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41화 (341/425)

341화

사의검의 검명이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좋은 검이군.”

고진유의 검을 본 백발 사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찌이이이잉-

점점 검광이 밝게 빛나면서 이번에는 검명이 울었다.

“오호, 검명이 맑은 것을 보니 검의 내력이 순수한 것을 알겠군. 혹시 검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사의검이오.”

“사의라…… 사부를 존경하는 모양이로구먼.”

“그렇소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사부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대의 사부가 부럽군.”

백발 사내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한데 백발 사내의 몸에는 아무런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빈손입니까?”

“없을 리가 있겠는가. 여기 손에 있다네.”

백발 사내는 손바닥을 펼치자 흑색기가 뭉친 뒤 검으로 모양이 변했다.

“이건 기형검(氣形劍)이라고 하지. 좋아 보이지 않은가?”

흑검은 마치 세상의 빛을 빼앗아가려는 듯 주위를 더욱더 어둡게 만들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극일가의 무공이 어떠한지 궁금하군. 시작하세나.”

타아앗!

백발 사내는 앞발을 구르자 신형이 튕겨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고진유의 뒤로 돌아섰다.

휘익.

등 뒤에서 기형검이 고진유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의 동작은 빨랐다.

절대로 막아내거나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채애애앵!

하지만 고진유는 가볍게 막아섰다.

‘빠르군.’

백발 사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최선의 다한 일격이었다.

고진유를 봐줄 생각은 없었다.

“검의 움직임이 좋군.”

“겨우 한 번 막은 것밖에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내 검을 막아섰다면 백 번을 막은 것과 같은 것이네. 이번에는 그대의 공격을 내가 막아보지.”

“그렇다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백발 사내는 눈앞에 선 고진유의 광오한 말에 몸이 움찔거렸다.

“혹시 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극일가의 용린기와 용맥투기를 동시에 계승받았소이다.”

“알고 있네. 진정한 용맥의 계승자가 펼치는 무공을 보고 싶은 것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우우우웅.

사의검이 빛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그리고 섬광과 함께 섬광풍이 백발 사내를 지나갔다.

“……!”

백발을 단정하게 묶었던 천 조각이 사라졌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백발에 얼굴이 가렸지만 두려움보다는 경외감이 나타난 듯했다.

“하하! 이것이…… 진정한 용의 무공인가?”

“뭐…… 반 정도밖에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용맥투기라고 하기엔 미덥지 않겠지요.”

“반 정도의 내력이라고 했는가?”

“완전한 내력으로 무력을 펼쳐서 혹시나 죽게 된다면 홍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

백발 사내는 홍과 때문에 일부러 살려 주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군. 홍과 때문에 살았어. 사실 내가 없어도 홍과를 가지고 나가는 데는 상관이 없네. 아까 했던 말은 그냥 해본 말이거든.”

“…….”

고진유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설마 거짓말일 줄은 몰랐군요.”

“클클, 미안하네. 어차피 명군을 이기지 않은 이상 명천지를 나갈 수 없다네.”

“그럼 홍과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자를 이겨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네.”

툭.

고진유는 손을 뻗어 먼저 홍과를 따기 시작했다.

“인양아, 챙겨놔라.”

“네. 형.”

인양은 홍과들을 받은 뒤 소중하게 천으로 챙겨놓았다.

“나중에 나갈 때 가지고 가도 되네.”

“혹시 모르지 않소이까?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 누군가 나타나서 모두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홍과는 내가 책임지고 지키고 있네. 명천의 인물이라도 함부로 가지고 갈 수 없어.”

“유비무환입니다. 있을 때 챙겨놓는 게 좋죠. 이제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까?”

“그렇게 하게.”

“나올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그에게 짧은 인사 후 황금로를 따라서 먼저 움직였다.

* * *

스윽.

녹림야검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땅 아래로 들어선 것 같아요.”

