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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25화 (325/425)

325화

백의노인은 앞으로 허리를 숙인 사내를 보았다.

“화비천님을 뵙습니다.”

“자네가 온 것을 보면 성공한 모양이군.”

“대법사께서 기대하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자신만만해서 신뢰가 가지 않는군.”

“아닙니다.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확실하면 좋지. 알겠네. 그대와 대법사를 믿어보도록 하지.”

“…….”

사내는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자신과 대법사를 무시하는 말투라니.

하지만 그의 앞에서 감정의 변화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인자한 얼굴과 달리 그가 가진 감정에는 차가운 죽음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왕괴수인은 화비천님께서 명하신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건 인정하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했다면 실패할 수 없다. 근데 말이야.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스윽.

화비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사내의 앞으로 다가섰다.

‘……왜…….’

사내는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 끝에서부터 살기를 보았다.

슈우우욱-

화비천의 손끝이 다가오면서 가슴을 찔렀다.

“욱.”

짧은 한마디의 비명.

살기가 짙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대로 심장을 꺼내서 보여줄까?”

“……크…… 으……?”

“난 말이네. 이해가 안 되네. 왜…… 시킨 일만 똑바로 하면 되거늘. 죽을 짓을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으으윽.”

화비천의 손이 점점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법사 이놈이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나? 괴수인을 따로 만들어놓는다고 해서 들키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나를 무시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겠지.”

“……!!”

사내는 고통의 순간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쿠우우욱.

화비천의 손이 사내의 심장을 건드렸다.

“아아아악!!”

사내는 목이 터질 듯 비명을 질렀다.

“중원의 인물이 아니고 능력이 좋다고 하기에 일을 맡겼는데 믿을 놈이 안 되는군.”

퍼어억.

화비천이 손끝에 내력을 쏟아내자 심장이 터졌다.

사내는 입에서 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졌다.

“네놈 말을 믿지. 실험이 성공적으로 되었다니 다행이군. 그놈을 잡아와서 제대로 일을 시켜야겠어.”

화비천은 쓰러진 시체를 두고 수하를 불렀다.

“화령.”

“부르셨습니까?”

그의 앞으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법사를 끌고 오도록 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고진유와 북소연은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태양무국을 물리친 후 곧바로 거용관을 물러나지 않고 초원으로 간 사형제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고진유의 표정을 읽었다.

평소와 다르게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걱정이 되는 모양인가 봐요.”

“얼굴에 표시가 나오?”

“당연히요.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머물 이유도 없잖아요.”

“그렇군요.”

그녀도 태양무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예전의 화산파라면 모를까?

현재의 그들이라면 본 전력이 빠진 태양무국 정도는 쉽게 정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제가 모르는 힘이 숨겨져 있나요?”

“그들이 아닙니다.”

“태양무국이 아니라 다른 게 있다는 것인가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래요. 분명 사형들이 있는 방향에서 좋지 않은 기운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않은 건가 보군요.”

고진유가 거용관에 이틀 동안 머무르려고 하는 이유.

화산파의 사형제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똑똑.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가주님, 공초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적룡무장기 대주 공초가 안으로 들어섰다.

“연락이 왔습니까?”

“방금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고진유는 그가 준 전서를 받아 들었다.

“…….”

공초와 북소연은 전서를 읽으면서 표정이 굳어진 고진유를 보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초님, 나오지 말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명왕괴수인이 나타났습니다. 태양무국의 본영을 궤멸시킨 뒤 중원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공초 또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명왕괴수인이 나타났다는 의미는 일월가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가주님. 화산파에서 태양무국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들과 부딪히기 전에 어긋난 모양입니다. 사형들이 곧바로 명왕괴수인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화산파에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괴물들이 중원에 들어오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사형들이라면…… 막을 수는 있을 테지만…… 피해는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바로 움직여야지 않겠습니까?”

“지금 명왕괴수인의 수가 얼마인지 조사 중이라 하니 우리도 일단 움직이면서 그때 계획을 세우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공초는 인사를 한 뒤 빠르게 물러나면서 수하들을 향해 움직였다.

북소연은 명왕괴수인에 대해 처음 들었다.

“저어…… 명왕괴수인이 무엇인가요?”

“일월가에서 만들어낸 괴인입니다.”

“강시와 비슷한가요?”

“오히려 짐승들과 가깝다고 보면 됩니다. 중원인들이 상대하기에 많이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그분들도 위험하지 않겠어요?”

“조심해서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묵경 형과 인양, 녹림야검, 세 사람은 따로 움직인다고 하는군요.”

“따로?”

“어디를 간다는 것인가요?”

“저기…… 멀리…….”

고진유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화산파 제자들이 떠난 뒤, 세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대법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명왕괴수인을 처리하더라도 그가 살아 있다면 언제든지 괴물들을 다시 만들 수 있을 터.

묵경은 명왕괴수인을 막아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만든 대법사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묵경 형, 우리 세 명으로 가능할까요?”

“두 사람, 가까이 모여봐.”

인양과 녹림야검이 가까이 다가섰다.

묵경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다음 두 사람을 가리켰다.

“우리가 누구냐?”

“…….”

“천하제일인 진유 아우의 가장 친한 의형제들이다. 우리 무공에 대해서 가끔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끼리 모여서 모르겠지만 따로 무림에 나가면 적수가 없다고.”

“맞습니다. 제가 녹림에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채주들이 원해서 비무를 했는데…… 애들 장난 같았습니다.”

“녹검 말 들었지? 자만하지 않고 싸운다면 우리와 대등한 무공을 지닌 인물들은 얼마 없어.”

“음……! 알겠어요.”

