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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48화 (348/425)

348화

‘전설이라고 알려진 인물이 진유였다니…… 세상 좁군.’

고진유의 변한 모습을 보며 묵경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고진유를 향해 손만 흔들었다.

“멋있어.”

“고마워요. 인양과 녹검 씨는요?”

“홍과를 가지고 먼저 보냈지. 지금쯤이면 제수씨는 괜찮을 거야.”

“역시. 잘해주셨어요.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형은 옆으로 물러나 계세요.”

“알겠다.”

묵경은 바로 뒤로 물러나면서도 시선은 고진유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다.

백발노인과 함께 오는 길에 은룡투인의 전설에 대해 들었다.

묵경 또한 원시무림 역사 속 전설의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근데 그 인물이 용맥의 계승자를 가리키는 말인지는 처음 알았다.

삼천명군은 대전에 모습을 드러낸 백발노인을 보며 웃었다.

그가 편안하게 명천궁으로 들어온 이유를 알았다.

“오관주 진광까지 당신의 추종자일 줄은 몰랐소이다.”

“네놈이 똑바로 하지 못하니 그가 여전히 나를 찾는 게 아니더냐?”

“큭, 망할 노인네가.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모두 정리하고자 했소이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버리겠소.”

“맘대로 하거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누군가를 이겨야지 않을까?”

백발노인이 믿는 것은 은룡투인 고진유였다.

“한때 명군이었던 자가 극일가의 인물에게 빌붙어 살고 싶은 모양이지?”

“네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

휘익!

백발노인은 상체를 보여주기 위해 상의를 위로 잡아당겼다.

“이것을 기억하겠지?”

“…….”

“네놈은 나를 죽지도 못하게 만든 뒤 치욕을 주었다. 네놈이 살려줘서 고마울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네놈이 죽는다면 심장을 파낸 뒤 먹어줄 것이다.”

“클클, 전대의 명군이라 대우를 해줬더니 치욕 같은 소리나 하고 있군. 알겠소이다. 기다리시오.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당신을 심장을 꺼내주겠소이다.”

삼천명군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고진유와 마주섰다.

그를 불러들였지만, 이들과 손을 잡을 줄은 몰랐다.

“용맥의 계승자라는 인물이 멍청하게 명족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다니 어이가 없군.”

“어이는 무슨. 시작은 네놈이 한 거잖소? 내 가족을 건드렸다는 건 나를 만만하게 봤다는 뜻이지. 난 이들과 손을 잡은 게 아니라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한 것뿐. 그 이상 이하도 없어.”

“…….”

“난 당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소. 다만 내 사람을 건드린 것에 대한 관심만 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대가는 지금 당신에게 물을 것이고.”

“홍과를 가지고 가서 치료하지 않았나? 그것이면 충분할 텐데.”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당신이 사랑하는 내 사람을 건드렸다는 게 중요한 거라니까.”

삼천명군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아났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는 고진유가 가족에 대해 가진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내 사람을 건드린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그건 그대가 스스로 판단하시고.”

“내가 용서를 빈다면 받아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대가 하는 걸 봐서.”

삼천명군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잘하면 은룡투인과 싸우지 않고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백발노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는 고진유의 눈치를 살폈다.

만일 그가 싸우지 않고 서로 합의하에서 물러난다면 자신은 삼천명군에게 당할 것이 분명했다.

삼천명군은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잘만 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겠군.’

삼천명군은 중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황금이 필요하지 않은가? 달라는 대로 주겠네. 받아주겠는가?”

“황금이라. 좋은 물건이지.”

“그것으로 결정을 내리겠나?”

“음…… 근데 그건 아닌 것 같소이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 여인을 황금에 팔 수는 없지 않소이까?”

“……!”

고진유의 말과 표정에 그의 인상이 다시 변했다.

‘이…… 자식이…….’

그의 목소리에서 농락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황금이 아니라면 무엇을 원하는 것이지?”

“내 아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한 자의 목을 원하오.”

“…….”

삼천명군은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그는 다른 뜻이 없었던 것이다.

“크크크크…… 좋아. 내 목숨을 노리겠다…… 하필이면 좋은 것을 두고 최악의 선택을 하다니. 정말 멍청해.”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장 최선으로 당연한 결정이오.”

파앗!

삼천명군이 내력을 일으키자 몸이 점점 붉게 변했다.

“지상이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절대로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도 궁금하오. 당신을 죽일 수 있을지. 한데 만일 가능하다면 앞으로 명족은 피곤해지겠지. 사전에 연습 삼아 당신과 싸워보고 싶군요.”

채애애앵-!!

이번에는 고진유의 은빛 용린에서 소리가 울렸다.

고진유는 기분이 점점 좋아져 갔다.

“오랜만에 좋은 상대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걸 보니.”

용린으로 덮인 전신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퍼져 나갔다.

파아앗!!

고진유가 먼저 신형이 움직였다.

눈동자가 빛을 뿌리면서 사의검을 내리쳤다.

카아아아앙!

삼천명군은 손을 뻗어 사의검의 검강을 막아냈다.

강대한 기의 부딪침에 주위 대전 전체가 흔들거렸다.

“당신, 제법 하는군.”

“크하하핫!! 구천명부에 들어서 명천지의 수장에게 하는 말이 제법 한다라! 은룡투인이라 해도 너무 말이 광오하군!”

“얼마나 대단한 곳이라고 자부심이 넘치는군. 여기가 지옥의 명부는 아니지 않소? 비슷할 뿐이지.”

삼천명군이 양손에 암흑의 멸존구를 끌어 올렸다.

