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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29화 (329/425)

329화

정확히 삼 일이 지난 아침.

일찍 대법사를 잡으러 갔던 세 사람이 돌아왔다.

고진유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묵경 형, 수고했어요.”

“수고는 무슨. 그냥 여행이라 생각하면서 잘 구경하고 왔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언제 갈 수 있겠냐?”

“후후후. 고마워요. 인양과 녹검 씨도 수고했어요.”

“형, 고생은 무슨. 묵경 형의 말씀처럼 구경 잘하고 재미있었어요.”

“저도 초원 너머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푼 듯합니다.”

탁탁.

고진유는 두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법사 앞에 섰다.

“그대가 명왕괴수인을 제조한 대법사란 인물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대법사는 앞에 다가선 사내를 보았다.

중원 최고의 인물, 천하제일인 고진유를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환한 미소를 띤 그는 어떠한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명왕괴수인을 보니 잘 만들었더군요. 실력이 좋은 것 같았소이다.”

“……아…… 네에.”

“혹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있소이까?”

“그건…… 아직 연구를 더 해야 하는데…… 워낙 빨리 만들어달라고만 해서 만물괴종이 아니고서는 딱히 제어를 할 수 없습니다.”

“혹시 시간이 많다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성향상 당신만이 명왕괴수인을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만.”

“…….”

대법사는 자신이 살 기회라 여겼다.

세 곳 중 가장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한 곳을 책임자로 한다고 했었다.

그의 말처럼 명왕괴수인을 만들 수 있는 이는 분명 혼자만이 아닐 것이었다.

“두 곳이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장소는 모릅니다.”

“그런가요? 아쉽긴 하지만 당신이 있으니 걱정은 없군요.”

“…….”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비천에서 당신을 잡아가려고 했다던데. 죽을 때까지 그들의 종이 되어 일만 하고 싶지는 않겠지요?”

그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화령을 따라나서지 않았던 것이었다.

“본 가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연구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본 가라면……?”

세 명과 함께 중원으로 들어오면서 무림맹에 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극일가이오.”

“……아…… 네에. 알겠습니다.”

무림맹보다는 극일가에 간다면 오히려 더 다행이었다.

“괜찮겠어요?”

“넵. 제가 아는 지식으로 명왕괴수인을 잡을 수 있도록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됐습니다.”

고진유는 건너편에 대기한 공초를 불렀다.

“가주님, 부르셨습니까?”

“이자와 함께 본 가로 돌아가세요. 본 가에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가주님께서도 옥체 보존하십시오.”

잠시 뒤 일천기의 적룡무장들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

고진유는 남아 있는 화산파 제자들을 보며 소리쳤다.

“우리도 무림맹으로 돌아가죠.”

* * *

화비천의 표정은 담담했다.

전령을 가지고 온 사내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중원의 소문은 신기했다.

개인적인 일이 아니고서는 비밀이라는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어떻게 소문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명왕괴수인이 모두 전멸을 당했단 말이군.”

“그러합니다.”

“극일가의 적룡무장기가 나왔단 말이지?”

극일가에서 무림에 공식적으로 나타난 경우는 최근에 없었다.

‘극일가에서…….’

그동안 극일천이 존재했기에 극일가는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긴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군.’

“대법사는 어떻게 되었지?”

“그는 친협들이 데리고 갔다는 소문 외에는 아직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놈을 죽이지 않고 왜 끌고 갔지?”

“명왕괴수인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게 정답이겠지.”

화비천은 그 이유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명왕괴수인의 약점을 찾고자 끌고 갔을 게 분명했다.

‘음…… 쉽지는 않겠지만 피곤해질 수도 있겠어.’

명왕괴수인을 만들 수 있는 세 곳 중 가장 빠르게 만든 인물이 대법사였다.

그런 인물이 상대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좋은 일은 아닐 게 확실했다.

