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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45화 (345/425)

345화

그는 미소를 짓는 고진유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나에게 목적이 있다고 보는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당분간 같이 다닐 사람인데, 안 그렇소?”

“…….”

“내가 보기에 이제 당신들은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 판단했을 겁니다. 이대로 오관으로 들어선 뒤 명천궁으로 들어갔다간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확신했겠지요. 당신들 입장에서는 꼭 명군을 죽여야 하는데, 겨우 기회가 찾아 왔다고 생각했을 테니. 그런 인물이 죽으면 안 된다고 여겼을 테고.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나를 도와주는 척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바로 대답을 못 했다. 고진유가 한 말이 모두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삼천명군을 죽일 수 있는 인물.

고진유의 존재 자체였다.

“그대의 말이 정확하다. 우린 그를 죽여야 하지. 무조건…… 만일 실패한다면 그대뿐만 아니라 우리도 살아날 수 없다.”

“그렇군. 한배를 타야 한다는 말이군요.”

“아직…… 탈지 말지 고민 중이다.”

“후후, 그건 내가 할 말이외다.”

고진유는 느긋하게 그를 보았다.

결정은 그들이 내리는 게 아니라 직접 싸워야 하는 고진유의 몫이었다.

둘 중 칼자루를 잡은 쪽은 그들이 아니라 고진유라는 것이다.

아쉬운 놈이 우물을 먼저 판다고 했다.

“난…… 명화공이라 한다.”

스윽.

그는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옥병을 내밀었다.

“이걸 마시게.”

“무엇이지요?”

“공령수(功靈水)다. 일월가이자 명족의 최고 보물인 원기액이지.”

“이 귀한 걸 왜 나에게 주는 겁니까? 당신들이 모시던 그에게 주지 않고?”

“그분께는 소용이 없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요?”

“마시면 된다.”

“…….”

고진유는 그가 준 공령수를 받아 들였다.

다만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것을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되오?”

“사관까지 오는 동안 흩어졌던 내력을 원래 상태로 돌아오도록 해준다.”

“효능이 좋은 것이군요.”

“당연하다. 일월가의 최고 영약이지.”

“좋다고 하니 알겠습니다만…… 내가 의심 없이 이것을 복용할 것이라 봅니까?”

“…….”

명화공은 이마에 주름이 진하게 생길 정도로 인상을 썼다.

‘이 자식이 좋은 걸 줘도…….’

일월가에서도 구하기 힘든 공령수를 주는데도 의심을 받았다.

‘하긴. 나라도 처음에는 의심하겠지.’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거늘 처음 만난 사람이 주는 것을 의심 없이 복용할 인물은 없었다.

툭.

고진유는 옥병을 열어 코를 대며 냄새를 맡았다.

“으, 왜 이리 썩은 냄새가 납니까?”

“썩은 냄새가 난다고?”

그는 고진유의 손에 드린 옥병 앞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킁킁.

후각을 최대한 집중하며 옥병에서 올라온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인상을 썼다.

옥병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향기가 났다.

“이건 썩은 냄새가 아니잖아.”

“내 코가 잘못됐나?”

그가 소리를 쳤지만 고진유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한 듯 한 번 더 냄새를 맡았다.

“아, 내가 잘못 알았소. 아닌 것 같습니다.”

꿀꺽.

그러고는 옥병에 든 공령수를 단번에 마셨다.

식도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공력수의 기운들이 중간중간 혈맥을 따라 퍼져 나갔다.

공령수 덕분인지 무거웠던 몸이 단번에 가벼워지고 있었다.

“약효가 좋군요.”

“…….”

“한 병 더 있습니까?”

“수상하다며 못 마시겠다더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복용해야 할지 망설이긴 했지만, 안 마실 거라고는 안 했지요.”

“어차피 같은 뜻이 아니더냐?”

“그랬나?”

“…….”

놀림을 당했다고 느꼈는지 명화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죠. 계속 여기에 있을 것입니까?”

“이번은 어쩔 수 없이 그대와 함께 가지만 다음에는…….”

그는 말을 멈췄다.

어차피 단 한 번의 공조일 뿐이었다.

삼천명군만 제대로 처리해 준다면 나머지는 뒤에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다음에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오?”

