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콰아앙-!!
남궁무명이 뻗어낸 검강에 굉음이 터졌다.
주르르륵-
은빛이 흐르던 화비천의 수염이 거의 반쯤 잘려 나갔다.
다른 곳도 아닌 자존심이라 여기던 수염이 날아가자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노오오오옴.”
화비천의 노성이 터져 나온 동시에 남궁무명의 주위에서 푸른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아아!!”
절대로 꺼지지 않을 화염 속에 갇힌 남궁무명을 보며 회비천이 괴성을 질렀다.
“그곳에서 절대로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다.”
남궁무명은 무심히 검을 휘둘렀다.
번쩍!
검강이 화염 속에서 치솟았다.
그리고 수십 개의 타원을 그리며 화염을 잘라냈다.
스강-
절대로 잘리지 않을 것 같았던 화염이 산산조각 났다.
“커어어억.”
화비천은 비명과 함께 휘청거렸다.
‘이렇게 간단히…….’
그는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앞으로 다가오는 남궁무명을 멍하니 보았다.
“강하군.”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착각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거요.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처음부터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지.”
“…….”
“만일 이길 수 있었다면 이미 세상은 그대들의 것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소이까?”
“……그렇군. 그대의 말이 맞다.”
화비천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극일가는 변함이 없었어. 멍청하게 극일천만으로 그들이 달라졌다고 생각했구나…….’
그는 모든 게 함정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함정이었다.
‘당한 놈이 멍청한 것이지……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남궁무명은 검을 세웠다.
“이제는 서로 끝을 낼 시간이외다.”
“나도 잘 알고 있다네. 부탁하지.”
화비천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스걱.
바람이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화비천의 목숨이 끊어졌다.
오행 비천인의 죽음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중원에서 사라진 순간이었다.
* * *
무림맹으로 돌아온 고진유는 다음 날 남궁무명의 전서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뒤, 맹주전에 모인 십여 명의 인물들.
다급한 일이 없으면 맹주전으로 늦은 시간에는 되도록 잘 부르지 않았다.
묵경은 자리에 앉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지?”
“무명 형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번에 왔을 때 어떤 일을 시킨 모양이군.”
“비천 중 한 곳을 치도록 했습니다.”
“……!!”
이 자리에 모인 인물들은 비천이 어떠한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가능한 일이야?”
묵경의 말은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일반 무림인들이 아닌가.
현 무림에서 비천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문파는 화산파밖에 없었다.
“진남궁인. 극일가의 가신가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진남궁인이라고?”
“네. 남궁세가가 아니라 본 가의 가신가라면 충분히 한 곳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공했겠네?”
“당연히…… 화비천을 잡았습니다.”
“후후후. 내 그럴 줄 알았다. 느닷없이 남궁무명이 찾아올 리가 없지.”
장두총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말했다.
화비천이 사라졌다면 좋은 소식이었다.
“앞으로 네 곳만 정리하면 되겠군.”
“조만간 세 곳만 남게 될 것입니다.”
“어? 또 우리 외에 그놈들을 칠 수 있는 인물이 있어?”
“제가 무림맹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본 가에 다녀왔다고 했잖아요. 그때 사촌 형님께 부탁했습니다. 수비천을 처리해 달라고요.”
“후후후후. 비천, 그놈들 정신없겠구만. 화비천에 이어 수비천이라니…….”
“사제는 한 번 움직일 때 확실하게 해버리는군.”
우종성은 그의 성격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곧바로 행동하는 고진유의 과감한 행동력이야말로 최고의 수장이 지녀야 할 덕목이 확실했다.
적을 향해 치고 빠지는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을 따른다는 게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몰랐다.
“사제. 수비천까지 사라지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지?”
“제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나머지 비천들은 한곳으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한곳이라면?”
이번에는 혁자영이 물었다.
“금비천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결국 극일천무신궁에 모인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들 혼자서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기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쓸데없이 무림을 혼란스럽게 만들 짓은 안 하겠지요.”
