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51화 (351/425)

351화

세상 밖의 일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허…… 그런 일이…….”

제갈양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믿어야 한다는 게 더 어이없다는 거 알아?”

“이해합니다. 중원인이라면 안 믿어지겠지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런 세상과 싸우고 있다니 여하튼 고생이 많네. 여전히 도움이 안 되는군.”

제갈양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무림맹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근데…… 그곳의 일을 정리했다면서 갑자기 이곳에 몰래 온 이유가 있는가?”

“제가 그들과 싸우기 전에, 제갈 형님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처리해 줄 일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무림맹을 이끌고 극일천무신궁을 치면 됩니다.”

“……음?”

제갈양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나왔다. 그들의 뒤를 봐주는 삼천명부의 도움이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의 힘은 강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일월가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에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것입니다.”

“으음, 그들을 치고자 하는 이유는 알겠어. 하지만 맹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묵경 형님이 천검궁에 갔습니다.”

“묵경이? 그 친구가 천검궁에 갔다고 한다면 무신께 부탁을 하겠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분이 나선다면 무림맹과 함께 충분히 그들을 무림에서 지울 수 있습니다.”

“천검궁에서 나서준다면야 못할 건 없지.”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네요.”

“싸우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건?”

고진유도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무림맹이 움직이는데 맹주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잘 알고 있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무림맹의 인물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 텐가?”

“그게 제가 찾아온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군.”

두 번째 이유라는 말에 제갈양은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것이었나? 맹주직을 그만 내려놓을 생각이구만.”

“그렇습니다. 제가 무림맹을 위해서 할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할 일이 없어도 그냥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그건 맞습니다만, 지금은 물러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후훗.”

제갈양은 웃음이 나왔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맹주를 계속 맡아주는 건 안 되겠지?”

“제가 무림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맹주직에서 물러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 방법밖에 없다면 자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겠군.”

그는 고진유의 뜻을 받아들였다.

맹주직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극일천무신궁과 싸울 때는 천검궁의 무신께서 나선다고 해도, 무림맹을 이끌어갈 인물이 필요할 걸세.”

“이번 일까지는 제갈 형이 무림맹을 맡아서 해주세요. 이 일이 정리가 되는 대로 차기 맹주를 선출하도록 하면 될 겁니다.”

“맹주직을 그만둔다고 알리면 말이 나올 텐데.”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오? 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제가 계속 맹주를 맡아서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십 년 맹주직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인물이라면 그만두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저에게 말을 꺼낼 수 있을까요?”

“크큭, 어렵겠지.”

“그래서 그냥 만만한 인물이 무림맹주에 있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할 겁니다.”

“오히려 그들이 더 환영한다는 뜻이구만.”

“아마도요.”

제갈양의 말처럼 무림맹의 주요 인물들이 좋아한다면 맹주직을 내려놓아도 문제가 생길 게 없을 것이었다.

제갈양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네의 일까지 포함해서 천검궁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네.”

“무림맹에 제갈 형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다행은 무슨…… 그리고 내가 보기에 무림맹주를 그만두는 건 귀찮아서 같은데. 그래서 천검궁과 본 맹에 일을 시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흐음,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무림맹주직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무림맹이 마무리를 짓는 게 좋으니까 그렇죠.”

“그래, 그래. 아, 혹시 다음 맹주는 누가 되었으면 좋겠지? 추천할 인물이 있어?”

“맹주직은 무명 형님이 맡으실 것입니다.”

“무명이?”

남궁무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명 형님이라면 맹주직에 올라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라면 충분하고도 남지. 근데…… 남궁세가에서 보내줄까? 차기 가주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아닐 겁니다. 남궁세가에서 무명 형님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통 직계는 아니잖아요.”

“흐음…… 그렇긴 하지. 물론 그가 가주를 하겠다면 받아들이겠지만 일이 쉽지는…….”

“가주가 아닌 맹주에 오른다고 한다면 남궁세가에서는 절대 환영할 겁니다.”

“후후후. 맹주의 말이 맞군. 그들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당연히 가능하겠어.”

