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39화 (339/425)

339화

고진유는 향천의 수하들이 싸우는 모습들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다행이군. 제대로 먹히고 있어.’

일월가의 무리를 상대로 충분히 싸우고 있는 저들은 극일가 소속이 아닌 화산파의 동료들이자 사제들이었다.

극일가의 내력을 전수받은 그들은 화산파의 내력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상호 보완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능한지 알고 싶었는데. 때마침 앞에 나타나 주니 고마운걸.’

그들은 일백 명의 일월가를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본래 중원 무림의 무인들이라면 일월가의 무리들이 뿜어내는 사기에 내력의 반도 제대로 펼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향천의 수하들이자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기에 전혀 압박감을 받지 않았다.

동등한 조건에서 싸운다면, 이제 서로 간 무력의 차이에 의해 생사가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퍼어어엉!

인양의 일권에 일월가의 무리들이 나가떨어졌다.

“뭐야? 일월가라고 해서 엄청 기대했는데.”

인양은 시선을 돌려 녹림야검과 묵경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놈들은 일월가 말단에 있는 놈들인가 보다. 왜 이리 약해?”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쉬운데요?”

녹림야검의 살검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일월가의 일백 무리들이 모두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목비천의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친협들의 무공이…… 일월가의 힘조차 이길 수 있다고?’

하나둘씩 쓰러지는 아군을 보면서 몸이 떨렸다.

당장 물러나야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후퇴를…….’

휘익!

목비천은 물러나려고 하는 순간, 앞에 내려앉은 인물과 마주 섰다.

“화…… 산도협.”

“보아하니 튈 생각인가 보군요.”

“……!!”

그는 전력을 다해 뒤로 몸을 이동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뒤로 물러나는 만큼 고진유의 검이 바짝 다가왔다.

“그건 안 되지. 갈 때 가더라도 목은 내려놓고 가시오. 내 목은 자르고 싶으면 자르고, 아니다 싶으면 물러갈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소이다.”

휘익!

고진유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으악!!”

목비천은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을 굴렀다. 그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 좋은 수법이었소. 민첩하기가 가히 천하제일이군.”

“크윽……!!”

바닥에 엎드린 그는 순간 수치심이 올라왔다.

비천의 최고 인물인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뇌려타곤을 펼쳤다.

‘망…… 할……!’

목비천은 애써 상대의 검에서 벗어났지만 모욕감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계속 그대로 있을 것이오?”

목비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짐 그 자체였다.

‘이것이 극일가의 힘이라는 것인가?’

이미 주위는 끝이 난 상태였다.

일월가를 막아낸 극일가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철컥.

고진유는 사의검을 검집 안으로 거두었다.

“…….”

“가시오.”

“왜…… 보내주는 것이지?”

“저기 당신의 동료가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어서. 갑자기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냥 돌려보내는 주는 것이니 잘 가시오.”

“나를 살려주면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본도가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소이다. 그대를 보내줘도 괜찮을 같으니 보내주는 것이지. 내 예상대로 그대가 나서주었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살려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뿐이오.”

“그게…… 무슨 말이지?”

고진유는 멀리 금비천을 가리켰다.

“동정호 정도라면 당신들이 딴짓을 몰래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소. 본도를 잡고자 한다면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패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없지 않소이까?”

“…….”

“아마 있다면 일월가의 패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 잘됐다 싶었소. 그래서 그를 동정호에서 만나고자 한 것이오. 물론 예상대로 당신이 일월가의 인물들을 데리고 왔고.”

‘정말로…… 이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목비천은 그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물론 금비천도 그의 계략에 당했다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소? 안 믿어도 좋소. 어차피 결과가 그대로 보여주지 않소이까.”

“…….”

“우린 그만 가겠소이다. 다음에도 잘 부탁하겠소.”

휘익!

고진유는 그 자리에서 흑선으로 올라탔다.

“향천주를 따라 복귀한다!”

묵경도 곧바로 소리치며 흑선으로 날아올랐다.

* * *

“크크크…….”

괴이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는 대전은 무거운 공기가 주위에 퍼져 있었다.

