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55화 (355/425)

355화

초정은 포권을 하며 이름을 밝혔다.

“본인은 천검궁의 초정이라 하오.”

“그대가…… 은하신무인가?”

“맞소이다. 유명하지 않은 별호를 알아보다니 영광이외다.”

“무림에서 천검궁의 은하신무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대가 나와서 다행이네. 항상 천검궁의 무공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오늘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운이 좋군.”

“본인도 마찬가지요. 극일천무신궁의 무공이 어떠한지 궁금했소.”

“크크크, 서로 궁금했다니 다행이군. 바로 시작해 볼까?”

파아아앙-!

채애애앵!

중부와 초정은 내력을 끌어 올리며 상대의 무공이 어떠한지 먼저 살폈다.

먼저 초정이 움직였다.

파아앗!

초정의 검이 뻗어나가자 중부는 장검을 회전시키며 밖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검이…… 부드럽다.’

초정은 순간 당황했다.

장검이기에 쾌검이거나 강검을 예상했다.

한데 중부의 신형에서 흐르는 기운도 부드러우면서 가벼웠다.

장검에서 흐르는 검기는 초정의 기를 쉽게 받아내면서 뒤로 흘려보냈다.

타아앗!

초정은 이번에는 내력을 구 할로 올린 뒤 은하성령의 초식을 펼쳤다.

은빛의 검기가 연기처럼 흐르면서 앞을 가렸다.

‘최소한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악-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한 번 더 예상을 벗어났다.

은하성령 사이로 신형이 빠져나오면서 상대인 초정에게 오히려 반격을 시도했다.

중부가 펼친 유화검식은 은하성령을 뚫고 나온 뒤 초정의 가슴을 향해 단번에 파고들었다.

파라라락!

초정 또한 쉽게 당할 무공이 아니었다.

초정은 재빨리 몸을 비트는 동시에 검을 막아냈다.

까아아앙!

초식들이 이어지며 생사결의 싸움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두 사람이 생사결을 지켜보던 초일군과 제갈양은 표정이 굳어졌다.

“초정이 밀리고 있군.”

“그대로 보고 계실 것입니까?”

“아직 끝나지는 않았소.”

“하지만 승패는 단번에 끝날 수 있지 않습니까?”

“믿어봐야지요.”

하지만 둘은 점점 안색이 좋지 않았다.

초정은 중부를 향해 연이어 공격했지만 그는 검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는 것처럼 모두 막아냈다.

갈수록 답답한 건 초정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력이 점점 소모되는 양이 많아졌다. 빨리 결정을 짓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싸우면…… 불리하다.’

초정은 그와 검을 겨누면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어떻게 싸워야 하지?’

상대의 부드러움을 걷어내야만 제대로 싸울 수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강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초정의 강검은 중부의 유검을 넘지 못했다.

“이게 전부인가?”

중부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더 강할 줄 알았건만. 아직 남은 게 없다면 끝을 내도록 하지.”

중부의 눈빛에 살기가 솟구쳤다.

타앗!

중부의 장검에서 또 한 번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그 안에 냉철하고 차가운 냉풍이 숨어 있음을 초정은 알고 있었다.

꿀꺽.

초정은 검에 은하기를 끌어 올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휘익. 휘익.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바람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앙!

하지만 중부의 장검에서 퍼져 나간 검파(劍波)가 초정의 전신을 스치며 지나갔다.

“우우욱.”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난 초정이 입에서 핏덩어리를 쏟아냈다.

“무신의 자식 놈이라 마지막 순간에는 막아내는군.”

아쉽게 초정을 죽이지 못했다.

‘시간이 필요해. 장기들이 흐트러졌다. 운기를 하지 않으면…….’

초정은 더는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급히 운기하여 흐트러진 장기를 제자리에 놓아야 했다.

휘익.

그때였다.

초정의 뒤로 누군가 내려서면서 등에 손을 댔다.

기가 발작하는 몸속으로 들어오면서 충격받은 혈맥들이 빠르게 진정되었다.

“형님, 나서서 죄송합니다.”

두 사람의 생사결에 나선 것에 대해 묵경이 사과했다.

