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32화 (332/425)

332화

목에서 뜨거운 느낌이 났다.

젠장…….

목을 타고 가슴을 흐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를 보았다.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왜…… 본 가가 중원에서 숨은 채 움직이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소?”

“…….”

“비천. 일월가. 명족이 두려워서 숨어 있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겠지? 전투성이 강한 본 가는 한 번 싸우면 끝을 볼 정도로 싸우고 싶거든. 우리에게는 두 번이 없으니까.”

“…….”

“본 가가 네놈들을 두려워할 거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난 네놈들이 강할수록 더 좋아. 마음껏 모든 능력들을 펼칠 수 있지. 지금처럼.”

스걱.

사의검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화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커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쓰러졌다. 단 한 번도 반항하지 못했다.

* * *

백리세가 건물들은 명왕괴수인들에 의해 많이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미리 피신한 덕분에 다행히 다친 사람들은 없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백리소와 고진유는 나란히 서며 세가인들의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맹주께서 큰 도움을 주셔서 고맙소이다.”

“다행입니다. 백리세가가 조금만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지요.”

“네에. 그렇습니다.”

홀로 온 고진유에게 그는 무한의 감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무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이지요. 그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무림에 나타날 그들은 괴물들입니다.”

“맹주께서는 그것들과 혼자 싸우시겠다는 것입니까?”

“가능하다면요.”

“이길 수 있겠습니까?”

“본도는 단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천하제일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가시는 것입니까?”

“지금쯤이면 그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어떤 짓을 할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아…… 네에.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와 마지막으로 포권을 한 뒤 물러났다.

단번에 사라진 고진유의 신형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벌써…… 사라졌군. 대단한 인물이야.”

조만간에 그가 한 일이 중원에 알려질 것이었다.

* * *

고진유는 백리세가를 나선 뒤 극일가로 향했다.

‘음…….’

극일가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마치 따라야 하는 순리처럼 극일가의 가주가 되었지만 굳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무림맹으로 그들이 찾아왔을 때 확인했다. 용맥이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잘됐어. 이번 기회에 똑바로 정리하고 오는 게 좋겠다.’

고진유는 이제 도의가 편했다.

극일가의 가주보다는 화산파의 제자로 지내는 게 좋았다.

나중에 알리는 것보다 미리 찾아간 뒤 알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타아앗!

고진유는 속도를 냈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극일가.

긴장이 되면서도 어떠한 인물들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음…… 근데……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 * *

수백 년 동안 고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집성촌이라 하여 고촌이라 불리는 곳.

그곳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고하천이라는 하천을 지나야만 했다.

커다란 바윗돌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고하석교만이 마을에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고진유는 다리 앞에 섰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석교 너머로 영험한 내기가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기를 과연 누가 쳐들어올 수 있을까?”

비천이나 일월가에서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오더라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리 너머 마을에는 사람들의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모르고 있군.”

고진유는 몸속의 내력을 완전히 막은 채였다.

마을 인물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에 대해 똑바로 파악할 수 없었다.

“후후, 그럼 가볼까?”

스으윽.

고진유는 가볍게 석교를 넘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타악!

석교 끝에서 아래로 내려서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대단한데요?”

고진유는 자신이 잘 움직이지 못하도록 무형기로 압박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나타난 이들의 기세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진유는 잠시 막아놓았던 내력을 풀었다.

용린기.

그와 동시에 그들의 표정이 처음과 달라졌다.

그들 앞에 선 청년의 정체를 알았다.

극일가의 새로운 가주.

고진유가 찾아왔다.

극일천을 세운 뒤 극일가를 나섰던 가주가 찾아왔다.

고진유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외부에서 본 고촌과 안으로 들어온 고촌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마을로 들어선 뒤 안으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성을 보았다.

외부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고 안으로 들어와야만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극일가군.’

극일가 인물들의 기세는 대단했다.

당장 이들이 무림에 나간다면 단숨에 무림을 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성을 들어서자 중년 사내가 고진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 듯했다.

‘숙부인가 보네.’

극일가주가 비워놓았던 이곳을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인물이었다.

그 옆에는 젊은 청년이 함께했다.

슈우우우웅.

중년 사내의 전신에서 용투기가 솟구치며 고진유를 향해 날아왔다.

스르르릉.

사의검이 스스로 빠져나오면서 용투기의 앞을 막아섰다.

“후후후. 검도 스스로 용투기를 펼칠 정도라…… 놀랍군.”

“숙부님을 뵙습니다.”

“가주를 뵙네. 형님께서 말년에 심심했던 모양이야. 이런 아들이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다니.”

고묵은 내력을 거둔 뒤 고진유의 앞으로 다가섰다.

“본 가에 잘 찾아왔다.”

“본 가가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습니다.”

“중원 최고의 가문이다. 아무 말도 없었던 모양이지?”

“그냥 가보면 알 것이라 했습니다.”

“하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지.”

그의 말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고진유는 숙부 뒤로 다가온 사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도유 형님이시군요.”

“반갑네. 가주.”

“저도 반갑습니다. 미유 누님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유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하나도 쓸 만한 말은 없을 것이다.”

“아하하, 쓸 만한 게 아니라 전부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

고진유는 반갑게 그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흠칫.

고도유는 갑자기 손을 잡는 그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였다.

“가주 아우,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형님.”

앞서 들어가던 고묵은 뒤에 따라오는 고진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 성격이 좋군.’

앞으로 도유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고진유는 본 가에 들른 후 하루가 지나는 동안 주요 인물들과 만남을 가졌다.