“그건…… 뒷일이 아닐까? 나중에 생각해 보지.”

“맞군요.”

“조용히 따라오게. 주위에 눈과 귀들이 많아서 조심해서 움직여야 하네.”

명화공은 앞장을 서더니 황금로를 벗어나며 움직였다.

스르르르륵.

두 사람이 다가서는 전방에 둥근 원이 생기면서 공간에서 문이 나타났다.

‘신기한데.’

고진유를 앞선 그를 따라 공간으로 들어섰다.

* * *

처척.

어둠에 잠긴 대전으로 들어서는 소리.

한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선 뒤 허리를 숙였다.

“명군님께 아룁니다.”

“……그 녀석을 놓친 모양이지?”

“사관을 통과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잠시 대전은 고요함에 잠겼다.

사내 또한 숨을 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관까지 들어선 고진유를 계속해서 주시했는데, 갑자기 사관을 통과한 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리 살펴도 고진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도움을 주는 모양이군.”

“…….”

“진광. 그렇지 않은가?”

사내는 곧바로 그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그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를 추종하는 놈들이 드디어 때가 되었다며 모습을 드러낸 것 같군.”

“…….”

사내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멍청한 놈들. 내가 그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아무도 모르고 있군.”

‘일부러 그를 불러들였다고?’

진광은 몸이 움찔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삼천명군이 굳이 명천지 밖으로 나간 뒤 그의 여인에게 흑령귀기를 심어둔 이유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니었어. 명군은…… 우리를…… 이제 알겠군.’

삼천명군의 목적은 그를 명천지로 유인하는 게 아니었다.

용맥의 계승자가 나타난다면, 분명 그의 앞에 나타나게 될 반역자들을 찾기 위함이었다.

예상대로 그의 앞으로 삼천명군이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던 무리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진광, 알아차렸군.”

“그렇사옵니다. 삼천명군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전대의 명군을 따르는 놈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어.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끝을 내야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궁으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길을…….”

“아니, 우선은 그대로 둬.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크크크크…… 진광, 본인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지?”

“죄송…… 합니다.”

“명천지에서 본인을 죽일 수 있는 생명체는 아무도 없다. 용맥의 계승자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 오래전 명왕께서 당하신 것은 이곳이 아닌 세상 밖에서 싸웠기 때문. 만일 이곳에서 싸웠다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

진광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신형에서 다가오는 명부기에 몸이 굳어졌다.

“크크크크…… 어떻게 들어오는지 한 번 구경해 볼까?”

대전 밖으로 그의 웃음이 흘러나갔다.

* * *

스윽.

백발노인은 종일 내내 누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우리도 가볼까?”

“갑자기 어디를 간다는 것입니까?”

“자네의 아우가 사관을 통과했어. 다행히 사관을 넘어야만 명천궁으로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네.”

“……아…… 그렇군요. 우리도 그 길을 따라 명천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굳이 비밀 통로를 따라갈 필요가 없네. 길을 따라서 명천궁으로 바로 가면 돼.”

“…….”

“걱정하지 말게. 오관주 진광은 오래전부터 노부를 따르던 수하이지.”

“음…… 삼천명군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까?”

“진광이 나를 따르던 수하였다는 사실 말인가? 잘 알고 있지.”

“근데 왜 그를 중요한 자리인 오관에 놓아두었습니까?”

“그가 나를 이겼으니 삼천명천지의 모든 이들이 그를 따를 거라 확신했거든.”

“…….”

“차라리 나를 죽였다면 그랬을지도. 근데 그 녀석이 나를 죽이지 않았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습니다. 그가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내 몸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나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한 게지. 한때 수련을 시켜준 나에게 자신의 강함을 영원히 보여주고 싶었을 거야.”

“나쁜 놈이군요.”

“크크크크…… 맞네. 근데 우리 세계에서는 그게 정상일세.”

“정상이라면서 복수를 하려는 건 또 무엇입니까?”

“복수하는 것도 정상이니까. 살아 있다면 당연히 그 녀석에게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나. 언젠가 그놈의 뒤통수를 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

“둘 다 치열하게 살아왔네요.”