“할 수 없지. 그놈은 그놈이고…… 나머지 두 곳은 어떻게 되었지?”

“두 곳 모두 연락이 왔습니다. 각각 이십 마리의 명왕괴수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허허. 두 곳에서 겨우 총 사십 마리의 괴수밖에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군. 이것만 봐도 대법사가 뛰어나긴 했어.”

“그건 재료를 충분히 잘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곳도 대법사와 같은 조건이었다면 더…….”

“됐다. 그들을 책망하는 건 아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할 수 없겠지. 내가 화를 내는 건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실 화비천 그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사십 마리의 명왕괴수인을 어디에 보낼지 말이다.

“하나 그놈들이 본인의 일을 방해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화비천은 입가에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크크…… 그곳을 치면 되겠군.”

그가 결정한 문파는 백리세가.

극일천 당시 중원에 심어놓았던 수많은 간자들은 이미 신분이 들킨 뒤 스스로 자수하거나 잡혀 들어갔다.

극일천무신궁도 이제 그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원에 혼돈을 주고자 간자들을 심어놓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세력에 대해 모르는 중원인이 없었다.

간자가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서 놀랄 일도 없었다.

“화진령, 명왕괴수인을 데리고 백리세가를 정리할 수 있겠는가?”

“…….”

화비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죽으러 가라고 해도 무조건 명을 따라야만 했다.

“화비천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후후후. 어렵지는 않을 게야. 명왕괴수인이 사십 마리 정도면 충분히 쓸어버리고 올 수 있다.”

“알겠습니다. 당장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화비천의 입가에 시간이 지날수록 살소가 진해져 갔다.

* * *

다그닥.

사두마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두 마리의 백마와 두 마리의 흑마가 끄는 마차는 화려하지는 않으나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력이 많거나 권력이 높은 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마차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마부석에 있던 중년 사내가 멀리 객잔을 찾았다.

“아가씨. 허창의 소향루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쉬고 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마차를 몰려 소향루를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소향루의 입구에 도착하자 서너 명의 사내들이 다급히 뛰쳐나왔다.

“혹시…… 소향별관을 예약하신 분이십니까?”

“그렇네.”

“…….”

중년 사내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 남자를 보았다.

“그대는 누군가?”

“소향루의 총관입니다.”

“무슨 일인지 바로 말하게.”

“혹시…… 별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지낼 수…… 있겠습니까?”

“…….”

중년 사내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우리가 예약했던 별관에 다른 손님을 먼저 받았다는 뜻인가?”

“죄, 죄송합니다.”

“하루 빠르게 온 것도 아니고 늦은 것도 아닌 분명 오늘 이 날짜에 온다고 했거늘. 소향루 주인의 간이 부은 모양이군.”

“…….”

중년 사내가 살기를 뿜어냈다.

‘헉…….’

허창에서 장사를 한 지 수십 년이 넘었다.

무림맹으로 드나드는 무림인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총관은 눈앞에 선 사내의 내력이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대협, 송구하옵니다.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드르르륵.

그때, 마차의 창문이 열리면서 밖으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얼마나 대단한 곳에서 왔기에 말도 없이 예약을 변경해야 했는지 궁금하네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중년 사내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총관을 노려보았다.

“아가씨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기에 약속을 깰 정도였지?”

“나, 남…… 궁…… 세가에서 오셨습니다.”

“남궁세가라면 가주인가?”

남궁세가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가 주눅이 들 것이라 생각했건만, 중년 사내는 오히려 관심을 보였다.

“그분은 아니고…… 창천신검께서…….”

“창천신검! 요즘 남궁세가의 실세이긴 하지. 새롭게 떠오른 남궁세가의 인물이지 않소?”

“…….”

총관은 이쯤 되자 이들의 신분이 대체 누구이기에 창천신검이 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은지 궁금해졌다.

“아가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예약한 방이라는 건 변하지 않죠. 소문에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남의 방이나 빼앗는 것을 보니 실망이네요.”