한데 그들을 대전이 아닌 접객실에서 한 명씩 만났다.

고묵은 이상하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극일가의 주요 인물들을 만난 뒤 마지막으로 고도유를 만났다.

“들어가도 되겠는가?”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고도유가 들어섰다.

고진유는 자리에 일어난 뒤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형님,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가주의 명이지 않은가?”

“가주라서 오신 것입니까?”

“…….”

“에이, 한번 해본 말입니다. 앉으세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가주의 접객실에서 밖을 내려다보니 한눈에 극일가의 경관이 보였다.

“정말 대단한 곳이지 않습니까?”

“맞다. 중원 최고지.”

“제가 이런 곳의 주인이라니 믿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익숙해질 것이네.”

“아닙니다. 굳이 익숙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

그는 고진유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여기에 오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데 막상 이 자리에서 밖을 내려다보니 확실히 알게 되는군요.”

“무엇을 말인가?”

“여긴 제 자리가 아닙니다.”

“…….”

극일가의 가주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본 가가 어떠한 곳이던가?

중원 최고의 가문이자 용문의 전투 가문이 극일가였다.

“형님께서 계셔서 천만다행입니다.”

“…….”

“제 팔자는 도사입니다. 화산파가 제 고향이며 제집입니다. 여기 극일가는 형님의 고향이며 집이지요.”

스윽.

고진유는 허리에서 극일가의 신패를 내밀었다.

“형님이 맡아서 지니고 계세요. 음, 하지만 아마 지금 당장 저 밖에 분들에게 이 사실을 밝힌다면 시끄럽겠죠?”

“가주…….”

“제가 떠난 뒤 숙부님과 의논을 해서 제 뜻이라 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십장로께서 그러시더군요. 용맥이 끊어지지 않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

고도유 또한 용맥의 후손이었다.

“그놈들을 박살 낼 때까지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건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본 가의 숙명이다.”

“그럼, 이제는 문제가 없네요.”

고도유는 가주의 신패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기 가주였던 자신이었다.

갑자기 고진유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실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데.

“정말로 이곳에 관심이 없는 것이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제집은 화산파입니다. 제가 기억을 잃은 동안 마음과 몸이 완전히 화산파에 동화된 것 같습니다. 그분들과 살고 싶습니다.”

“……알겠다. 이것을 받아들이마.”

“고맙습니다. 도유 형님이라면 충분히 잘 하실 것입니다.”

“고맙다.”

고도유는 신패를 들었다.

고진유는 모든 게 홀가분해졌다. 자연스럽게 극일가의 가주가 되었지만 원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의 꿈은 모든 일을 마친 뒤 화산파에서 사조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일가의 가주 자리는 다른 인물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그에게 사촌 형님의 존재는 다행이었다.

“남궁세가에게 화비천을 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궁세가에서 움직인다고 하기에 알아보던 중이었다. 우리가 도울 일은 없을까?”

“수비천을 칠까요?”

“이 시국에 비천을 직접적으로 쳐도 괜찮을까?”

“형은 형대로 움직이세요. 두 곳을 동시에 치게 되면 나머지 세 곳은 극일천무신궁, 금비천으로 모이게 될 겁니다.”

“비천을 한자리에 모으게 한 뒤 전부 치겠다는 계획인가?”

“일월가가 본격적으로 나오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중원 무림은 안전할 겁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우리들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좋아. 둘 중 하나는 끝장을 본다는 것이군.”

“형님. 끝장은 저들이 보는 것이겠지요. 이번 기회에 두 번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무슨 계획인지 알겠다. 수비천을 칠 준비를 하지.”

“형님께서 나설 계획이신가 보네요.”

“후후후. 동생은 잊었나? 나도 용맥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고도유의 용린기가 빛을 냈다. 역시 그 또한 고진유와 같았다.

“자주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미유를 잘 부탁하지.”

“아…… 형님.”

고진유의 목소리가 방금 전과 달리 힘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

“형님은 좋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형님에게 미유 누님과 화유 누님은 여동생이지 않습니까. 근데…… 저에게는 왜 누나밖에 없습니까? 온통 주위에 누나들밖에 없습니다.”

“…….”

피식.

고도유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말 안 듣는 여동생보다 잔소리 많은 누나들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최소 다섯 명이라니까요. 옆에서 한 소리씩 하면…….”

“아…… 좀 많긴 하구나. 그러면…… 빨리 남자를 만나게 해서 동생에게 신경 쓰지 않도록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

“오…… 역시 형이네요. 그거 좋은 방법입니다…….”

고진유는 한 명씩 그녀들을 좋아하는 사내들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아! 미유 누나를 창천신검이 좋아하는 느낌이더군요.”

“뭐라고?”

고도유는 처음 듣는 말에 펄쩍 뛰었다. 극일가에서는 전혀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았던 그녀가 중원에 나가자마자 사내가 나타났다.

“……창천신검은 어떤 녀석이지?”

“처음에는 성격이 별로 안 좋았는데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당연히 미유 누나와 짝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동생이 괜찮다면야…… 나도 마음에 들겠지. 흠, 수비천 일이 끝나고 난 뒤 한 번 만나 봐야겠군.”

“…….”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아니…… 그게…… 여동생과 누나의 입장이 다르긴 하네요.”

“하하, 오빠의 마음이 곧 아버지의 마음이지.”

“그건 부럽습니다…….”

고진유는 시간이 나는 대로 여동생을 한 명 구하는 게 어떨까 고민에 빠졌다.

스윽.

그 뒤 두 사람은 반각 정도 더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