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36화 (336/425)

336화

무혼신녀는 어이가 없었다.

그들이 안내를 한 곳은 무구천주를 위한 장소였다.

“망할 새끼들이…….”

그녀의 입에서 노기가 쏟아져 나왔다.

정말로 참으려고 했다.

한데 이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니 참고자 했던 결심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누님께서…….’

뒤에 따르던 혁자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감정이 폭발할 듯 보였다.

터지기 전에 말려야만 했다.

혁자영도 한편으로는 같은 심정이었다.

‘이들은 무구천을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그들은 스스로 무구천을 지울 생각이 없었다.

‘……사제는 알고 있었군. 나를 따라 보낸 건 혼자 보냈다가 폭주라도 한다면 누님의 몸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 거였어.’

혁자영이 도제를 보며 소리쳤다.

“사제의 말이 맞군요. 당신들은 무구천을 버리고 극일가에 복귀할 생각이 없는 것이오.”

“이보시게. 이건 화산파에서 나설 일이 아니네. 가만히 있게.”

도제는 눈에 힘을 주었다.

무혼신녀는 몰라도 혁자영 정도는 가볍게 생각했다.

이것만 봐도 어떠한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고진유의 뜻으로 왔는데도 그를 화산파 제자라며 무시하고자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본도는 화산파의 제자가 아닌 극일가 가주인 사제의 명을 받아 이곳에 온 것이외다. 그대들이 무구천을 정리하고 극일가에 복귀하라는 명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오.”

“…….”

도제는 순간 실수했음을 알았다.

혁자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분명 상자를 확인했을 거라 봅니다만, 그런데도 이곳으로 누님을 안내했다는 것은 무구천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뜻이 아니오?”

“……그건…… 아직…… 우린 무구천이기에…….”

“여전히 변명하는군요.”

혁자영의 말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변명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우리의 뜻을 알릴 참이었소.”

‘허, 가주에게 ‘그’라…….’

“어차피 수백 년이 흐른 이상…… 그냥 이대로…….”

콰아앙!

무혼신녀는 건물의 한쪽 벽을 강하게 쳤다.

얼마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벽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저번에 네놈들이 무림맹에 찾아왔을 때 분명히 말했거늘. 무구천 조사님의 유언마저 네놈들이 무시하겠다는 뜻이냐?”

“그게 아니라 저희들은 무구천의 뜻을 계속…… 이어받아…….”

“헛소리 마라.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아깝다는 것이겠지.”

“…….”

“극일가의 가주가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를 알고 있나?”

무혼신녀는 내력을 끌어 올려 앞에 선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말로 안 된다면 행동으로 나설 수밖에 없군.”

“우릴…… 죽이려고 하는 것이오?”

“주인의 명을 따르지 않는 수하를 세상에 그대로 둘 거라 여겼는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겠나?”

“……!”

그녀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도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저분의 무공이 강하다고 해도 세 사람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그녀와 함께 혁자영이 왔다고 하지만 그는 수하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터.

“죄송합니다. 우린 무구천이 아닌 다른 독자적인 세력으로…….”

“꿈도 야무지군. 네놈들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긴 모양이야.”

휘익!

무혼신녀는 손을 뻗어 도제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으으……!”

마치 흡성대법을 펼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유하랑과 이무결이 다급히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

채애앵-!

하지만 혁자영의 검이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이 나설 일이 아니다!”

유하랑은 재빨리 검을 뻗어내며 혁자영의 손을 베고자 했다.

스륵.

혁자영은 미끄러지며 다가오는 검기를 가볍게 벗겨내면서 오히려 유하랑의 팔목을 향해 검기를 뻗어냈다.

파아앗!

너무나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한 수에 유하랑은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만약 손을 놓지 않았다면 그의 팔목이 잘려 나갔을 터.

“이…… 노오오옴!”

유하랑의 노기가 솟구치며 노려보는 순간 혁자영의 왼손이 그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마치 무혼신녀처럼 유하랑의 전력의 내기를 흡성하는 듯 보였다.

“으으으…….”

유하랑도 신음을 흘리며 움직이지 못했다.

검류화협 이무결은 몸이 떨렸다.

도제와 고독기검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그는 두 사람의 뜻을 따랐을 뿐이었다.

털썩.

도제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무혼신녀는 시선이 마주친 이무결을 불렀다.

“사내 녀석이 줏대가 없어 가지고.”

휘익!

“으아악!”

무혼신녀가 손을 뻗는 순간 몸이 그녀에게 끌려갔다.

그 또한 몸에서 내기가 사라지는 것이 생생히 느꼈다.

무혼신녀와 혁자영은 그들의 내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털썩.

힘없이 주저앉은 세 사람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혼신녀의 목소리에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목숨을 끊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라.”

그들은 순식간에 당한 현실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극일가에서 이곳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동안 돌아올 것이라 봤기에 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무구천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니 괜한 짓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

“조만간 극일가에서 나와 무구천의 모든 것을 정리할 것이다. 네놈들은 마음대로 살겠다고 했으니 알아서 해라.”

“…….”

“다만 적당하게 가지고 떠나라. 이것만이 극일가의 가주께서 네놈들에게 베풀어주는 마지막 기회이지. 근데 또 괜한 욕심을 가졌다가는 좋지 않은 일을 당할 수 있을 테니 잘 알아서 판단해.”

무혼신녀는 그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자영, 계속 보고 있으니 짜증이 올라오는군. 가자.”

“네. 누님.”

