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50화 (350/425)

350화

악진경은 마주 앉은 청년을 보며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고진유를 편하게 사위로 불렀다.

“사위, 소소가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네. 그 녀석을 예쁘게 봐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소소는 좋은 여인입니다.”

“허허허, 바쁘다고 하니 차라도 한잔 들게나.”

“고맙습니다.”

바삐 무림맹으로 가야 하기에 악진경은 술 대신에 차를 준비했다.

“그곳에 다급한 일이 있는 모양인가 보네.”

“극일천무신궁을 칠 생각입니다.”

“……!”

악진경과 악호문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묵경 형은 오는 도중에 천검궁으로 떠났습니다. 천검궁은 무림맹과 함께 그들을 칠 것입니다.”

“맹주인 자네도 함께하는가?”

“아닙니다. 전 맹주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고진유의 말에 두 사람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맹주를 그만둔다는 게?”

“무림맹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더는 없습니다.”

“또…… 그건 무슨 말인가?”

악진경은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림맹이 극일천무신궁을 치는데 맹주인 그가 할 일이 없다니?

“제가 없어도 무림맹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네가 나선다면 더 쉬울 게 아닌가?”

“제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극일천무신궁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나서야 할 곳은 무림의 멸존이 아닌 세상의 종말을 상대로 싸우는 일입니다.”

“…….”

만일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진경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세상에 나온다면 무림은 물론, 살아 있는 생명이 모두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인가?”

“그들은 구천명부입니다. 본 가인 극가에서는 그들을 일월가이며 명족이라 부릅니다.”

“아니…… 그게 사실이었단 말이오?”

일월가와 명족에 대해 적힌 글.

오래전, 고서에서 읽었던 내용이었다.

-일월 명족이 명부에서 올라오는 날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니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지니 극일이 강림하거늘 세상은 평온해지리라.

“제가 이곳에 들르기 전, 삼천명부에 다녀왔습니다.”

명부에 사람이 들락거린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고진유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명족이 나온다면 막아낼 수 있겠는가?”

“본 가와 함께 그들을 막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화산파 제자들과 함께 향천이라는 세력을 만든 이유가 그들과 싸우기 위함이었군.”

“그렇습니다.”

고진유의 대답에 그는 궁금했던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맹주인 그는 무림맹에서 나간 뒤 향천이라는 세력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원인들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었다.

“힘든 싸움을 준비하는 모양이네. 혹시 도울 일은 없는가?”

“말씀은 고맙지만 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일은 본 문과 본 가에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그 정도인가?”

“중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구천명부 중 한 곳만 나오더라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중원은 멸망입니다.”

“…….”

“화산파도 함께한다고 들었네.”

악진경이 보기에, 지금 강하다고 해도 화산파 또한 중원의 문파였다.

“본 문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충분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됩니다.”

“아하…… 허, 그래서 화산파가 강한 것이었군.”

고진유뿐만 아니라 그의 화산파 사형제들의 무공이 뛰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위는 이들과 싸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것이로군.’

악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동악가는 극일천무신궁을 상대로 싸워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네. 음…… 그런데 맹주직을 내려놓는다면 차후 맹주직에 누가 오르는가?”

“당분간은 제갈 군사께서 무림맹을 맡아 움직일 것입니다. 맹주직은 이번 싸움이 끝날 때까지 비워둘 것이고요.”

“알겠네. 제갈 군사라면 충분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임무에 나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네.”

“무림맹과 천검궁이 나선다고 하지만 여전히 극일천무신궁의 힘은 강합니다. 장인어른께서도 조심하시기를 빕니다.”

“조심하도록 하겠네.”

고진유와 악진경은 반시진을 더 함께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고진유는 산동악가를 떠났다.

* * *

묵경은 태산에서 고진유와 헤어진 후 태원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두두두두-

말을 타고 천검궁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주위에서 노려보는 숨은 기가 느껴졌다.

‘예전에는 엄청 부담스러웠는데…….’

묵경은 천검궁에 다가서면서 스스로 무공이 많이 올라섰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배울 게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위 인물들이 펼치는 무공들은 대단했으니까.

그것들을 볼 때마다 늘 자신의 무공은 모자라는 게 많았다.

최소한 그들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다.

휘익!

그때, 천검궁으로 다가서는 묵경의 앞으로 십여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풍류옥협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궁주님을 뵙고자 왔소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부탁하겠소이다.”

묵경은 그들을 따라 천검궁으로 들어섰다.

“잠시 유운정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유운정에 들어서 반각 정도 시간이 지나갈 때였다.

유운정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기척을 느꼈다.

바람을 따라 여인의 향기가 전해졌다.

“묵경 님.”

검비의 수장이기에 천검궁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소식을 들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금 소저, 오랜만이외다.”

스윽.

묵경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곁으로 다가서 그녀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하하하. 손이 따뜻하외다.”

묵경은 마음이 뛰면서 천검궁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 소저, 미안하외다. 자주 찾아와야 했는데.”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이해를 해주셔서 고맙소이다. 주위의 상황이 좋지가 않아서…….”

“모든 일이 정리되면 괜찮아지겠지요.”

“맞소이다. 우리가 함께 지내려면 세상이 조용해져야 할 텐데.”

