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49화 (349/425)

349화

그는 새로운 삼천명군이 되었다.

“수고했다.”

“회춘하셨군요.”

“크크크. 회춘이라…… 그렇긴 하지.”

그의 신형에서 흐르는 괴기는 방금 싸웠던 삼천명군보다 강했다.

“이번에는 당신과 싸워야 하는 것이오?”

“은룡투인과 싸울 정도로 판단을 못 하는 것은 아닐세.”

“그렇소? 하지만 오늘은 아니더라도 다음에는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건 그때의 일이지.”

두두두두두-

그때, 대전으로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관주 진광이 대전으로 빠르게 들어선 뒤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주위를 살피다 모습이 변한 삼천명군을 향해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털썩.

“삼천명천지의 주인이신 명군님을 뵙습니다. 돌아오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

“클클…… 진광, 그동안 자네가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당연히 수하인 제가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알겠지? 그동안 본군에게 적의를 가졌던 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찾아내서 죽여라.”

“명군님의 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진광은 대답을 했지만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저…… 죄송하지만 이자들은……?”

“됐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물러가도 좋다.”

“알겠사옵니다.”

진광은 빠르게 대전을 나섰다.

잠시 뒤, 대전 밖으로 수많은 무리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전에 남은 세 사람.

새로운 삼천명군이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가리켰다.

“은룡투인, 우선 저놈을 죽여줘서 고맙다. 머리도 나쁜 놈이 괜히 머리를 굴리는 덕에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군.”

“좋다고 하니 다행이오. 이제 우리에게 딱히 볼일이 없다면 그만 올라가도록 하겠소이다.”

“그냥 가려고 하는가? 나도 고마움을 아는데 혹시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게.”

“다른 건 필요 없소이다. 하나 있다면…… 앞으로 조용하게 지냈으면 하는군요.”

“크크크, 조용하게라…… 나도 저번에 당한 뒤 많은 생각을 했지. 굳이 위에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근데 나머지 다른 놈들은 아닐 걸세. 내가 듣기로 팔천에서 중원에 나가 있는 일월가는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고 하더군.”

“팔천명부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지. 죽은 저놈은 일월가보다는 극일천무신궁을 이용해서 올라가려고 한 것이고, 팔천은 일월가 전체를 직접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지.”

“좋은 정보를 들었군요. 혹시 팔천은 어디에 있는지 압니까?”

“알고 싶은가?”

“알려줄 수 있다면 알고 싶죠.”

명군은 고진유와 시선을 똑바로 보았다.

“…….”

전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위치를 똑바로 들을 수 있었다.

“알아서 잘해보게.”

“명족들은 함께 움직이지 않은 모양입니다.”

“명왕께서 명을 내리기 전까지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아. 그렇다고 명왕의 명을 완전히 따르는 것도 아니고. 중원에서 생각하는 것과 조금은 다르지.”

“그건 아니던데…… 내가 보기에 똑같아 보입니다.”

“……크크크.”

“이전 명군이 사라졌으니 이제 극일천무신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은 저놈이 하던 짓이라 난 관심 없네.”

“중원에서 그들을 지워도 상관없겠소이까?”

“사라지든 망하든 난 관계가 없으니 중원에서 알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시게.”

“알겠습니다. 상관없다고 하니 그렇게 알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잘 가시게. 가끔 심심하면 내려오고. 그땐 이곳의 술을 대접하도록 하지.”

“후후후. 알겠소이다.”

고진유의 몸에서 용린이 사라지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삼천명천지에 내려온 일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묵경 형, 우리도 그만 올라가요.”

“수고했어.”

옆에 물러나 있던 묵경은 두 사람 앞으로 나왔다.

삼천명군과의 대결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극일가나 명족이나 절대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우리와 사는 세계가 다른 거야.’

극일가와 명족이 다투는 세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과는 달랐다.

묵경은 명군 앞에 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젊어졌다고 해도 무한의 나이를 가졌음을 알았다.

“어르신, 완쾌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클클클, 먼저 나갔던 그놈도 그렇고 예의가 바르군. 자네도 은룡투인과 같이 와도 되네.”

“고맙습니다. 모든 일이 정리되면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언제든지 와도 환영하겠네.”

