신궁에서 곧장 일월가에 돌아왔다.

나하중의 말처럼 자신들은 실패한 게 아니기에 떳떳하게 일월가에 돌아가도록 했다.

일월가에 찾아온 뒤 두 사람은 곧장 가주의 집무실에 안내를 받았다.

“토비천, 어떻게 되겠는가?”

“…….”

목비천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보게.”

“가만히 기다려 보게나. 가주께서 우리 두 사람을 죽이고자 했다면 이곳에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네.”

“그런…… 가?”

그가 보기에도 토비천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가주가 직접 부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목비천은 그의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앉았다.

드르륵.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목비천은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선 청년을 보았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청년은 가만히 자신의 얼굴을 보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본인이 누군지 모르는군.”

“…….”

“본 가의 부가주요.”

‘부…… 가주?’

부가주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지만 눈앞에 선 젊은 인물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일월세가의 부가주 나상녹으로 두 사람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렸다.

하지만 토비천과 목비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가주로서 나상녹을 맞이했다.

“부가주님을 뵙습니다.”

“두 분께서 오랜만에 본 가에 찾아왔다고 들었소이다.”

“거의 삼십 년이 된 듯하옵니다.”

“삼십 년이라. 그때는 본인이 아직 아이였겠군. 그건 그렇고, 이번에 두 분이 굳이 본 가에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소?”

부가주 나상녹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그의 표정을 읽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

나상녹은 자리에 앉았다.

“두 분도 앉으시오. 계속 서 있으려면 힘들지 않겠소?”

“아닙니다. 어찌 부가주님과 함께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본인이 허락하니 괜찮소이다. 앉으시오.”

“고맙습니다.”

목비천과 토비천은 그의 옆으로 앉았다.

“극일천무신궁이 완전히 박살이 난 건 알고 있소?”

“저희 두 명도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왜 금비천과 함께 싸우지 않았소?”

나상녹의 눈가에 살기가 순간 지나갔다.

“신궁의 궁주인 금비천이 저희들에게 떠나도록 했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지낸 동료를 버리고 혼자 살기 위해 도망 온 것은 아니오?”

“아닙니다. 저희도 싸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금비천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가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본인이 짓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후후후. 하여튼 꼭 나이가 많으면 쓸데없는 자존심만 커져선.”

목비천은 순간 분이 올라오면서 소리를 칠 뻔했다.

[가만히 있게나.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네.]

토비천의 전음이 빠르게 전해져 왔다.

나상녹은 더욱더 가늘어진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잘 참는데?’

그는 이 정도로 말하면 바로 달려들 줄 알았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은 자존심은 없는 것 같소. 가라고 해서 오는 걸 보면 말이외다. 내가 보기에 살고 싶어서 동료를 버리고 도망 온 것 같소이다.”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목숨이 아까워서 살고자 하겠습니까. 저희는 그를 버리고 온 게 아닙니다. 그가 말하기를 전대 가주님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토비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전대 가주님의 뜻이라는 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분의 전언이라도 들었던 모양이지?”

“그건 아닙니다.”

“…….”

“전대 가주님께서 저희에게 내린 임무는 극일천에 잠입하여 그곳을 무너뜨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게 전대 가주님의 뜻이라는 건가?”

“네, 맞습니다. 전대 가주님께서는 저희들이 본 가를 떠나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임무를 마치면 무사히 돌아오도록 말입니다.”

“지금 그 오래전에 했던 말을 전대 가주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인가?”

“저희도 세월이 흐르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근데 금비천이 저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금비천이?”

“그렇습니다. 저희는 전대 가주님이 내리신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복귀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하지만 그때의 그분은 돌아가셨다.”

부대주 나상녹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고, 중간중간 예리한 살기가 섞여 있었다.

두 사람은 전신을 파고드는 부가주 나상녹의 살기를 받아내야 했다.

토비천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전대 가주님께서 돌아가셨지만 그 뒤에 오른 새로운 가주님께선 어떠한 명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전대 가주님의 임무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대들은 그동안 본 가가 아닌 삼천명부의 명을 따랐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텐가?”

부가주 나상녹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토비천은 그의 질문에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저희는 삼천명부의 명을 따라 움직인 게 맞습니다. 부가주님께서 알고 계시는지 모르시겠지만 전대 가주님께 명을 내리신 분이 삼천명군님이셨습니다.”

“…….”

“또한 전대 가주님께서도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삼천명부의 명을 직접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나상녹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나 토비천을 보면서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두 사람을 따질 명분이 없었다.

“그렇다면 삼천명부에 갈 것이지 본 가에는 왜 왔는가?”

“부가주님께서는 삼천명부가 바뀐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가주님의 말씀대로 예전의 삼천명군님이셨다면 먼저 그분께 여쭈어봤을 것입니다.”

“흡. 토비천, 자네는 상당히 말을 잘하는군.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어.”

“…….”

‘할아버지?’

토비천은 고개를 들어 부가주 나상녹을 자세히 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지만 어딘가 누구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그가 닮은 인물이 누구인지 알았다.

‘쯧, 왜 우리에게 적의를 보였는지 알겠군. 부가주는…… 그의 후손이었어.’

부가주 나상녹의 정체는 금비천 나하중의 손자였다.

“내가 누군지 알게 된 모양이군.”

“……방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할아버지의 동료라고 해서 기대하지 마라. 난 부가주의 직위로서 그대들을 대할 것이다.”

“저희도 부가주로서 모실 것입니다.”

토비천은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목비천 또한 무슨 일인지 알았다.

‘하아…… 부가주가 그의 후손이었다고?’

목비천도 들어서면서 그가 왜 살기를 뿜어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금비천을 버리고 달아난 자신들이 좋게 보일 리 없는 게 맞았다.

“금비천은 최고의 친우였습니다.”

“…….”

부가주 나상녹은 뜬금없이 말을 내뱉은 목비천을 보았다.

“됐소. 내가 누군지 알았다고 해서 아부할 필요 없소.”

나상녹의 목소리가 처음과는 달라졌다.

잠시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나상녹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분을 죽인 두 명에게 복수할 것이오.”

“두 명이라면…… 무신과 화산도협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소.”

“저희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무도 필요 없다. 내가 직접 그들을 찾아갈 테니까. 우선 그분을 죽인 자부터…….”

나상녹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우욱.’

토비천은 고개를 숙였다.

세상에 이보다 강한 살기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자신이 가늠할 수 없는 무공을 지녔음을 알았다.

‘일월가의 부가주에 오를 정도라면 얼마나 강한 무공일까?’

토비천이 걱정이 되었다.

그가 상대하고자 하는 인물은 극일가의 은룡투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부가주의 뜻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일월가에 오직 한 분밖에 없었다.

나상녹은 토비천의 마음을 읽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은 가주님의 허락을 받았다. 당신들은 앞으로 본 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토비천은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현 일월가의 가주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가주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지?’

만일 자신이 가주라고 한다면 굳이 부가주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홀로 그들과 싸우겠다니.

부가주가 무신을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인 금비천의 원수를 갚는 일이긴 하지만 일월가에는 필요 없는 감정이었다.

은룡투인을 상대한다고 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삼천명군조차 그를 이기지 못했다.

그의 무공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일월가의 부가주가 그를 이기기에는 무리였다.

토비천은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일월가의 시작을 부가주의 죽음으로 맞이하겠다는 것인가?’

부가주의 죽음이라면 충분히 일월가를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만들어진다.

물론 바로 중원으로 나올 수 있겠지만, 긴 시간 동안 일월가 안에서 잠들어 있던 살성을 깨우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부가주의 죽음이라면…….’

일월가의 살성을 충분히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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