“클클, 중원도 그렇겠지만 우리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네. 사는 건 전부 똑같아.”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

묵경도 그의 말에 인정했다.

방법이 다를 뿐 서로 죽이고 죽이는 건 윗동네나 아랫동네나 똑같았다.

“그렇다면 진유 아우가 굳이 비밀 통로를 갈 필요가 있습니까? 같은 편이라면 오관을 바로 넘어가도 되지 않습니까?”

“아직은 그에게 알릴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명천궁에 제법 많은 놈들이 모여 있으니 피해야지 않겠나.”

“그렇군요.”

묵경은 홍과를 하나 따서 먹는 그를 보았다.

“흠…… 요것도 오늘 마지막으로 먹는군. 그동안 질리도록 먹었는데.”

“가시지요.”

“후후후……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네. 잘 따라오게나.”

묵경은 그를 따라 황금로를 걷기 시작했다.

* * *

끝이 보이지 않은 통로와도 같았다.

고진유는 앞서가는 명화공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두 사람은 지하를 지나가면서 혹시나 명천궁의 인물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내력을 죽이며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게 걸었다.

휙휙!

앞서가던 그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뒤에 따라오던 고진유를 확인했다.

시선이 마주친 그에게 고진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

그는 할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다시 고개를 바로 돌린 뒤 걸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습니까?”

“…….”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소만.”

“어떻게 한 것이지?”

“뭐가 말이오?”

“지금 내 뒤를 따라오면서 처음과 달리 완전히 기가 사라졌다. 명천지에서는 명족 외에는 주위와 동화할 수 없는데.”

“그렇소? 난 그냥 따라 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다 보니 되긴 되는 모양입니다.”

“……설마 나를 따라오면서 알았다는 것이냐?”

“별로 어렵지 않던데. 대충 보니 내력을 어떻게 거두는지 알겠더군요.”

명화공은 무심한 얼굴에서 황당한 표정이 나왔다.

‘이 자식…… 진짜 어이없는 놈이군.’

한 번 지켜보는 것만으로 따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

휙.

명화공은 돌아서며 걸었다.

만난 뒤 대화를 나누면서 특이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이 녀석과 싸우게 된다면…….’

그의 눈빛이 무심하게 변했다.

이번에도 십여 장을 말없이 걸었다.

또다시 뒤에 따라오는 소리와 함께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식이 또…….’

따라오는 것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궁금해서 돌아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하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스윽.

결국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어디 갔지?’

따라와야 할 고진유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좌우를 살피는 순간, 귓가를 스치는 미세한 바람이 느껴졌다.

“여기 있소만.”

‘이 망할 놈이…….’

그는 빠르게 돌아서며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당신에게 통하는지 제대로 한번 시험을 해보고 싶었소이다. 완벽하게 익힌 것 같으니 이제는 그만하지요.”

명화공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극일가의 인물이 명천지에서도 무리 없이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녀석뿐만 아니라 극일가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무공을 제대로 펼치는 게 가능하다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해야겠어.’

그는 이제는 앞장선 고진유의 뒤를 따라 걸었다.

꽤 긴 거리를 지나온 듯했다.

“여기 위는 어디요?”

“명천궁이다.”

“아직도…… 꽤 길군요. 궁금해서 물어봅니다만, 이 비밀 통로를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시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곳을 만든 그분 외에는 아무도 모르니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

명화공은 잠시 머뭇거린 뒤 말을 했다.

“난 그분의 분신이다. 당연히 그분께서 알고 계신다면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렇소? 여하튼 명군이라는 자가 모른다니 다행이긴 하군요. 혹시 알고 있다면 여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 일은 없다. 그자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통로이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명화공은 자신의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따라와라. 내가 증명을 해주겠다.”

고진유는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말없이 통로 끝까지 걸었다.

명화공은 여전히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고진유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곳이다.”

그리고 드디어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명화공은 벽을 향해 손을 가져다 올렸다.

스르르륵.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벽이 사라졌다.

고진유는 앞으로 나왔다.

그들이 나온 장소는 명천궁 안이 확실했다.

“저곳이 그가 있는 건물이다.”

명화공은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그놈이 있다고?’

고진유는 눈앞에 나타난 명천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기다려라. 네놈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바로 가르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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