* * *

반시진 뒤.

고진유와 묵경은 명천지를 벗어났다.

주위는 그들이 처음에 들어섰던 숲속이었다.

밖으로 나온 묵경은 뒤를 돌아보았다.

“형, 무슨 생각 하세요?”

“그분이 다음에 놀러 오라고 하던데…… 진짜 가도 될까?”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요?”

“그건 아니고, 그곳에는 만든 술은 어떨지 궁금해서.”

“하하, 알겠어요. 무림 일이 정리되면 내려가 보도록 하죠.”

“그럴까?”

묵경은 명족에서 만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묵경 형, 향천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정리할 일이 있어요.”

“그게 뭔데?”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게 어떻겠어요?”

“……정말로?”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동안 극일천무신궁과 연관된 곳은 삼천명부였어요. 그가 극일천무신궁을 이용해서 명왕이 세상에 나오도록 움직였던 거죠. 근데 이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니,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음…… 명왕이 다시 삼천명부에 명령을 내릴 수 있잖아.”

묵경의 생각으로는 삼천명군이 바뀌었다고 해서 명왕의 뜻을 어기지 못할 것 같았다.

“형도 그의 말을 들었잖아요. 명왕이라고 해도 거부할 수 있다고 했어요. 거기다 그는 극일천무신궁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고.”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맞아요. 그가 상관이 없다고 했으니 문제가 없습니다. 극일천을 무너뜨리기 위해 숨어들었던 비천의 인물들은 일월가 소속이었지만, 명령을 내린 삼천명군이 죽은 지금은 일이 실패했다고 여길 겁니다.”

“…….”

“명왕이 위에 올라가기로 하지 않게 된 이상, 이제 극일천무신궁은 그들에게 필요가 없어졌죠.”

묵경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명부에서도 그들을 포기했다면 극일천무신궁을 지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긴 했다.

“삼천명부에서 관여하지 않는다면 굳이 칠 필요가 있을까? 혹시 함정을 파서 모르는 척하다가 다른 곳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

“당장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극일천무신궁을 치자는 겁니다. 형 말대로 삼천명군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무림은 피곤해질 수 있겠죠. 그럼 차라리 빨리 지우는 게 좋습니다.”

“다른 곳에서 접근하는 걸 미리 차단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군. 그런데 일월가의 정확한 정체는 뭐지?”

“네. 맞아요. 일월가는 정확히 명족의 지상강림을 위한 무림인들의 세력이라 보시면 됩니다. 명족의 손발이죠. 일월가에서 움직이기 전에 무림의 귀찮은 일을 정리하는 게 순서일 것 같아요.”

“알겠다. 나도 그게 좋겠어.”

묵경도 극일천무신궁을 치는 계획에 동의했다.

“향천으로 가는 길에 무림맹에 들렀으면 해요.”

“무림맹에?”

“네. 극일천무신궁은 무림맹의 힘으로 칠 겁니다.”

“향천이 아니고?”

“우리 상대는 일월가와 명족입니다. 향천은 그들을 공격하는 데 나서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까?”

“무림맹이 움직인다면 그들은 주시만 할 뿐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삼천명군이 맹이 아니라 향천으로 찾아왔다는 건, 명부에서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묵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향천이 나선다면 극일천무신궁을 쉽게 처리할 수 있으나 일월가와 명족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무림맹이 나서는 것은 맞긴 한데…… 향천이 아니라면 신궁주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그들에게는 고수들이 많이 있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숨겨놓은 강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중원 무림에 그분이 계시잖아요.”

“누구?”

“무신.”

“아하…….”

천검궁의 궁주이자 무신 초일군.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무림최고의 무인은 무신이라고 아직도 많은 중원인들이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고진유와 정확하게 승패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분과 천검궁이 나서준다면 충분히 신궁주를 이길 수 있을 거야.”

“네, 맞아요. 무림맹과 함께 천검궁이 움직인다면 극일천무신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묵경은 무엇인가 걸리는 듯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천검궁이 무림맹과 함께 극일천무신궁을 무너뜨린다면 천하제일문이 천검궁에 넘어갈 수도 있지 않나? 괜찮겠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긴 하죠. 그렇다고 본 문에서 아쉬워할 분들은 없을 겁니다. 여전히 천하제일인이 제가 있잖아요. 나중에 무신인 그분과 공식적으로 비무를 해서 이겨 버리면 문제없어요.”

