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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30화 (330/425)

330화

극일가의 인물.

무림맹주 고진유를 제외하고 극일가의 인물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분명 남궁세가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남궁무명은 중년 사내와 나란히 앉았다. 그의 신분은 극일가의 십장로 도민군이라 밝혔다.

힐끗.

남궁무명은 저도 모르게 건너편 방으로 시선이 갔다.

“이보시게.”

“네, 어르신.”

“시선이 자꾸 옆으로 가는구만. 혹시 아가씨에게 관심이 있는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아가씨 정도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여인이니.”

남궁무명은 그의 앞에 내려놓은 빈 잔을 다시 채웠다.

“드시지요.”

“잘 마시겠네.”

도민군은 가득 채운 술잔을 다시 비웠다.

따뜻한 온기의 술이 몸속으로 내려가면서 피로를 풀어주었다.

“창천황신공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들었다네.”

“……최선을 다해 익히기는 했지만 어르신의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번 볼 수 있을까?”

“…….”

“손을 줘보게.”

상대가 어느 수준까지 무공을 지녔는지 파악하고자 할 때는 더 높은 내력을 지녀야 알 수 있었다.

남궁무명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만히 힘을 빼며 그의 내기가 몸 안으로 잘 들어오도록 대응하지 않았다.

‘호오…….’

도민군은 쉽게 자신의 내기가 남궁무명의 내부에 들어가자 그가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기가 함부로 들어오게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는 편안하게 휴식을 하는 모습이었다.

가벼운 내력의 운용만으로 남궁무명의 무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창천황신공을 극성으로 익혔군. 내가 알기로 자네 나이에 완벽하게 익혔던 남궁세가의 인물은 없었는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네. 정말로 뛰어나. 오랜만에 남궁세가에 제대로 된 인물이 태어났어.”

“감사합니다.”

남궁무명은 그의 칭찬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두 분께서는 무림맹으로 가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가주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라네. 이십 년 동안이나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지.”

남궁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대 극일가주께서도 대단하신 분이군. 가문까지 속일 정도라니.’

고진유의 존재는 어떻게 보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경우와 같았다.

“우린 전대 가주께서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듯해서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확인한 대로 가주가 전대 가주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본 가에서 진정한 그분의 자식인지 확인차 가는 길이지.”

“아하…… 알겠습니다.”

남궁무명은 두 사람이 무림맹에 가는 이유를 알았다.

이번에는 도민군의 차례였다.

“자네는 무림맹에 가는 이유가 뭔가?”

“그분께서 부르셨습니다.”

“무슨 할 일이 있는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혹시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을 아는가?”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화비천에서 명왕괴수인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 일이라면 들었습니다. 가주께서 그놈들의 목을 전부 베어버렸다고 하더군요.”

“이젠 그놈들도 무림에 나온다는 것이네. 더는 무림 한 곳에서 숨어 지내지 않겠다는 뜻이지.”

“…….”

“세상을 둔 마지막 한판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의미라네.”

고진유에게 듣기로 두 가문의 싸움은 무림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라 했다.

“자네는 아는가? 이번 싸움을 마지막으로 두 가문은 중원 무림에서 사라지게 될 걸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가문은 수백 년을 함께 견제하며 내려왔지. 본 가의 존재 이유는 그들이 있음이야.”

“중원을 떠난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람이 존재하거늘 중원을 떠날 수 있겠는가?”

“…….”

“극일이라는 이름을 버린다는 걸세. 다만 남궁이라는 이름만 남는 것이고.”

남궁무명은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군. 극일가의 수호가신가가 아닌 남궁세가로만 남는다는 뜻이군.’

극일천이 사라졌듯 극일가 또한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극일가의 마지막 세대가 될 걸세. 최선을 다해보게.”

“극일가의 인물들은 어떻게 됩니까?”

“새로운 이름을 가지겠지. 지금은 그렇게 알고 있게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남궁무명은 그가 따르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았다.

