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322화 (322/425)

322화

무장 항종은 호위 무사를 따라 내빈 별관으로 향했다.

무림인들의 성지라 알려진 무림맹에 들어서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또한 무공을 수련한 무장이었다.

‘엄청난 인물들이다.’

스쳐 지나치는 무인들의 신형에서 흘러나오는 내력을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그는 별관에 도착한 뒤 맹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천하제일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은 오고 싶은 곳에서 천하제일인을 마주친다는 건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였다.

항종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볼 게 많습니까?”

“…….”

언제 들어왔는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뒤를 돌아 사내와 시선을 마주쳤다.

젊은 사내.

하지만 그의 신형에서 흐르는 기운이 자신을 단번에 주눅들게 만들었다.

‘무…… 림맹주.’

단번에 그가 천하제일인 화산도협임을 알았다.

몸이 흠칫거린 채 움직일 수 없었다.

황제의 앞에 섰을 때와 또 다른 느낌.

숨이 막힐 정도의 위엄으로 가득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본도를 만나고자 왔다고 들었소이다. 황제의 명이라 했소이까?”

“그렇습니다.”

항종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에서 부복을 했다.

“일어나세요.”

“고맙습니다.”

그는 여전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그를 대신하여 먼저 고진유가 말문을 열었다.

“다급하게 온 이유가 태양무국의 일 때문인가 보지요? 황제께서 본도에게 뭔가 주시지 않으셨나요?”

“…….”

항종의 눈이 커졌다.

무림맹주는 자신이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는 품 안에서 황제의 서신을 재빨리 꺼내어 내밀었다.

고진유는 황제가 보낸 서신을 펼쳤다.

‘음…… 그렇군.’

대충 자신이 예상했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제가 무장을 보낼 정도면 이유는 단순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이었소.”

“…….”

“황제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시오.”

“넵.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옹주께서도 잘 계시니 염려하지 말라고도 전하면 됩니다.”

“황제 폐하께 그대로 전해 올리겠습니다. 다른 건 없으십니까?”

“특별한 건 없소이다. 먼 길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 대접해야겠지만, 상황이 급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셔서 본도의 말을 전해주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항종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대답은 황제의 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믿음이 갔다.

‘이분이시라면 분명 도움을 주실 수 있다.’

그는 곧바로 무림맹을 황급히 떠났다.

* * *

이틀 전.

저녁 늦게 맹주전으로 제갈양이 찾아왔다.

“늦은 시간에 오셨네요. 저에게 볼일이 있으시면 불러도 되는데.”

“그게…… 애매한 일이라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북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네.”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태양무국. 그들이 중원으로 내려올 모양이야.”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근데 거기까지 연락이 닿습니까?”

“후후후. 북쪽도 신경을 써야 하는 동네라서.”

“그렇지 않아도 저도 그들이 움직이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따로 정보망이 있는 모양인가 보군.”

“그건 본 가의 비밀입니다.”

태양무국이 움직이는 사실에 대해서는 고진유도 알고 있었다.

거대한 군부 집단이자 무림 세력으로 알려진 북쪽 초원의 강자가 그들이었다.

“중원에서 이미 물러난 그들이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는 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지요.”

“맞아. 누군가 그들을 중원에 끌어들인다고 봐야겠지.”

“그들을 부추길 수 있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극일천무신궁이라는 말이군.”

“맞습니다.

고진유는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았다. 세외무림을 끌고 들어왔기에 이번에도 극일천무신궁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이번에는 그들이 태양무국을 이용한다……. 맹주. 하지만 그들은 세외무림과는 다르지 않을까?”

제갈양이 알고 있는 태양무국의 힘은 한 국가의 힘과 대등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대원제국이 중원에서 물러날 당시 수호무력군인 태양무국에서 끝까지 싸우고자 했다면 여전히 나라가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갑자기 중원에서 물러나 대원 또한 물러난 것이지. 정말로 그들이 들어온다면 큰일이지 않을까?”

“큰일까지야 있겠습니까? 저번에는 살려 보냈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정리를 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저번에 살려 보냈다는 말이?”

