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40화 (340/425)

340화

붉은 노을이 가득한 태안으로 들어서는 네 명의 사내들.

그들은 형주에서 곧장 올라온 고진유와 묵경, 인양과 녹림야검이었다.

“여기가 맞아?”

묵경은 태안성으로 들어서면서 물었다. 그가 떠날 때 예상한 것과 너무나 다른 장소였다.

“정확하게 하면 여기보다는 동악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의외인걸?”

일월가라면 일반 중원인들이 모르는 깊은 곳에 숨어 있을 줄 알았다.

태산이라 하지만 그곳 또한 많이 알려진 장소였다.

이번에는 인양이 물었다.

“태산이라면 그곳에 태산파가 있지 않나요?”

“있긴 하지. 하지만 그들과는 상관이 없을 거야. 오늘은 여기에서 쉬고 내일 일찍 가는 게 좋겠어.”

“넵. 알겠어요.”

녹림야검은 네 사람이 쉴 만한 객잔을 찾기 위해 먼저 움직였다.

세 사람은 그동안 마을로 천천히 들어섰다. 안으로 움직이면서 주위의 분위기를 살폈다.

“무림이 조용한 것 같지 않아?”

“백리세가와 태양무국의 일이 알려져서 그럴 겁니다.”

“명왕괴수인을 말하는 건가?”

“네. 소문이 퍼지면서 그들의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이죠. 무림에서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라고 하니, 괜히 떠들썩거렸다가 표적이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아직 극일천무신궁은 무림에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잖아요.”

“겁이 난다는 것이구만.”

“안 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우리밖에 없다는 걸 무림이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우리가 무림맹에서 나와 지옥혈림에 들어갔잖아요. 아마도 큰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두 궁금해할 겁니다.”

휘익.

객잔을 찾으러 갔던 녹림야검이 돌아왔다.

“조용한 방을 구해놓았습니다. 가시지요.”

“수고했어요.”

고진유는 앞선 녹림야검을 따라 객잔으로 향했다.

* * *

벌떡.

‘저…… 분들은…….’

중년 사내는 객잔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의 모습에 자리에서 다급히 일어났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내들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악 형, 왜 그러는가? 저들을 아는가?”

여덟 명의 사내 중 객잔의 입구와 등을 지고 있던 사내도 무슨 일인지 고개를 돌렸다.

“헉, 이런!”

그 또한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황보 형, 자네까지 왜 그런가?”

여섯 명은 사내들이 악구진과 황보약청을 보며 물었다.

화다다다-

두 사람은 객잔으로 들어선 네 사람 앞에 공손하게 다가섰다.

“여기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악…… 구진 숙부와 황보약청 님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반기는 고진유와 인사를 나누었다.

“친우들과 만남이 있는 모양이군요.”

“네. 산동팔성의 모임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우린 조용하게 왔다가 갈 것입니다. 다음에 함께 자리를 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고진유의 말을 이해했다. 형주로 갔다는 그들이 태안에 이유 없이 올라오진 않았을 것이었다.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오르는 모습을 지켜본 두 사람은 동료들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섰다.

여섯 명은 여전히 그들의 신분이 궁금했다.

“저들이 어려 보이는데 자네들이 공손하게 대하는 것 같네.”

스윽.

악구진은 말없이 손가락 하나를 일으켰다.

그들은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혹시…… 천하제일…… 인?”

“그렇소이다.”

“아하…….”

왜 두 사람이 공손하게 대하는 지 이해가 되었다.

“저분들이 여기에는 무슨 일로?”

“조용하게 온 모양이외다. 우린 모른 체했으면 합니다.”

“아, 알겠소이다.”

그들은 대답하면서도 관심은 위층으로 향해 있었다.

다음 날 일찍 네 사람은 객잔을 나섰다.

누구도 그들이 움직이는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객잔 문 앞에 선 인물조차 밖으로 나가는 네 사람을 보지 못했다.

태안을 떠난 그들이 도착한 곳은 태산의 산문.

스윽.

고진유는 손바닥에 흑석을 꺼내 들었다.

명천지를 가리키는 흑석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 흑석이 저곳으로 흔들리는 것 같아요.”