“목비천과 함께 나간 놈들이 모두 당했다는 말인가?”

어둠 속에서 음의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꿈틀.

대전 중앙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삼천명군님, 송구하옵니다. 전부 당했다고 합니다.”

사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멍청한 녀석이로군. 극일가의 가주를 상대로 겨우 백 명을 데리고만 나갔다?”

“…….”

“그동안 많이 당했으면서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군.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일천 명을 데리고 나가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거늘.”

“소신이 그에게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을 똑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놈은 나중에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명군님의 말씀은…….”

“끝내도록 해. 한 번이면 족해.”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명군의 명은 법이었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따라야만 했다.

‘비천은 의미가 없겠지.’

일월가에서 나서기로 결정을 내린 순간 비천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삼천명군님, 금비천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세상에 나가면 심부름꾼이라도 있어야지 않겠나? 딱히 필요는 없겠지만 그대로 두게.”

“알겠사옵니다. 소신은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그가 떠난 뒤 어둠의 대전은 다시 고요해졌다.

‘아직 밖으로 나가기에는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하거늘.’

삼천명군은 수하들이 당한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를 안으로 부르면 되겠군.’

그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후후후. 명천지에 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되지 않겠나.’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아래로 내려섰다.

‘화산도협. 과연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

* * *

동정호에서 돌아온 뒤 향천은 평소와 같은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극일천무신궁은 그날 이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어둠이 짙은 시간.

검은 구름에 달빛마저 어둠에 가렸다.

슥슥슥.

그때, 어둠을 가르는 움직임이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향천의 경내를 가로지르며 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기척을 알아차리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괴영이 도착한 곳은 여인들이 기거하는 전각.

스르르르르-

괴영이 전각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번뜩.

침상에서 잠을 자던 고진유의 눈이 떠졌다.

‘이런.’

파앗!

생각과 동시에 고진유의 신형이 사라졌다.

‘대체 어떤 녀석이지?’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설마……!’

익숙했던 기가 점점 약해졌다.

고진유는 굳은 표정으로 전각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이미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무혼신녀가 떨리는 눈으로 고진유를 보았다.

“진유 동생…….”

“…….”

고진유는 침상에 누워 있는 북소연을 보았다.

그녀의 가슴에 검은 기가 뭉쳐 있었다.

스윽.

고진유는 얼른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려 검은 기가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기운이…… 명왕사기…… 인가?’

처음 보는 기였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려는 명왕사기를 용투기로 가두어 놓았다.

뽑아내고자 했지만 그녀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은 기를 완벽하게 몰아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이 기운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소연 동생이 이상한 기에 의해 당한 뒤였어.”

“사람이 맞습니까?”

고진유는 밖을 내다보면서 물었다.

희미한 괴영의 기가 전각 밖에서 마치 자신을 기다리는 듯했다.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알겠어요. 소연 소저를 잠시 부탁하겠습니다.”

“그러마.”

고진유는 일어난 뒤 밖으로 나가 괴영의 기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나에게 볼일이 있군.’

“크크크크…….”

고진유는 괴소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음…….’

점점 가까워지는 괴영의 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아니야.’

기를 느끼면서 확실한 건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표정을 보니 당황스럽지 않은 모양이군.”

검은 인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람이라기보다 마치 영혼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당신, 지금 어디에 있지?”

“역시…… 단번에 아는군. 난 삼천명천지에 있네. 일월가의 구천 중 삼천명군이라고 하지.”

“삼천명천지라…… 그곳이 어디지?”

“크크크…… 찾아올 생각이 있는가?”

“……나를 유인할 목적이 아니었소?”

“그녀를 낫게 하기 위해서는 명천지에 있는 홍과를 복용해야 하지.”

“굳이 홍과를 복용하지 않아도 치료할 수 있다.”

“크크크크, 과연 그럴까? 할 수 있다면 해보든지. 다만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네.”

“…….”

고진유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그녀의 심장에 박혀 있는 이물질을 없애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기를 밀어내야만 가능했다.