* * *

고진유는 화산파의 제자들과 함께 정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그들의 활약상을 모르는 정주의 인물들은 없었다.

태양무국을 막기 위해 직접 가문의 수하들을 이끌고 올라간 뒤 그들을 완전히 막아냈으며, 비천이라는 조직에서 만든 명왕괴수인이라는 괴물을 단칼에 베어버렸다고 했다.

정주성으로 들어선 무림맹 일행을 보며 백성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무림맹 역사상 가장 강한 무림맹주를 보고 있었다.

슥슥.

고진유는 주위를 보면서 손을 들어주었다.

“무림맹주님, 만세!”

“화산도협님, 만세!!”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친 인물들은 함성을 더 크게 내질렀다.

“하하하, 여러분.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두 손으로 짧게 포권을 하면서 그들의 반응에 인사를 해주었다.

정주성 입구에서 무림맹의 금마지까지 거의 반시진 동안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면서 걸었다.

“대단해. 피곤하지도 않은 모양이군.”

“대사형, 사제를 보세요. 은근히 즐기잖아요. 피곤하겠습니까?”

장두총의 말이 맞았다.

지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있으면 안아주기까지 하는 걸 보면 즐기는 게 분명했다.

우종성은 미소를 띠며 그의 모습을 보았다.

“맹주 사제는 즐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본성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즐기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못 하는 일이니. 사람을 그냥 좋아하는 거다.”

이번에는 혁자영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의 말에 녹림야검도 다시 거들었다.

“맞습니다. 공자님께는 나쁜 사람이라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를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고진유는 늘 똑같이 사람을 대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였다.

“그건 뭐 좋은데…… 이러다가 무림맹 가는 데 종일 걸리겠습니다.”

“후후, 그건 그렇구나. 한데 빨리 가자고 말도 못 하겠는걸.”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고진유를 따라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까아아아아!!”

“묵경님, 사랑해요……!!”

갑자기 여인들의 비명과 함께 목소리가 울렸다.

“하아…… 또 시작이네.”

묵경의 뒤를 여인들이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거의 일백 명 정도나 되는 여인들이었다.

“이야, 좀 부럽기는 하다. 묵경 형님을 보면 일단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해.”

“응. 우린 아무리 잘나도 묵경 형님 얼굴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거야.”

그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걸으면서 금마지로 들어섰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자 장두총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창천신검 같은데?”

무림맹 입구에 있던 남궁무명 또한 멀리서 다가오는 일행을 보았다.

“어르신, 무림맹주십니다.”

“…….”

도민군도 이미 고진유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닮았군.”

거짓은 아닐 거라 믿고 있었지만 역시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했다.

굳이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얼굴만으로 확실했다.

“아가씨. 그분이 맞습니다.”

“알겠어요. 내릴게요.”

달칵.

남궁무명은 마차의 옆으로 다가선 뒤 문을 열었다.

‘흐음. 주군께서…….’

반의중은 그가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무림맹으로 오면서 극일가와 남궁세가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게 확실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조심해서 내리시지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선 그녀는 다가오는 고진유를 보았다.

“정말이네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겠어요.”

고진유의 얼굴을 보면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가 심란하겠는데요?”

“그분이시라면 상황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긴 하겠지만, 실망은 어쩔 수 없겠네요.”

고진유는 금마지 앞에서 기다리는 인물들을 보았다.

남궁무명과 함께 선 두 남녀.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듯했다.

먼저 남궁무명과 인사를 했다.

“무명 형님, 오셨소이까?”

“……반갑네.”

남궁무명은 순간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당분간 무림에 알리지 않기로 했었으니까.

고진유는 그의 뒤에 선 반의중과도 인사를 나눴다.

“반 대주도 오랜만이네요.”

“맹주님을 뵙습니다.”

고진유는 두 사람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중년 사내와 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혹시 극일가에서 오셨소이까?”

“맞소이다. 본 가에서 십장로를 맡은 도민군이라 하외다. 그리고 이분 아가씨는 가주님의 사촌 누이이신 고미유 아가씨이십니다.”