“가보자.”

그들 네 명은 흑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움직였다.

앞으로 걷지만 깊은 계곡으로 점점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긴 어디지?’

하늘에 떠 있는 해는 깊은 나무들 사이로 가려 점점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태산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선 게 분명했다.

우우우웅-

고진유의 손에 들린 흑석이 세차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샤르르르-

앞을 가렸던 숲속의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면서 옆으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형…… 저기…….”

인양은 신기한 듯 앞을 가리켰다.

나뭇가지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들처럼 꿈틀거렸다.

고진유는 삼천명천지의 입구에 가까이 도착했음을 알았다.

‘음…… 여기부터 시작이 될 것 같은데?’

고진유는 오는 길에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전혀 함정이나 진법이 펼쳐져 있지 않았다.

“모두 조심해야겠어요.”

“여기가 그자가 오라는 장소야?”

“아마도…… 주위에 흐르는 기운을 봐서는 맞을 것 같아요. 내력은 이상이 없어요?”

세 사람은 고진유의 말에 곧바로 운기했다.

주위에 무거운 사기가 흐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력을 운기하는 데 무리가 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아.”

“다행이네요. 일반 중원인들이 여기에 들어왔다면 거의 내력을 제대로 운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알려준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도록 하세요.”

“……알겠다.”

그들은 고진유의 말처럼 극일가의 극일심공을 운기했다.

‘음…….’

휘이이익.

고진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온 뒤 손에 든 흑석을 앞으로 내던졌다.

흑석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우우우우웅-

전방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앞을 봐.”

흑석이 떨어진 방향 끝으로 숲으로 둘러싸인 길이 나타났다.

“여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야.”

“이곳이…… 명천지의 입구인가요?”

인양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전방을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이곳을 가면…….”

“진유 형, 괜찮겠어?”

“나도 몰라.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알겠지. 들어가자.”

고진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 * *

숲으로 들어선 지 반각의 시간이 지났다.

인양은 앞서 걷는 고진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안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그리고 옅은 어둠 속에서 멀리 푸른빛이 보이는 듯했다.

‘저기…… 인가?’

인양은 푸른 하늘 아래 공터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공터에는 작은 전각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 옆으로 붉은 과일이 열려 있는 나무가 서 있었다.

짙은 숲속 안에 이와 같은 공간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주변은 조용했다.

‘평온한 곳 같은데?’

전각이 세워져 있다면 누군가 기거한다는 의미였지만,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유 형,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인양은 앞으로 나오며 전각으로 먼저 걸었다.

파아아앗!

갑자기 사방에서 흑의인들이 쏟아져 나오며 인양을 향해 공격했다.

사사사사삭-

쌍검을 든 흑의인들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인양을 베기 위해 원형으로 돌았다.

흑의인들의 동작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휙휙휙!

그들이 인양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쌍검을 휘둘렀지만 인양은 당황하지 않았다.

“흐으응. 이 정도는 나를 못 잡을 텐데…….”

인양의 움직임은 흑의인들보다 더 빨랐다. 그들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다가오는 검들을 피하며 일권을 펼쳤다.

퍼어어억!

부우우욱-!!

흑의인들의 전신에서 타격음이 들리며 하나둘씩 뒤로 쓰러졌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지?”

묵경과 녹림야검이 인양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역시 상당히 강하네요.”

“인양은 열심히 수련했잖아.”

“아뇨. 저들…….”

고진유은 흑의인들의 무공을 주시했다.

“인양이야 강한 걸 알지만 저들의 무공도 무척 강해요. 나도 저들이 나타나는 순간에 존재를 알아차렸어요. 계속 당하면서도 다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

“그러고 보니…… 맞네. 나도 몰랐어.”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인양이 흑의인들을 쉽게 처리하고 있지만 묵경도 이들이 나타날 때까지는 숨어 있는 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털썩.

이십 명의 흑의인들이 바닥에 쓰러지며 싸움은 끝이 났다.

‘앞으로 힘든 싸움이 될지 모르겠군.’

이제 겨우 명천지의 입구이며 시작이었다.