“음…… 아마 한 달 정도밖에 시간이 없을 텐데…… 과연 그사이에 치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내게 볼일이 있다면 직접 찾아와도 될 것을, 굳이 왜 이런 짓을 하지?”

“크크크. 내가 나갈 수만 있다면 그대 말대로 바로 찾아갔겠지. 그대도 알다시피 외부에 나가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말이네. 내가 못 나가면 그대라도 와야지 않겠나?”

“…….”

“명천지 입구에 들어오면 홍과가 보일 테니 그것을 가지고 가 그녀에게 먹이게나. 그러면 나을 것이네.”

“알겠다. 그때 보도록 하지.”

“잘 생각했네. 이것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오면 본인을 만날 수 있지. 크크크…….”

스스스스-

검은 인영은 괴소와 함께 사라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흑석이 놓여 있었다.

‘이걸 따라오라고?’

스윽.

흑석을 주워 든 뒤 가슴에 넣었다.

“좋아. 네놈의 뜻대로 만나러 가주마.”

* * *

고진유는 북소연이 누워 있는 침실에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 앉은 뒤 손을 잡았다.

“몸은 어떻소이까?”

“괜찮아요.”

북소연은 가슴에 무거운 기를 느꼈지만 다행히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공…… 자님. 죄송해요.”

“소저가 미안한 건 없습니다. 그리고 소저의 낫게 할 물건을 가지러 갈 것입니다.”

“혼자…… 가시는 건가요?”

“인양과 같이 갈 테니 염려 안 해도 됩니다.”

“네에……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푹 쉬고 계세요.”

고진유는 그녀의 손을 침상 안으로 넣어주었다.

드르륵.

고진유는 전각 밖으로 나왔다. 그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진유, 소연 동생은 괜찮겠어?”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분명 일월가의 짓이지?”

“삼천명군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다녀와야겠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홍과를 복용하면 낫는다고 하더군요.”

묵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떠한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이건…… 함정이잖아.”

“함정은 아닙니다. 그가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 저를 만나기 위해서 한 짓이라고 하더군요.”

“왜 못 나오는데?”

“명왕의 일족은 계약에 묶여 있습니다. 그 계약이 풀리기 전까지는 세상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수씨를 이용해서 너를 그곳으로 오도록 만든 거라고?”

“맞습니다. 저를 만나고자 한다면 가서 만나 봐야겠죠.”

“함정이든 아니든 위험한 상황이지 않아?”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 자체가 위험한 인물들이니까요. 만난 뒤 무슨 말이나 하는지 듣고 오겠습니다.”

“…….”

묵경은 너무 편안하게 말하는 고진유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아우님,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자 부르는 것도 아닐 거 아냐.”

“아닐 수도 있겠지요.”

“…….”

“형, 전 고진유입니다. 아시잖아요.”

“알지. 당연히…… 천하제일인. 하지만 나도 간다.”

“당연하죠. 인양도 같이 가죠.”

번쩍!

녹림야검이 손을 들었다.

“공자님, 저도…….”

“녹검 씨도 같이 갑시다.”

고진유는 무혼신녀에게 돌아섰다.

“누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소연을 부탁하겠어요.”

“조심해서 다녀와.”

고진유는 모여든 그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었다.

“대사형, 다녀오겠습니다.”

“세 사람으로 되겠느냐?”

“혹시 모를 상황에서 도망치기에 가장 적당한 인원입니다.”

“후후…… 알았다. 말하는 것을 보니 죽지는 않겠군.”

장두총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사형, 그게 아니죠. 아직도 사제를 모르세요? 도망치기에 적당한 게 아니라 완전히 깽판을 만들기에 적당한 인원이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제수씨를 건드렸는데 가만히 있겠어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지금 속에서 열불이 나고 있을 겁니다. 삼천이고 사천이고 그놈은 괜히 건드렸다고 후회막심일 겁니다.”

장두총의 말에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나 같았다. 게다가 가장 좋아한다는 북소연을 건드렸다.

일각 뒤.

고진유는 세 사람과 함께 지옥혈림을 빠르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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