“그리고 맹주가 되고자 하는 인물들 중에 무명 형님보다 강한 인물은 없습니다.”

“이번에 천검궁에서 나선다고 했잖아. 누군가 무신을 추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명 형님은 그분과 싸운다고 해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강하다는 말이지?”

제갈양은 놀랍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의 무공이 무신과 대등하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거 모든 것을 정리해 놓은 상태였군.’

차기 맹주까지 생각하고 찾아온 고진유를 보면서 무림맹과는 인연이 끝났음을 알았다.

“그들을 언제 치면 될까?”

“천검궁과 어떻게 할지 서로 연락을 해보세요. 묵경 형은 당분간 천검궁과 같이할 겁니다.”

“알겠다. 결정을 내렸으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군.”

스윽.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했다.

“벌써 가려고?”

“가서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조만간 일월가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움직일 테니까요.”

“그렇군. 몸조심하고…… 고생해라.”

“제갈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고진유는 그와 마지막으로 안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 만날 수 없었다.

“가보겠습니다.”

“잘…….”

휘이익!

고진유는 흔적도 없이 군사전에서 사라졌다.

“휴우…… 큰일을 던져주고 가는군.”

오랜만에 나타나서 천검궁과 함께 극일천무신궁을 지우도록 했다.

“밖에 있는가?”

제갈양의 부름에 문이 열리며 사내가 들어섰다.

“군사님, 부르셨습니까?”

“반시진 뒤 무림맹 대회의를 하겠다고 알리게나.”

“알겠습니다.”

사내는 허리를 숙인 뒤 군사전을 나섰다.

* * *

조용하던 무림이 들썩거렸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들의 화두는 무조건 극일천무신궁이었다.

“허허허. 드디어 무림맹에서 움직이는 것인가?”

“그렇다는구만. 무림맹뿐만 아니라 천검궁의 무신께서도 직접 나오셨다고 했네.”

“하아…… 그렇다면 극일천무신궁은 끝이겠군.”

“그건 모르는 일이지! 이번 무림맹에는 맹주이신 화산도협께서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던걸.”

“그게 정말인가? 무림맹이 나선다면서 맹주가 안 나서면 어떻게 하는가?”

“나도 들은 말인데, 화산도협께서 맹주직을 내려놓겠다고 하셨다네.”

“어허.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무림맹과 천검궁의 연합과 극일천무신궁이 싸운다면 과연 누가 이길지 객잔이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

‘허어. 벌써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군.’

고진유는 정주를 나선 뒤 호북으로 들어선 첫 번째 마을에서 무림의 소식을 들었다.

‘저들이 알 정도면 극일천무신궁에서도 당연히 알겠는데.’

* * *

한자리에 모인 세 명의 노인들.

화비천과 수비천은 목숨을 잃었고 목비천은 당한 뒤 기운을 잃었다.

금비천 나하중은 기운이 빠진 그를 보았다.

“후후후. 목비천께서는 뭘 그리 생각하시오?”

“…….”

목비천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세상을 아래로 두고 내려다보던 분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소이다.”

“지금 놀리는 것이오?”

목비천은 기분이 나빴다.

고진유에게 당한 일을 상기시키는 듯 보였다.

“놀리는 게 아니외다. 너무 기운이 없어 기운을 차리시라는 뜻이었소이다.”

“……하아.”

목비천은 한숨을 쉬며 다시 말문을 닫았다.

“두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소문을 들었을 것이외다.”

“그렇소.”

토비천이 대답했다. 중원에 떠도는 소문을 듣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천검궁과 무림맹이 본 궁을 칠 것이라 하더이다.”

“…….”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이까?”

나하중은 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어떻게라…… 본인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소이다. 싸우는 방법 외에는 없지 않소이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 중원에서 사라지든지.”

목비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만일 평소였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며 반박했을 것이었다.

하나 현 상황에서는 좋은 의견 중 하나였다.

“중원에서 사라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요.”

“…….”

목비천은 한소리 할 줄 알았던 그가 오히려 동의를 보이자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다.

“삼천명군께서도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바뀌었소이다.”

