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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56화 (356/425)

356화

삼문전주 가인은 심장이 덜컹거렸다.

무형기망에 걸린 건 그의 환영이었다.

‘젠장…… 환영보에 속았다.’

어쩌면 간단한 속임수에 너무나 쉽게 당했다.

가인은 긴장한 채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뒤를 이렇게 비워두어도 되는지 모르겠소이다!”

휘익!

연화연검이 지나가면서 바람 소리를 냈다.

‘지금…… 이다.’

가인은 감각적으로 허리를 비틀었다. 최소한의 부상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스걱.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우욱.”

짧은 신음이 흘렀다.

허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욱신거렸다.

가인은 허리를 베고 지나간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쿡쿡쿡.

흐르는 피를 멈추기 위해 재빨리 지혈을 했다.

‘다행이군. 이 정도는 괜찮아.’

허리에 당한 부상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여의극을 고쳐 잡으며 자세를 바로 하려고 할 때였다.

휘리리릭!

연화연검이 어지러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게다가 연화무환보의 움직임이 더해지자 연화연검의 검기는 눈앞 사방으로 가득했다.

팟팟팟팟팟!

셀 수 없이 뿌려진 연환연검의 검기를 보며 가인은 여의극의 중앙을 잡고 빠르게 회전시켰다.

챙챙챙챙챙-!

검기는 막아내고 있었지만, 가인은 저도 모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크윽, 내가 밀리고 있어.’

처음에는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은 부상도 둘의 차이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휘익!

똑바로 날아오던 검기들 중 일부가 갑자기 옆으로 회전하며 상처가 났던 허리를 다시 베었다.

“아아악!”

그는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이전 공격보다 더 강하게 지나갔다.

곧바로 몸이 무너지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야…… 한다.’

무너진 상체를 빨리 일으켜 세우고자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윽.

벌써 앞에 다가온 묵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장난스러운 말투를 할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가인은 끝이 났음을 알았다.

무인에게 최고의 죽음은 강자에게 죽는 것이라지만 자신의 마지막이 이럴 줄은 몰랐다.

검기가 날아오는 짧은 순간, 그는 마음의 정리를 했다.

쉬이이익!

차가운 허공 속에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어느덧 살기가 목을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스걱.

삼문전주 가인의 목이 떨어졌다.

* * *

극일천무신궁의 진영은 침울했다.

두 명의 전주가 생사결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하중은 수하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내력을 올려 소리쳤다.

“모두 보았는가?”

극일천무신궁의 진영은 조용했다.

“죽음이 두려운가? 만일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도 좋다.”

나하중은 잠시 말을 멈추며 주위를 살폈다.

수많은 인영들 사이에서 한 명의 작은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두려움이란 살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갈 것이다. 그들은 무인으로서 가장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본 궁주도 마찬가지이다. 무인답게 죽고자 한다. 그대들은 어떠한가? 그대들의 수장인 두 사람에게 부끄러운 죽음을 보일 텐가? 아니면 자랑스러운 죽음을 보여줄 것인가? 그건 그대들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다.

모두 검을 들어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저들에게 본 궁이 어떠한 곳임을 가르쳐 주고 떠나지 않겠는가?”

“와아아아아-!!”

“극일천무신궁 만세!!”

진영 속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정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묵경의 무공으로 사기가 높아진 무림연합은 정문 밖으로 달려 나오는 신궁의 무인들을 향해 기세를 뿜어내었다.

처절한 생과 사의 마지막 결전.

무림의 역사상 최고의 결전으로 꼽히는 영산대혈전의 시작된 순간이었다.

“으악……!”

“커어어억.”

두 진영의 무인들은 적아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부딪치며 베고 베었다.

신궁의 무인들은 강했다.

그들이 펼친 검에 무림맹의 무인들은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베는 순간 다시 에워싸는 무림맹 무인들에 의해 가슴과 목이 뚫리며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쓰러질수록, 수의 차이를 메우기는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신궁의 무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당당하게 싸웠다.

휘이잉-

바람에 의해 백발이 흩날렸다.

나하중은 다가선 사내를 보았다.

중원 최고의 인물이라던 무신 초일군이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이젠 이곳도 마지막이지 않소이까?”

“그렇군요.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몰랐소이다.”

나하중은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에게 후회는 없었다.

“천주가 왜 당신을 살려줬을까 한동안 의문이 들었소이다. 참으로 그분은 약았소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외다. 근데 그분의 아들을 보니 유전인 것 같소이다.”

“훗. 그렇군요.”

초일군의 말에 나하중은 웃음이 나왔다.

“극일가에 농락을 당했다고 봐야겠지요.”

“농락이라고 하는 것보단 그대들이 그분을 너무 쉽게 보지 않았소이까. 어이없게 당한 것이지요. 그분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이 일월가에서 온 간자임을 알고 계셨소이다.”

“무신, 본 궁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외다. 어쩌면 진정한 어둠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외다.”

“그건 본인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더이다. 그가 말하더군요. 무림은 무림인들이 해결해야 하면 될 뿐. 일월가나 명족이 원하는 건 무림이 아니라 세상의 멸망이지 않소이까.”

“그렇겠지요.”

나하중은 중얼거리듯 말을 했다.

그는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귀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 됐소이다. 우리도 시작해 보시겠소?”

“그렇게 하지요.”

초일군은 검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검을……?’

나하중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후후후. 놀랄 것 없소. 그분께서 본인의 검으로 당신을 이길 수 없다고 하더이다.”

“…….”

“당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려주더군요. 검의 파괴자. 파검신(破劍神)이 당신이라지.”

중원의 그 어떠한 검식도 파훼할 수 있다는 전설상의 검신.

눈앞에 서 있는 나하중의 진정한 정체였다.