“…….”

초정은 묵경을 보았다.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부탁한다.”

천검궁에서 자신 외에 중부를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은 무신 초일군밖에 없었다.

빠르게 치료해 준 덕에 초정은 몸이 편해졌다.

뒤로 물러난 그가 무신 초일군의 앞으로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약한 게 아니라 그가 강한 것이다. 여기까지 쉽게 왔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

초일군은 짧은 순간 방심했음을 알았다.

‘역시 저들은 이기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겠군.’

이번 극일천무신궁과의 결전에서는 천검궁보다 무림맹 무인들의 희생이 더 많을 것임을 알았다.

‘분명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친협들이 빠진 이유에 대해 묵경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군사의 말에 의하면 무림맹주직을 내려놓는 것에 반대한 인물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화산도협은 이 또한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특이한 인물이야. 정말로 자신의 사람만 중요할 뿐이군.’

초일군은 뒤를 돌아 무림맹의 무인들을 보았다.

‘이제는 알 만한 인물들은 알겠지. 자신들의 힘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가 무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꼈을지도.’

척.

묵경은 그를 향해 포권을 했다.

“묵경이라 하외다.”

“풍류옥협, 친협 중 한 명이군. 소문대로 계집을 잘 후리게 생겼군.”

“그 소문이 잘생겼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난봉꾼이란 말입니까?”

“…….”

“괜히 헛소문이 퍼지면 피곤해서 말이오.”

묵경은 뒤로 돌아 금하희를 보며 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금하희는 피식 웃었다.

“지금 본인 앞에서 애정 행각을 하는 것인가?”

“당신이 괜한 말을 해서 그런 게 아니겠소이까?”

“…….”

“괜한 말은 필요 없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본인과 싸우고자 하는 것인가?”

“당신이 싫다고 하면 안 해도 좋소이다.”

중부의 살기가 묵경의 전신을 베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뻗어낸 살기는 중간에서 묵경의 기에 의해 사라졌다.

“본인을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싸우지 않고 어떻게 압니까? ……라고 누군가 말을 하더군요.”

“…….”

“고금제일인 제 아우가 한 말이외다. 누군지는 알겠지요?”

“뻔뻔한 놈 같으니…….”

그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딱딱하게 말했다.

“격장지계를 펼치는 것인가? 난 그런 것에 당하지 않는다.”

“그건 상대가 강했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상대의 말뜻을 정확히 알았다.

“처음부터 본인을 이길 수 있다고 여겼군.”

“이길 수 없다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라는 말도 아우가 한 적이 있지요.”

파앗!

중부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장검을 뻗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묵경은 사라진 뒤 옆으로 물러나 있었다.

“흥분한 것 같군요. 격장지계에 당한 듯합니다.”

“……!”

중부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흥분했음을 알아차렸다.

“사람을 놀리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군.”

“누구를 닮아가는 것 같소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자, 어느 정도 내력이 돌아온 것 같은데 시작해 볼까요?”

“본인을 기다려 주었다는 것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괜한 오해를 받는 게 싫습니다.”

“거 고맙군. 기다려 주어서.”

“별말씀을.”

우우우웅-

스으으으…….

중부와 묵경은 서로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하는 내력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일군이 입을 열었다.

“저들을 보았느냐?”

“…….”

“기세만으로 최고의 싸움을 하고 있다. 풍류옥협의 경지는 이미 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 정도입니까?”

“나도 그의 본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군.”

“…….”

초정의 시선은 중부보다 묵경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희가 좋은 사내가 아닌 중원 최고의 용 중에서 하나를 품었도다.”

초일군은 바로 옆에 선 금하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금하희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챠르르르-

연화연검은 다가오는 미풍을 거슬리며 뻗어 나갔다.

‘욱.’

묵경의 검은 확실히 초정의 검과 달랐다.

바람을 베거나 막는 게 아니라 바람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파아앗!

중부의 가슴을 스치며 연화연검이 지나갔다.

작지 않은 상처가 생기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어떻게 된 놈이지?’

