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쩌어어어엉-!
용린으로 덮인 얼굴의 눈은 백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암흑의 눈동자만이 강렬하게 빛났다.
은발로 변한 머리카락과 은빛의 용린은 심지어 성스러운 느낌까지 주었다.
‘저…… 모습이…… 진정한 용투인인가?’
“시작해 볼까요?”
고진유의 목소리 또한 변했다.
멸존의 기운.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공포에 들게 했다.
삼관주 영기성은 몸이 움찔거렸다.
은빛 전신으로 변한 고진유를 보면서 명족인 그조차 두려움에 떨려왔다.
‘저…… 것이…… 진정한 용맥의 계승자를 지금 내가 막아야 한다고?’
그가 왜 물러나지 않고 혼자 들어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린…… 질…… 수도…….’
번쩍!
전방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삼관 전체를 밝혔다.
“아아아아악!!”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전방에서 수하의 비명이 들려왔다.
빛이 옅어지면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휙휙!
은색의 빛이 수하들 사이로 빛살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수없이 떨어지는 수하들의 목.
은빛에서 흐르는 검은 눈동자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죽음의 기.
살기만이 보였다.
팟팟팟!
수하들은 도저히 은빛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치 공간에서 공간으로 들어갔다가 나타나는 듯한 광경을 보면서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잘…… 못…… 됐어.”
상대의 무공은 인간의 무공이 아니었다.
극일가의 용맥 계승자.
오래전 명왕조차 이기지 못하고 두 번이나 패배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기랄…….”
삼관의 수하들로는 명왕의 발끝조차 건드릴 수 없음에도.
‘내가 미쳤군. 이것을 지금에 깨닫다니…….’
그는 수하들을 재빨리 후퇴시키기 위해 신호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손이……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새 앞에 다가선 은빛의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렸다.
“이젠 당신…… 차례야.”
온몸을 섬뜩하게 만드는 목소리.
챠르르르-
고진유의 은색 용린이 스스로 빛을 내며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무, 물…… 러…… 가라!!”
영기성의 손바닥에서 푸른 화염장이 솟구쳤다.
단 한 번의 공격.
고진유는 다가오는 푸른 화염장을 보며 사의검을 들었다.
쿠아아아아---!!!
사의검에서 튀어나온 은룡이 괴성과 함께 커다란 입을 벌리며 푸른 화염을 뚫고 나온 뒤 영기성을 한입에 삼켰다.
빠지지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영기성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가득한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진유의 뒤로 삼관주를 구하기 위해 수하들이 달려들었다.
휘리리릭!!
가볍게 휘두른 사의검에서 은광을 뿜어낸 투룡이 요동쳤다.
파아아앗.
스거걱.
달려오든 수하들의 목이 너무나 가볍게 잘려 나갔다.
그는 입술이 떨렸다.
“아수라…… 대마…… 왕…….”
마치 여덟 개의 팔로 수하들의 목을 베는 것 같은 그의 모습은 팔부의 아수라대마왕을 대면하는 듯했다.
털썩.
마지막으로 서 있던 수하마저 머리가 떨어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돌아섰다.
흩날리는 은발에 은빛의 용린으로 둘러싸인 검은 눈동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은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스윽.
죽음의 검이 목 앞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목소리가 영기성의 귓가를 울렸다.
“당신의 목을 자르면 삼관은 통과한 것인가?”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군.”
파앗!
은빛 줄기의 검기가 그의 목을 지나갔다.
살려달라고 말을 하지도 못한 죽음이었다.
* * *
“후후후…… 삼관이 무너졌군.”
백발노인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묵경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네. 삼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군. 역시 용맥을 이은 자는 달라.”
백발노인은 술잔을 채웠다.
“한잔들 마시겠나?”
“좋은 일입니까?”
“삼관을 통과했으니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
묵경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관이 무너졌다면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아닌가?
“내가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백발노인은 세 사람을 천천히 돌아가면서 시선이 마주쳤다.
“자네들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일관의…… 책임자이지 않소이까?”
“틀린 말은 아닐세. 하지만 일관을 맡기 전에는 삼천명천지의 주인. 내가 이곳의 명군이었다네.”
“…….”