토비천은 목소리는 착찹했다.

그동안 믿었던 삼천명군이 사라졌음을 알았을 때, 모든 게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무림맹과 천검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니 이미 사전에 그들 사이에 협의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린 명족이나 일월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소이다.”

“…….”

“그리고 극일천주를 따르던 무리들이 얼마 전부터 신궁에서 모두 사라졌소이다.”

토비천의 말이 사실이었다.

삼천명군이 바뀌던 날.

극일천무신궁에서는 많은 인물이 사라졌다.

그들은 예전에 모두 극일천주를 따르던 인물들로, 별 움직임이 없어 신궁을 따르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극일천주가 죽은 후 그들에게 별다른 명이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던 것뿐.

극일신궁에서 사라진 인물들의 전력은 거의 전체 절반에 해당했다.

이런 상황에 천검궁과 무림맹이 쳐들어온다면 싸워보지 않아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하중은 나지막이 말을 했다.

“두 분께서는 일월가에 돌아가셔도 좋소이다.”

“금비천,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본인이 시작했으니 끝도 내가 마무리를 지어야지 않겠소이까?”

“…….”

“우리가 이길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소이까? 두 분은 일월가에 돌아가는 게 좋겠소이다.”

“그건…….”

“일월가에서 우리를 극일천에 잠입시킨 임무는 성공했소이다. 두 분도 아시다시피 우린 극일천을 무너뜨렸소이다. 충분히 돌아갈 자격은 있습니다.”

토비천과 목비천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를 보고만 있었다.

“두 분이 본인과 함께 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소이다.”

“금비천…….”

“조만간 일월가에서도 움직일 것이외다. 그건 명부에서도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뜻이겠지요. 무림의 싸움은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이지요.”

“그대도 일월가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본인이 신궁을 세웠소이다. 그동안 우리의 노력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는 없지요. 좋은 결말을 짓고자 하는 것이외다.”

나하중의 모습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 어떠한 말을 해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을 같았다.

토비천은 그가 원하는 대로 뜻을 따르기로 했다.

“금비천의 뜻대로 하시오.”

“…….”

목비천은 말없이 나하중을 보았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올랐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겨우 묻고자 싶은 말이 나왔다.

“왜…… 죽고자 하는 것이오?”

“목비천, 이건 죽고자 하는 게 아니오. 조금 전에도 말을 했지만 우리의 임무를 끝내는 것이외다. 극일천무신궁이 사라지는 것을 본인이 끝까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목비천은 그를 유심히 보았다. 세월을 셀 수 없는 동안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넌…… 여전히 꼴 보기 싫은 놈이다.”

“허허허! 예전의 젊었던 음도문을 보는 것 같군. 근데 너도 나에게는 마찬가지였어. 내가 말을 안 했지만 네놈과 함께할 수 없다고 부탁했는데 가주께서 끝까지 들어주지 않더군.”

“클클클…… 이제야 똑바로 실토하는군. 네 사람 중 그놈이 네놈일 줄 알았다. 가주께서 죽으면 죽었지 함께 못하겠다고 하던 녀석이 있었다고 했는데.”

“훗. 이제 알았으니 돌아가라. 나도 꼴 보기 싫다.”

“알겠다. 돌아가 주마.”

목비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할 말이 없는지 돌아서며 그 자리를 떠나고자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일월가에 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지낸 건 네놈 때문이었다.”

“다행이군. 배웅은 안 한다.”

“…….”

자리를 떠나는 그의 표정에는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목비천이 떠난 자리에 금비천과 토비천이 남았다.

“자네도 떠나게나.”

“혼자서 심심하지 않겠는가?”

“후후후. 조용해서 좋구만. 오래전 일도 생각할 겸 조용한 게 좋다네.”

토비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를 벗어나면 그와는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마무리를 지을지 몰랐네.”

“나쁘지도 않지. 떳떳하게 돌아가게나.”

“그렇게 하겠네. 자네 말대로 우린 성공하지 않았던가.”

토비천은 나하중과 한동안 시선을 주시한 뒤 물러났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공허함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천주가 보고 싶군.”

그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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