“알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총관을 똑바로 주시했다.

“지금 바로 별관으로 안내하게.”

“…….”

총관은 어쩔 수 없었다.

뒷일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다.

‘난…… 분명 먼저 예약된 손님이 있다고 했는데.’

루주가 소향별관이 비어 있다면서 남궁세가에 냉큼 내준 것이었다.

그는 앞장을 서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만일 말다툼에 싸움까지 일어난다면……? 이들이 아무리 강해도 천하의 남궁세가를 이길 수 없을 텐데…….

‘이러다 괜한 송장을 치우는 게 아냐……?’

총관은 착잡한 마음으로 소향루 뒤를 돌아 안내했다.

경관이 좋은 곳에 장원처럼 세워져 있었다.

“여기입니다.”

중년 사내가 마차 옆으로 다가섰다.

“아가씨, 별관에 도착했습니다.”

스으윽.

문이 열리면서 이십 세 전후 젊은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연한 붉은빛이 비치는 비단 자락이 바닥을 스치듯 했다.

“들어가 볼까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한발 앞서 별관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안으로 들어선 중년 사내와 여인의 존재 때문인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그들 중 한 명의 사내가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대가 이들의 수장인가?”

“…….”

중년 사내의 앞에 선 남궁세가의 사내.

그는 호천수호대주 반의중이었다.

반의중은 처음 보는 사내의 반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답했다.

“이들이 제 수하이긴 하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상관을 불러주게.”

“그분을 부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무슨 일 때문인지 이유를 먼저 알아야 보고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오늘 이곳을 예약한 사람이었네. 근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소향루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방을 줬다고 하더군.”

“…….”

반의중은 그의 뒤에 선 총관을 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이들의 말이 맞는 듯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후후후. 그렇게 하겠네. 자네를 보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군.”

반의중은 살짝 허리를 숙인 뒤 안으로 들어섰다.

‘허어…… 이거 참. 소향루주가 피곤하게 일을 처리했군.’

방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무작정 이곳에서 지내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좀 더 자세히 물었어야 했는데.’

반의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주군, 반의중입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남궁무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밖에 누군가 찾아온 사실을 알았다.

“제법 강한 인물이군. 무슨 일인가?”

“소향루주가 먼저 예약된 이곳을 우리에게 준 듯합니다.”

“……그렇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궁세가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지.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현재의 상황도 남궁무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굳이 이런 곳이 아니더라도 잘 수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가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는 해야겠군. 가지.”

“넵, 주군.”

남궁무명은 반의중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

샤르르-

붉은빛의 비단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남궁무명은 잠시 걸음을 멈춘 뒤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반의중은 갑자기 멈춘 그를 돌아보았다.

‘흠…… 그러고 보니…… 주군도 사내였군.’

한때는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충분히 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인가?”

“그렇습니다.”

남궁무명은 먼저 앞으로 나서며 중년 사내와 여인의 앞으로 다가섰다.

스윽.

남궁무명은 먼저 포권을 했다.

“방금 잘못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허허허, 창천신검이 사과를 하니 몰랐던 모양인가 보군.”

“아마 이곳의 루주께서 착각한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스윽.

중년 사내의 뒤에서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정말로 몰랐던 모양인가 보군요.”

“소저,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곳에서 지내지 않았을 것이외다.”

“난 또 남궁세가의 이름으로 무작정 강탈한 줄 알고 실망할 뻔했어요. 남궁세가라서 고민이 많이 들었거든요. 다행이네요.”

“고맙소이다. 그럼 바로 자리를…….”

“됐어요. 어차피 한 집안인데 난 방 하나만 있으면 돼요.”

“……?”

남궁무명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저, 한 집안이라는 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까닥.

그녀는 손짓으로 남궁무명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극일가의 고미유라고 해요. 진유 아우보다 두 살 많은 사촌 누나죠.”

“……!”

남궁무명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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