묵경은 물론 인양과 녹림야검도 흠칫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야. 그 녀석과 명군의 자리를 놓고 붙은 뒤 져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세 사람은 그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놀랍지 않은 모양이군. 더 격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너무 놀라서…… 어떻게 반응을 할지 몰라서 그런 겁니다.”
“자네들은 먼저 여기를 나가고 싶으면 가도 좋네.”
“……그를 이기지 않으면 못 나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거짓말일세. 나갈 수 있네.”
묵경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가 똑바로 말을 해주었다면 홍과를 가지고 돌아갔을 수 있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습니까?”
“안으로 보내서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지. 다른 뜻은 없었네.”
“그럼 이 사실을 진유 아우만 모르는 겁니까?”
“지금쯤이면 알고 있겠지. 삼관주가 쓸데없는 말이 많거든. 아마 그에게 들었을 것이네.”
“…….”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겠지.”
“……맞습니다. 진유 아우는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겠지요.”
묵경은 백발노인을 자세히 바라봤다.
“정말로 명군을 죽이기 위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그렇네. 그 녀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스으윽.
백발노인은 상의를 걷어 올렸다.
몸 전체의 절반 이상이 괴기한 기에 의해 시커멓게 잠겨 있었다.
“그건……?”
“그놈이 나를 죽이지 않고 여기에 던져놓았지. 한 달에 한 번 홍과를 먹어야만 사라지지 않고 억지로 살아갈 수 있다네.”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됐네. 강자존의 세상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니깐.”
“치료를 할 수 없습니까?”
“딱 하나가 있지.”
“무엇입니까?”
“그놈의 심장에서 흐르는 피를 마시면 낫는다.”
“…….”
그가 고진유를 안으로 보낸 이유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럼, 진유 아우가 들어갔으니 우린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알아서 하게.”
“고맙습니다.”
스윽.
묵경은 두 사람을 보며 돌아섰다.
굳이 세 명 전부 여기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북소연을 빨리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인양하고 녹검은 지금 바로 제수씨에게로 출발해.”
“형은요?”
“난 진유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형이 돼서 먼저 갈 수는 없잖아.”
“응, 알겠어요. 나중에 진유 형과 돌아오세요.”
인양도 함께 기다리고 싶었지만 더 중요한 건 홍과가 필요한 북소연의 몸 상태였다.
그리고 고진유와 묵경을 믿었다.
“녹검 형, 가자.”
“어…… 그래.”
인양과 녹림야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기 전 백발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꼭 상처가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후후. 말이라도 고맙군. 예의가 바르니 하나 더 가르쳐 주겠네. 홍과를 직접 먹이는 게 아니라 하루 동안 삶은 뒤 나온 진액을 마시게 하면 나을 걸세.”
“아……! 고맙습니다.”
“고맙긴. 인연이 된다면 다음에 만나겠지.”
인양과 녹림야검은 명천지를 떠나갔다.
스윽.
백발노인은 그들이 사라진 뒤 자리에 누웠다.
“인양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보냈을 겁니까?”
“맞네.”
“홍과를 바로 복용하면 약효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클클, 그렇다고 나를 노려보지 말게. 세상이 다 그런 게 아닌가? 속고 속이는 게 세상이지.”
“……방금 그건 진짜입니까?”
“난 같은 거짓말은 두 번 하지 않네. 내가 알려준 대로 하면 나을 게야.”
“……여하튼 고맙습니다.”
“클클, 뭘 그런 걸로 고맙다고…… 나도 그 녀석의 도움을 받을 텐데.”
“…….”
“우린 조금만 더 있다가 사관을 넘어설 때 움직이도록 하세나.”
“예? 어딜……?”
“삼천명천궁에 가야 하지 않겠나? 나도 이번에 병을 치료해야겠네.”
“…….”
묵경은 돌아누운 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저 늙은이가…….’
* * *
삼관의 문은 넘어선 뒤 사관으로 향했다.
고진유는 쉬지 않고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그에게 체력은 의미 없었다.
온몸에 힘이 남아돌았다.
게다가 마음 한편에 있던 다급함이 사라졌다.
‘묵경 형이라면 홍과를 그녀에게 가지고 가도록 보냈을 거야.’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누군가 밖으로 나갔을 게 확실했다.