인양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시진 전만 해도 숲이 보였지만 지금은 양옆으로 돌로 된 벽이 나타났다.

“잠시 쉬었다 갈까요?”

“음……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좋겠어.”

묵경의 말처럼 네 사람은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녹림야검은 등에 멘 봇짐을 풀었다.

“역시 준비성은 녹검이 최고야.”

말린 육포가 한가득 했다.

질겅질겅.

묵경은 입에 육포를 씹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유 아우를 만나서 희한한 곳도 다 와보는군.”

“맞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고진유는 두 사람을 보면서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어떤 곳에 갈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난 그것보다 앞으로 어떤 놈들이 나올까 더 궁금해.”

“묵경 형, 저도요.”

인양도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네 사람은 휴식을 취한 지 이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고진유는 한쪽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기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파앗.

녹림살검은 비검을 빠르게 날렸다.

태애애앵!

비검이 중간에서 튕겨 나오며 바닥에 떨어졌다.

“뭐지?”

“웃긴 놈들이야.”

고진유는 바닥의 흙을 끌어모은 뒤 앞으로 뿌렸다.

파아앗!

사방으로 흙먼지가 퍼져 나갔다.

그러자 네 명의 주위로 다가오는 사람의 모양이 희미하게 만들어졌다.

“쥐새끼 같은 놈들.”

콰아아앙-!!

네 명은 각자 한 방향을 맞으며 검강과 권강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앙!!

“커어어억.”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 그들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번쩍.

사의검의 검광이 터지며 검강이 휘몰아쳤다.

주르륵.

허공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앗.

그 모습을 보며 녹림야검의 녹수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살성의 예기를 담긴 녹수검의 날카로운 검기에 목이 잘려 나갔다.

번쩍.

사의검에서 다시 한 번 더 섬광이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저놈들이다!!”

묵경과 인양은 빛을 반사시키는 허공의 한 부분들을 보며 달려들었다.

퍼어어억!

스거걱.

전력을 다한 일검에 허공에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웅-

고진유는 여기에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뒤 사의검을 바닥으로 내리쳤다.

두두두두-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바닥이 갈라지면서 한쪽 벽을 향해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전방에 마치 거인처럼 칠척장신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강철처럼 단단하게 보이는 그는 삼천명천의 이관 책임자 마공산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모습을 숨긴다고 모를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우리가 보였단 말인가?”

“생긴 것처럼 멍청하군. 보였으니 공격을 했지. 그 덩치로 어딜 제대로 숨기라도 하겠어?”

“…….”

그는 고진유의 말에 무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미간이 좁아졌다.

휘익!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네 명을 둘러쌌다.

묵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있었어?”

“그러게요. 이제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인양의 목소리는 두려움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앞에 둔 것처럼 신나 보였다.

‘이것들이…….’

마공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들 네 명의 얼굴에는 전혀 두려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방금은 네놈들의 실력이 어떠한지 본 것뿐이다.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저놈들을 죽여라!”

그는 손을 앞으로 겨누었다.

부우우우웅-

수십 명이 동시에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펼치는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체…… 저 정도로 간격을 유지하려면 어떤 연습을 하면 되는 거야?”

묵경은 수십 명을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저놈들은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고진유는 단번에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근데…… 우리도 저들 못지않잖아요.”

“그렇지!”

타아앗!

네 명은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까아아아앙-!!

흑의인들의 몸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단단한 신체를 지닌 흑의인들은 검에 부딪히면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쇳덩어리 놈들이군.”

“다양해서 좋잖아.”

인양은 바짝 다가선 흑의인들을 보며 뒤로 물러나지 않고 내력을 올렸다.

우우우웅-

주먹을 쥐었던 손을 편 뒤 허리를 비틀며 장법을 펼쳤다.

퍼어어어어엉!!

흑의인의 가슴에 매화의 문양이 흩날렸다.

“인양이 언제 장법을 익혔어?”