“태양무국이 중원에서 물러난 이유는 그들의 수장이 아버지에게 까불다가 다시는 들어오지 않기로 약조를 한 뒤 보내주었기 때문이죠.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때 일을 잊은 듯하네요.”

“그…… 래?”

고진유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태양무국이 갑자기 돌아간 이유가…… 그렇구나.’

“맹주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들이 스스로 중원에 들어오려고 한들, 아니면 극일천무신궁에서 사주했든 상관없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분명 경고를 하셨다고 했지요. 그들이 정말로 중원에 들어온다면 태양무국이 사라지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맹주가 나섰겠다는 건가?”

“제가 나서기는 하겠지만 이번 일은 무림맹이 아닌 본 가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극일가에서?”

“그들과 약속을 했으니까요.”

“음. 그렇게 해주면 좋고.”

태양무국에 대한 고민이 쉽게 해결이 된 듯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서랍을 열었다.

“이제 한잔하시겠어요?”

“좋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술병에서 진한 매화 향이 올라왔다.

“좋은데?”

“이번에 올 때 한 병 가져왔죠.”

“화산에 다녀왔어?”

“……그런 게 있어요.”

* * *

‘무슨 일이지?’

화산전에서 머물던 우종성에게 맹주전의 호위가 찾아왔다.

조용히 만나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그는 곧장 맹주전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나를 찾았다고?”

“대사형, 어서 오세요. 괜히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당연히 내가 와야지.”

“자리에 앉으세요.”

고진유는 미리 준비했던 차를 그의 앞에 따랐다.

“오늘 황궁에서 왔다가 간 사실을 알고 계시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다급하게 찾아온 것 같더군.”

“북쪽의 태양무국에서 중원으로 내려온 모양인가 봐요.”

우종성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무림인이라면 태양무국의 이름만으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 시절 그들에 의해 중원 문파들이 핍박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궁이 무림맹에 도움을 청한 모양이지?”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울 겁니다.”

“예전에도 그들을 몰아낼 때 무림에서 함께 싸웠다고 듣긴 했다. 이번에도 무림맹에서 나설 계획인 모양인가 보구나.”

“본 가에서 나설 것입니다.”

“본 가라면 극일가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우종성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본 문이 아닌 본 가라고 말을 했을 때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중원인들은 모르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게 뭐지?”

“본 가에 의해 태양무국이 중원에서 물러날 때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 중원에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요.”

“그런 일이 있었더냐? 그래서 쉽게 물러갔던 거였군. 그때는 무림맹의 힘이 강하지 못했을 때인데 이상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본 가와의 약속을 어겼다면 책임을 져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이해했다.”

“용서는 한 번뿐입니다. 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태양무국을 멸살시킬 작정입니다.”

“어떻게 말이더냐?”

“태양무국의 본진으로 가서 완전히 궤멸시킬 것입니다.”

“…….”

“그 임무를 대사형과 본 문이 맡아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가?”

우종성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본 문이 그들의 본진을 공격하라는 것이군.”

“전 뒤끝이 남아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후후.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확실하게 하지.”

“대사형, 부탁하겠어요.”

“알았다. 이번 일은 본 문에서 맡도록 하마. 언제 준비하면 될까?”

“전 내일 거용관으로 바로 올라갑니다. 대사형은 조용히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알겠다.”

“묵경 형과 인양, 녹검 씨도 함께하면 될 겁니다. 사저들은 이번 일에 빠지는 게 좋겠어요.”

“우희 때문이냐?”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두 사람은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고 해야겠구나. 녀석. 언제 그리 사고를 친 건지.”

“하핫, 그러게 말입니다. 여하튼 먼 길을 떠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무림맹에 있는 것보다 낫다. 그리고 무림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태양무국이라면 더 해볼 만하고.”

“조심하세요.”

“사제도 조심해라.”

우종성과 고진유는 차를 마시며 서로를 보았다.

화산전으로 돌아간 우종성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장두총은 그가 기분이 좋아진 것을 알았다.

“호진 사형, 사제를 만나고 오더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전부 모여라.”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지금부터 조용히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멀리 갑니까?”