“그렇군. 동생이 두 곳을 급하게 친 이유 중 하나가 무림 때문이었어. 맞지?”
지금까지 대화를 듣고 있던 무혼신녀가 물었다.
“그런 이유도 있긴 했습니다.”
“남의 일에는 신경 안 쓴다 하면서도 무림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구나. 어째 말과 행동이 다르더냐?”
“하하하! 큰 누님, 원래 진유 아우가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묵경의 말처럼 그들은 이제 고진유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었다.
“사제, 그들이 신궁에 모여든다면 그때 우리가 전부 쳐들어가면 되는 것인가?”
“그들이 마지막이라면요. 하지만 그들 뒤에 있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도 움직이기에는 빠릅니다.”
“일월가를 말하는 것인가?”
“네. 그들이 맞습니다.”
“정확히 일월가는 어떤 존재들이지?”
“저 또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만, 그들을 앞에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음…… 그래도 사람은 맞겠지?”
“아마도…….”
“설마 아니라는 말이야?”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됐다.”
묵경은 그들이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죽이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이젠 우리도 힘을 하나로 모을 때입니다.”
“지금 무림맹에 모여 있잖아?”
“무림맹이 아닌 일월가와 싸울 수 있는 우리만의 세력 말입니다.”
“극일가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냐?”
“제가 원하는 세력에 극일가도 포함 될 것입니다.”
“극일가도 아니라면…… 새로운 단체를 만들자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오직 그들만 상대로 싸우는 세력입니다.”
고진유가 말한 의미를 모두 알았다.
“무림맹은 어떻게 할 테지?”
“당분간 제갈 군사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미리 이야기했군.”
“여러분들이 모이기 전에 군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바로 이해해 주시더군요.”
고진유의 말처럼 제갈양은 확실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예전까지의 상황은 무림에 관한 일이었다면,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은 무림맹에서 관여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맹주가 있기에 무림맹에서 막아낸 것처럼 보였을 뿐이니까.
제갈양은 고래 싸움에 새우가 중간에 끼어들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림맹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조용히 빠져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제가 원하는 단체를 어디에 둘 생각이지?”
“형주입니다.”
“음…… 그곳에는…… 지옥혈림이 있지 않아?”
“묵경 형, 맞습니다. 원래는 본산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형주라면 무림맹과 거리도 많이 떨어지지 않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지옥혈림의 그분께서도 원하는 만큼 지내도 좋다는 말씀을 전해 받았습니다.”
“이런, 지옥혈림에 신세를 지게 되는군.”
북소연은 얼른 손을 들었다.
“모두들 자신들 집이라고 생각하세요. 편안하게 지내시도록 해드리겠어요.”
“하하! 제수씨. 지옥혈림이라서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괜히 민폐를 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었소이다.”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전부 한 식구들이시잖아요.”
북소연의 말처럼 같은 공간에 있는 그들은 고진유를 중심으로 모두 가족과 같은 이들이었다.
“알겠소이다. 제수씨 말씀대로 우린 같은 식구들이니 편안하게 지내겠소이다.”
“그럼.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형주로 떠날 것입니다. 대사형께서는 본 문에 남아서 수련을 마친 사제들을 형주에 모두 모이도록 연락해 주세요.”
“알겠네. 본 문에 바로 연락을 하겠네.”
고진유는 이번에는 무혼신녀를 보았다.
“누님, 무구천은 어떻게 할까요?”
“음…… 내가 한 번 만나보고 오마.”
“부탁하겠어요. 혹시 혼자 다녀오기 심심하시면 호중 사형과 같이 가세요.”
“…….”
혁자영은 갑자기 자신을 거론하는 고진유의 말에 멈칫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지 뭐…… 혼자 가면 심심하긴 하니. 자영, 어때? 같이 갈까?”
혁자영은 빠르게 돌아섰다.
“누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내일 바로 떠나자.”
“알겠습니다.”
툭.
