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26화 (326/425)

326화

북당상단은 수십 년 동안 중원과 북방 사이에서 양모를 거래한 상단이었다.

묵경과 인양, 그리고 녹림야검은 상단의 표사로 위장하여 사자성기까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멀리서 산이 보이며 초원의 마지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형…… 저곳이 인산인가 보네요.”

“드디어 왔군.”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초원의 끝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사자성기의 마을 초입.

마을로 들어서는 관문 앞으로 병사들이 검문 중이었다.

“허허, 어서 오시오.”

검문소 안에서 부장이 나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평소에 상단과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양당호는 수하 표사에게 받은 상자를 들고 검문소 앞으로 가서, 재빠르게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병사들에게 건네주었다.

“고생이 많습니다.”

“하아. 총표두께서는 올 때마다 항상 손을 무겁게 가지고 오는군요.”

“그렇게 무겁지 않습니다. 소소한 물건들이니 그냥 받아도 됩니다.”

“여하튼 고맙소이다.”

“요즘 대법사님께서는 잘 계십니까?”

“음? 그분은 왜 물어보는 것이오?”

“아아, 그렇지 않아도 상단주께서 다음번에는 좋은 선물을 드려야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아하, 그렇소이까? 대법사님께서는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어제도 법궁에 잘 계신 것을 봤소이다.”

“아…… 잘 알겠습니다. 상단주께 그렇게 말씀을 잘 드려보겠습니다.”

양당호는 상단을 이끌고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법궁이라…….’

묵경은 대법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한 시진 뒤, 창고에 물건을 옮긴 아사하 상단에서 북당상단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세 사람은 쉬면서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법궁은 인산의 중턱에 세워져 있었다.

스윽.

저녁이 찾아왔다.

묵경과 인양, 녹림야검은 거처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세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법궁.

쉬는 동안 길을 확인한 세 사람은 상단에서 나온 뒤 법궁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법궁은 삼 층 높이의 석탑으로 된 건물이었다.

법궁 주위의 경계를 살피자 경비 병사들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았다.

“경계가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하긴, 여기에 누가 찾아오겠어?”

“그러긴 합니다.”

“쉽겠어. 법왕을 잡으러 가자.”

휘익.

법궁으로 가까이 다가선 그들이 내력을 감추며 무사히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만요.]

그때, 인양이 두 사람을 멈추게 했다.

[왜?]

[태양무국에서 느꼈던 그 기운이 있어요.]

묵경과 녹림야검의 눈살이 바로 찌푸려졌다.

[명왕괴수인이라고 하는 괴물?]

[그런 것 같아요.]

[제대로 찾아오긴 왔네.]

묵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바로 결정을 내렸다.

[음…… 일단 대법사라는 놈부터 잡자.]

[알겠어요.]

스르르르-

세 사람은 법궁의 삼 층으로 움직였다.

[저기…….]

[맞아.]

녹림야검과 인양이 동시에 한쪽을 가리켰다.

그들이 찾는 대법사의 기가 확실한 듯했다.

[잠깐만요.]

인양은 다시 두 사람을 멈추게 했다.

[안에 누군가 있어요.]

[…….]

묵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법사의 방으로 움직였다.

* * *

대법사는 갑자기 찾아온 중년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난 화비천님을 모시는 화령이라 한다.”

“…….”

“일어나지 못할까?”

대법사는 침상에서 일어났지만,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침상 끝에 앉았다.

“무슨 일이시오?”

“말이 짧군.”

화령은 살기를 띠며 그를 노려보았다.

“누가 말이 짧은지 모르겠군.”

“…….”

대법사 또한 화령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말로는 안 될 놈이군. 이러니 화비천님의 말씀대로 딴짓할 생각이나 하는 모양이지?”

대법사는 그의 말에 순간 뜨끔했다.

‘설마…… 그 사실을 알았다고?’

법궁에서 명왕괴수인을 만드는 동안 극비인 만큼 최대한 신경을 썼다.

이곳의 주민들조차 알지 못한 존재였다.

“멍청한 놈. 아무도 모를 것이라 확신했나? 세상에는 그 어떠한 비밀도 없다. 특히 네놈같이 속을 알 수 없는 놈은 무조건 비밀을 만들고자 하지.”

“내…… 주위에 사람을 심었소이까?”

“이제야 말이 조금 길어지는군.”

“……죄…… 송합니다. 전…… 그저 그것들을 예비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됐다. 어차피 모두 화비천지로 갈 것이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법사는 경계하면서 물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명왕괴수인을 만들면 된다.”

“이놈들을 만들려면 재료가 여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여기에 온 이유가 아닙니까?”

“훗. 지금은 성공했으니 재료들만 준비해 주면 만들 수 있을 텐데?”

“……화비천님께 말씀을 잘 전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곳에서 원하시는 대로 그분을 위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스르릉-

화령은 검을 뽑았다.

“화비천님께서 말씀하셨지. 말로는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한 번에 따라나서지 않는다면 다리를 자른 뒤 끌고 오라.”

‘나쁜 놈의 새끼들…….’

이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

화비천에 끌려가면 죽는 날까지 명왕괴수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침상 뒤에서 인영이 튀어나왔다.

“내가 네놈을 따라갈 것 같으냐?!”

화령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명왕괴수인을 마주 보았다.

“잘 만들긴 했군.”

“돌아가서 화비천님께 말씀드려라. 원하는 대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난 이곳에 계속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네놈이 직접 해야지. 왜 나에게 시키는지 모르겠군.”

“아직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는가 보지? 내가 한마디만 하면 당신은 죽을 수 있다.”

“크크크, 내가 죽는다고? 겨우 이런 놈한테?”

“저놈을 당장 죽여라!”