“북쪽의 초원이다.”

“네에?”

“사제가 부탁했다. 본 문은 태양무국의 본진으로 가서 남아 있는 세력들을 정리할 것이다.”

“……정말입니까?”

“그래.”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본 문이라고 하면 무림맹이 아닙니까?”

“맞다. 화산파인 우리만 가는 것이고.”

“사제는요?”

“사제는 그의 본 가와 함께 거용관에서 태양무국을 상대한다고 하더군.”

“아하…… 황궁에서 급하게 온 게 그 일 때문이었군요. 근데 무림맹에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봅니다?”

곽우가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태양무국에서 중원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극일가와의 약조를 어겼다고 하더군.”

“호오, 다른 곳도 아닌 극일가와 약조를 했다면서 간도 크네요. 여하튼 오랜만에 나간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장두총은 슬쩍 당우희를 보았다. 그녀의 배는 이미 만삭이 되어 있었다.

“저어…….”

장두총이 묻기도 전에 우종성의 말이 먼저 나왔다.

“이번에 호청과 호화는 빠진다.”

“네에? 사형, 전…….”

연자련은 당연히 함께 간다고 생각했다.

“호화는 호청을 보살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먼 길에다가 태양무국이라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않을까요?”

“묵 형과 인양, 녹검 형도 같이 가기로 했다.”

“아…… 그들이 함께하면 괜찮겠네요.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알겠다. 편히 쉬도록 해.”

벌떡.

혁자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준비하죠.”

* * *

두두두-

두 마리의 말이 빠르게 달렸다.

고진유와 나란히 달리는 북소연은 기분이 좋았다.

태양무국을 상대하기 위해 떠난다며, 함께 길을 가자고 했다.

북소연은 기뻤다.

그가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준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무림맹을 나온 지 하루가 지난 뒤 붉은 갑옷으로 무장한 기마대를 만났다.

“저들은 본 가의 적룡무장기(赤龍武裝騎)입니다.”

“……엄청나요.”

일천의 적룡무장기가 보여주는 위용은 대단했다.

고진유와 북소연은 그들 앞에 멈췄다.

적룡무장의 사내가 천천히 말을 몰며 다가왔다.

우우웅-

사내의 적룡기에 반응하듯 고진유의 용린기가 뿜어 나오자 적룡기가 단숨에 사라졌다.

“소신,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용맥의 전인이신 가주님을 뵙겠습니다.”

“고진유라 하오.”

“대주 공초라 합니다.”

“처음 뵙겠소이다.”

적룡무장기 대주 공초는 고진유와 함께 온 그녀를 가리켰다.

“이분께서는?”

“눈치를 챘겠지만, 본인의 여인이오.”

척.

“소신 공초. 가모님께 인사드립니다. 소문대로 가주님과 잘 어울리십니다.”

“과찬의 말씀을 하시는군요. 북소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초는 전장에 함께 온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무공도 강하다는 것임을 알았다.

“공초 님, 간단합니다. 우린 곧장 거용관으로 가서 태양무궁을 칠 것입니다.”

“소신도 간단한 게 좋습니다. 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타악!

고진유와 북소연은 앞장을 서며 몰았다. 그 뒤로 공초를 선두로 한 일천의 적룡무장기가 따랐다.

‘오호…….’

앞서 달리는 북소연을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말을 모는 솜씨가 출중했다.

‘역시…… 가모님이시군.’

* * *

거용관에 선 거기장군 부차숭은 건너편의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십만의 병사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고 거용관으로 달려온 태양무국의 기마 군대였다.

부차숭은 멀리서 보면서도 몸이 떨렸다.

다행히 거용관은 천하의 요새로, 저들이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해도 쉽게 점령할 수 없었다.

쾅!! 콰앙!! 쾅!!

태양무국의 기마군들이 성벽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수백 발의 화포를 퍼붓고 있었다.

태양무궁의 기마 군대가 제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포를 철 방패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화포 공격은 충분히 먹혀들었다.

하지만 부차숭이 걱정하는 건 탄환의 재고량이었다.

‘젠장…… 보급대가 빨리 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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