“또…… 누나요?”

신분보다는 또 한 명의 누나라는 말에 힘이 빠졌다.

극일가에 한 분 계시는 숙부님의 여식.

“어머, 누나가 싫은 모양인가 보네?”

“나도…… 이제는 여동생을 가지고 싶군요. 누나라면 지금도 많고…….”

“아하하! 가주 동생은 웃긴 사람이구나. 그렇다고 내가 여동생이 될 수는 없는데.”

“…….”

그녀를 보니 어째 말하는 모양새가 쌍둥이 누나와 닮아 있었다.

“큼, 무명 형님, 어떻게 같이 계시는 것입니까?”

“무림맹으로 오는 길에 만났다. 극일가에서도 맹주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하더군. 그래서 같이 왔네.”

“수고하셨어요.”

고진유는 뒤로 잠시 빠져 있던 북소연을 불렀다.

“북 소저.”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녀도 상대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

“이분은 본 가에서 오신 사촌 누나라고 합니다.”

북소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분위기가 고진유의 쌍둥이 누나인 고화유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북소연이라 합니다. 만나 봬서 반가워요.”

“나도 반가워요. 고미유라고 해요.”

두 여인은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머지 인사는 무림맹에 들어가서 하도록 하죠.”

“좋아. 그렇게 하자.”

고진유는 그들과 함께 무림맹으로 향해 움직였다.

* * *

극일가에서 왔다는 두 사람의 방문을 들은 고화유는 맹주전으로 고미유와 함께 들어선 도민군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저씨!”

“화유 아가씨시군요.”

고화유와 도민군은 안면이 있었다.

어릴 적 극일천에 서너 번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함께 들어선 고미유를 보았다.

“미유 언니?”

극일가에서 지내는 숙부에게 일남일녀의 사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네가 화유 동생이구나. 한번 보고 싶었어.”

“저도요.”

사촌인 두 여인은 손을 맞잡으며 서로를 보며 반가워했다.

“도유 오라버니는 잘 계세요? 보고 싶어요.”

“가문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을 거야. 안 그래도 한번 만나 봐야겠지. 이번에 본 가에 가볼래?”

“당연히 가면 좋죠.”

극일천에만 지냈던 그녀는 예전부터 극일가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두 분이 오신 것은 진유 동생 때문이겠죠?”

“형식적인 절차지. 많은 분이 이미 인정을 했잖아. 마지막으로 직계 가족의 인정을 받아야만 진정한 가주가 되는 것이니까.”

“굳이 확인을 안 해도 알겠죠?”

“역시 피는 못 속이겠어. 아, 근데 나를 처음 보더니 하는 말이 또 누나냐고 하던걸.”

“호호호. 그럴 만도 하죠. 제가 소개해 드릴 분이 많아요.”

고화유와 북소연은 그녀와 함께 여인들이 모여 있는 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고진유가 왜 또 누나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진유와 도민군은 나란히 앉았다.

도민군은 가주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었다.

“대부분은 그대로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딱 한 번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전이라…… 이번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본인이 가주가 된 것을 싫어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극일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가주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의 기분도 생각해 주시는 게 어떤가 싶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도유.

오랫동안 극일가의 차기 가주가 될 것으로 인정을 받았던 사내였다.

하지만 고진유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그의 위치가 애매하게 변했다.

“한 번은 본 가에 방문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많이 바쁘십니까?”

“당장 급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무림이라는 게 일각 뒤에 일어날 일도 모르지 않습니까.”

“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림은 언제나 변화무쌍한 장소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알겠소이다. 최대한 시간을 만들어서 본 가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진유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가주를 그만두고 싶다면…… 가능은 합니까?”

“…….”

도민군은 무슨 생각으로 질문을 하는지 궁금했다.

“별 뜻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물어본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가주를 그만두시겠다면 용맥이 끊어지지 않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용맥만 끊어지지 않는다면 된다는 말이군요.”

“아마도…….”

그의 대답에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용맥만 안 끊어지면 된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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