고진유는 인양의 곁으로 걸어갔다.

“수고했어. 이놈들을 상대로 잘 싸웠다.”

“……형, 이들이 나타날 때까지 전혀 몰랐어요.”

“상당히 대처가 빨랐어. 그건 네가 어떠한 상황이 다가오더라도 다음 동작을 대비할 수 있도록 능력이 늘어났다는 뜻이지.”

“진유 형이 많이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

“후훗. 그것도 맞지만 네가 잊지 않고 항상 머릿속에 기억한다는 게 중요한 거야.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해야겠어.”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후 전각으로 다가섰다.

‘음…….’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가 전각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드르륵.

전각의 문이 열리면서 백발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어억.

그는 한 걸음 나오며 전각 앞으로 나섰다.

고진유의 전신을 훑어보며 물었다.

“이곳 사람이 아니로군.”

“…….”

“그런데도 내력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것을 보면…… 극일가의 인물이 유일하지.”

“맞습니다. 극일가의 고진유라 합니다.”

“고진유라…….”

사내는 아는 이름인지 기억을 하려고 했다.

“무림에서는 화산도협이라 합니다.”

“아하…… 화산도협. 몇 번 이름은 들어보았네. 그대가 비천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인물이로군.”

“…….”

고진유는 그가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모르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대가 극일가의 인물이며 유명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그런데 겨우 세 명만을 데리고 명천지에 싸우고자 왔는가?”

“그건 아닙니다. 이곳의 주인이 본도를 만나고자 하더군요.”

“이곳의 주인이라고 하면…… 혹시 명군을 말하는 것인가?”

“…….”

명군을 가벼이 말하는 인물.

‘역시…….’

고진유는 백발 사내가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다.

“그와 친한 사이인 것 같습니다.”

“후후후. 친한 사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한때 무공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지.”

“…….”

“그렇다고 밖에서처럼 사부와 제자라는 사이가 아니네. 말 그대로 몇 가지 움직임을 가르쳐 준 것뿐이니깐.”

‘대단한 인물인 줄은 알았지만 삼천명군에게 사부와 같은 인물일 줄은…….’

고진유는 물론, 세 사람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만나고자 했다는데 정확히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고진유는 며칠 전 일어났던 이야기를 그에게 설명했다.

백발 사내는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생각에 잠긴 듯 조용했다.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니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모양이군.”

“…….”

“그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대의 여인을 살리기 위해서인가?”

“그렇습니다.”

백발 사내는 전각 옆 나무로 천천히 걸었다.

“이 나무의 열매가 홍과라네.”

“…….”

“이것을 가지고 가서 복용하면 그대의 여인의 가슴에 흑령귀기가 사라질 테지.”

“홍과를 그냥 가지고 갈 수는 없겠지요?”

“맞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홍과를 지키기 위함이니. 명천지에서 유일하게 홍과가 자랄 수 있는 땅이라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홍과의 주인이 되는 길은 명천지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네.”

“…….”

네 명은 순간 조용해졌다.

백발 사내가 말한 의미는 이곳의 주인이 돼라는 뜻이었다.

고진유는 다시 물었다.

“이곳의 주인이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간단하네. 삼천명군을 이기면 되는 일이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존의 세상. 강자만이 모든 것을 지닐 수 있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말해보게.”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닥에 보이는 황금로를 따라가면 삼천명천궁이 나올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나일세.”

백발 사내는 내력을 일으켰다.

고진유는 당황하지 않았다.

“혹시 몇 개의 관문이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 되지 않네. 다섯 관문을 넘어서면 명천궁에 들어갈 것이네.”

“고맙습니다. 근데…… 만일 제가 이기면 홍과를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후후후. 딸 수는 있겠지. 하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다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내가 유일한 인물이니.”

“그렇다면 죽이지 못하겠군요.”

“음…… 그런 걱정은 말게. 죽지는 않을 테니.”

“알겠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일월가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봤습니다.”

“후후후. 어떤 세상이라도 살아 있는 것은 전부 같다네. 그대의 세상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 나를 꺾고 안으로 들어가게나.”

고진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백발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스르르릉.

고진유는 사의검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