“조금 유치한데? 너무 속 보인다.”

“중원인들은 그런 거 몰라요. 결과가 중요하죠, 결과가.”

“그렇긴 한데. 하여튼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게 대단하다.”

“신궁을 치는 거요?”

“아니, 무신인 그분과 비무를 하겠다는 생각까지 미리 하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후후후. 당분간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물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참…… 너도 인간적이야.”

고진유의 능력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그였다.

은룡투인의 모습까지 직접 보았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이미 그 선을 넘어선 듯했다. 다른 인물이었다면 상대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정도로.

하지만 고진유는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게 없었다.

“천검궁에는 어떻게 연락할 거야?”

“형이 직접 가고 싶어요? 보아하니 천검봉 형수를 만나고 싶은 모양인가 보네요.”

“…….”

그녀가 보고 싶긴 했다. 한참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였구나. 다녀올래요?”

“그럴까?”

“그렇게 하시죠. 난 무림맹에 갔다가 향천에 먼저 갈게요. 형은 천검궁에 간 김에 혹시나 모르니 그분의 곁에서 도움을 주다가 오세요.”

“알겠다.”

묵경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 * *

묵경과 고진유는 태산을 내려온 후 바로 헤어졌다.

묵경은 천검궁이 있는 태원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고진유는 하남성의 정주로 향했다.

정주로 내려가는 길에 비성을 지나자 동평이 나타났다.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얼굴은 뵙고 가는 게 좋겠지?’

다른 곳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었다.

동평에는 산동성의 패자 산동악가가 있었다.

‘그분께 잠시 들렀다가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

두두두두-

고진유는 동평으로 들어선 뒤 말을 빠르게 몰았다.

산동악가의 경내로 들어서기 전, 악가소문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겼다.

호위를 선 소문 위사가 빠르게 달려오는 기마 한 필을 보았다.

소문 위사는 얼른 악가소문 안으로 소리쳤다.

“위사장님, 저기…… 말을 타고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휘익.

다급하게 장창을 챙기고 나온 삼십대 초반의 사내.

위사장 악홍은 달려오는 기마를 탄 인물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정문 위사가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는 시력이 좋아야 하며 상대가 누구인지 빨리 알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청년인데…… 어디서 봤더라? 안면이 있는데…….’

말 위에 탄 젊은 청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헉…… 이런, 조충, 지금 바로 안에 들어가서 총관님께 알려라. 천하제일인이 왔다!”

“네에? 아, 알겠습니다!”

휘이익!

조충은 손에 든 창을 내던지다시피 한 뒤 빠르게 경내 안으로 달렸다.

고진유는 악가소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을 보고는 말을 멈춘 뒤 아래로 내려섰다.

“혹시 악…… 홍 형님이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예전에 그가 본 가에 방문했을 때 스쳐 지나가듯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얼굴은 기억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맹주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림맹으로 가는 길에 그냥 지나갈 수 없어 가주님께 인사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아! 방금 안에 연락을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 악가소문을 들어선 뒤 악가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빠르게 달려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총관 악호문은 위사장 악홍과 함께 걸어오는 고진유를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태안에서 그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자 섭섭한 생각이 든 그들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그가 처가인 산동악가에 얼굴이라도 잠시 비쳐주면 산동악가 무인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후후후. 역시…….’

그가 어디를 다녀오는지는 몰라도, 본 가에 왔다는 건 산동악가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맹주, 어서 오시오.”

“호문 숙부님, 아닙니까? 반갑습니다.”

“허허허, 혼자 왔소이까?”

“다른 사람들은 바쁜 일들이 있어서 따로 움직였습니다.”

“그렇소이까? 맹주는 어디를 가는 길이오?”

“무림맹으로 가던 길에 들렀습니다.”

“일부러 찾아와주어서 고맙소이다. 지금쯤이면 가주 형님께 연락이 들어갔을 것이오.”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 가주전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