대법사는 앞을 막아선 명왕괴수인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크르릉…….

금방이라도 달려 나가 화령의 심장을 파낼 것 같았던 명왕괴수인은 괴음만 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저놈을 죽이라니까?”

다시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 됐다.’

대법사는 땀이 흘러내렸다.

명왕괴수인은 자신의 명만을 듣도록 만들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지?”

“크크크…… 이게 뭔지 아는가?”

화령은 손에 든 붉은색 괴종을 보여주었다.

“그건…… 만물괴종……!”

명왕괴수인을 조종할 수 있는 물건이 화령의 손에 있었다.

“어떻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대법사는 자신 혼자만 만물괴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제야 그는 성급하게 움직여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명왕괴수인은 만물괴종을 든 화령을 공격하지 못했다.

스윽.

화령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럼 가볼까?”

대법사는 다가오는 화령을 손을 피하며 장법을 펼쳤다.

“이…… 노오오옴…… 죽어라!”

상대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거리였지만, 화령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공격을 예측했다.

“네놈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장법을 펼치기 위해 나온 대법사의 손이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방 가득 울렸다.

“큿큿. 한 손이 없어도 이놈들을 만드는 데 지장은 없겠지.”

화령의 화기가 대법사의 단전을 향했다.

푸우우욱!

대법사의 단전은 불에 타는 충격을 받은 뒤 산산조각 났다.

“커어어억……!”

대법사는 뒤로 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아닌 놈을 이곳에서 잘 지내게 해줬으면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는 욕심을 왜 가지는지 모르겠군.”

화령이 손을 뻗어 그를 잡고자 할 때였다.

쉬이이익!

대법사 앞으로 검기가 날아왔다.

그는 재빨리 손을 뒤로 물리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휘이이익!

대법사 앞으로 세 명의 사내가 내려섰다.

* * *

일백 괴수의 명왕괴수인이 내려온다는 전서를 받았다.

‘많이도 만들었군.’

생각지도 못한 수였다.

‘명왕괴수인은 홍형석 수급 때문에 사자왕기에서밖에 만들지 못해. 묵경 형이 판단을 잘했어.’

명왕괴수인보다는 놈들을 만들 수 있는 대법사의 존재가 중요했다.

고진유는 적룡무장기와 함께 북쪽으로 움직였다.

명왕괴수인은 하북성 석가장의 강보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화산파의 사형들이 뒤를 따랐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탓인지 앞을 막지 못하는 중이라고 했다.

중원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막아야 했다.

“명왕괴수인이 두려운 존재인가요?”

“웬만한 도검으로는 그들의 몸에 상처를 줄 수 없다고 적혀 있더군요.”

“도검불침이겠네요.”

“움직임은 일반 무인들보다 서너 배가 빠르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야수들처럼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더군요.”

“…….”

“후후.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진유는 바로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뒤에 따라오는 저분들도 강해요. 그놈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 네에.”

고진유의 미소를 보았다.

명왕괴수인은 충분히 긴장할 만한 존재이건만, 그는 평상시와 같았다.

‘맞아. 명왕괴수인이 대단하다고 했을 뿐, 두렵다고는 말하지 않았잖아.’

북소연은 다시 한 번 더 생각했다.

‘난……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같이 있어.’

어떤 게 앞에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편해졌어요?”

“많이요.”

“다행입니다. 그놈들이 예상대로 내려온다면 하루가 지나면 마주치게 될 겁니다.”

“알겠어요.”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휘이이익!

화산파 제자들은 쉬지 않고 명왕괴수인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을 버린 뒤 신법을 펼치며 달렸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내력을 무한정 끌어 올릴 수도 없었다.

“젠장…… 아직도 반나절이군.”

그들과의 거리는 반나절 안으로 좁혀지지 않았다.

멀리 마을 입구가 보였다.

혁자영은 마을로 다가서면서 인상이 굳어졌다.

‘또…….’

명왕괴수인들은 지나가는 방향에 마을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곳도 마찬가지.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죽음의 혈향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여기도…….”

마을 주민들의 시신은 처참했다.

지금까지 열 곳의 마을들이 모두 똑같이 피해를 입었다.

명왕괴수인에게는 어린아이들도 의미가 없었다.

살아서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심장을 꺼낸 뒤 죽였다.

“이…… 괴물 새끼들을 무조건 죽인다.”

혁자영은 노기가 치솟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화산파 제자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사형, 빨리 갑시다.”

그들 모두 힘들었다.

일각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한 명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가자.”

휘이이익!

선두에 선 혁자형을 따라 화산파 제자들도 신형을 날렸다.

숨이 차며 다리가 풀릴 정도로 한 시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저놈들……!’

거리를 좁히기 위해, 힘들지만 산길을 돌아가는 것보다 중턱을 그대로 넘기로 했다.

혁자영은 중턱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천을 건너가는 무리를 보았다.

“드디어 잡았다.”

“어디?”

그의 뒤로 곽우가 다가왔다. 화를 잘 내지 않는 그 또한 욕이 튀어나왔다.

“저 망할 새끼들.”

“막아야 한다.”

하천을 건너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이 도달할 터.

우종성이 바로 한 곳을 가리켰다.

하천의 북쪽으로 반대편으로 배가 건너오고 있었다.

“저곳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끼이이익-

노를 저으며 하천을 건너오던 노인은 신기한 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허허. 저것들은 무엇이지?”

하천을 헤엄쳐서 건너기에는 제법 폭이 넓었다.

게다가 아직 물이 차가워서 함부로 건널 수도 없었다.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군.”

하천에서 노를 저은 오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난 노인은 더는 신경 쓰지 않고 건너편을 보았다.

두두두두-

한데 이번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허어……? 무슨 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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