“……네에.”

그녀는 묵경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 자신을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일이 끝나면 전 소저와 항상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도요.”

금하희의 아주 작은 대답이 나왔다.

지금은 그와 떨어져 있지만 중원의 일이 끝난다면 다른 연인들처럼 그와 함께할 것이었다.

“아 참, 사부님을 뵙고자 하신다고요?”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진유 아우의 부탁으로요.”

“이번에도 직접 오신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이신가 보네요.”

굳이 그녀에게 비밀로 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까.

“극일천무신궁을 칠 것입니다.”

“……!”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궁주님께서 앞장을 서주시길 부탁한다는 진유 아유의 전언을 전하러 온 것입니다.”

“본 궁에서 그들과 싸우기를 원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맹주께서 묵경 님을 직접 보내신 것을 보니 이번에도 무림맹은 나서지 않는 것인지요?”

“아닙니다. 당연히 무림맹도 함께할 것입니다. 진유 아유가 원하는 건 천검궁에서 무림맹과 함께 극일천무신궁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다만 진유 아우는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하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맹주께서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진유 아우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구요?”

“죄송합니다. 그건 나중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묵경은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는 고진유의 부탁이 있었다.

“알겠어요. 나중에 가르쳐 주세요.”

“미안하외다.”

“아니에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극일천무신궁이 정리가 되면 바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묵경과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유운정으로 사람이 찾아왔다.

* * *

묵경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궁주님을 뵙습니다.”

“묵 대협, 이번에도 혼자 찾아온 것을 보니 중요한 일인가 보군.”

“송구합니다. 좋은 일로 찾아뵈어야 하는데 부탁할 일이 생길 때마다 오는 것 같습니다.”

“후후후. 맹주가 이번에는 어디를 치고자 하는가?”

초일군은 천검궁으로 묵경 혼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자 찾아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다.

“맹주가 부탁하기를, 무신님께서 천검궁에서 극일천무신궁을 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음…… 맹주는 이번에 나서지 않을 모양인가 보지?”

초일군은 이번에도 단번에 알았다.

맹주 고진유가 직접 묵경을 통해 부탁했다는 것은, 그는 이번 일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맹주가 나선다면 굳이 천검궁에 올 일이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맹주가 무림맹을 나간 뒤 향천이라는 세력을 만들었다고 들었네. 맹주는 극일가의 인물이지. 향천을 만든 이유는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극일천무신궁이 아니라는 것이겠고. 맞는가?”

“궁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묵경은 앉은 자리에서 그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던 그는 고진유가 놀라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역시…… 그는 대단한 인물이네. 무림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싸운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진유 아우는 분명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 생각이 됩니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무림뿐만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무신 초일군조차 인정을 했다.

그동안 극일천무신궁이 무림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고진유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의 뜻대로 하지.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이번 임무는 천검궁과 무림맹에서 나서도록 하겠네.”

“고맙습니다.”

묵경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 *

고진유는 산동악가에서 나온 뒤 정주로 들어섰다.

하지만 누구도 고진유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변용을 한 채 정주에 도착한 뒤 조용히 무림맹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무림맹의 벽을 넘어섰다.

휘익!

고진유는 무림맹의 경내로 들어온 뒤 내력을 감추며 군사전으로 움직였다.

군사전의 집무실에 다가서면서 제갈양의 기척이 있음을 확인했다.

‘혼자 있군.’

스르르륵.

군사전으로 들어서도 주위를 호위하는 수많은 시선들은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무실의 복도까지 다가선 뒤 모습을 드러내자, 제갈양의 신변을 호위하던 호위무사들이 바로 고진유의 앞으로 내려섰다.

독전호는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

“오랜만이네요.”

“본 맹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군사에게 볼일이 있어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무림맹에는 별일 없었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군사를 만나고 갈 테니 독 군장은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군사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됐어요. 아…… 그리고 독 군장께는 앞으로도 군사의 호위를 잘 부탁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그와 눈인사를 한 뒤 군사의 집무실로 다가섰다.

똑똑.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말을 했다.

“제갈 형님, 진유입니다.”

“들어오시게.”

집무실 안에서 제갈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륵.

고진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맹주, 어서 오게나.”

제갈양은 문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오랜만에 나타난 고진유를 반갑게 맞이했다.

“제갈 형님, 잘 지냈습니까?”

“나야 늘 잘 지내고 있지. 맹주는 태산에 잘 다녀왔는가?”

“허, 대단하시네요. 태산에서 오는 길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충 이것저것 주위에 들리는 소문들을 유추해 보니 맹주가 사라진 장소가 태산이 아닌가 싶었거든.”

“허어…….”

제갈양은 태안에서 그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비밀리에 들었다.

그런데 태안에 나타난 네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뒤 며칠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며칠 전 산동악가에 고진유 혼자 잠시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나머지 세 명이 어디에 있는 지 확인해 보았다.

두 명은 향천으로 돌아갔고 한 명은 천검궁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들 세 명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태산, 그리고 무림맹에 오기 전 동평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은 태산에서 오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맞습니다. 태산에서 볼일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그곳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

“네. 그게…….”

고진유는 형주에서 태산까지 가야만 했던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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