“천주는 많은 이야기를 했군요. 그래서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싸우겠다는 것이오? 다른 무공이라도 배웠소이까?”

“맞소이다. 그분께 무공을 배웠소이다. 당신을 상대하기 위해 봉문을 하면서 수련을 했지요.”

“…….”

“본인이 익힌 무공이 어떠한 것인지 구경하고 싶소이까?”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그대가 본인을 이길 수 있기를 바라겠소이다.”

나하중의 손에 기로 인한 검이 생겨났다.

번쩍.

그의 신형에서 빛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백발이었던 머리카락이 점점 붉게 변했다.

아래로 처졌던 그의 눈매도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한 것처럼 보였다.

“무신, 본인의 기대에 미치기를 바라겠소이다.”

타아앗!

나하중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초일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을 예상이라도 하듯 초일군의 몸에서 빛이 쏟아졌다.

‘이건…….’

나하중은 광검을 보며 뒤로 물러났다.

초일군은 검을 버린 게 아니었다.

그의 마음속에 검이 있었다.

“용천…… 심검을…….”

나하중은 말을 하면서도 약간 어이가 없었다.

용맥의 계승자가 아니고서는 펼칠 수 없다는 무공을 초일군이 펼치고 있었다.

“어떻게…….”

“그분께서 미천한 나에게 용맥의 원령을 나눠주셨소이다.”

‘그랬군. 그래서…… 그날 이후 기운이 달라졌던 거였어.’

“…….”

나하중은 기운이 빠졌다. 충분히 무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이제는 승패를 알 수 없었다.

“파검신이란 당신의 정체를 알고 궁금했소이다.”

찌이이잉-

초일군이 손을 옆으로 뻗어내자 무형검이 만들어졌다.

“…….”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번쩍!

초일군의 손에 든 무형검에서 검광이 터졌다.

나하중의 전신에 광속의 빠르기와 같은 광검이 쏟아졌다.

파아앙-!!

나하중의 내기가 폭발하면서 적발이 흩날렸다.

그의 전신에서 붉은 광기가 뿜어 나오며 몸속에 파고들어 가던 광검을 막아냈다.

“대단하외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맞았군.”

파검신의 진정한 실력을 무림에서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우우우웅-

나하중의 붉은 광기는 점점 붉어지면서 강해졌다.

“무신, 이제 끝을 내는 게 좋겠소이다.”

“그렇게 하지요.”

초일군도 그를 보면서 용천심검을 밖으로 끌어냈다.

마치 그 자신이 검이 된 듯 초일군의 전신에 용천심기가 솟구쳤다.

두두두두두-

두 사람의 주위에 거대한 기의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내력을 쏟아냈다.

붉은 광기와 용천심기가 부딪히면서 기의 공간이 빛을 내며 부풀어 올랐다.

콰아아아앙!!!

하늘 위 태양이 부서진 듯한 폭광에 극일천무신궁 앞에서 싸웠던 모든 무인들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다.

거대한 원형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나타난 두 명의 인물 중 나하중의 모습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다.

“무…… 신…… 좋은 검이었소…… 이다.”

휘이이이-

나하중의 신형이 먼지가 된 듯 사라졌다.

“와아아아아-!!”

“무신이 이겼다!!”

무림 연합의 무인들은 함성을 질렀다.

무신 초일군의 승리에 그들의 승패는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극일천무신궁의 무인들은 한 명도 물러나지 않았다.

모두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싸웠다.

그리고 기나긴 싸움이 끝난 순간.

중원 무림의 암중에서 이어져 내려온 극일천무신궁이 무림에서 사라지자 중원 무림은 환호했다.

그에 반해 무림맹은 조용했다.

극일천무신궁을 치기 위해 수많은 무인들이 영산으로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는 절반 이상의 동료들을 잃었다.

만일 천검궁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었다.

충격적인 결과에 모두 말이 없었다.

무림맹 정파들의 무림인들은 자신만만했다.

단숨에 극일천무신궁을 밀어낼 줄 알았지만, 결국 깨닫게 된 것은 극일천무신궁의 강함과 천검궁의 무력뿐.

또한 묵경의 무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친협들과 화산파의 무력 또한 알려졌다.

만약 전 맹주와 그의 친협들, 화산파에서 함께 출전했다면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거란 불만이 어느덧 그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러 맹주직을 그만두고 화산파만 남겨둔 건 뜻이 있을 것이라는 음해와 같은 소리들.

그때, 중원 무림에 향천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전대 맹주였던 화산도협 고진유가 왜 향천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말이다.

화산도협 고진유가 바로 극일천주의 아들이며, 극일천이 사라진 뒤 일월가가 중원에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롭게 향천을 세웠다고

무림의 비사가 알려지자 중원의 모든 사람들은 고진유에 대해 칭송했다.

게다가 무림맹주직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무림맹의 주요 인물들은 단 한 명도 말리지 않았으며 그가 물러나기를 찬성했다고 했다.

맹주직을 그만두지 못하게 그들이 말리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욕심과 편협함에 대한 중원인들의 많은 질타가 무림맹으로 향했다.

그때 향천에서 고진유가 중원인들에게 고했다.

“중원인들은 무림맹을 미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번 일은 모든 게 본도의 잘못이니 무림맹을 향해 비난을 멈추면 좋겠소이다.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데 함께하지 못한 건 일월가가 무림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켜봤던 것입니다.

화산파의 장문인께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셨지만 말린 것은 본도입니다. 중원 무림에 큰 잘못을 한 이는 본도이니 모든 비난을 받을 것이외다.”

고진유의 말은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또 한 번 중원인들은 고진유에 대해 칭송하기 시작했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고진유에 대한 존경심은 커져 갔다.

이후 중원인들은 고진유를 무림은자(武林恩者)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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