“지금까지 우린 진유 아우를 따라 다녔잖아.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진유 아유는 예전처럼 작은 일에 움직이지 않을 거야. 큰일을 할 사람이 일일이 옆에서 가르쳐 주면 얼마나 피곤하겠어? 앞으로 우린 알아서 움직여야 해.”

“묵경 형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 대신 항상 조심하고…… 진유 아우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묵경의 말에 인양과 녹림야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왕괴수인을 만들었다는 그놈을 우리가 잡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다행이잖아.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대법사가 있는 인산의 사자왕기였다.

그곳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는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우선 근처에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묵경의 말처럼 먼저 움직이면서 상황을 맞추어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 * *

초원의 끝을 향해 달리던 인양은 손을 들어 말을 멈추었다.

묵경과 녹림야검이 바로 멈추며 옆으로 다가왔다.

“또 그놈들이야?”

“그게 아니고……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묵경과 녹림야검은 내력을 올리며 주위를 살폈다.

“맞군. 누군가 싸우는데?”

두 사람도 바로 확인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그들은 비밀리에 사자왕기에 들어가야 했다.

“혹시 착한 사람들일 수도 있잖아요.”

“가보자.”

인양의 말대로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채애애앵!

까아아앙-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묵경 형님, 마적들입니다. 상단을 공격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가자.”

두두두-

녹림야검을 선두로 세 명은 빠르게 달렸다.

마적들은 원을 그리면서 공격하는 도중 빠르게 달려오는 그들을 보았다.

“두목. 저기……!”

“뭐야? 세 놈밖에 없잖아. 저놈들을 치워!”

“알겠수다.”

붕붕.

붉은 두건을 쓴 마적은 철퇴를 머리 위로 돌리며 다가오는 녹림야검을 향해 달렸다.

“이노오오오옴. 죽고 싶어서 오는구나. 한 번에 머리통을 날려주마!!”

녹림야검은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마적을 보며 피식 웃었다.

타아앗.

녹림야검이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바닥을 차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녹수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콰아아앙-!!

눈앞으로 떨어진 검기에 마적은 몸이 굳어졌다.

그들이 상대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녹림야검은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살고 싶으면 조용히 옆으로 물러나라.”

“……네에…….”

붉은 두건 마적은 말에서 내린 뒤 옆으로 물러났다.

‘저 새끼가…….’

마적 두목은 싸우지 않고 철퇴를 버리고 서 있는 모습을 노려보았다.

“저놈을. 뭣들 하느냐? 저기 저 새끼들을……!”

쉬이이익!

마적 두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퍼어억!

바위만 한 주먹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부딪혔다.

“커어어억.”

마적 두목은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날아올라 십여 장 뒤로 떨어졌다.

휙휙휙.

인양은 신법을 펼치며 말 위에서 말 위로 날아다녔다.

“으으으으악……!!”

퍽퍽퍽퍽.

한 번 소리가 날 때마다 허공으로 마적들이 날아올랐다.

붉은 두건의 마적이 얼른 소리쳤다.

“모두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말에서 내려라!”

후다다닥.

마적들은 살기 위해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자, 정리됐으면 여기 두목은 나오도록.”

“…….”

“뭐야? 모두 죽고 싶은 모양이지?”

녹림야검의 살성이 그들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저어…… 그게…… 저기에…….”

그들이 가리킨 인물은 처음 주먹을 맞은 뒤 기절한 사내였다.

“죽었어?”

“아닙니다. 잠시 기절했습니다.”

“그럼 데리고 와서 깨워.”

“넵. 알겠습니다.”

마적들은 두목을 끌고 온 뒤 깨우기 위해 흔들었다.

“두목, 두목. 일어나시오.”

“으…… 으…….”

마적 두목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짝! 짝!

마적들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도록 뺨을 때렸다.

“이…… 자식이…….”

“아, 일어났습니까?”

“너 지금 내 뺨 때렸냐? 죽고 싶은 모양이지?”

“그, 그게 아니라 이분들께서 깨우시라고 하셔서…….”

“…….”

마적 두목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얼른 자세를 고쳐 잡은 뒤 고개를 숙였다.

“살고 싶나?”

“그렇습니다.”

“좋아, 살려 보내주마. 그리고 앞으로 노략질할 때에는 물건만 적당하게 빼앗아라. 최대한 목숨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아, 알겠…… 습니다.”

“가라.”

마적 두목은 믿기지 않았다.

너무 쉽게 보내주는 그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돌아서며 가는 순간에 마음이 바뀌어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려준다고 했는데도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으로 봐선 죽고 싶다는 뜻으로 알고 목을 베어주지.”

“아닙니다!”

마적 두목은 빠르게 움직였다.

* * *

북당상단의 책임자 총표두 양당호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음을 알았다.

상단으로 다가온 세 명의 인물들을 보았다.

마적들을 상대한 가공할 무공을 보면서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전 북당상단의 총표두를 맡고 있는 양당호라 합니다. 고인들께서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소이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저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고인의 성함을 듣고자 합니다.”

“본인은 묵경이라 하오. 함께 한 이들은 의제들인 녹검과 인양이라 하고.”

“……!”

양당호는 물론 상단의 모든 사람들이 세 명의 얼굴을 보며 말이 사라졌다.

그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저어…… 죄송하지만 풍…… 류…… 옥협이십니까?”

“그렇소이다.”

묵경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잘생겼다, 였지만 설마 풍류옥협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양당호는 나머지 두 명 또한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젊은 청년은 의제검협이고…… 그 옆에 계신 분은 녹검살협이다.’

무림 최고의 친협을 중원이 아닌 북방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

“저희 상단은 인산의 사자성기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렇소?”

묵경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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