혁자영은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밖으로 나온 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먼저 나서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어디 가서 술 한잔 마실까?”

* * *

채애앵!

두 개의 술잔이 부딪쳤다.

무혼신녀와 혁자영은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그들 자리 옆에는 이미 빈 술병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무혼신녀와 혁자영은 거의 대화 없이 술을 마셨다.

“넌…… 내 어디가 마음에 드는 게냐?”

“자신감입니다.”

“흐음…… 예쁜 게 아니고?”

“…….”

“하긴 주위에 예쁜 것들이 워낙 많이 있지.”

그녀는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누님께서 아름다운 건 기본이시지 않습니까.”

“오호라, 좋구나. 그 정도 아부이면. 근데 괜찮겠느냐? 내가 훨씬 나이가 많은데?”

“사제가 그러더군요. 실제 나이에서 백 년을 지워야 누님의 실제 나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누님과 전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진유가 그랬다고?”

“신체상으로도 여전히 젊은 여인의 몸이라 했습니다.”

“…….”

무혼신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여튼 네놈 사형제들은 웃기구나. 가만히 있는 내 몸을 가지고 뒤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됐다. 나중에 진유한테 가서 한 소리 할 테니. 아니, 모두 모이도록 해서 교육 좀 해야겠다.”

“……죄송합니다.”

스윽.

그녀는 술잔을 들었다.

“잔 들어.”

“네.”

혁자영은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술잔을 들었다.

“만일 내가 사귀는 것을 허락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

혁자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선 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지금처럼 가까이서 누님을 모시겠소이다.”

“……어…… 그래. 알겠다. 제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녀는 갑자기 다가온 혁자영을 보며 내심 놀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싸울 그놈들의 무력은 무시할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누님을 두고 죽지 않을 것입니다.”

“……좋다. 이 일이 끝난 뒤 네 뜻대로 하마.”

“고맙습니다.”

혁자영은 자신을 받아준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짓는 그의 웃음을 보며 그녀도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그녀도 그를 따라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런…….’

그녀는 현재 자신의 기분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술을 따라 부으려는 그때,

스윽.

뒤로 물러났던 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다가왔다.

“…….”

그리고 무엇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거늘…….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점점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분명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객실에 그냥 가야 하나?

아니면 멍하니 봐야 하나?

그것조차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마시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제가 방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니…… 됐어. 내일 보자.”

“편히 쉬십시오.”

혁자영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그녀가 객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무슨 용기로 얼굴을 내밀었는지 몰랐다. 그냥 그 순간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혁자영은 혼자 앉아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나도 자야겠군.”

* * *

극일천무신궁의 가장 높은 영산으로 향하는 두 사람.

수곡자는 조용히 앞서 올라가는 노인, 나하중의 뒤를 따랐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불렀다.

최근 신궁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목비천과 토비천 소속의 인물들이 도착하면서 나머지 두 곳이 당했음을 알았다.

두 곳의 비천은 물론 수장들인 화비천과 수비천이 고진유도 아닌 다른 인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도저히 그들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 곳이 신궁에 모인 건 힘을 합치고자 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망 온 게 확실했다.

비천이 도망을 치다니…….

심지어 화비천을 멸문시킨 힘은 극일가가 아닌 남궁세가라 했다.

비록 그들이 전부 본래의 남궁세가는 아닐지라도 수곡자의 입장에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수곡자.”

“넵. 궁주님. 부르셨습니까?”

“사는 게 재미없지 않으냐?”

“…….”

나하중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였다.

‘왜…… 이런 질문을……?’

이런 물음을 던지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류의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소신이 모자라서 무슨 뜻으로 묻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뜻은 없다. 현재 자네의 심정이 어떠한지 궁금할 뿐이라네.”

‘내 심정을 알고 싶다는 것인가?’

분명한 건 그의 표정이 예전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네.”

그의 대답은 또 예상과는 달랐다.

산 위로 오르면서 들려온 목소리.

거짓이 아닌 그의 진심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궁주님…….’

수곡자의 눈빛은 애처롭게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를 따랐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굳이 위로할 필요는 없네.”

“죄송…… 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건 없지. 내가 미안할 뿐일세.”

두 사람은 어느덧 영산의 봉우리에 도착했다.

나하중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네도 아무 곳이나 앉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수곡자는 그의 곁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흩날리고 있었다.

“휴우……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재미가 있었어. 안 그런가?”

“…….”

“제대로 된 건 없었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있었지.”

“지금도 궁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후후후.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네. 보면 모르는가? 그들의 명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세이지.”

“…….”

“차라리 극일천주의 아래 있을 때가 좋았어. 그놈들이 천주를 두려워해서 나오지 못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제일 재미있게 지낸 시절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맞…… 습니다. 무림을 다스린다는 맛도 있었습니다.”

수곡자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궁주님께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가 스스로 대답을 해주지 않은 이상 모를 일이었다.

“수곡자, 형주에 한 번 갔다 오게.”

“…….”

형주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화산도협 고진유를 만나고 오라는 뜻이었다.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면 됩니까?”

“조용히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게.”

“궁주님, 그와 홀로 만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만일 그가 본인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나머지를 알려줌세.”

“알…… 겠습니다. 소신이 직접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힘들겠지만 조용히 다녀올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곡자는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만일 가르쳐 주려 했다면 묻지 않아도 알려줬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봉우리에서 반시진을 더 보낸 뒤 산을 내려왔고, 신궁에 도착하는 동시에 수곡자의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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