“스스로 깨우친 거죠. 권법을 익히다 보면 장법이 필요한 순간을 알게 되죠.”

“그런가?”

“빠른 신법이 특기인 인양이 강한 타격을 주려면 권법이 맞지만, 가끔 정적인 상태에서 펼치면 권법의 위력이 약해지거든요. 단거리에서 강한 타격을 주려면 장법이 더 위력이 크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알고 있었다면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

“깨달은 것과 아는 것은 차이가 많잖아요.”

흑의인은 인양이 펼친 장법의 충격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타앗!

인양은 머뭇거리지 않고 신형을 날리는 동시에 이번에는 신법의 속도를 더한 권법을 시전했다.

빠지지지직-

인양의 일격에 흑의인의 뼈들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장법은 오장육부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반면, 권법은 뼈를 완벽하게 부숴 버릴 수 있지요.”

흑의인은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날 수 없었다.

“인양, 저놈도 괴물이야.”

“후후, 녹검 씨도 잘 싸우고 있네요.”

묵경은 고개를 돌려 녹수검으로 흑의인의 이마를 정확히 찌르는 녹림야검을 보았다.

찌지지지직.

인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격 방법으로 이마의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뒤 두개골에 충격을 주었다.

“알아서 다들 잘 싸우는구나.”

인양과 녹림야검의 움직임에 흑의인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다.

‘……어떻게…….’

마공산은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리는 수하들을 보면서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명군의 정예군이었다.

“중원의 떨거지 같은 놈들에게…… 당하다니……!”

“어이, 누구보고 떨거지라고 하는 거야?”

“네…… 놈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마공산은 허리에 찬 거대한 철부를 휘두르며 묵경을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묵경은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앞에 파인 흔적을 보았다.

“힘은 무식하게 장사군.”

붕붕붕붕붕-

묵경의 앞으로 휘두른 철부가 대기를 압박하며 다가왔다.

“음…… 어떻게 할까나?”

묵경은 철부를 피하면서 생각했다.

자신은 인양처럼 빠른 신법과 강한 타격이 없고, 녹림야검처럼 살성의 강한 기를 뿜어낼 수 없었다.

“이 자식이……!!”

마공산은 철부를 팔방으로 휘둘렀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묵경을 보며 짜증이 났다.

그의 보법은 빠르지도 신속하지도 은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치 무희가 춤을 추는 듯 화려했다.

푹푹푹푹-

묵경은 그의 주위를 움직이면서 연검을 펼쳤다.

연화연검이 만들어낸 검기는 가느다란 실선을 그리면서 마공산의 신형을 점점 옥죄여갔다.

“어어억……!!”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던 검기에 마공산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대단한 줄 알았는데 별것 아니네.”

“이노오오오옴. 죽여주마!!”

묵경의 말에 마공산은 노기가 터졌다.

부우우웅-

철부는 점점 빨라졌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묵경의 연화무환보는 더욱더 화려해졌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저자는 모르고 있군.”

묵경의 연화연검이 그의 몸을 지나가면서 혈관마다 패공의 기를 밀어 넣었다.

휘이이익!

“물러나는 것을 보니 안 되는 모양이지?!”

마공산은 뒤로 물러난 묵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편안하게 생각해. 근데 당분간 운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죽을 수 있거든.”

“……?”

마공산은 흠칫거리며 몸을 살폈다.

전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큭, 운기를 하면 안 된다고? 죽을까 싶어서 겁이 나는 모양이군.”

그는 철부를 들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때,

찌지지지직.

‘뭐…… 지?’

철부를 든 팔의 두꺼운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점점 팔을 지나 온몸으로 내려오면서 단단했던 근육이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투우욱.

그는 바닥에 철부를 떨어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위나 아래나 믿음이 없는 건 똑같군.”

“……!!!”

“진유 아우. 마무리를 짓도록 해.”

“알겠습니다.”

스강-

사의검에서 섬광이 터지며 마공산을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