장두총이 슬쩍 다가오면서 혁자영을 건드렸다.
“잘 다녀와. 누님과 많은 이야기도 해보고.”
“…….”
혁자영은 얼굴이 붉게 변하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 * *
수비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두 자의 검신 폭을 지닌 대검을 어깨에 걸친 사내는 히죽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뒤로 수하가 보고했다.
“패룡무군장님, 도착했습니다.”
“여기에 숨어 있으면 본 가가 모를 줄 알았던 모양이지?”
패룡무군장 고도유.
그의 뒤로 패룡무군 일천 명이 검은색의 용투구를 쓴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쌍한 놈들. 그냥 전대 가주께서 깔아주신 극일천 놀이나 하고 있었다면 중원에서 잘살 수 있었을 텐데. 왜 능력도 안 되는 놈들이 치고 올라서려고 하는지.’
스윽.
고도유는 손을 옆으로 뻗었다.
수하가 그의 손에 거대한 뿔이 달린 용투구를 건네주었다.
철컥.
고도유는 쌍각용투구를 얼굴에 썼다.
휘익.
그리고 말 위에 올라탔다.
“패룡무군을 가로막는 것은 세상에 없다. 선두는 본군장이 달릴 것이다. 가자.”
“넵. 군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놈들은 중원의 무림인들이 아니다. 비천의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두두두두-
고도유는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일천의 패룡무군이 수비천지를 향해 달렸다.
벌컥.
수비천은 문을 열고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무림들을 보았다.
흑색 쌍각용투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수비천의 백색 눈썹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저…… 자들은……?’
눈앞에서 직접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극일가의 패룡무군이 확실했다.
그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수하들에게 명령한다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수비천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화비천이 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자신들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망할 새끼가…….”
극일가의 패룡무군이라고 해서 자신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수비천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뭣들 하느냐? 적은 겨우 패룡무군 밖에 없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며 그들 진영으로 퍼져 나갔다.
수비천인들 또한 처음과 달리 빠르게 달려오는 패룡무군을 보며 도검을 뽑아 들었다.
두두두두-
고도유는 손을 뒤로 뻗어내며 패룡대검을 잡았다.
대검만 봐도 그의 힘이 어떠한지 알 듯했다.
휘익!
고도유는 말 위 안장에 두 발로 일어났다.
“비천 놈들아! 본장이 바로 고도유다!”
번쩍.
패룡대검을 위로 치켜올리자 하늘 위에서 뇌력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오며 수비천지의 하늘 위를 덮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해가 중천에 있던 날씨가 시커멓게 변했다.
쿠아아아아아앙-!!
슈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먹구름 사이에서 흑룡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수비천지에 떨어졌다.
번쩍!!
흑룡이 떨어진 땅 위에 섬광이 폭발하며 굉음이 터져 나갔다.
콰아아앙아앙!!
마치 바닥이 파도치듯 땅이 솟구치며 좌우로 흔들거렸다.
“……!!”
수비천은 몸이 떨렸다.
극일가 중 가장 강한 위력의 인물이 패룡무군장이라는 소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말안장에 선 채로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신위는 수비천인들의 기세를 꺾어 버렸다.
타앗!
고도유는 말안장에서 날아오른 뒤 수비천인의 앞으로 내려섰다.
휘이이이익!
패룡대검을 천천히 뒤로 잡아당기면서 용투기를 끌어냈다.
그 모습을 본 수비천은 다급히 소리쳤다.
“저자를 막아라!!”
그의 명령에 수십 명이 고도유를 향해 검강을 날렸다.
하지만 고도유는 날아오는 수많은 검강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스팟-
고도유의 뒤로 당겨졌던 패룡대검이 어느덧 회전을 하면서 반원을 그었다.
지이이잉.
패룡대검의 맑은 소리만이 아주 잠시 들리고, 대기가 십여 장이나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움직임은 상하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두두두두-
패룡무군이 뒤로 도착했다.
멍하게 있던 수비천인이 그대로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