묵경의 신형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절대고수의 대결에서는 거의 정적인 움직임, 한 번의 찰나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하지만 상대하는 그는 너무나 화려할 정도로 많이 움직였다.

‘정신 사나운 놈……!’

무희의 움직임처럼 묵경의 신형은 가볍게 바람을 타며 다가섰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연화연검 또한 어지럽게 중부의 빈틈을 노렸다.

파아앗!

연화연검의 끝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중부의 손목을 파고 들어가며 베었다.

“아악!”

중부가 장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뚝. 뚝.

그의 손목에서 피가 떨어져 내렸다.

완전히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본인의 유검을 상대로 연검이 강할 줄은 몰랐군.”

“연검이 강한 게 아니라 연검을 펼치는 당사자가 강한 게 아니겠소.”

중부는 한 손을 잃은 상태에서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만 끝을 내도록 하게.”

“사양하지 않겠소이다.”

번쩍!

대답과 동시에 연화연검의 검신이 밝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중부는 남은 한 손으로 무형강기를 만들어내며 묵경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묵경은 다가오는 무형강기를 노려보았다.

“잘 가시오.”

휘리리리릭!

연화연검이 나선형을 그리며 무형강기와 부딪혔다.

파파파파파-

단숨에 중부의 무형강기를 밀어낸 뒤 멈추지 않고 중부의 가슴에 닿으면서 살갗을 파고들어갔다.

“커어어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심장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극화전주 중부의 죽음은 극일천무신궁을 더욱더 침울하게 만들었다.

초정을 이겼다고 하지만 그는 결국 죽임을 당했다.

휘이이익!

이번에는 극일천무신궁에서 또 다른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문전주 가인이라 한다.”

짧게 소개한 한 그는 여의극의 끝을 바닥으로 내리쳤다.

쿠우웅.

여의극이 떨어진 바닥에서부터 강한 파동으로 기가 솟구치며 묵경을 향해 앞으로 밀려왔다.

파아아앗!

묵경은 호신강기를 곧바로 일으키며 다가온 상대의 기를 상대로 마주 섰다.

콰아아아앙-!!

묵경의 신형 앞에서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가인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극화전주를 이길 만하다. 풍류옥협, 이번에는 본인의 상대가 되어주겠는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물러나지 않을 거 아니오?”

“……그렇다.”

그는 중부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무인에게 최고의 죽음은 강자에게 목숨을 잃는 것.

묵경은 그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었다.

“좋소이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겠군요.”

“고맙다.”

가인은 여의극의 끝을 잡으며 길게 타원을 그렸다.

위이이이이잉.

윙윙윙윙윙윙.

여의극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는 마치 귀곡음과 같았다.

조금씩 묵경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의극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보통의 인물이었다면 여의극이 만들어낸 귀곡음에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할 터.

‘대단한걸. 이런 공격은 처음이다.’

스걱.

여의극의 날카로운 날에서 뻗어 나온 예기에 상의 자락이 잘려 나갔다.

‘이런……!’

계속해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의극이 만들어낸 공간을 뚫고 안으로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피할 수 있는 곳은…….

‘하지만 위로 날아오르면 뭔가 있을 텐데.’

상대는 그가 공중으로 뛰어 올라주기를 바라는 게 확실했다.

‘좋아.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타아앗-!

묵경은 다가오는 여의극을 피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멍청한 놈, 알면서 객기를 부리는군.’

가인은 위로 날아오른 묵경을 보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끝났다.”

여의극이 회전하며 만들어낸 죽음의 무형기망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묵경을 단번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버린 무형기망에 갇혔다.

위이이이잉-

곧바로 여의극이 바람을 가르며 묵경을 찢어버리듯 날아왔다.

파아앗!

묵경의 전신을 뚫고 여의극이 지나갔다.

“아악!”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금하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어디……?’

방금까지만 해도 무형기막에 잡혀 있던 묵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 움직였는지 나도 보지 못했다.”

초일군조차 묵경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가인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묵경을 보았다.

금하희는 안도의 표정으로 변했다.

방금 전만 해도 그가 여의극에 의해 목숨을 잃은 줄 알았다.

‘하……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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