“비슷하다 해도 명부의 한 곳. 은룡투인의 전설은 오늘 이 시간부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휘이이잉-!

삼천명군의 손이 움직이며 양손에 들린 멸존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크크크…… 과연 이것을 받아낼 수 있을까?”

퍼어어엉-!!

퍼어어엉!!!

두 개의 멸존구가 터지면서 고진유의 머리 위에 암흑의 공간이 생겼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공간 안으로 고진유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앙-!!

고진유의 전신에서 은룡투기가 뻗어나가며 암흑의 공간을 삼켰다.

번쩍.

섬광과 함께 검강이 폭발하면서 멸존구가 만들어낸 암흑의 공간이 너무나 간단하게 사라졌다.

“어떻소? 이런 장난은 그만합시다.”

투기만으로 멸존구를 밀어낸 고진유의 무력은 끝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놈이지? 계속해서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을 조금씩 넘어가고 있어.’

상대의 무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고진유에겐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명부에서 싸우는 이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승패의 결정은 그들의 실력 차이에 의해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명왕과 대등하게 싸웠던 은룡투인의 후인이라면…….’

자신이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점점 호흡이 힘들어질 만큼 가슴이 무거웠다.

‘설마…… 이……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것이 아니겠지?’

명족에게 두려움은 없는 감정이었다.

근데 죽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면 다시 시작하겠소.”

샤샤샤샤샤-

고진유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삼천명군을 잡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직접적인 타격 외에는 승패가 쉽게 나지 않을 것이었다.

고진유의 신법을 삼천명군은 도저히 눈으로 좇아갈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이보다 빠른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빠르다. 어디……?!’

왼쪽에서 은빛이 보이더니 어느 순간 오른쪽 방향에서 한 줄기의 은빛이 지나갔다.

‘크윽, 어디, 어디냐!’

삼천명군은 눈이 커지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움직임으로 물러났다.

스걱.

짧은 순간, 따가운 느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망할……!’

조금이라도 피하는 게 늦었다면 단번에 목이 잘려 나갔을 터.

휘익.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서며 고진유를 찾았다.

도저히 상대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최후의 방법.

한 번 전신에 변화를 주면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데 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되도록 펼치기 싫었지만, 당장 그에게 당하고 싶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우…….

삼천명군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오직 영혼만이 남아 있는 듯 보이기 시작했다.

고진유는 그의 모습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향천에서 마주쳤던 모습과 비슷하군.’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모습.

“크크크…….”

그는 괴기스럽게 이빨을 드러내며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휘익!

그의 움직임은 전보다 서너 배가 빨랐다.

고진유가 그가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팟팟팟.

휙휙휙.

두 개의 빛과 함께, 움직이는 소리만이 대전 안에 들릴 뿐이었다.

까앙!

고진유는 사의검을 들어 그가 내리친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냈다.

곧바로 반격했지만 사의검은 그의 신형을 그대로 통과하며 지나갔다.

‘무형괴인으로 변하면서 벨 수 없게 됐어. 이렇게 싸웠다가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수십 번 사의검으로 그를 베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크크…… 네놈이 아무리 은룡투인이라 해도 명부에서는 절대로 나를 죽일 수 없다……!”

“신기한 재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일 수 없는 건 아니오!”

삼천명군을 죽일 수 있는 방법.

“과연…… 그럴까?”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챠르르르-

용린의 비늘이 흔들거리며 소리를 냈다.

취이이이이.

용린의 비늘이 사의검까지 번져 올라가며 완전히 뒤덮었다.

‘일검!’

단 한 번의 끝.

쿠와아아앙-!!!!

마지막 한 수라는 사실을 그 또한 느꼈는지 삼천명군도 괴성을 지르며 상황을 주시했다.

파앗!

고진유의 신법이 다시 움직이며 무형괴인으로 변한 삼천명군의 앞으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섰다.

흑천대멸.

삼천명군의 전신에서 뻗어 나온 강기는 다가온 고진유를 감싸기 시작했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쏴아아아아…….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 소리가 들렸다.

흑천대멸의 강기 속에서 용린으로 감싸인 사의검이 만들어낸 차가운 냉기가 지나갔다.

‘뭐지?’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크크크크…… 별게 아니군.”

“과연 그럴까?”

“……?”

삼천명군은 고진유의 표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우우욱…….

‘이건…….’

무형으로 변한 그의 몸이 차가운 냉기에 의해 바로 점점 굳어져 갔다.

“물은 자르기 힘드나 얼음은 깨뜨리기 쉬운 법.”

얼어붙은 그의 몸을 향해 사의검이 다시 지나갔다.

콰직, 콰지지지직-

삼천명군의 몸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 조각들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커어어억……!!”

그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였다.

휘이익!

대전 옆에 있던 백발노인이 재빨리 쓰러진 그를 향해 다가섰다.

푸욱.

백발노인의 손이 삼천명군의 가슴을 찌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아아아아악!!”

삼천명군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백발노인은 손에는 그의 가슴에서 꺼낸 심장이 들려 있었다.

“클클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겠지?”

“…….”

“넌 그때 나를 죽였어야 했다.”

와싹.

백발노인은 손에 든 심장을 한입 뜯어 입안으로 흐르는 피를 마셨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백발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점점 검게 변했다.

상체는 치료가 되었는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왔다.

스스스스스-

휙.

그는 정상으로 돌아온 몸을 보며 손에 든 심장을 옆으로 내던졌다.

괴기한 눈빛으로 변한 그가 고진유의 앞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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