“급한 게 없으니 천천히 가도 되겠지만…… 그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사관으로 들어서는 통로를 얼마 동안 걸었는지 몰랐다.
고진유는 빛이 멀리서 비치는 것을 보며 앞으로 걸었다.
‘거의 도착했나.’
어둠의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넓은 평지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이건 마치 대평야 같은데?”
태산의 깊은 아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황금의 길.
길게 뻗은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여긴 바닥도 황금으로 깔려 있네. 이들이 밖에 나온다면 중원 최고의 부자가 되겠어.”
고진유는 황금 길을 따라 걸었다.
‘음…… 인기척은 없어. 근데 따가울 정도로 시선이 사방에 가득해.’
대평야의 주위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여기 아래밖에 없다는 건데.”
고진유는 사의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전방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두두두두-
황금으로 된 길이 부서지면서 지평선 끝으로 뻗어 나갔다.
파아아앗!
수십 명의 황금인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훗.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군.”
우우우우웅-
사의검에서 검명이 울리며 고진유가 위로 올라온 황금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용섬풍(龍閃風).”
공중으로 솟구친 은빛의 검강.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풍룡의 발톱에 십여 명의 황금인들이 갈기갈기 찢기어 바닥에 떨어졌다.
툭툭툭툭.
고진유의 사의검에는 오로지 죽음밖에 없었다.
사의검은 멈추지 않았다.
“용광풍(龍狂風).”
이번에는 돌풍이 불며 사방의 모든 것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어어어어……!”
황금인들은 용광풍에 끌려오지 않기 위해 대항했다.
하지만 강력한 바람이 끌어당기는 힘에 수십 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찌이이잉-
용린과 함께 검은 눈동자는 점점 더 진하게 변해갔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번쩍.
암흑의 눈동자가 빛을 내면서 암흑의 눈동자에 흰색 줄로 만들어진 사람 모습들이 가득했다.
“모두 어디에 숨었는지 보여. 한꺼번에 나타나는 게 좋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나를 죽일 기회가 높으니까.”
고진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전방에 괴기가 흘러나왔다.
스스스스스-
기이한 기를 뿜어내며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두건과 함께 장포를 두른 두 명의 인영이 각각 극참도와 신장검을 들고 있었다.
‘살아 있는 놈들이 아닌 것 같군.’
고진유의 생각처럼 그들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진정한 명족의 무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망자의 괴기한 소리처럼 들렸다.
“이곳을 지나가는 놈은 무조건 죽는다.”
휘이익!
장포를 휘날리며 고진유를 향해 극참도를 휘둘렀다.
단순하게 휘두른 공격.
까아아앙!
고진유는 사의검으로 간단하게 막아냈다. 충분히 극참도를 막아냈다고 생각한 그때, 상대의 극참도를 향해 떨어지는 신장검의 힘이 더해졌다.
쿠우우웅.
“으윽.”
고진유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나오며 그 충격으로 바닥이 꺼졌다.
설마 동시에 힘을 합칠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이놈들의 힘은…… 엄청…… 나다.’
고진유는 재빨리 그들을 밀어내고자 내력을 올렸다.
그때였다.
고진유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제삼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허리를 향해 귀검을 뻗어냈다.
상대의 기를 느끼지 못했지만 고진유의 검은 눈에는 사방이 보였다.
‘보여.’
고진유는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귀검을 피했다.
한 치의 간격으로 상대의 귀검이 허리를 비켜 나갔다.
‘강하군. 이자들은 명왕괴수인같이 장난하는 수준이 아니다. 정신 안 차리면 큰일 나겠어.’
삼관을 지나오면서 만났던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스스스스-
세 명의 인영이 움직이면서 모습이 사라졌다.
‘이놈들의 기가…….’
그들의 모습과 함께 기가 지워지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고진유의 검은 눈동자에 다시 하얀 선이 이어지며 사람 모양을 만들어냈다.
휘이이익!
그들이 움직이는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극참도가 먼저 움직였다.
‘그렇군.’
방금 전 한 번의 부딪힘에 알아냈다.
바닥과 수평으로 날아오는 극참도를 보며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훗.”
고진유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인지 능력이 아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